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검은머리 수석 엘린 (2)
* * *
일단 이미 시작된거 최선을 다한다.
대충대충 하면 엘린이 힘을 조절하며 나를 계속 때려댈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지금 엘린이 어두운 눈으로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전과 달리 나는 방패와 단창을 들고 있었다.
아까 에르시아와 레아가 말했던 것처럼, 마법사들은 캐스팅 시간이 필요하며 손바닥 위에다가 마법을 만든다고 했다.
몸에 닿는 위치라면 어디라도 가능하지만...원래부터 손으로 마법을 쏘아내기 위해 훈련됐으니까
허나,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상상하고 소환하면 되니까.
"그럼 준비"
나는 곧바로 심상세계에서 엘린의 뒤로 나 자신을 만들어냈다.
엘린이라면 곧바로 달려들겠지.
그녀는 내가 조금 특별하기만 한 '마법사'라고 생각할테니까.
"시작!"
길버트의 외침과 함께, 예상대로 엘린이 달려왔다.
루카스보다 훨씬 빠른 속도.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온 엘린이 검을 휘둘렀지만...
슉!
나는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엘린이 검을 휘두른 곳에서는 괴상하고 기분나쁜 검은색 구가 있었다.
"하하!"
나는 자신의 칼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엘린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어릴때 애니메이션에서 자신의 폭탄머리를 떼어내 던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은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은 보람이 있었다.
이제 엘린의 공격에 맞아도 어느정도 충격이 완화되겠지.
재미가 들린 나는 곳곳에 폭탄머리같은 그것을 소환해냈다.
심지어 영력도 하나 소환하는데 1밖에 들지 않았다.
신이 돕는구나...
폭탄머리 미소녀.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한번만 성공시킨다면 일주일은 웃으면서 잘 수 있으리라.
뿐만 아니라 몇년이 지난 후에도 가끔씩 생각하며 미소지을 수 있겠지.
내 표정에서 무언가 불쾌감을 느낀 엘린이.
그 검고 물컹거리는 그것을 강하게 경계했다.
"너. 혼나."
그 말과 함께 엘린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손을 앞으로 뻗어 검은 그것들을 엘린에게 쏘아냈다.
가랏!
엘린은 검을 휘둘렀지만...내가 소환한 폭탄머리같은 그것은 또다시 엘린의 검에 찰싹 달라붙었다.
엘린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지만...
그것은 결단코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그 뒤로 엘린은 날아오는 그것들을 피하는데에만 집중했다.
기분나빠...
어떤 여학생의 미성이 들렸지만...
그건 알 바 아니다.
나는 이리저리 굴러대며 나에게 달려오는 엘린에게 집중할 뿐이였다.
머리..
머리를 보자...!
그런 내 희망이 하늘에 닿았는지, 기어코 엘린의 몸통에 그 구 하나가 붙었다.
"으으...."
엘린이 더럽혀졌어... 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손으로 잡았지만...
그것은 위치를 옮겨 엘린의 손에 달라붙었다.
"크크큭..."
나. 악신 으잉레아마망쮸쮸의 화신체.
너를 위험에 빠드리로다.
엘린이 무표정으로 당황하는 사이, 또다시 3개가 더 그녀의 몸에 달라붙었다.
다리와 등, 그리고 배...
지금 그녀의 어깨에도 하나가 더 붙었다.
그녀가 어깨를 흔드니, 그것은 어깨에서 떨어져 엘린의 부드러운 볼에 달라붙었다.
그 모습에 내 예술적 감각이 되살아났다.
머리에 하나의 폭탄머리를 심는게 아니라.
머리와 양쪽 볼에 하나씩 붙인다면 어떻게 될까?
'멈출 수 없는 충동!'
나는 모든 영력을 쥐어짜내 검은 그것들을 소환해냈다.
텔레포트에 사용되는 영력 15...
파이어볼이 3이 사용되는 것을 생각하면 왜 15밖에 들지 않는지 궁금하지만...
이 세상은 미치광이가 만든 세계니까.
[영력 : 0 / 35]
허공에 10개가 있던 검은색의 그것이, 두배로 늘어났다.
그녀에게 달라붙은 검은색 폭탄머리같은 것은 현재 7개...
