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85. 현영의 외로움
* * *
토요일 오전
나연의 방
나연의 침대 위.
꽤나 격렬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느새 나연은 정우의 왼편에 누운 채 정우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연은 오른팔로 정우의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정우 역시 오른팔로 나연의 젖가슴을 스치듯 만지고 있었다.
보호대는 어느 틈엔가 벗어 던진 채였다.
나연은 나른한 가운데 여전히 기분이 좋은 듯했다.
정우의 손길에 콧소리가 섞인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으흠”
둘 중 침묵을 먼저 깨트린 건 정우였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응, 오빠.”
정우는 방금 전 생각난 걸 물었다.
“왜 자꾸 ‘제발’이라고 해달라는 거야?”
쾌감으로 인해 막상 관계 중에는 생각하지 못한 거였다.
사정 후에 욕심을 비우고 생각해보니 이상해진 터라 조심스레 물었다.
어쩌면 나연은 세나 못지 않게 센 아이일 수도 있었다.
나연이 빙긋이 웃었다.
“글쎄? 오빠 같은 잘 생긴 명문대생이 나한테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서?”
정우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었다는 말이구나.’
정우가 말이 없자 나연이 말을 이었다.
“나도 몰라. 그냥 그래 주면 좀 더 좋아. 그래서,”
나연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정우의 눈을 바라봤다.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오빠.”
나연은 감사의 멘트와 함께 정우의 볼에 키스해 왔다.
너무나 귀엽고 깜찍한 키스를.
정우는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세나처럼 밑도 끝도 없이 군림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세나와 달리 나연은 관계를 나눌 때에 한정해서 ‘제발’이라는 단어를 듣고 싶어하는 듯했다.
마치 맛을 내는 양념 같은 추임새랄까.
자신에게 군림하려는 건, 세나 하나로도 충분했다.
둘 이상을 감당하기는 어려울 거였다.
정우가 왼팔을 베고 누운 나연을 바라보는데 이번에는 나연이 물어왔다.
“참, 나도 질문. 혹시 아줌마가 오빠한테 나에 대해 뭐라고 안 했어?”
나연의 새엄마 현영은 정우에게 경고를 했었다.
나연이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할 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당부였다.
그러나 정우는 적어도 아까 전부터는 현영에게 동의할 수 없었다.
나연이 자신을 유혹하긴 했지만, 그건 단순히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한 게 아니었다.
그게 오해할 만한 행동이었다면, 어느 순간에는 정우에게 등을 돌려야 했을 거고, 결국 정우는 오해에 넘어간 행동을 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연은 정우에게 등을 돌리긴 커녕, 정말로 정우 자신과 관계를 마치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현영의 경고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정우는 이 모든 것을 나연에게 밝히려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현영이 알고 있었건, 모르고 있었건, 현영은 나연을 위하는 마음에 경고를 한 거였다.
그런 현영의 진심을 나연에게 말하는 건, 왠지 현영을 모독하는 일일 듯했다.
기품있고 아름다운데다가 정숙해 보이는 현영의 품격을 지켜주고 싶었다.
게다가 그런 모든 것을 말하는 건, 마치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어머님은 별 말씀 없으셨어. 그냥 잘 가르쳐 달라고만 하셨지.”
“이상하네?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닌데?”
나연이 고개를 갸오뚱 거렸다.
정우는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참, 근데 어머님은 몇 살이셔? 되게 젊어 보이는데, 어떻게 새엄마가 된 거야?”
“아줌마? 왜? 예뻐서 관심있어?”
나연이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아니, 그냥 말 나온 김에 궁금해서. 말하기 싫음 안 해도 돼.”
정우는 말을 얼버무렸다.
어차피 그렇게까지 관심있던 사안은 아니었다.
나연이 찡그린 표정을 풀었다.
“뭐야. 귀엽긴. 헤헤. 아줌마가 올해 서른다섯인가? 원래 아빠 비서였는데,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오랫동안 홀아비 생활하는 아빠를 옆에서 좋아했나 봐. 그래서 결국 결혼을 하긴 했는데, 아빠는 우리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한 거 같아. 결혼 후에 잠시 같이 살다가 아빠가 해외법인 대표로 혼자 나가버린 이후로 그냥 우리랑 지내고 있지 뭐야. 나는 잘 이해는 안되지만. 뭐 암튼 태연이한테는 엄마가 생겨서 좋았지 뭐.”
나연의 말로 봐서는 현영의 삶은 그리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현영과 대화를 나눌 때 어딘가 어두워 보이기도 했었다.
