〈 44화 〉 44. 소원의 의문
* * *
소원은 정우와 통화 후 미심쩍은 마음에 소희와 통화중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 간호사가 도와줘?”
소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글쎄. 잘 안 그러지?
소원의 맑고 커다란 눈동자가 동요했다.
정우의 말대로 그저 단순히 힘들어서 내는 소리라 치기에는 너무 간드러진 소리였다.
소원은 그게 무슨 소리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소원의 앞니가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있었다.
‘단순히 힘들어서 내는 소리라고 하기엔, 왠지 톤이 높았는데?’
‘간호사가 아니면 누구란 말이지?’.
‘누군지 나한테 숨기는 건가?’
‘혹시 정우 오빠에게 그동안 여자친구라도 생긴건가?’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올랐다.
기껏 전화를 걸어온 소원이 말이 없자, 핸드폰 너머의 소희가 답답한지 독촉해왔다.
왜 그래? 나 바빠. 끊어도 되지?
그제야 소원은 속에 있는 얘기를 꺼냈다.
“방금 정우 오빠랑 통화하는데, 옆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서.”
소원은 자신이 들은 소리가 확실치 않아 그저 ‘여자 목소리’라고만 표현했다.
소희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소원이 통화 중에 그저 단순히 여자 목소리를 들었나보다 싶었다.
병원에 여자는 많았다.
여자 목소리? 혹시 걔 아직 깁스를 안 풀어서 직원 중에 누가 도와주고 있는건가? 근데 병동에 여유가 많지 않아서 따로 누가 도와주러 가기 힘들건데?
“아까 언니 말로는 깁스 풀 거라며?”
소희로서는 변수가 많다보니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경우의 수들은 병원 밖에 있는 소희로서도 확실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게다가 소희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깊게 생각할 수 없었으니 대답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응. 아까 나오기 전에 내가 선생님이랑 상의해 보라고 했었지. 근데 안 풀었을 수도 있구. 그리고 풀었더라도 아직 불편할 수도 있지. 아, 참. 그러고보니…
소희의 머리에 뭔가 스쳐 지나갔다.
‘최세나?’
소희는 세나가 정우의 병실에 놀러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어제 저녁에 만났을 때, 친구가 어쩌니 저쩌니 라고 말했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환자도 옆에 있고, 곧 정우가 퇴원하기도 할테니 뭘 어쩌랴 싶었다.
단순히 퇴원 인사차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소희가 뜸들이자 소원이 졸랐다.
“뭔데 언니?”
소희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세나일 거라는 게 확실치는 않았다.
일말의 가능성만으로 소원에게 굳이 세나에 관해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얘기가 깊어졌다가는 자신과 정우와의 관계에 대한 단서를 소원에게 흘릴지도 몰랐다.
아직은 소원을 포함한 주변 사람 모두에게 둘의 관계는 비밀이어야 했다.
아니야. 아무 것도. 누가 도와줬나 보지. 아니면 네가 잘못 들었거나. 어머. 세미나 시작하려나 보다. 나 이만 들어가 볼께. 끊는다?”
소희는 내심 나중에 정우에게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끊었다.
소희가 통화를 마치니, 소원 역시 그대로 통화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소원의 가슴에는 석연치 않은 찜찜한 느낌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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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는 남아있던 온 힘을 짜내며 방금 사정을 마무리한지라 몹시 피곤했다.
이틀간 몇 번을 사정한건지 세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기분은 몹시 좋았다.
나체의 상태로 품에 안겨 있는 세나가 너무나도 예뻐 보였다.
그리고 자신을 황홀하게 몇 번이나 만들어준 세나가 고마웠다.
“예뻐요.”
세나가 미소지었다.
세나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정우가 말을 이었다.
“숙제 이 정도면 괜찮았어요?”
세나가 웃었다.
어제 처음 관계 후 정우에게 지적한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었나보다 싶었다.
조금 미안해지려 했다.
“그런대로 괜찮네.”
정우가 세나의 귀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물었다.
귀가 드러나니 더 예뻐 보였다.
“그럼 숙제검사는 이제 안해도 되는 거에요?”
세나가 미소 지으면서 답했다.
“계속 할꺼야. 오래오래.”
분위기가 좋았다.
정우는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었다.
“부탁이 있어요.”
“뭔데?”
