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급변 (2)
* * *
나는 눈을 끔뻑이며 옆구리를 확인했지만, 그곳에는 공기만 있을 뿐이였다.
꺄아악!
도, 도망쳐어...!
야 너 이쪽으로 오지마!
뒤를 돌아보니 수많은 루시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꽝을 골랐던 것이구나...
펑!!
그때 유연한 팔을 채찍처럼 휘둘러 루시 '같은것'을 소멸시킨 괴물새끼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은 이내 멍하니 이리저리 달려가는 분홍머리를 바라보는 나와 눈이 마주쳤고
키에에엑!!!!
그대로 나에게 냅다 달려왔다.
"아 씹 되는게 없네."
타다닥...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 숲속으로 뜀박질을 쳤다.
쿵쿵쿵쿵쿵!
녀석이 뒤에서 쫓아올때마다 땅이 울리는듯한 진동이 느껴졌고
그 소리는 빠르게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텔레포트를...'
[영력 : 18 / 40]
텔레포트에 사용되는 영력은 15...
파이어볼같은 것들을 하나 만들어내면 영력이 3이 소모된다.
파이어볼은 그 자체로 존나게 쌔지만...
아무래도 뒤에 있는 괴물을 죽이는건 불가능할 것 같다.
나는 점점 커지는 소리를 들으며 뒤를 돌았다.
녀석과의 거리는 대충 15m...
'일단 텔레포트를'
퍽!!
"크악!"
꽤나 거리가 있던 놈이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나 나를 후려쳤다.
다행히 예비용 방어막은 상시 구현해놓고 반사적으로 펼쳐낼 수 있도록 훈련해왔기 때문에 막아냈지만...
"끄으윽..."
그럼에도 내 몸에 충격이 전해졌다.
내장이 뭉개진 것 같고, 갈비뼈에 금이간 것 같은 통증...
퍼억!!
그 뒤 날아간 내 앞에 갑작스레 나타난 녀석이 한번 더 팔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방어막을 두겹으로 소환해내서 데미지는 없었지만...몸이 날아가는것은 피할 수 없었다.
'테, 텔레포트를...!'
[영력 : 9 / 40]
남은 영력을 확인한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퍽!!
또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난 괴물이 팔을 내리찍었지만, 다행히도 공격을 피해냈다.
"둠...!"
1서클 흑마법...
흑마법서를 빨아들이며 내 머릿속에 아주 기본적인 흑마법들이 들어왔기에 가능한 방법...
영력으로 소환해내는 마법과는 달리 특수한 효과가 부여된 마법은 그 수식을 알아햐 하니까
나와 녀석을 주위로 검은색의 돔이 생성되었다.
타닷...
시야가 가려지지만, 나는 제대로 앞을 감지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
소리가 흩어진다.
내 발소리조차 흩어져 녀석에게 들리지 않겠지...
그 뒤 나는 어두운 돔을 빠져나가 암흑뿐인 숲 깊은곳으로 도망쳤다.
'강화.'
녀석은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돔 형상의 어둠에 형상없는 벽을 깔았기에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영력 : 2 / 40]
"쯧"
절대 못이기겠구만.
쾅! 콰강...! 쨍그랑!
뒤에서 충격음과 함께 돔을 두르고 있던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거미의 머리를 한 녀석은, 나를 찾아낼것이다.
'다행히 루시는 없네...'
....?
루시는 소설 속 세계인 이곳의 살아있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데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했을지 인상을 찌푸렸지만...
!!
뒤에서 분노에 울부짖는 괴성이 들려왔기에 나는 서둘러 발을 옮겼다.
.
.
.
.
.
"하아 하아"
얼마나 뛰었을까.
정신도 못차리고 도망치니 나는 숲 속 깊은곳에 홀로 있었다.
괴물따위는 살고있지 않다는 듯 숲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흐흐흐...."
그때 나는 자조적인 헛웃음을 지었다.
'뭐가 방해야 씨발...'
이 한몸 버티기 힘들어서 추하게 도망치는게 다다.
내가 방해니 멸망이니 하는게 얼마나 같잖은 일인지 새삼스럽게 뼈가 시릴정도로 다가왔다.
"하아...하아..."
한심함과 지침에 멈춰서서 숨을 헐떡이고 있으니, 그제야 주변의 광경이 제대로 보였다.
평지의 숲에 나무들이 하늘 높이 뻗어간다.
바닥은 운동장의 바닥처럼 딱딱하기만 하였고, 듬성듬성 있는 수풀은 종이로 만든듯 베일듯 날카롭고 딱딱해보였다.
어두운 밤에 깊은 숲속...
달빛이 있기에 다행히 앞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어떡하지...'
주인공이 없는 조연들이 탈출을 선택한다면?
나는 꼼짝없이 홀로 이곳에 같혀있어야 한다.
모든 영력이 있다면 그 괴물과 싸울 수야 있겠지만...
솔직히 이길 것 같지도 않고 영력이 회복되기도 전에 괴물들에게 걸려서 끔살당할 것 같다.
'루시는 어떻게 됐지?'
내가 데려온 아이다 보니 뭔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른 조연들에 비해 한없이 약한 여자아이였고...
'알아서 잘하겠지...'
들러붙는거 좋아하니까, 내가 없어진 이상 다른 조연 3명에게 붙었을 것이리라.
