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는 누나-78화 (79/98)

〈 78화 〉 78. 두근거리는 윤미

* * *

토요일 밤

배윤미.

28세의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녀는 같은 고향 출신의 친한 언니와 함께 방 둘인 집에서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다.

원래 윤미는 오늘 고향 집으로 가려 했었다.

저녁무렵 터미널에 도착한 윤미가 시골에 있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 넌 어떻게 된 애가 그 나이 되도록 남자친구 하나 없냐. 이 시간에 집에나 오려고 하구.

“그 소리 지겨워 엄마. 하루 이틀도 아니고.”

­ 굳이 집에 안와도 되니까 어디 가서 데이트라도 하라니까 그러네.

“나도 그러고 싶어. 근데 남자라면 겁부터 나는 걸 어떡해?”

­ 네가 살쪄서 못 만나는 게 아니고? 방구석에서 맨날 그놈의 그림만 그리더니 살만 쪄서는.

엄마로부터 면박을 받자 윤미의 심사가 뒤틀렸다.

“엄마, 엄마가 나 남자 만나라고 보태준거 있어? 왜 그래요, 자꾸?”

­ 이 놈의 기지배가, 왜 보태준 게 없어? 너 대학 보내느라 허리가 휘었…

“아 몰라! 엄마 말대로 나 안 갈래! 전화 끊어요!”

홧김에 전화를 끊은 윤미는 그대로 버스표를 환불해 버렸다.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차표라서인지 꽤 적은 금액만 돌려 받을 수 있었다.

환불받은 돈을 가지고 걸어가는 윤미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엄마에게 화가 나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표를 환불하느라 손해를 봐서 흘리는 눈물도 아니었다.

남자를 만나는게 두려운 자신이 답답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남자 자체도 두렵지만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윤미는 더욱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거였다.

엄마는 몇 차례 전화를 더 걸어 왔지만 윤미는 받지 않았다.

아마도 엄마도 화가 났을 거였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서로 풀릴 화였다.

쇼윈도에는 살쪄 보이는 여자가 자신을 보며 울고 있었다.

윤미는 그녀가 측은해 보였다.

측은해 보이는 그녀에게 뭐라도 멕여 주고 싶었다.

친한 룸메이트 언니에게 전화할까 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언니는 남자도 잘 만나던데. 내 심정은 이해 못할거야.’

윤미는 혼자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터미널에서 나와 거주하는 동네로 돌아와 버린 윤미는 포장마차에서 매운 음식과 함께 소주를 주문했다.

꽤 취하고 나서야 윤미는 그제야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외롭고 서러웠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불이 켜져 있었다.

‘언니가 있나 보네?’

윤미가 멈칫했다.

발 아래에 왠 낯선 신발이 한 켤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즈가 꽤 큰게 남자의 신발 같았다.

둘러보니 소파 근처에는 옷가지들이 벗어 던져져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윤미가 당황하는데 어디선가 교성이 들려왔다.

“아! 아!”

“아아!”

남녀가 함께 내지르는 소리였다.

현관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윤미는 당황스러웠다.

룸메이트 언니가 남자를 데리고 집에 와서 음란한 짓을 하는 소리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언니가 집에 남자를 데려온 건 처음이었다.

아마도 오늘 윤미가 고향에 간다하니 데려왔을 거였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가 집을 비웠더라도 두 사람이 사는 집에 허락도 없이 남자를 들이다니.

불쾌한 감정이 들려 했지만, 윤미는 사실 그보다도 호기심이 더 들었다.

욕실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AV에서나 보거나 듣던 생생한 신음소리였다.

윤미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윤미는 닫히던 현관문을 손으로 잡았다.

그러더니 팔을 조심스레 당기며 문을 최대한 소리나지 않게 닫았다.

윤미는 신을 벗었다.

몇걸음만 앞으로 걸어들어가면 바로 자기의 방이었다.

그러나 윤미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조심스레 몇 발짝 걸어간 윤미는 욕실 문 앞에 멈춰섰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윤미는 굳게 닫힌 욕실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신음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다행히도 욕실 안의 남녀는 자신이 밖에 있는 것은 물론, 현관문이 열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했다.

자신의 존재를 문 안에서 알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윤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원래부터 자신은 이 집에 드나들 권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하필 지금 온 건데 저 둘이 음란한 짓거리를 무도하게도 하고 있는 거였다.