검에 두개, 몸에 5개다.
아. 지금 하나 더 붙어서 8개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파마머리가 남아있사옵니다...'
관중들을 슬쩍 돌아보니, 학생들이 입을 헤 벌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내 눈에나 파마머리처럼 보이지,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검은색 구 처럼 보일테니까.
몇몇 남학생들이 '계획대로...'라는 표정을 짓고있을 뿐.
저 아이들에게 말을 걸면, 아카데미의 암흑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타닷.
그렇게 시선을 돌리고 있으니, 엘린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빳다.
내 주위를 싸그리 막고있는 검은색의 그것들은 피할려고해도 피할 수 있는게 아니였으니까.
통.
엘린이 검을 휘두르니, 검에 붙어있던 것과 맞으며 다른 검은색 파마머리가 어딘가로 굴러갔다.
허어...데미지가
길버트의 감탄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방패를 앞에 세웠다.
이제부터 집중해서 공략할거거든.
나는 12개의 검은색 구들을 움직였다.
생각보다 빠른 그것들은, 엘린을 점차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앗!
엘린이 바닥에 있던 그것을 보지 못하고 밟아버렸다.
그녀는 이제 뛸때마다 솜뭉치를 밟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푹신푹신한 그것때문에 이동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체크메이트'
나는 남은 모든 파마머리를 엘린에게 쏘아냈다.
하지만...
제국이 운영하는 시온의 수석은, 그리 약한것이 아니였다.
'말도 안돼!'
경악할만한 움직임으로 모든 파마머리를 피해낸 엘린이 나에게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녀의 목검에는 데미지라는게 없었다.
이미 덕지덕지 붙어있었으니까.
퍽!
엘린은 내 단창을 피해낸 뒤, 내 방패를 발로 차서 치워냈다
그리고,
"크악!"
내 몸에 진심 태클을 걸어 내 몸 위에 올라탔다.
나는 그녀의 몸통박치기에 바닥에 넘어졌고
".....?!"
내 위에 올라탄 엘린이 내 얼굴을 발로 밟았다.
다만, 그녀의 발에는 내가 소환해낸 파마머리가 있을 뿐이였다.
"포기해. 질식할때까지 밟을거야."
발버둥을 쳤지만, 수석의 힘을 이기는건 불가능했다.
'우웁! 우우웁!'
그렇게 한참을 발버둥을 치니, 점점 숨이 가빠져왔고
슝.
나는 결국 모든 파마머리를 역소환했다.
파마머리가 사라져도 내 얼굴에 발을 올리고 있던 엘린이 고개를 돌려 모든 구체가 사라진걸 확인한 뒤.
내 얼굴에서 발을 치웠다.
후우
내가 졌구나...
"항복."
내 소리를 들은 길버트가 말했다.
"승자. 엘린."
와아아아...
이겼지만, 학생들은 충분히 지쳤기 때문에 맥 빠진 소리만 낼 뿐이였다.
"수고했어."
나에게 손을 뻗어 일으켜 세워주는 엘린.
내가 했던 상상을 알면, 손이 아니라 목검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그것을 떠올린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도 수고했어. 대단하네. 역시 수석이야."
"응."
시크한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내려갔다.
뒤돌아서 가는 그녀의 머리 위에, 폭탄머리가 아른거렸다.
...아쉬워서 갈수가 있나...
나는 대련장으로 내려가는것도 잊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휴식한 뒤 각자 교실로 돌아가라"
슬슬 끝나가는 시간이 왔기 때문에 길버트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구나.
오늘 밥은 뭘 먹을까?
환전을 했기 때문에 약간 쪼달리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내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헤엑"
"안녕?"
호기심 천국의 그녀가 내 앞으로 와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 정말 마법을 쓸때 마나가 나타나지 않는구나? 눈에 마법을 집중해서 봤는데도 전혀보이지 않았어! 내 옆에 있던 에르시아도 안보인다고 하더라구 그건 그렇고, 방금 그거 뭐야? 그런 마법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어! 게다가 캐스팅도 없고 물질이 생성되는 시간조차 없더라...갑자기 허공에서 수십개의 구체가 떠오르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아! 처음에 썻던 텔레포트도 놀랐어. 텔레포트를 하는것도 모자라 자신이 있던 곳에 구체를 소환해서 칼에 달라붙게 하다니...너 정말 굉장하구나? 에르시아가 말하는데 진지하게 싸우면 자기도 불안할 것 같다구..."
