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79. 너도 할래, 정우랑?
* * *
토요일 밤
소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빠, 내일은 뭐해?
정우는 지수의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소원에게서 온 메시지에 정우는 잠시 고민스러웠다.
‘내일?’
소원의 메시지로 봐서는 내일 보자는 말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내일은 바쁠 터였다.
아침에는 나연의 과외, 오후에는 세나 병문안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대망의 소희와의 데이트를 할 참이었다.
그것도 부모님이 여행가고 안 계신 정우 자신의 집에서.
정우는 소원이 이 늦은 밤중에 자신에게 묻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무슨 일 있어?
소원에게서 답은 금새 오진 않았다.
아직 버스가 다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수의 집 근처에서 정우네 동네까지 가는 버스도 다행히 있었다.
버스에 올라탄 정우는 빈자리에 앉았다.
삼일째 수없이 많은 애정행각을 벌이느라 몸이 지쳐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핸드폰의 벨이 울렸다.
소원이었다.
오빠, 나 소개팅 해주라.
소개팅?
뜬금없는 소리였다.
남자친구도 있다는 애가.
그러고 보니 어제밤 술자리에서 소원이 남자친구에 대해 불평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아. 별로라더니 헤어지려나 보네?’
그런데 정우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원이는 빼어난 외모와 활달하고 애교있는 성격을 갖춘 아이였다.
언제든 괜찮은 조건의 남자를 자력으로 사귈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소개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괜찮은 주선자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였다.
자신의 주변에는 어울려 놀기 좋은 복학생들이나 있지 여자들이 선호할 만한 근사한 남자는 없다는 걸 소원도 잘 아는데 굳이 자신에게 소개팅을 부탁하는게 이상했다.
그러나 소원은 정우가 아끼는 동생이었다.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다.
정우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소개팅을 시켜줄 만한 친구가 하나 생각났다.
소원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소개팅? 그래. 근데 내일은 안돼. 너무 급해.
정우는 굳이 자신이 바쁘다는 걸 강조하고 싶진 않았다.
소원에게서 금새 답이 왔다.
내가 급해. 빨리 해죠해죠.
글자만으로도 소원의 애교가 묻어 나왔다.
정우는 그런 소원이 귀여웠다.
조르는 소원을 편하게 무마시켰다.
시끄러. 내일은 나도 시간 없어.
잠시 후 답이 바로 왔다.
그럼 모레 어때?
모레는 월요일이었다.
정우는 주선자의 입장에서 월요일 저녁 소개팅을 잡는게 마땅찮았다.
게다가 아직 상대방 남자로부터 동의를 얻은 상태도 아니었다.
정우는 적당한 날로 연기시키려 했다.
너무 빠르지 않아? 게다가 내가 생각해 둔 애한테도 아직 얘기전이야.
금새 답이 왔다.
나 오늘 헤어졌단 말야. 최대한 빨리 해줘, ASAP. 월요일 저녁에 되는 사람으로. 오빠 믿을께.
정우는 소원이 무슨 생각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원래 막무가내인 성격이 있는 애라서 그러려니 싶었다.
그래. 알아볼께.
참, 오빠도 함께 해야 한다? 나 낯선 사람이랑 둘만 있으면 어색해.
정우는 무슨 소린가 싶었다.
주선자가 빠져줘야 소개팅이 의미가 있지.
게다가 소원이가 낯을 가린다니 어이없는 소리였다.
애교많고 활달한 소원이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지 맘대로네.’
정우는 단번에 거절하지는 않았다.
함께 만나 앉아있다가 적당히 빠져주면 될 터였다.
알았어. 다시 연락해 줄께 그럼.
아 그리고, 언니한텐 얘기하지마? 알겠지? 언니한테 얘기하면 나 다시는 못볼 줄 알어!
정우는 소원이 민망해서 소희에게 숨기려는 것 같아 보였다.
하기야, 소희도 자신과 사귀는 게 민망해서 가족들에게 숨기는 터였다.
소원도 소개팅하는 사실이 민망한가 보다 싶었다.
정우는 알겠다고 한 후 소원과의 메시지를 종료했다.
소개팅을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친구에게 연락하니 소원의 사진만 보고도 바로 승락을 했다.
정우는 소원과 친구 사이에서 일정을 조율했다.
월요일 저녁 6시.
장소는 정우의 학교 근처 카페로 잡았다.
정우는 소희에게 알리지 않은게 조금 찜찜하긴 했다.
그러나 소원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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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집, 소원의 방
소희는 소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원은 아까부터 뭘하는지 침대에 누운 채 누군가와 메시지를 나누고 있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누구길래 기분이 그렇게 좋아? 혹시 남친이 미안하대?”
소원은 대번에 부정했다.
“아닌데? 그 놈이랑은 이제 연락 안할꺼야.”
“그럼 누구? 친구?”