자신은 엿듣는게 아니라 우연히 들리게 된 처지였다

그런 생각에 윤미는 점점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생생했다.

AV(adult video) 를 보면서 느꼈던 것보다 더 실감나는 소리였다.

소리보다 더 궁금한 건 실감나는 현장의 모습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자신이 궁금해하던 장면이 안에서 펼쳐지고 있을 거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에 가려 있기에 바로 옆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볼 수 없었다.

윤미는 그 안에서 들려 나오는 교성과 신음소리가 너무나 궁금했다.

아직도 욕실 안의 남녀는 밖에 사람이 있다는 건 전혀 모르는 듯 했다.

마음껏 내지르는 소리가 너무나 음란했다.

두 사람의 교성은 귀를 기울이던 윤미를 젖어들게 만들고 있었다.

윤미는 어느새 자신의 아래가 촉촉해져가고 있는 걸 느꼈다.

윤미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남들이 살을 섞는 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만지다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염려는 할 필요 없을 듯했다.

완전범죄일 거였다.

어차피 저 둘은 문을 바로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차하면 자신은 눈 앞에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 안에서 문을 잠그고 농성하며 아무 것도 안한 척 시치미를 떼면 될 거였다.

그러면 두 사람은 자신이 옅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터였다.

욕실 안에서는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는 듯했다.

윤미는 자신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걸로는 뭔가 모자랐다.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마지막을 알리는 것 같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윤미는 좀 더 짜릿해지고 싶었다.

대담해지기로 했다.

마침 술을 한잔 하고 와서 그런지 이제는 거칠 것이 없었다.

윤미의 왼손이 스커트 위에서 은밀한 곳을 매만졌다.

스커트와 그 안의 스타킹과 팬티까지 몇 겹이나 옷이 사이에 있었지만, 소중한 부분에서는 로맨틱하게 마찰되는 느낌이 분명히 전해져 왔다.

어쩌다 보던 AV의 장면과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지금은 실제 상황이었다.

비록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건 아니었지만.

욕실 안의 남자의 신음소리는 윤미의 귀를 자극했고,

욕실 안의 언니의 교성은 자신을 대신하는 듯 했다.

윤미의 손이 점차 빨라졌다.

윤미는 욕실 안의 고조되는 신음소리에 맞춰서 손을 더 깊게 집어넣고 마찰을 일으켰다.

“아!!!”

“아아!!”

마침내 욕실 안에서 남녀의 교성이 울려 나왔다.

그와 동시에 윤미의 입에서도 나직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최고였다.

이제까지 경험한 자위행위 중에 이토록 실감나는 적은 없었다.

그 어떤 영상 속에서 느꼈던 남자들보다, 욕실 안의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신음소리가 윤미를 절정에 닿게 한 거였다.

하지만 윤미의 몸은 그대로 사그러들지 않았다.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고, 긴장을 놓은 채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비비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욕실 안 남녀는 씻기도 해야 했고, 쉬기도 해야 할 거였다.

자신이 좀 더 여운을 즐겨도 될 거였다.

윤미는 욕실 안 남자의 모습이 궁금했다.

평소 마음에 들었던 AV의 주인공일지, 아니면 알고 지내는 지인 중의 훈남 같이 생겼을지.

어쩌면 그토록 쳐다보기도 싫은 직장상사를 닮았을지도 몰랐다.

언니가 데려왔다면 아마도 30세 전후의 남자가 아닐까.

일러스트레이터 윤미는 어느새 남자의 목소리만으로 그의 얼굴을 구상하고 있었다.

‘언니가 마음에 들어서 데려왔다면 최소한 기본은 하지 않을까?’

잘 생겼을 거였다.

아니, 잘 생겼기를 바랐다.

윤미는 남자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어졌다.

은밀한 곳이 부벼지는 지금 이 순간, 그 목소리를 한번 더 함께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때였다.

윤미는 곧 그 남자가 꽤나 훈남인게 눈에 보였다.

적당한 키에, 탄탄한 가슴,

축 늘어졌지만 길게 탐스러워 보이는 페니스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자신의 상상한 남자는 30대였는데, 의외로 어려 보였다.

윤미는 자신이 구상했던 남자의 얼굴보다 더 어린 얼굴이 보이자 잠시 의아했다.

의아한 순간도 잠시였다.

잠깐 후에서야 윤미는 욕실 문이 열린 것임을 깨달았다.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들은 한 손은 가슴을, 다른 한 손은 은밀한 곳을 매만지고 있었다.

