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대련 그 후
* * *
'이상하군...'
길버트는, 방금의 대련을 상기했다.
'마력의 흐름은 느껴지지 않았거늘...어떻게 한거지?'
그리고, 마법으로 마법을 만들어도 즉시 시전되는것이 아니다.
파이어 볼로 예시를 든다면, 마나가 화염으로 변화하여 하나의 구의 형태로 변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조금의 마력의 흐름도 없이 돌과 물들이 나타났다.
심지어 그저 나타나게만 하는게 아니라 방어막이라는 형태로 변환시키기까지 했다.
'가장 이해가 안되는건'
역시 텔레포트.
허공에 돌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건 어려워도,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갑자기 몸의 위치가 바뀌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전쟁터를 나가며, 고위 마법사들이 텔레포트를 사용하는것을 보았다.
텔레포트를 사용하면 거대한 에너지로 인해 몸의 균형이 흔들리거나, 바닥이 파이는 등의 작용이 일어났지만...
베드히로라는 놈이 사용한 텔레포트는,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듯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정신을 차리니, 학생들의 반응이 보였다.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학생, 아직 멍하니 있는 학생, 그리고 저들끼리 웅성거리거나 감탄하는 학생들...
그 반응들은 명문가문인 윌리엄가의 자제가 아닌, 생전 처음보는 바알 베드히로에게 가 있었다.
제국 제일의 아카데미인 시온의 입학생들정도면, 모두 서로의 얼굴을 대충이나마 알고있다.
평민이라고 할지라도, 이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면 마을의 자랑같은 아이였을 테니까.
저마다의 비범함이 있고, 정보를 좋아하는 귀족들은 모두 입학생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건 교관인 자신도 마찬가지였고...
'대체 어디서 나온거지...?'
듣도보도 못한 아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가문을 찾아가도 저 아이에 대해 알고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잡담은 그만! 대련은 여기서 종료한다. 다음 수업에서는 교관가의 1:1 상담이 예정되어 있을 것이다."
길버트는 어수선한 분위기의 수업을 끝내며, 기절하여 실려가는 바알 베드히로를 바라보았다.
'...예의주시해야겠어'
*****
"루...스...!"
"루카스!"
"어, 어?! 왜그래?"
윌리엄 루카스는 멍하니 클래스로 돌아와 방금의 전투를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의 옆에는, 자신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은발의 소녀, 앤젤라 에르시아가 있었다.
"...어디 아픈건가요...?"
"아. 그건 아니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괜찮다는 말을 믿지 않는 에르시아가 내 얼굴을 빤히 보다 피식 웃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고있어요..."
그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후...역시 그렇겠지? 그도 그럴게"
내 말을 듣지도 않아도 그녀가 이해한다는듯 내 말을 이어주었다.
"바알...베드히로라는 분이셨나요?"
처음부터 의문인 생도.
윌리엄 가 정도가 된다면 여러 정보를 들을 수 있다.
가문은 나를 위해 아카데미에서 경계하거나 친하게 지내면 좋을 이들을 선별해주었다.
그저 개인의 능력만이 아닌, 인간으로써의 성품, 그리고 가문의 혈통까지...
실제로 보지도 않고 문자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건 좋은 기분이 아니였지만
나를 위해 고생해주신 분들을 위해 모두 살펴보았다.
기억은 못하더라도, 399명의 아이들을 모두 보았고, 뿐만 아니라 2,3,4학년의 주요인물과 교관분들 또한 살펴보았다.
하지만, 마지막 한명에 대한 정보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아이가...바알 베드히로'
정체불명의 힘이였다.
가문의 모든 재능을 가진 천재라는 말에 오만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도들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질뻔했어...'
마법사와의 대련을 위해, 가문의 마법사들이 대련을 여러번 도와주었다.
허나, 그 아이가 쓰는 마법에는 마나의 흐름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느낄 수 없었고, 대처할수도 없었으며 예상할수도 없었다.
