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막이 되었다-15화 (15/53)

〈 15화 〉 (자칭) 흑룡의 루시 (1)

* * *

테러 후, 다행히도 나는 의심받지 않았다.

그 후의 이야기라면...

[엘린 양 외 9인 모두 앞으로 나와주세요.]

우리는 테러가 일어난 광장에 가서 대표로 상을 받아야 했다.

영웅의 귀감이니 용맹이니 제국의 미래니...

온갖 수식어가 붙었지만, 그래도 상금은 꽤나 짭짤했다.

­엘린 양. 혹시 인터뷰...

­저희는 혈맹 용병단 입니다. 혹시 추후에...

근처에 있던 길드나 용병단들 등등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였고, 우리들은 기자들의 부담스러운 관심을 받게 되었다.

물론 나는 적당히 빠져나와서 텔레포트로 도망쳤지만­

그 뒤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레아가 나한테 말을 거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베드히로! 혹시 동아리 만들건데 들어올 생각 있어...?

­영력이라는거, 베드히로가 쓰는 거랑 닮지 않았어? 혹시 나랑 방과후에...

­베드히로! 나 상금 받았어! 이걸로 더이상 굶을 일은 없을 것 같아.

­아! 나 친구들이랑 놀러가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보통이라면 마법에 관할 때만 이야기를 했고, 그 외에는 사적으로는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테러 사건 이후로 마법 외의 주제로도 나에게 잘 얘기하더라.

좋아하는 음식이라던가, 어젯밤 무엇을 했다던가...

"헥! 헥! 헥!"

".....하아­"

굳이 레아를 떠올리는 이유가 있다면,

지금 그녀가 내 옆에서 구르고 있기 때문.

"너희들! 똑바로 안뛰나! 그따위로 훈련한다면 다른 생도들을 따라잡지 못할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기초체력은 있어야 한다면서, 체력이 없는 생도들을 모아놓고 훈련을 받아야 했다.

­쟤는 차가워보이는데 체력은 없네...

­그게 좀 반전이야

기초체력 답게 나 외에는 대부분 여자 생도들이였기에, 쓸대없는 주목을 받고 있었다.

레아처럼 맘 놓고 헥헥거리고 싶지만...

보는 눈이 부담스럽다.

"너 이자식! 똑바로 안해?!"

"저, 저는! 위험에 처하면 각성하는 사람이예요오!"

"네 재능을 내가 알고있는데 헛소리를 하나! 똑바로 뛰어!"

"흐, 흐으응..."

다행히도, 나보다는 레아와 다른 여생도가 더 심각했기에 교관의 관심을 받지 않고 대충 뛸 수 있었다.

"흐으...베드히로...안힘들어? 시온의 체력훈련은 너무 힘들지 않아?"

구르고 구르니, 드디어 천국같은 휴식시간.

레아가 구석에 있는 내 옆에 털썩 앉았다.

"나만 꼴지야...현혼이 가능해져서 나아질거라 생각했는데 갈길이 머네..."

그러다가 레아가 홍조를 띄며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 그건 그렇고...나 지금 혼잔데­ 혹시 같이 점심 먹으려 갈래...?"

"아니!"

그런 레아의 말을 끊고 나타난 여자아이.

"너. 바알 베드히로라고 했지? 나 좀 보자. 아니­ 너랑 나는 봐야만 해!"

재미있는 분홍 머리에 한쪽에는 안대를 낀 여자아이.

아까 교관한테 떽떽거리며 대들고 있던 여생도다.

"아, 아아...! 그래! 나, 나는 볼일도 있고..."

쭈구리가 된 레아를 보다가 나는 이름 모를 그녀에게 말했다.

"싫어."

"어, 엉?"

"나 할 일 있어."

사실 할 일은 없지만...괜히 귀찮아질 것 같다.

"아, 아앗! 알겠어!"

자신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던 여자아이가 이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거지~?"

"......"

"나는 다 알고있다구~ 속이는건 불.가.능!"

뭐하는 아이인지 모르겠지만...

참 개성있는 아이구나.

"그, 그런 표정으로 보지마...!"

내가 어떤 표정인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 있는 그녀가 의기소침해졌다.