'으아악!'
"으아악!"
"왜, 왜그래!"
입에 모터가 달린듯 떠들어대던 레아가 깜짝 놀라 걱정했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루카스에게 눈빛을 보내고 싶었지만...
녀석은 자신의 팬인 소녀무리에게 이끌려 이미 보건실로 끌려갔다.
아마 그 안에서 극진어린 간호를 받고 있겠지.
씹쌍놈의 시키....
비록 내 앞에 있는 레아가 그 팬들을 전부 합치는것보다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외모같은게 보이지 않았다.
'정신 나갈 것 같애!'
"어머 어떡해...! 그런 마법을 쓰니까 무리가 오는거야 정말...기, 기절하는거 아니지? 서, 설마 죽는다거나...! 필시 부작용이 있는거겠지...응응,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인걸.
아, 혹시 가문의 비기같은거야...? 아니, 비기라고 해도 그럴수는 없는데...끄으응...혹시 알려줄 수 있어...? 제, 제발 알려줘...! 나는 답이 없는 40위란 말이야...! 이번에 정산받은 돈도 조금 위험해...돈이 없으면! 밥을 못머거!"
으잉레아마망이라는 조물주새끼가 손수 신경써서 만든 히로인이라 그런지.
그녀는 범인인 내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한참을 떠들어대던 레아는,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스스로 결과를 도출해내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내 경악한 시선조차 느끼지 못하고 무아지경으로 떠들어대는 탓에,
히로인은 사실 언어의 마술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온 아카데미는 3교시가 끝나면 곧바로 식사시간이다.
몇몇은 학생들은 힘겨운 몸을 움직이며 샤워실로 향했다.
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냥 기숙사로 향했다.
점심 식사 후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점심시간은 2시간이였으니까.
다행히도, 꽤나 차가운 내 겉모습때문에 다른 이들이 엉겨붙지 않았다.
레아도 어느순간 루카스와 에르시아를 따라 활동하기 시작했고.
'주인공이 없어도 서로 연결된다는건가...?'
잘 모르겠다.
나는 점심을 가볍게 샌드위치로 해결한 뒤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기숙사 침대 아래에 손을 집어넣으니, 나타나는 괴상한 책.
낡고, 기분나쁘다.
'흠...'
흑마법사의 재단에서 챙겨온 이 책은
수많은 인간의 시체들 위에서 펼쳐져 있었다.
일행들이 시체는 구경하기 싫다는 듯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했기에 나만이 볼 수 있었다.
'....이걸 사용해도 되는건가?'
사제인 샬롯은 나에게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데 흑마법같은것을 사용한다면...
잘해야 퇴학, 잘못하면 성전에 끌려가겠지.
스륵.
하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책을 넘겼다.
그러자 보이는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하고 기괴한 언어들...
언어들이 마치 못에 박히고 관절이 뒤틀린 인간의 형상을 본뜬 것 같았다.
기분나쁘다.
그런데 왜일까?
어딘가가 포근한 기분이 든다.
마치 내 모든 불평을 이해해 줄 것 같은 기분.
이 책을 조금씩 읽어본다면, 더 많은 쾌락과 행복을 얻을 것 같다.
그렇게 시간가는줄도 흑마술서를 계속 읽고 있으니
"끅!"
머리가 타는 것 같은 통증이 일어났다.
하지만, 전혀 나쁘지 않았다.
아프지만, 이 아픔을 느껴야만 세상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나는 조금도 알지 못하지만, 이 행위를 반복하면 반드시 무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때는 나는 이미 모든 흑마술서를 읽고 난 뒤였다.
언어조차 알지 못하고, 그 무엇조차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는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그 책을 읽고있었던 것이다.
창 밖을 보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오후수업을 통째로 빼버렸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느끼다가, 이내 내 눈앞에 떠오르는 문자.
[영력 : 35 / 40]
[인과율 : 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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