"그 텔레포트가 가장 이상해요..."
멍하니 생각하고 있더니, 옆에 있던 에르시아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마나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다른 학생들도 그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마법사야 당연한 것이고, 전사계열의 생도들또한 마법에 대처하기 위해 마나 감지에 최선을 다한다.
"제가 다른 학생분들께 물어봤는데,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여느 마법사들처럼 마법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에르시아였기에, 반을 돌며 모든 이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모두 같은 대답을 하였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라고.
그녀는 궁금증에 엉덩이를 들썩거렸지만, 모든 혼란의 중심인 바알 베드히로는 현재 보건실에 휴식하고 있었다.
"후, 후훗...하하하하!"
"...왜 웃으시나요?"
루카스는 반의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걔 뭔가 이상해...정보도 하나도 없었고.
설령 마나의 흔적을 내뱉지 않는 재능이라고 하더라도, 텔레포트까지 쓰다니...
일단 친해질 필요가 있겠어.
대련을 시작하기 전, 학생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호의를 떠올렸다.
그 호의는 고마웠지만...내 대련상대인 바알 베드히로에게는 좋은 기분이 아니였겠지.
그것을 마음에 두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멋지네...'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다시 한번 대련하고 싶다..."
내 읊조림에, 에르시아가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요"
정작 베드히로가 이 말을 들었다면 눈을 부릎뜨고 경악했겠지만...
***
낯선 천장이다.
가 아니라 보건실이넹.
"끄윽!"
일어나려다가, 몸에 느껴지는 통증에 다시 드러누웠다.
"어머. 일어났니?"
잔잔한 미성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백의의 젊은 여성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헤으응...'
소설 속 세계는 맞는지, 가끔 보이는 교수들이나 학생들의 미모가 미친수준이였다.
터벅 터벅
내 앞으로 걸어온 치료사가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서늘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엿같은 레아마망때문에 망가진 내 정신이 회복되는 기분이였다.
"일단 치료는 다 해뒀으니까, 괜찮아지면 돌아가도 된단다"
"아 넵."
그 말에 나는 즉시 아픔을 참고 일어났다.
영력이 얼마나 쌓였는지 보고싶었으니까
툭.
"....?"
하지만, 그런 내 어깨를 양호선생님이 웃으며 잡아세웠다.
"후후후 괜찮아지면 이라고 했잖니? 더 누워있으렴"
"아니...괜찮은데요?"
"아니야~ 아픈거 다 아는데 거짓말 할거예요? 어서!"
내 입에 사탕을 우겨넣은 치료사가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침대에 눕혔다.
이게 머선 일이고?
"그럼...쉬는동안 여기좀 봐줄 수 있겠니?"
"네?"
그 말을 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인자하고 따쓰하게 웃던 치료사가 보건실 밖으로 나갔다.
뭔가 이용당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사탕 맛있네.'
포도맛이다.
포도맛 사탕...
그렇게 사탕을 챱챱 핥아대며 멍하니 누워있었다.
'영력...얼마나 쌓였으려나?'
영력은 내가 이 세상에 미친 영향력이고, 내가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아마 그정도 활약을 했으니, 꽤나 많이 올랐겠지.
[영력 : 30 / 30]
"...어?"
눈을 감고 있으니, 내 심상세계에서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내가 떠올린 망상이 아니지만, 내 앞으로 다가온 그것.
획득한 영력의 총량이 30이라는건 알겠다.
하지만...
[인과율 : 2.07%]
영력 아래에 있는 저건 뭐지?
저 인과율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아 아파."
루카스에게 맞은 부위가 아팠기에 생각하는 것도 싫어졌다.
"창조."
눈을 감고 깊게 생각하며 물방울을 구현하고, 세상에 창조시켰다.
그러자 내 손 위에 나타난 물방울.
[영력 : 29 / 30]
심상세계에 구현한 그것을 삭제시키니, 현실에 있는 물방울도 사라졌다.
'심상세계라기보다는...'
