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는 누나-63화 (64/98)

〈 63화 〉 63. 란제리 샵

* * *

토요일 점심 무렵.

백화점 엘리베이터 안.

엘리베이터 안은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정우와 지애는 함께 있었다.

정우의 보호대를 차지 않은 손에는 와인세트가 들려 있었고, 지애는 그 뒤에 서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앞 뒤에서 밀려오는 압박이 두 사람을 밀어대고 있었다.

뒤에서 미는 힘을 감당하지 못한 지애는 어쩔 수 없이 정우의 양 팔을 잡고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온 몸이 쏠려 정우에게로 쓰러질 판이었다.

그러나 뒤에서 밀려오는 힘을 막아내고 균형잡는 데에 두 팔을 잡는 걸로는 부족했다.

밀리게 된 지애의 상체가 정우의 등에 닿았고, 지애의 가슴이 눌려졌다.

지애의 젖가슴이 정우의 등에 밀착되어 버렸다.

지애는 당황스러웠다.

의도한 게 아닌데 정우의 등에 밀착되다니.

오늘 새벽에는 정우의 몸이 가만히 있는 자신에게 닿았었다.

그런데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은 자신의 몸이 정우에게 닿은 것이었다.

아침에 차 안에서 정우에게 훈계하고 모든 것을 정리한 참이었는데, 이렇게 되다니 곤란했다.

정우의 몸에서는 향긋한 내음이 풍겨왔다.

아마도 아침에 씻고 온 듯, 비누 향기가 났다.

남자의 몸에서 풍겨오는 비누향이라니.

오랜만이었다.

자신의 몸이 정우의 몸을 누르고 있지만, 마치 정우 몸이 압박하는 듯한 느낌이 젖가슴에 전해져 왔다.

순간적으로 새벽녘 정우의 억센 손아귀가 생각날 듯했다.

그 때 있었던 일들이 연이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지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지애는 정우가 돌아보는 걸 알아 차렸다.

정우도 지애의 가슴이 자신의 등에 눌리는 걸 아는 게 분명했다.

‘민망해라.’

정우 역시 지애의 가슴을 느끼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게, 정우는 아직 긴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이 뒤로 밀리지 않았더라면 지애와 접촉을 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한편 지애는 정우가 혹시라도 오해하면 어쩌나 염려되었다.

자신의 의지로 일부러 닿은 거라고 생각한다면,

또는 일부러가 아니라 하더라도 미필적 고의로 닿은 거라고 오해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자칫하면 지애 자신이 정우를 유혹하려는 거라고 정우가 오해하게 될 터였다.

엘리베이터 옆면에 정우의 얼굴이 반사되었다.

반사되어 비치는 정우의 눈과 지애의 눈이 맞닿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기를 잠시.

지애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애는 고개를 숙였다.

정우가 자신을 본 것인지 아닌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마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마침내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와인샵은 지하 1층이었고, 차는 지하 4층에 주차되어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주차장에 닿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지애는 조금만 참기로 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하강을 시작하자마자 이내 멈춰 섰다.

지하 2층에서 문이 열린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밖에서 올라 가려는 사람만 있었을 뿐이었다.

지애의 젖가슴은 정우의 등에서 여전히 떼어지질 않았다.

곤란했다.

이대로 아래까지 층마다 정지를 반복해가면서 내려가야 하나.

그러나 곤란한 중에도 지애는 어느새 자신의 마음 속에 약간의 기대감이 피어 나고 있는 걸 깨달았다.

당혹스러웠다.

더 이상의 접촉도, 기대감도 멈춰야 했다.

그 때였다.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따라라란~

익숙한 벨소리였다.

지애 자신의 벨소리.

핸드폰을 꺼내기 불편한지라, 처음에는 무시하고 그냥 가만히 있으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을 울려대는 밸소리에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지애는 어깨에 매고 있는 핸드백에서 가까스로 전화기를 꺼냈다.

발신자는 소원이었다.

지금 여기서 소원의 전화를 받기는 곤란했다.

지애는 그대로 전화를 꺼버렸다.

전화는 내려서 해주면 될 참이었다.

그러나 벨은 이내 다시 울렸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자꾸 전화하는 걸 보니 소원이 급한 일이 있는 듯 싶었다.

지애는 다시 전화를 꺼버렸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서고 문이 열렸다.

다행히 지하 3층에 서니 그나마 사람들이 좀 내렸다.

이제야 자리에 여유가 생기면서 지애는 간신히 정우와 몸을 뗄 수가 있었다.

지애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엘리베이터 벽면을 통해 정우를 흘깃 봤다.

정우는 고개를 들어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하 4층에 이르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차로 가는 길까지 두 사람 사이에 서먹한 기운이 돌았다.

