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51. 술에 취해
* * *
본격적으로 술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소희의 아빠가 와인을 들어 지애의 잔을 채우며 운을 띄웠다.
“참, 처제, 다음 주에 이사 오면, 그 다음주 주말은 혹시 시간 돼?”
“네. 형부. 별 다른 일 없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소희엄마가 대화에 들어왔다.
“잘 됐네. 우리 가족들 다음 다음주 주말에 가족여행 겸해서 풀빌라인가 뭔가로 놀러갈까 하는데, 이사 오는 김에 너도 같이 가자.”
소희와 소원도 그제야 2주 뒤에 놀러 가기로 했던 생각이 났다.
둘은 좋아라 하며 지애가 함께 하길 바랐다.
“맞다, 이모도 같이 가자~”
“이모, 거기 온천이라 물이 그렇게 좋대. 같이 가자.”
소희네 온 가족이 여행에 함께 가자고 반겨왔다.
지애는 내심 무척 반가웠다.
그동안 외롭게 살아왔던 터라 사람들의 이런 따뜻함이 실로 오랫만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돌아온 자신이 가족 여행에 끼어 드는 모양새가 되는게 부담스러웠던 지애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글쎄, 나도 가면 좋겠지만, 가족여행에 내가 끼어드는 게...”
소희엄마는 그런 지애를 말리면서 한사코 데려가려 했다.
“괜찮아. 지금이야 오랜만이지만 예전에는 자주 보던 사이인데 어떠니? 가서 푹 쉬다 오자. 요리며 설거지며 일은 애들 아빠가 다 할꺼야.”
“어머, 정말? 그런데 가면 형부가 일을 다 하셔? 몰랐네?”
소희아빠가 장난스레 으스대면서 말을 받았다.
“그럼. 놀러 가서는 내가 해줘야지.”
“마침 방도 네 개라 하나 남으니 같이 가, 지애야.”
소희엄마는 속 깊은 지애가 홀로 삭이면서 살아왔을 나날이 안타까웠다.
어떻게든 지애를 일상으로 돌아오게 해주고 싶었다.
마침 근처로 이사 오는 김에 가족 여행도 함께 다녀오면 지애로서도 분명 힐링이 될 것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지애로부터 확답을 받아야 했다.
그러지않고 지금 이대로 애매하게 대화를 마쳤다가는, 다음에 다시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애는 계속 거절하려 했다.
“형부 혼자서 언니랑 소희, 소원이까지 세명을 케어하기도 힘들건데, 나까지 번거롭게 하면 미안하잖아.”
“어머, 얘는 그런 거까지 걱정하고 그러니. 괜찮아.”
“아냐, 언니. 형부 성격에 분명히 피곤하실 거야.”
그러지 않아도 소희엄마에 다 큰 딸 둘을 케어하느라 소희아빠가 힘들게 뻔했다.
에스코트는 물론 짐정리며 자잘구레한 일들까지 남자의 손이 닿아야 좀 더 편한 일들이 더러 있었다.
거기에 지애까지 함께 하게 되면 아빠 혼자로서는 손이 모자랄 거였다.
소희아빠 성격상 여자들은 분명히 가만있게 하려고 혼자 분주해질게 뻔했다.
듣고 있던 소원이 나섰다.
“그러면 누구 한 명 더 가면 되겠네? 아빠를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소원이 정우를 돌아보면서 손가락으로 정우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의도적인 스킨쉽이었다.
그러나 친한 사이인걸 모두 알고 있었고, 워낙 자연스러웠기에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지애의 눈에는 좀 다르게 보였을 뿐.
정우의 입장에서는 자기와 무관한 소희네 가족 여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심 부럽긴 했지만, 대충 흘려 듣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중에 소원의 손가락이 찔러와 깜짝 놀랐다.
뒤이어 소원의 시선을 따라온 소원 가족들의 주목을 받게 되자 화들짝 놀랐다.
정우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지애와 함께 가고 싶었던 엄마가 정우에게 물었다.
“정우 말하는 거니? 정우는 그 때 시간이 되니?”
아무리 소희, 소원과 친한 사이이지만, 소희엄마도 정우가 가족이 아니기에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건 있었다.
그러나 어른들도 함께 가니 별 일이야 있겠냐는 생각에 엄마도 정우가 함께 가는 게 괜찮을 듯 했다.
“2주 뒤에요? 잠깐 생각 좀 해볼께요.”
정우는 답을 미루면서 슬쩍 소희의 눈치를 살폈다.
소희와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되니 가고는 싶었다.
하지만 가족 여행이라는 이유로 소희가 반대한다면 가지 않는게 맞다고 생각해서다.