정우가 진지하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약속한대로 누나 만날테니, 누나랑 함께 있을 때는 누나한테만 신경 쓸 께요. 다만 소희 누나를 함부로 말하지는 말아줘요. 소희 누나는 어릴 때부터 함께 해서 내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세나는 아마도 자기가 소희를 함부로 칭하는게 정우의 귀에 거슬렸나보다 싶었다.
세나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정우가 표현하려는게 잘 느껴졌다.
세나는 정우가 소희를 챙기는 것 같아 좀 실망스러웠다.
관계 후의 나른함이 사라지려 했다.
그러나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자기에게만 신경 쓰겠다는 말은 기분 좋았다.
정우로부터 처음으로 제대로 된 애정표현을 들은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어차피 소희를 사귀는 걸 아는 상태에서 만나자고 자기가 졸라서 시작된 관계였다.
싫은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소희보다 한참 앞서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판하고 있었나 싶기도 했다.
세나는 기분 좋으면서도 씁쓸한 상반된 느낌에 답을 못하고 있었다.
정우가 말을 이었다.
“대신, 누나에 대해서도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못 하도록 할께요. 누나도 내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세나의 가슴이 흔들렸다.
세나는 대답없이 정우에게 입술을 가져갔다.
정우도 고개를 내밀었고, 둘은 또 한번 뜨겁게 키스했다.
정우의 손이 세나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만. 아퍼.”
아픈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우가 무안하지 않도록 미소지으면서 정우를 말렸다.
정우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아픈데도 한 거에요?”
“어제 무리했나봐. 조금 뒤면 괜찮아질거야.”
세나가 미소지으면서 정우를 안고 다시 키스했다.
걱정해주는 정우가 사랑스러웠다.
세나의 입술이 정우의 몸을 따라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시들어있을 정우의 페니스에 입술이 가까이 가니 녀석은 어느새 또 다시 커져 있었다.
“어머. 뽀뽀나 해주려던 거였는데.”
세나는 커져버린 페니스를 쥐고 웃었다.
손으로 잠시 만져주더니 곧 정성스레 페니스의 원뿔을 입에 물고 오물거렸다.
정우의 허리가 꿈틀거리는게 느껴졌다.
세나가 페니스에 대고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곧 보자.”
세나의 눈에 정우의 허벅지 안쪽에 남아있던 붉으스름한 자국이 들어왔다.
어제밤 세나 자신이 남겼던 키스마크였다.
"어머. 이거 아직 남아 있네?"
세나는 미소 짓고는 페니스의 갈라진 끝에 가볍게 키스했다.
정우는 마지막까지 황홀하게 만들어주는 세나로 인해 또 한번 불타오르고 싶었다.
하지만 더는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퇴원해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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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의 집
정우는 그대로 세나와 인사 후 퇴원하고 집으로 와서 간단히 점심을 차려 먹고 씻었다.
오후에 학교에 갈까 싶었지만, 몸이 많이 피곤해서 그냥 오늘도 쉬기로 했다.
학교의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노트 필기나 받아 보기로 한 후, 정우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오랜만에 이틀간 무리해서 그런지 침대에 누우니 잠이 쏟아졌다.
허리는 아직 뻐근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병원에서도 물리치료만 잘 받으면 된다고 했으니 큰 염려 없었다.
오른팔도 아직 좀 안 좋기는 했지만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어 보여 안심이 되었다.
부모님께 따로 연락은 드리지 않았다.
여행 중에 굳이 걱정하시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녀오시면 그 뒤에 말씀드릴 참이었다.
정우가 막 잠이 들 무렵이었다.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제 저녁, 메시지를 나눴던 나연이었다.
몸은 괜찮아? 오늘 퇴원하는 거야?
정우는 나연이 많이 신경 써 주는 게 느껴졌다.
강아지를 구해준 데 대해 많이 고마웠던 듯싶었다.
나연이 챙겨 주려는 게 고마웠다.
응 많이 좋아졌어. 오전에 퇴원해서 지금 집이야.
보낸 메시지 앞의 1이 금새 사라졌다.
통화 괜찮아?
응
나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빠, 괜찮은거지?
나연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느껴졌다.
완전하진 않지만, 걱정해 줄 정도로 몸 상태가 나쁜 건 아니었다.
혹시라도 약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정우는 여유있게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다니까. 하하. 지금은 멀쩡해. ”
나연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휴. 다행이다. 오빠. 난 얼마나 걱정했는데.
정우는 나연이 재수생인게 떠올랐다.