새벽에 정우가 지애의 다리 사이에 사정한 것도,

지애가 정우를 떠올리면서 홀로 달랬던 것도,

방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지애의 가슴이 정우의 등을 누른 것도.

두 사람은 각자 알고 있는 바로 인해 상대에 대해 말하기가 곤란했다.

지애의 차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차에 닿을 무렵, 지애는 이미 소원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애는 두 번이나 전화를 끊은 게 미안했다.

“소원이니? 미안. 이모 엘리베이터 안이라서 못 받았어.”

­ 이모 너무해.

소원이 전화를 끊은 걸 섭섭해 하는 듯해서 지애는 놀랐다.

놀란 마음에 소원을 달래려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어. 미안해~”

­ 아니 그거 말구. 정우 오빠랑 와인 사러 갔다며? 나도 델구 가지.

다행히도 소원은 전화를 끊은 데에 대해 서운해 하는 게 아니었다.

함께 오지 못한 것에 대해 섭섭해 하는 거였다.

그런 이유라면 크게 염려될 건 없었다.

당연히 소원이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함께 오지 못한 거였다.

지애는 소원을 놀릴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겨 있었다.

“그거야 네가 여태 자고 있었으니까 그랬지. 우린 지금 백화점이야. 그러게 누가 술마시고 늦잠 자랬니?”

사실, 소원의 늦잠은 술 때문도 있지만 새벽에 몰래 나와 정우의 페니스에 손을 대느라 늦게 잠든 탓이 더 컸다.

소원은 이모의 놀림이 억울했지만 표를 낼 수는 없었다.

­ 백화점? 나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텐데.

“다음에 같이 와. 곧 집에 갈거야.”

사실 소원은 지애와 백화점에 함께 오는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원이 전화한 건, 정우와 지애가 함께인게 마음에 걸려서였다.

잠에서 깨어나서 소희로부터 두 사람이 함께 와인을 사러 나갔다는 말을 듣고서는 소원은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한 거였다.

여자로서의 본능이랄까.

아무리 친척이고 나이가 많지만 지애의 미모는 자신도 경계할 정도였다.

이혼 후 홀로된 이모였고, 게다가 엄마의 친자매도 아닌 사촌동생인 이모였다.

정우 같은 꽤 괜찮은 남자가 그런 이모와 함께 있는 건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정우 역시 자기가 아는 바로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이모에게 흔들리게 할 순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이미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려 한다는 말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소원은 자기도 모르게 볼멘 소리로 물었다.

­ 이모, 그럼 곧 오겠네? 정우 오빠도 같이 오는거지?

“응. 와인 샀으니 이제 곧 갈께.”

그나마 다행이었다.

빨리 오게 된다면, 더 이상은 별일이 없을 거였다.

소원은 지애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

지애는 소원과 전화를 끊은 후, 소원이 어째 언짢아 하는게 마음에 걸렸다.

지애 역시 소원이 정우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걸 알고는 있던 터였다.

그러나 지애는 지금 소원의 태도는 그저 어린 조카가 백화점에 함께 오지 못한 푸념으로만 느껴졌다.

‘애들한테 선물이라도 사줄까?’

정우가 뒷문을 열어 와인을 내려놓자 지애가 정우에게 물었다.

“나 더 살게 있는데, 차에서 잠시 기다릴래?”

아직 정우에 대한 어색함이 그대로였다.

무거운 걸 살게 아니라면 혼자 가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정우가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지애는 이어서 질문했다.

“… 아니면 같이 갈래?”

의례적이면서도 순간적으로 나온 질문이었다.

이미 내뱉은 말이라 지애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어찌보면 본능에서 나온 요청일 수도 있었다.

혼자이기 싫은 본능이었고,

더 나아가 외롭고 싶지 않은 본능이었다.

지애는 정우가 혹시라도 눈치챌까봐 말을 덧붙였다.

“소희랑 소원이 선물 사줄까 해서.”

“같이 가요.”

정우는 나름 지애에게 미안한 마음에 흔쾌히 수락했다.

뭐라도 도와줄 수 있다면 좋을 거라는 생각에 따라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지애는 층별 안내판을 보고 있었다.

정우는 지애가 어디로 가려는지도 모르는 채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지애는 탑승해서 ‘5’를 눌렀다.

‘5층?’

어차피 정우는 백화점에 익숙치 않았고 지애와 대화를 나누기도 애매해서 그냥 묵묵히 있었다.

상향하는 지금도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많긴 했지만, 아까와는 달리 그리 혼잡하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 정지했다.

문이 열리고 지애와 함께 내리자, 정우는 이내 앞의 안내판을 읽을 수 있었다.

[여성의류, 란제리]

‘누나랑 소원이한테 여름 옷 사주려고 하시는 거구나?’