그 모습은 꽤나 불쌍한 것이였기에 보다못한 나는 등을 돌려 복도로 빠져나갔다.

"근데 왜 따라오는거야?"

"응? 당연하지...! 너가 가는 방향이랑 내가 가는 방향은 같거든­"

점심시간이라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으니, 아까의 그 괴상한 여자아이가 따라붙었다.

어느샌가 내 뒤에 딱 붙어있는데...

"잠깐. 우리 얘기부터 할까? 기왕이면 어둡고 음습한 곳으로..."

이왕이면 빨리 떼어내는게 좋겠지?

"그러지 뭐."

"그럼! 따라와!"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나를 지나쳐 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기숙사네."

"응! 여기가 내 은신처지. 어둡고, 음습해!"

내가 지내고 있는 평민 기숙사의 구석이였다.

확실히 어둡고 어딘가 기분나쁜 공간이다.

"나. 봤어. 그날."

"뭐를?"

"테러가 일어날때..."

그 말에 나는 입을 헤­ 벌릴뻔했다.

언제부터 본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꽤나 처음부터라면 곤란해진다.

"뭐, 뭐가."

"네가 쏜 어둠의 힘...."

"그, 그건 흑마법이 아니야!"

"아니! 흑마법이야!"

내가 당황해서 현실을 부정하니, 분홍머리의 그녀가 나를 보며 외쳤다.

"그러니까! 우린 같은 편이 될 수 있어!"

"너...설마­"

지랄난 세계관의 아카데미라면, 이 안에 어둠의 세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설마 내 앞에 있는 이녀석인가?

"내 몸속에는 흑룡 베르고가 잠들어있어!"

"....그게 뭐냐?"

"나는 어둠의 힘을 가진 어둠의 소녀라는 거야..."

"...."

"그리고 내 오른팔과 오른쪽 눈에는 그 어둠의 힘이 봉인되어 있지."

그녀가 소매를 걷으니, 오른쪽 팔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그리고 유성매직으로 그린 것 같은 울퉁불퉁한 마법진...

'이녀석...'

"자네. 나와 같이 어둠의 길을 걷지 않겠는가...? 너가 무(無)에서 어둠을 생성해낼때, 난 이게 운명임을 느꼇어! 그 힘에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아카데미에서 흑마법은 금지되어 있다.

어두운 마력 자체가 부정하다고 여겨졌던 전통이 내려져오고 있기 때문.

그렇다보니 시온에 있는 마법사들중에 어두운 마력을 쓰는 이는 내가 아는 한에서 한명도 없었다.

다행히 내가 쏘아낸것은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냥 어두운 안개를 쏘아냈을 뿐이라 변명했지만...

"나와 같이 군도의 길을...!"

이 중2병 여자아이한테는 다른가보다.

"아...그, 저기­"

"나는 흑룡을 부활시켜야해. 나쁜 마법사들에게서 날 지켜주기 위해 스스로 봉인된거거든..."

그리 말하며 자신의 붕대에 감긴 오른팔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그녀의 분홍색 머리 아래에 있는 눈동자에서 기이한 광기가 느껴졌다.

이, 이건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 그거 내가 쏜거 아닌데?"

"아니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너 한쪽 눈은 가리고 있잖아."

"아, 아앗...! 아, 안대를 껴도 앞은 보이는걸!"

어쨋든 봤다니까 할말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연과 힘을 개화한 히로인이 훈련장에서 미친듯이 훈련하고 있겠지...

뒤쳐지는 것 같은 다급함이 불안감으로 내 몸에 다가왔다.

이걸 어떻게 떼어놔야 하지...?

"흥! 같이 할때까지 맨날 따라다닐거거든?!"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으르렁대며 말했다.

"아니, 같이 하자고 해도 뭘 해야 하는지 말해야지..."

"나는 흑룡을 부활시켜야해. 그러기 위해서는 어둠의 동료들이 꼭 필요하단 말이야...! 너는 열쇠야! 내 봉인을 풀을!"

"내, 내가 왜 열쇠인데"

"아, 몰라!"

순간 주먹이 위로 올라가 이 여자아이의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을 뻔했다.

"일단.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뭔데?"

"놀라지 마."

그녀는 좌우를 불안하게 두리번걸이다가, 얼굴을 확 내밀었다.