부잣집 마나님이라는 허울 뒤에 현영의 외로움이 느껴지려 했다.
의외로 나연이 디테일한 얘기까지 답해오자 정우는 내심 놀라웠다.
괜한 걸 알게 되었다 싶어졌다.
남의 가족사에 깊게 끼고 싶지 않았다.
“너는 새엄마 왜 안 좋아해?”
“아니야. 말했잖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아. 아줌마 좋은 사람이야. 그냥 친엄마도 아닌데 나한테 간섭하는게 불편할 뿐이야.”
이제는 나연이 화제를 돌리고 싶어했다.
대화를 마치고 싶은지 나연이 정우에게 키스를 해왔다.
마치 정우의 머리 속에 있는 방금 전의 대화를 지우려는 듯 맹렬히 빨아왔다.
이미 살을 한번 섞은 사이였다.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었다.
특히 욕망에 관계되는 거라면 더욱 더.
정우는 나연과 키스를 나눈 후 고개를 들어 나연을 내려다 봣다.
눈을 감은 채 지금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분이 몹시 좋아 보였다.
두 사람이 발가벗은 채 서로의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또한 청순한 나연의 쭉 뻗어 있는 허벅지가 페니스에 닿아 있었다.
정우의 페니스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우는 음란한 마음이 다시 동하려 했다.
시계를 보니 예정된 과외시간은 한시간도 넘게 남아 있었다.
한번 더 나연을 기분 좋게 해 줄 시간이 충분했다.
어느새 정우는 자신과 타협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이 순간, 어쩌면 나연을 한번 더 가질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거기에 소비되는 시간은 나중에 보충수업을 해 주면 될 거였다.
나연을 다시 흥분시키고 싶었다.
정우는 상체를 들어 나연의 가슴에 입을 맞췄다.
나연은 기분 좋은 듯 신음소리를 흘려왔다.
눈 앞에 놓인 핑크색 유륜 한가운데에 탐스러운 꼭지가 보였다.
정우가 살짝 꼭지를 깨무니 나연이 살짝 찡그렸다.
“아. 그렇게 하면 아파, 오빠.”
정우의 기대와 달리, 나연의 몸은 지금은 식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정우는 나연의 가슴을 자극하는 건 잠시 참기로 했다.
조금 쉬었다가 하면 될 거였다.
으르릉
솜이가 침대 아래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솜이는 일어선 채로 정우를 바라보며 화를 내는 것 같았다.
“솜탱아 조용해.”
으르릉
아까 전에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었던 솜이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왕왕!
이번에는 짖기까지 했다.
녀석은 고개를 삐딱하게 돌린 채 곁눈질로 정우를 바라보며 짖어댔다.
정우를 바라보는 솜이의 눈빛은 애교 섞인 눈빛이 아니었다.
분명히 화난 표정 같았다.
정우는 그런 솜이에게 기분 나쁜 티를 낼 수도 없었다.
나연이 솜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 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우가 곤란해하고 있을 때였다.
나연이 깔깔대며 웃었다.
“오빠, 황당하지? 미안해. 솜탱아~ 그만해~ “
나연이 정우에게서 몸을 떨어트리더니 팔을 내밀어 솜이를 쓰다듬었다.
그제야 녀석은 잠잠해졌다.
솜이를 진정시키는 모습이 왠지 익숙해 보이기도 했다.
정우는 그저 나연이 주인이라서 그러나 보다 싶었다.
“왜 그러는 거야?”
“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빠보다 자기가 서열이 높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그런데다가 내가 아파하는 것 같으니 화를 내거나, 아니면 질투하는 거 같은데?”
솜이가 자신을 아래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은 나연의 새엄마인 현영으로부터도 들은 말이었다.
정우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자기는 솜이를 위험에서 구해주기까지 했었다.
그런 자신을 아래로 보는 거라니.
“왜 자기가 나보다 서열이 높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연은 답을 하지 않았다.
뭔가 알 듯한 표정이었지만, 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는걸?”
잠시 말을 끊은 나연이 정우의 귀에 속삭여 왔다.
“대신 이건 알 거 같은데?”
정우의 허벅지 위에 놓여있던 나연의 다리가 움직였다.
나연의 길고 미끈한 다리는 페니스를 스쳐댔고, 자극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애무였다.
페니스는 점점 더 단단해져갔다.
“오빠가 하고 싶어 한다는 거.”
나연은 살짝 미소짓고 있었다.
너무나 요염한 표정이었다.