소원은 답하려다가 말았다.
정우와 메시지를 나누고 있는걸 소희에게 본능적으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응. 있어.”
소원은 정우와 메시지를 나누는 중이었다.
소원은 정우에게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정우에게 선뜻 다가서기가 힘들었다.
어제밤 자고 있는 정우의 페니스를 바지에서 꺼낸 건, 자신도 정우도 모두 술에 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그 때를 똑똑히 기억하고는 있지만, 맨 정신에는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우와 가까워질 기회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소원은 어거지로 소개팅을 요구한 거였다.
소개팅을 하면서 한 자리에 있다보면 분명 정우가 자신의 매력에 빠져들 거였다.
게다가 다음주 화요일에 정우네 부모님이 오신다하니, 내일이라도 정우의 집에 간다면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쉽게도 내일은 정우가 바빠서 안된다는 말에 실망했으나, 아직 모레 월요일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정우는 월요일 저녁에 만나는 걸 동의했다.
소원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는 것 같아 기뻤다.
월요일 저녁에 정우의 마음을 흔들거였다.
일단 마음을 흔들면, 그 뒤에는 정우가 자신에게 다가올 거였다.
그 때는 어제밤 가지지 못한 정우의 페니스가 자신의 것이 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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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의 집 거실
지수와 윤미가 쇼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지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윤미를 바라보고 있는 반면,
윤미는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지수를 외면하고 있었다.
윤미가 말을 하지 않은지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마냥 여유롭던 지수도 점차 지치기 시작하던 터였다.
마침내 지수가 입을 열었다.
“기분 상했어? 화내지마, 윤미야.”
윤미는 지수를 향해 뭔가 얘기하려다 말았다.
지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뭔데? 내가 네 허락도 없이 집에 남자 데려온거?”
윤미는 대답이 없었다.
지수가 한번 더 추측했다.
“아니면 내가 걔 데려와서 욕실에서 그거 한 거?”
지수는 윤미에게 욕실에서의 정사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윤미는 이미 신음소리도 교성도 다 들었을 거였다.
그리고 정우와 자신이 발가벗은 모습까지도 마주 본 터였다.
성인 남녀 둘이 벗은 채로 한 공간에 있었으니 윤미도 뭘 했는지는 대충 알아챘을 거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윤미는 대답이 없었다.
문득 지수의 머리에 뭔가가 스쳤다.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지수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나만… 한 거?”
지수는 평소 윤미가 많이 외로워하는 걸 알고 있었다.
윤미는 어릴적에는 날씬하고 예쁘장하던 아이였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살을 쪘더랬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튀김이며 밀가루가 든 분식들을 선호하던 식성이 문제인지,
혹은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하느라 움직임조차 게을리한게 원인인지.
아마도 모든게 복합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워낙 소심하던 윤미는 자라면서 특히 남자들을 기피했었다.
그러던 아이가 살이 붙으면서는 지레 혼자 겁먹고 자격지심에 더욱 회피한 거였다.
그런 탓에 평소 우울한 얼굴로 있으니 귀여운 얼굴도 남자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악순환이 되어 남자가 더욱 생기지 않은 것이다.
사실 지수가 보기에도 윤미가 그렇게까지 살이 많이 찐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워낙 마르다보니 상대적으로 살이 있어 보일 뿐, 냉정히 말하자면 소위 ‘육덕’진 몸매에서 조금 더 살이 붙은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아니라고 설득해도 이미 윤미에게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런 윤미였기에, 평소에도 지수가 이성교제를 할 때 자주 부러워하던 터였다.
지수에게 정곡을 찔린 듯 윤미가 돌아봤다.
“언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수는 윤미의 눈빛만 봐도 알았다.
말로는 부정하지만 윤미의 표정으로는 숨길 수 없었다.
“맞네. 너는 남자 없는데 나는 남자 만나고, 너랑 나랑 반씩 보태서 세든 집에 나만 남자 데려와서 그러는 거야?”
지수가 냉정하게 쏘아대자 윤미는 기가 찬 듯 외쳤다.
“그만!”
윤미의 어깨가 쳐진 채 고개가 바닥을 향했다.
듣고보니 지수의 말이 맞았다.
욕실에서 들려오던 정우의 신음소리도 듣기 좋았고,
욕실문의 하얀 증기 사이에 노출되었던 정우의 얼굴도 잘 생겼었다.
그리고 그 아래 잠깐 보였던 정우의 페니스는 자신을 두근거리게 했었다.
비록 금새 지수의 손에 가려져 버렸지만.
윤미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자신을 너무 잘 꿰뚫어보는 지수가 얄밉기까지 했다.
“그럼 너도 하면 되겠네?”
윤미는 지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지수를 바라보는데 지수가 말을 이었다.
“너도 할래, 정우랑?”
윤미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면에 지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전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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