정우는 지애가 그저 여성의류를 사러 온 거라 생각하고 지애를 따라 걸었다.

지애는 주변을 훑어보더니 어딘가로 바로 걸어갔다.

마치 잘 아는 브랜드가 있는 듯 했다.

놀랍게도 지애가 간 곳은 란제리 매장이었다.

여성 속옷 매장이 처음인 정우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변이 온통 여성의 팬티며 브래지어와 슬립웨어 등으로 가득했다.

란제리들은 하나같이 고급스러웠고, 화려했고, 야했다.

정우는 민망해져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소원에게 선물을 사줘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지애는 속옷을 생각하던 터였다.

그저께 소희의 방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슬립을 부러워했던게 생각나서였다.

지애는 소희도 소원도 지애 자신과 체형이 비슷한 걸 알았다.

큰 어려움 없이 디자인과 소재를 살펴 보고 두 세트를 집어 들었다.

값이 꽤나 나갔지만, 지애의 재력으로는 큰 어려움은 없는 금액이었다.

길게 시간 끌고 싶지 않았기에 지애는 빨리 계산을 요청했다.

“이렇게 계산해 주세요. 포장도 따로 해 주시고, 교환할 수도 있으니 영수증도 따로 주시구요.”

지애가 요청하자 점원이 웃으며 반겼다.

와서 별다른 질문도 없이 바로 고가의 속옷을 두벌이나 구매하는 손님이라니.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성격이 좋다는 생각에 나름 최선을 다하려 했다.

점원이 지애와 정우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어머, 손님. 취향이 참 고급스러우시고 세련되시네요. 이렇게 예쁘신 분이 이 아이들을 입으시면, 남자친구분도 참 좋아하시겠어요. 그리고 이건 저희 매장에 연인 방문시에 드리는 서비스에요.”

순간 지애도 정우도 잠시 당황했다.

점원이 둘 사이를 연인으로 알아보고 있는 거였다.

지애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당황한 중에도 지애는 점원을 배려해서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니에요. 조카..에요. 옷은 다른 조카들 줄꺼구요.”

“어머, 저는 두 분이 워낙 예쁘고 잘 생기셔서 연인인 줄.. 애고 이 주책 좀 봐.”

점원은 혹시라도 구매자가 변심할까봐서인지 서둘렀다.

지애의 요청대로 서둘러 계산을 하고는 속옷을 나눠 담은 두 개의 종이가방을 지애에게 건넸다.

하나의 종이가방에 서비스 품목을 함께 담은 채.

지애와 정우는 엘리베이터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연인사이라니.

점원이 그렇게 볼 만도 했다.

그만큼 지애의 생김새도, 피부도 젊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둘이 서먹해 할 일이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대화를 나누기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지애가 잠자코 있는데, 정우도 그걸 아는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팔을 뻗어 지애의 손에 들린 종이가방을 당겼다.

지애가 눈을 돌리자 정우와 눈이 마주쳤다.

“제가 들께요.”

정우와 눈이 마주치자 지애의 가슴이 또 한번 흔들렸다.

그러나 아직도 이성의 힘이 강한지라 지애는 이내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종이가방은 곧 정우의 손에 들렸다.

아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지애는 조금 전 내려갈 때 자신이 뒤에서 정우를 밀었던 게 생각이나자 정우부터 들여보냈다.

또 다시 정우의 등을 아까처럼 젖가슴으로 밀 수가 없었다.

정우라면 자신과 달리 분명히 뒤로부터의 압력을 잘 막아낼 수 있을 거였다.

이윽고 정우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지애가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지애는 이번에는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아까 전 보다도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빈자리가 없었다.

아까와는 달리 몸을 돌릴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엘리베이터 문 쪽에서 미는 힘은 자신의 생각 밖으로 셌다.

어쩔 수 없이 정우와 지애는 서로를 마주 본 채 서있었다.

두 사람은 인파에 묻혀, 마치 서로 안은 듯 밀착한 채 갇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애의 젖가슴이 정우에게 닿았고,

정우의 아랫도리가 지애에게 닿았다.

둘은 서로가 내뱉은 숨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정우의 거친 호흡이 느껴지자 지애의 가슴 한 켠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애의 하복부에 단단한게 눌러오는 느낌이 들었다.

지애는 그게 정우의 페니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애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조금 있으니, 정우가 침을 삼키는 소리도 들려왔다.

정우가 침을 삼키는 소리를 자신이 들었으니, 아마도 정우도 지애가 침을 삼키는 소리를 들었을 터였다.

지애는 정우에게 마치 속내를 들킨 것 마냥 부끄러워졌다.

5층의 엘리베이터였고, 지하 4층까지 가야했다.

설레이지만 설레여서는 안 될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몸을 밀착한 채 서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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