심상세계라고 하니 그냥 밝거나 어두운 방 같은것을 생각했지만,
내가 눈을 감고 떠올리는 심상세계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구현해내고 있었다.
바람과 식물의 흔들림과 가구들, 심지어 생명체까지도.
"하아"
일단 자자.
아프네
*****
잠을 자고 일어나니, 모든 수업은 끝나있었다.
나는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불길한 위화감이 들었으니까
제국의 모든 책을 담았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의 거대한 도서관.
그 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나서야, 내가 찾고싶었던 것이 나타났다.
[신의 힘을 받은 이들]
이거다.
'화신체라고 했어...나는.'
양피지는 내가 이 세상을 창조한 으잉레아마망쮸쮸의...
"아 씹."
창조주의 화신체라고 했다.
[신의 자식, 신의 힘을 물려받은자들...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화신체, 즉 화신(化?)이라 부른다.]
[그들은 비범하고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며 수많은 시련과 도전을 겪게 된다.]
[시련들중 죽는 이들이 많으나, 살아남은 극소수는 모두 대륙을 울리는 전사가 된다.]
그런 글을 읽어내다가, 드디어 내가 찾고있던 문장을 찾아냈다.
[권능을 하사한 신이 악신(??) 혹은 선신(??)인가에 따라 화신체의 성향 또한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
이거였구나.
내가 대련중에 느낀 참을 수 없는 증오와 분노.
'레아마망쮸쮸....결국 그렇게 됐냐...!'
주인공이 없어짐과 동시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마왕 6명이 소멸되었다.
악플러를 족치기 위해 눈이 시뻘개진 으잉레아마망은...내 환해진 표정에 매우 꼴받았고
(플레이어의 목적이 → 으로 수정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되었다.
잠깐의 분노조절장애로 인해 선신에서 악신으로 변해버렸으며
나는 악신의 화신체가 된 것이다.
그런 악신의 권능을 받았기 때문에, 내 몸속에 악성향이 나타난 것이고...
'에휴 병신아...'
하늘에 있는 무언가가 뜨끔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새끼도 할게 어지간히 없지 않는이상 훔쳐보거나 그런일은 없겠지...
(...뜨끔!)
".....?"
약간 고개를 갸웃한 나는, 이내 이상함을 느꼇다.
'나는 별로 나쁘지 않은데?'
나는 순수한 아이다.
(......)
뭐 씨벌.
어쩌라고.
"아 짜증"
계속 신경쓰이는 기분을 고개를 세차게 저음으로써 털어냈다.
지금의 나는 악신의 성향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그리 나쁜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당장 양호 선생님의 풍만한 그것을 보고 마음이 정화된 것을 보면 더욱 그렇고
'으잉레아마망쮸쮸가...'
"아 씹."
'창조주가 원래부터 나쁜 성격이 아니였기 때문인가...?'
그러한 결과를 도출해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수도 있겠구나!
책을 집어넣고 도서관을 나오다가, 문뜻 위험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이름을 으잉레아마망쮸쮸로 지어넣는 놈...
꼴받았다는 이유로 울컥하여 자기가 만든 세상을 멸망시키는 퀘스트를 준 놈...
신의 성향을 물러받는다면...
"나, 나도 병신이 되는게 아니겠지...?"
(...!...!...!)
무언가가 바닥을 동동 뛰며 화를내는 기분이 들었지만...
"에이~ 아니겠지 뭐."
이 세상은 벨런스를 유지한다.
주인공이 없어지니 마왕 6명이 없어지는것을 보면 확실한 상황.
으잉레아의 대가리를 물러받는다면, 세상을 멸망시키는건 애초에 불가능했겠지.
그랬다면 멸망시키라는 퀘스트또한 받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책에서는 달라진다가 아니라 달라지기도 한다. 라고 적혀져 있었고
"그럼 괜찮겠당."
그렇게 기숙사로 돌아간 나는, 살인충동을 제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심신안정에 좋은 양초를 잔뜩 피워두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