순간, 정우는 입 주변이 건조해진 듯 싶었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다시면서 침을 삼켰다.
정우는 나연의 입술로 입술을 가까이 갔다.
그러자 나연이 아까와 같이 검지와 중지를 들어 정우의 입술을 제지했다.
“오빠?”
나연이 고개를 약간 돌려 귀를 가까이해 왔다.
아마도 듣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정우는 나연이 원하는 게 뭔지 바로 이해했다.
“한번 더 해 줘, 제발.”
간절한 요청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상 요청이 아니었다.
요청하는 이도, 요청을 듣는 이도 사전에 알고 있는 둘만의 코드였다.
나연을 흥분시키는 코드.
나연은 만족한 듯 함박 웃음을 지었다.
까르르 웃어 대며 양 팔을 벌려 정우를 안았다.
정우는 나연을 흥분시켜 줄 수 있을까 싶어서 무리수를 뒀다.
“네 보지 빨게 해줘, 제발.”
“뭐래, 변태!”
나연이 까르르 웃었다.
싫지는 않은 듯 했지만, 그렇다고 자극을 받은 것도 아닌 듯 했다.
정우가 아리송해 하는 가운데, 나연이 키스해 왔다.
그렇게 시작한 두 사람은 또 한번 격렬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정우는 적시에 간절한 요청을 계속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 한번의 사정이 이루어졌을 때, 정우는 온 몸이 녹초가 되었다.
나연이 흥분할 때마다 여전히 솜이는 짖어댔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
현영의 네일샵
현영이 네일샵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말이 네일샵이지, 체인점을 여섯개나 가진 네일케어 브랜드의 본점이었다.
남편이 해외주재원으로서 근무하는 동안 취미삼아 시작했던 가게가 늘게 되자 동네의 네일샵을 본점으로 해서 바로 옆에 어엿한 사무실까지 함께 차린 거였다.
사무실이라고 해봐야 사장의 컴퓨터와 응대용 겸 직원들 휴식용인 소파와 테이블이 다였지만, 현영은 이 정도 공간도 소중하고 뿌듯했다.
현영은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라느라 거의 외롭게 살아온 처지였다.
그런 중에 그룹사 중역의 비서가 되었고, 그 중역은 아이가 둘이나 있는 홀아비였다.
그의 사내다운 모습에 반해 비서로 모시던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된 현영이었다.
그러나 남편을 사랑한 현영과 달리 남편은 전처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아이들을 돌봐 줄 엄마가 필요했던 것일 뿐.
결혼과 동시에 남편은 그룹 계열사 중 해외법인의 지사장으로 출국해 버렸다.
자리를 잡는대로 부르겠다던 말은, 곧 잊혀진 듯했다.
어느새 4년.
4년간 남편은 거의 오지 않았다.
오더라도 잠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다시 훌쩍 떠나기 일쑤였다.
풍문에 듣기로는 남편은 현지처가 생긴 것도 같았다.
어느새 남편을 향한 믿음도 서서히 옅어져 갔다.
그 긴 시간의 외로움을 달래준 건 그나마 엄마라고 불러주는 태연과, 항상 자신을 따르는 강아지, 그리고 자신이 마치 낳아 기른 듯한 네일샵뿐이었다.
샵은 생계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큰 스트레스없이 샵은 잘 유지되었다.
마침 운도 따라주는 바람에 목이 좋은 곳들을 알게 되어, 크진 않지만 그런대로 수익도 나게 되었다.
마침 오늘도 한번씩 시간을 내서 체인점들을 둘러봐야해서 나온 터였다.
그러나 본점에 들른 현영은 당초의 계획대로 금새 일어나서 지점으로 향하지를 못했다.
자신의 PC를 켠 채 뭔가 검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검색어를 넣고 찾아도 마음에 드는 해답이 없었다.
몇 가지 답이 있긴 했으나, 그 답이 맞을지 확신이 들지 않거나 혹은 자신으로서는 적용하기 힘든 답들이었다.
현영은 안타깝기만 했다.
사실 자신이 해결하기 힘든 일이라는 걸 처음부터 예상하던 터였다.
누군가 도와준다면 좋을텐데.
이럴 때 물어 볼 사람이 있다면, 이럴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면 좋으련만.
딱히 그럴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창을 열어 또 다른 검색엔진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뾰족한 답이 나올까 싶은 마음에, 방금 전에 입력한 검색어를 또 다시 입력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에 드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현영이 한 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검색창에 적힌 아홉 글자가 현영을 머리 아프게 했다.
[남자아이의 자위행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