“악!”

고함을 지른 윤미는 그 자리에 선채로 얼어붙어 버렸다.

당초 여차하면 방문을 열고 들어가리라 계획했던 윤미였지만, 막상 방심하다가 상대를 맞닥트리자 꼼짝할 수 없었다.

곧이어 욕실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상체와 함께 나타났다.

“어머, 윤미 언제왔니?”

발가벗고 있는 그녀는 윤미의 룸메이트 지수였다.

지수는 놀란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미소짓고 있었다.

지수의 오른팔은 정우의 페니스를 가려주고 있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가려주기보다는 잡아주고 있었다.

**********

잠시 후,

지수와 윤미의 집.

옷을 차려 입은 지수와 정우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지수의 맞은 편에는 조그마한 의자를 가져온 윤미가 앉은 채였다.

정우와 윤미는 서로 민망해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생면부지인 두 사람이 하나는 상대에게 알몸을, 다른 하나는 상대에게 자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민망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지수는 그저 상황이 웃길 뿐이었다.

룸메이트의 허락도 없이 남자를 데려다가 그것도 음란한 짓까지 했지만 지수는 윤미에게 그다지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50%의 권한은 가진 집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도 윤미 모르게 남자를 데려올 때도 언젠가는 걸릴거라 생각하던 일이었다.

다만, 오늘 걸릴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던 거긴 하지만.

그리고 윤미는 꽤나 만만한 동생이기도 했다.

“인사해. 이쪽은 23세 송정우, 대학생이고, 이쪽은 배윤미, 나보다 세살 어린 같은 고향 출신 동생. 웹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암튼 그쪽 일하구.”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지수의 소개에 둘은 서먹해하며 인사를 했다.

정우가 윤미를 슬쩍 보니 욕실에 들어가기 전 액자에서 본 얼굴이었다.

액자에서 본 그대로 귀여운 인상이었다.

액자를 봤을 때는 친자매 같은 인상이었지만 지수의 소개를 듣고서 아는 동생인걸 알 수 있었다.

살이 조금 있긴 했지만, 풍만함에 가까웠지 적당한 체형이었다.

윤미 역시 정우를 인사하며 마주봤다.

정우의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인사해오는 목소리는 욕실에서 들리던 교성과는 또 다른 젠틀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지수의 소개를 들으니 어려 보이는 얼굴도 이해가 갔다.

31세의 지수가 23세의 남자랑 살을 섞다니.

“너 오늘 집에 간다길래 내가 얘 데려왔지.”

지수는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내색하지 않았다.

사실 지수는 당황한 걸 숨기려다보니 더 당당하게 나온거였다.

그런데 의외로 잘 먹혀들고 있었다.

“나 엄마랑 좀 싸우느라, 아니, 일이 좀 있어서 집에 안 갔어.”

지수는 윤미의 말만 들어도 대충 상황이 이해되었다.

오늘 저녁 윤미와 윤미의 엄마 사이에 오간 통화는 수시로 있던 터여서 지수도 뻔히 아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홧김에 자취집으로 돌아왔을 윤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래도 고향에 가려다가 발걸음을 돌릴 정도로 싸운 건 처음이었지만.

간단히 수습한 후, 지수는 정우를 돌려 보냈다.

정우 역시 그 집에 더 눌러 있을 생각은 없었다.

더 있기가 어색한 나머지 대충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어차피 내일 아침에 나연의 과외를 위해서라도 일어나야 했다.

빌라에서 멀어지는 정우를 두 개의 눈동자들이 창가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들은 지수의 것이 아니었다.

지수는 현관에서 정우와 인사하자마자 몸을 마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우의 뒤를 아득한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은.

윤미였다.

**********

집을 향해 가던 정우는 그제야 소원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발견했다.

­ 오빠 뭐해?

­ 약속 있어 나갔다가 집에 가는 중.

정우는 소원이가 토요일 밤에 무슨 일이길래 말을 거는 건지 궁금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1이 없어졌다.

그러나 회신이 오지 않았다.

‘뭐야?’

답을 기다리던 정우가 심드렁해졌다.

소원이와 메시지를 나눈 김에 여자친구인 소희에게 안부메시지를 보내려던 참이었다.

그 때였다.

소원에게서 답이 왔다.

­ 오빠, 내일은 뭐해?

연달아 질문해 오다니, 소원이스럽지 않았다.

정우는 어떻게 답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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