소희는 정우가 자신의 의견을 기다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우와 눈이 마주친 소희가 대화에 끼어 들었다.
“정우가 같이 가면 우리 네 식구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게 되니 이모도 덜 어색하겠다. 게다가 정우랑도 잘 아는 사이이니 불편할 것도 없을테구.”
소희의 입에서는 긍정적인 의견이 나왔다.
정우는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음. 그렇게들 말씀하신다면 제가 무조건 가야겠네요. 하하하. 그러면 저는 거실에서 자면 되나요?”
정우는 방이 몇 개일진 몰라도 자신의 방까지는 여유가 없을 듯했다.
어차피 어디서 자건 개의치 않았다.
정우가 간다고 하니 소원이 신나서 말을 받았다.
“잘 됐다. 방 네 개니까, 내가 언니랑 한 방 쓰고, 오빠가 방 하나를 쓰면 되겠다.”
정우도 같이 가겠다고 한 마당이니, 지애가 말하던 여러가지 핑계거리가 다 해소된 셈이었다.
지애가 더 거절할 명분이 없는지 잠깐 망설였다.
그러자 아빠가 여행에 함께 하길 다시 권해왔다.
“처제도 같이 가. 정우도 간대는데, 처제가 못 갈게 뭐 있어. 집도 가까울건데 같이 놀러 다니고 하면 좋지 뭘 그래.”
지애는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더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듯 싶었다.
사실 지애 역시 속으로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던 참이었다.
다만, 약간의 부담에 거절했던 것 뿐.
잠깐의 침묵을 깨더니 드디어 지애가 수락했다.
“좋아요. 저도 갈께요. 고마워요, 형부, 언니, 얘들아.”
지애가 수락하자 자리의 분위기가 다시 밝아졌다.
소원이 축하의 건배를 제안했고, 이내 와인 몇 병이 또 비워졌다.
술은 대화를 이끌어냈고, 대화는 다시 술을 이끌어냈다.
여섯명이서 주거니 받거니 먹고 마시는 동안 어느새 상당히 많은 와인이 비워졌다.
여섯 사람 모두가 꽤 취해 있었다.
정우를 상대하느라 많이 마신 아빠는 물론, 아빠와 대작하느라 익숙치 않은 와인을 계속 마신 정우도 꽤 취해 있었다.
그리고 남자들보다야 적게 마셨긴 하지만, 꽤 많이 마신 네 명의 여자도 취해 있긴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밤 열 한시가 되었다.
당초의 계획과 달리 소희아빠가 많이 마시자 소희엄마가 걱정되어 말했다.
소희엄마도 어느새 상당히 취해 있어서 꾸벅꾸벅 졸던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소희아빠의 골프 약속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있었다.
“당신, 새벽 세 시에는 나가야 한다더니 괜찮으세요? 적당히 드신다더니, 너무 많이 드셨어요.”
“그런가? 어쩐지 힘들더라니, 벌써 이렇게 많이 마셨나? 그럼 여기까지만 마실까?”
소희아빠는 혀가 이미 한참 꼬부라져 있었다.
아빠가 이대로 자리를 파할까 싶어 좌우를 둘러보는데 소원이 손을 저으면서 아빠를 들여 보내려 했다.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소원의 혀도 조금 꼬부라져 있었다.
“아빠는 들어가서 자. 우리는 좀 더 마실께. 이모도 왔는데 지금 끝나면 시시하지. 우린 이제 시작인데. 안 그래 언니?”
소희가 웃으며 소원의 말에 맞장구치자 지애 역시 웃었다.
소희아빠는 막내 딸의 고집을 이길 수 없었다.
마침 취중이고 내일 약속이 이제야 걱정되기 시작하던 아빠는 모든게 귀찮아져서 그냥 들어가서 자기로 했다.
“그래 그러면 아빠는 들어가서 잔다. 적당히들 마시고 들어가 자. 정우도 마시다가 잘 가고 다음에 보자.”
정우에게 가라는 말 같이 들렸는지 소원이 외쳤다.
“아빠, 우리 밤 샐 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밤새다가 소파에서 좀 쉬다가 아침에 해장 같이 하던가, 니들 알아서 해라. 난 잘랜다.”
“나도 많이 힘드네. 지애는 괜찮아 보이니 오랜만에 한잔 더 하렴.”
집이기도 했고, 지애도 자리에 남아 있었다.
별다른 사고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소희네 아빠와 엄마는 잠자기 위해 방에 들어갔다.
**********
"얘들아, 나도 이만 잘께."
지애 역시 취하고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로 인해 지애도 들어가서 자려고 했다.
"이모 환영회인데 이모가 가면 어떻게 해?"