갑작스럽게 확 밀려오는 달콤한 체향에 놀라고 있으니, 그녀가 입술을 벌렸다.

"아카데미 외각...그러니까 평민 기숙사 뒤쪽 산에 불길한게 있어..."

"뭐라고?"

불길하다니...

이곳은 소설 속 세계다보니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쓰고 있던 나에게는 거대한 플래그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분홍머리 오타쿠 소녀는 사실 특수 NPC같은게 아니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그렇게 발견하게 된 것은...

"뭐야 이게­"

썩은 목제로 이루어진 작은 조형물..

집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들 사이에 1m 크기의 석제기둥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구석에 끼여있는 축구공 크기의 물컹한 구...

심상세계로 보니, 그 안에서 짙은 흑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번에 베드히로를 미, 미행하다가 발견했어...너 여기 근처에서 훈련하잖아."

"...나는 아래에 있는 공터에서 훈련하는데? 너는 귀족 아니였나? 니가 여기를 왜 와."

"보, 보면 들킬까봐...뒷산에 숨어있다가 발견했어­"

"....."

일단 봐준다.

*****

한편,

"레아님, 여기서 뭐하시나요?"

"아, 잠깐 생각하고 있었어."

레아는 최근 친해진 에르시아와 루카스와 있었다.

평민에 반 꼴지인 자신이 어떻게 이들과 친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이 둘은 자신을 차별없이 대해주었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무슨 생각?"

루카스의 물음에 레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베드히로 말하는거야...또 차여버렸네­"

"아아."

루카스와 에르시아 역시 알고있었다.

저번 테러사건때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던 암흑의 구.

흑마법사의 소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그 공격에 맞은 레아가 재능을 깨우쳤고,

적들의 시야를 가려 테러에게서 안전하게 지켜주었다.

암(?) 속성의 공격마저 구현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못했지만...

"역시 베드히로 덕분이겠지?"

레아는 자신의 능력이 개화된 것이 베드히로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레아님의 능력도 마나가 없으니까요. 그런 특이체질의 사람이 둘이나 있다니..."

"베드히로 그녀석, 어딘가 이상해."

루카스의 말에 에르시아도 진지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능력이 없는것도 의문이지만, 정보라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자료가 아무것도 없는 이가 베드히로라는것을 깨달은 이들은,

비서에게 말해 베드히로에게 개인적으로 조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나쁜 일이라는것은 알고있지만...마법에 대한 미지의 호기심에 젖은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 그래도 불법으로 저지른건 아니예요..."

루카스가 지긋이 노려보니 에르시아가 눈을 피하며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 밤이였지?"

"네. 늦지 말고 오셔야 해요? 들키셔도 안되구."

"응! 걱정하지 마­"

레아가 찾아낸 어두운 잔재.

왜인지 모르게 평민 기숙사보다 더 외각인 지역에서 찾아낸 기분나쁜 골프공 크기의 구슬...

'....다행이다.'

뒤쳐지고 있다.

열등생이라는 사실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났으면 이성을 잃고 그 부정한 구슬을 마법진으로 불러낼 생각까지 하였지만...

'베드히로에게 나중에 감사해야겠다...'

능력을 개화시키고 이성을 되찾은 레아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뻔한것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아 저기 베드히로다."

점심시간이 끝나 교실로 돌아가고 있으니, 학교 안에 있는 거대한 중앙정원에서 베드히로가 누군가와 걷고있었다.

저 아이, 어딘가 보는 재미가 있단 말이지...

근데 옆에 있는 저 여자애랑 아직까지 있었던 건가?

레아는 어딘가 다급해져 말했다.

"오늘 베드히로도 데려갈래?"

"응? 베드를?"

루카스가 그를 호칭으로 부르는것을 보고 레아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응. 베드를."

"뭐, 상관 없지 않을까? 이런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루카스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말하고 올­"

"아, 아니야. 내가 물어볼게­"

다시 그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지만..

"아."

그는 이미 건물 안에 들어가있었다.

"다, 다음에 물어보지 뭐."

­­­♪

"아! 종쳤다!"

"그러니까 빨리 가자니까요...!"

타이밍을 놓친 그들은 결국 제 시간안에 교실로 들어가지 못했고,

사이좋게 지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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