이 시간에 재수생이 통화해도 되나 싶어 조심스레 물어봤다.
“이제 괜찮으니 안심해. 근데 너 공부 안하고 전화해도 되는거야?”
지금 학원이야. 오늘은 왔지. 지금 쉬는 시간이지롱.
“아, 그렇구나.”
오빠, 그럼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어제 내가 밥 산다고 했잖아.
“오늘? 나 선약이 있어.”
나연의 제안이 싫지는 않았지만, 소희네 집에 가기로 한 걸 취소할 수는 없었다.
그럼 내일은 어때? 내일 점심이나 저녁?
“내일? 주말에도 공부해야 하는 거 아냐?”
괜찮아. 어차피 주말에는 쉬고 있어. 나 공부 열심히 안한다고 했잖아.
무안한지 까르르 웃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나연이 명랑하게 대해오니 비록 어제 아침에 처음 만났던 사이지만 정우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정우는 나연이 두번이나 식사를 제안하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 같아 미안하던 참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한번 보는게 좋을 듯 했다.
아마도 밤에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내일 점심까지도 피곤할 것 같았다.
그리고 주말 저녁은 소희를 위해 비워놔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아무리 나연이 사겠다고는 하지만,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연장자인 자기가 사야겠다 싶었다.
그러나 병원비까지 내느라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았다.
게다가 앞으로의 소희와의 데이트를 위해서도 용돈을 아껴둬야 했다.
굳이 지금 무리해서 식사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식사는 다음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때 사주면 될 일이었다.
“식사 말고, 오후 세시쯤 그냥 커피나 한잔 할까 그럼?”
좋아. 그렇게 해. 오빠.
"솜탱이도 델구 올거지?"
정우는 강아지가 생각이 났다. 귀여웠었다.
그럼. 생명의 은인인데.
생명의 은인이라니.
나연의 표현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정우는 나연과 약속장소를 잡은 후, 전화를 끊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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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여섯시.
오후 근무를 마친 소희는 퇴근하고 병원에서 나서자마자 멈춰섰다.
정우에게 전화를 하기 위함이었다.
핸드폰을 들어 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전부터 계속 정우에게 연락해보고 싶었던 소희였다.
그러나 세미나에 다녀오는 도중에는 계속 윗 분을 모시고 있느라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녀 와서도 일에 치여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정우가 퇴원을 잘 했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원과의 통화 이후부터 세나가 마음에 걸렸다.
어쩔 수 없이 소희는 퇴근 후에 정우에게 통화로 물어보려 미뤄두고 있던 참이었다.
정우가 전화를 받았다.
누나? 어디야?
잠에서 깬 목소리였다.
퇴원 후 낮잠이라도 자고 있나보다 싶었다.
“나 병원인데 퇴근하고 있어. 자고 있었니?”
방금 전에 깨서 누나 집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퇴원은 잘 했구?”
응. 잘했지. 참 나 누나말대로 깁스 풀고 보호대도 했어.
“응. 잘했네.”
소희는 막상 세나에 대해 물어보려니 조심스러웠다.
어떻게 말을 꺼낼까 주저하는데 정우가 말을 이어왔다.
누나, 지금 집에 갈거야 그럼?
소희는 세나 얘기는 미뤄두고 일단 정우의 질문에 답했다.
“응. 이제 가려구. 너도 와야지?”
누나 그럼 우리집에 들렀다 갈래? 우리집 비어 있어서 와도 괜찮아.
정우네 집은 어릴 때에 이어 고등학생 까지는 자주 갔던 곳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로는 소희는 거의 못 가본지 오래였다.
반대로 정우는 소희네 집의 일을 도울 겸 소희네 집에 더러 왔기도 했었다.
마침 부모님도 여행가셔서 집이 비었을 테니 이 참에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너희 집에? 가도 되나?”
정우가 자꾸 졸랐다.
뭐 어때? 어차피 같은 방향인데. 와서 잠깐 있다가 나랑 같이 가자. 누나.
소희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계산했다.
정우 집에 잠깐 다녀가도 소원을 비롯한 식구들은 알지 못할 것 같았다.
“알았어. 그럼, 잠깐만이다?”
전화를 끊은 소희의 발걸음이 정우의 집으로 향했다.
어느새 소희의 가슴이 조금 설레이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둘 만의 공간은 처음인 셈이었다.
조금 두려웠지만, 그만큼 더 두근거렸다.
소희는 병실에서의 여운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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