소원이 술기운으로 붙잡았다.
지애는 소원이 재차 졸라오자 거절할 수 없었다.
오래간만의 술자리가 재미있기도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넷은 술잔을 기울였다.
넷은 취기에 서로 번갈아가며 졸다시피하며 마시는 중이었다.
이미 모두가 취해 인사불성에 가까운 상태라서 대화의 수위도 아슬아슬해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소희와 지애가 졸고 있게 되었다.
정우와 소원만 취한 상태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소원아 근데 너 전에 남친 있다고 하지 않았냐? 잘 되고 있어?”
소원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답했다.
“누구 말하는거지? 암튼 지금 남친은 헤어질거야 곧. 걔 너무 이기적이야. 또라이 같으니.”
“응? 너 전에 걔 성격 되게 좋다고 하지 않았었냐?”
“아. 몇 달 전에 그 오빠? 걔는 엑스 보이프렌드. 걔는…”
소원이 킥킥 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식탁에 팔을 괴고 머리를 올려 둔 정우의 머리와 이마를 맞닿으며 대답했다.
어느새 소원은 알게 모르게 정우에게 조금씩 스킨쉽을 하고 있었다.
취중이기 때문에 가능한건지도 몰랐다.
“걔는 멀쩡한대 잘 안 선다? 내가 많이 노력했는데도 안 서. 왜 그런지 몰라. 내 앞에만 서면 그런다면서. 그렇게 둘이 노력하다가 서로 힘들어져서 헤어졌어. 아 난 왜 그런 애들만 만나냐.”
“야야야, 다 가라고 그래. 헤어져 헤어져!”
정우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는 채 소원과 건배하고는 잔을 그대로 들이켜서 비웠다.
소원 역시 건배하고는 한 모금을 마셨다.
소원은 취기가 돌아 자신의 허벅지를 짚었다.
그러나 자기 허벅지를 짚는다는 게 그만, 취중에 옆에 앉은 정우의 허벅지를 짚어 버렸다.
취한 상태였지만, 자신이 잘못 짚었다는 걸 소원은 금새 알 수 있었다.
민망해져서 쳐다보니 정우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이 감길 듯 말 듯 하는 중이었다.
돌아보니 지애와 소희 역시 의자에 앉은 채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소원은 오늘 정우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정우에게 관심이 있던 참이었다.
그 동안은 남자로서는 관심이 그다지 없었지만, 어제밤 소희와 대화를 나눈 이후에 전에 없던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물론 아직 현재의 남자친구와의 사이가 결론난 것도 아니었어서 당장 사귀려거나 고백하려는건 아니었다.
때문에 오늘 저녁 동안 정우를 살펴보면서 정우에게 자신의 매력을 살짝 어필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일종의 어장관리인 셈이었다.
물론 소희와 정우의 사이를 모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중에 정우의 허벅지를 짚게 된 것이다.
아무리 명랑한 소원이라도 취중이지만 잠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정우의 탄탄한 허벅지의 느낌에 소원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차피 주변 사람들은 물론 정우 역시 취해 있었다.
소원은 곧 정우를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소원 본인이 술김이라 가능했다.
혹시라도 문제 삼게 되면 술에 취해서 그런거라고 변명하면 될 터였다.
아마도 정우 성격이면 무난하게 넘어갈 거였다.
정우 또한 술김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정우는 아예 알아차리지 못할 지도 몰랐다.
소원은 정우의 허벅지에 올려져 있던 손에 힘을 주어 정우의 허벅지를 잡았다.
정우는 취중에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소원의 손이 조금씩 움직였다.
손은 허벅지에서 정우의 중심부를 향해 움직여갔다.
정우의 바지 앞섶이 조금 부푼 듯도 싶었다.
소원이 정신을 집중하면서 부푼 곳 위로 손을 올렸다.
그 아래 솟아나온 뭔가가 잡혀 왔다.
정우의 페니스였다.
불룩 튀어 나온 그것이 꿈틀거리는 듯 했다.
저녁에 소희와 스킨쉽을 한 이후로 엘리베이터면 차 안이며 여러 곳에서 계속 자극에 노출된 페니스였다.
그저 또 한번의 자극에도 쉽게 일어서고 있는 거였다.
그러나 소원으로서는 정우가 저녁에 노출된 자극은 알지 못한 터였다.
그저 허벅지를 만진 것만으로 페니스가 반응하자 신기했다.
더 구체적으로 만지고 싶었고 더 정확하게 보고 싶었다.
소원은 더 큰 호기심이 생기고 있었다.
이성으로서의 정우에게.
그리고 수컷으로서의 정우에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