'....돌아갈까?'
혼자 있기보다는 조연들과 붙고싶다.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 사는 어두운 숲속에서 사람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앞으로 걸어가려 했지만...
"......."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
압박감과 긴장감 그리고 공포때문에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
이마에 흐르는 땀이 눈동자에 스며들어 따가웠지만...손을 들어올릴수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게.
......
누군가....아니, 무언가가 내 바로 옆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단단해보이는 육체와 거대한 외눈...
근육질의 4개의 팔을 가진 1.8m 정도의 크기...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까 봤던 두마리의 괴물보다,
이녀석이 더 강하다.
그렇게 심장을 옥죄는 압박감에 몇분을 있었을까...
참지 못한 나는 꿀꺽하고 목울대를 넘겼다.
퍼억!!!!!
내 목이 움직임과 동시에 내 몸이 어딘가로 날라갔다.
무언가 의문을 느낄새도 없는 충격.
"어?"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나무에 기댄채 바닥에 쓰러지듯 앉아있었고, 내 옆구리는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기괴한 방향으로 꺽인 팔...
아픔조차 느낄 수 없는 그 의문에 앞을 바라보니...
그 괴물이 한쪽 팔을 들고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저녀석에게 한대 맞고 이렇게까지 상처받은 거구나.
[영력 : 0 / 40]
보건실에서 양호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신 활성화 마법...
훔쳐보고, 도서실의 책을 빌려 익히고 훈련한 다음에야 사용가능해진 그것을 사용하니 모든 영력이 바닥났다.
찌지직....
"흐흐..될리가 없지."
말을 내뱉으니 내 입에서 각혈이 쏟아져내렸다.
환자에게 상처 회복이 촉진을 위해 투여해주는 비타민처럼,
활성화마법도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영력을 소모해서 사용하기에는 효율이 쓰레기라는 뜻.
무슨 기적을 기대했기에 쓸모없는 짓을 했던 걸까?
몇주동안 쉬며 회복하기 전, 그냥 주먹 한대 맞으면 뒤질텐데....
터벅...터벅...
이내 녀석은 거대한 외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왔다.
녀석은 거대하고 단단해보이는 발을 내 머리 위에 올렸다.
아마 저게 내리찍혀지면, 내 머리는 터져서 죽겠지...
퍽.
아.
터졌다.
점점 눈 앞이 어두워졌다.
***
결계를 만들어낸 거대한 저주술을 가진 요괴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곳에는 머리에 피를 쏟아내며 죽어있는 한 인간이 있었다.
확실히 죽었다.
그것을 확신한 요괴는, 등을 돌려 남은 4명의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뒤를 돌렸다.
끼리리리릭...
터벅...터벅...
고요한 숲속에 울려퍼지는 발소리...
그 고요함 속에...
쾅!!!
끄륵?!
몸이 충격에 날라간 요괴는 의문을 담아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아아...씨발, 뒤지는줄 알았네..."
죽였던 인간이 일어나고 있었다.
"너. 건방지다."
***
참을 수 없는 고통,
하지만 그것보다 더 참을 수 없는것은...
쾅!!!
몸에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앞에 있는 놈에게 충격파를 쏘아냈고, 그 공격에 맞은 놈은 저 멀리 날라갔다.
'......'
모든것을 할 수 있는 전능감.
지금 이 순간에는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끄르륵..."
무엇이라도 죽여버리고 싶다.
살아있는것을 찾아내, 그 살을 찢어버리고 싶다.
뇌가 돌아버리고 이내 타버릴 것 같은 살인충동...
'뭐야 씨발...!'
이전에 루카스와 대련했을때 겪은 그 충동이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한 증오...
[인과율 50%]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내 앞은 전보다 훨씬 어두웠다.
오직 심상세계만이 투영된 세계.
현실의 모습은 바라볼 수 없고, 나는 내 머릿속의 공상세계에 있을 뿐이였다.
하지만, 전보다 몇배는 넓어진 시야 속 구석에서, 나를 죽이려고 한 괴물이 일어나고 있었다.
살아있다.
저걸 죽여야 한다...
미칠듯한 살인충동에 나는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쾅!!!
단 한발자국 내딛은것 뿐인데, 나는 그 괴물의 옆에 떠있었다.
녀석의 옆통수를 향해 뻗어진 손바닥에서 거대한 충격파가 발사되었고
크르륵...!!!
녀석은 또한번 무기력하게 날아갔다.
[영력]
남은 영력을 확인해보았지만...수치는 없어졌고, 그 글자는 불길한 흑과 핏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하...하하하..."
왜 겁먹었던걸까?
나는 세상을 멸망시킬 악귀며, 수많은 생명을 학살할 재앙이다.
저런 어디에나 있는 잡귀따위에게 죽을리가 없을텐데...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고, 비웃음이 나왔다.
내 앞에 수십개의 암흑의 구가 생성되어 녀석에게 쏘아졌다.
한번 맞을때마다 거대한 파동을 내뿜으며 터지는 그것...
음폭탄처럼 귀를 찌르는 이명소리를 내뿜는 그것이 터질때마다 녀석은 마치 제기차기의 제기가 된 것처럼 공중으로 떠올랐다.
끄르르르르아아아!!!
분노한 녀석이 달려들었지만,
펑.
소용돌이치듯 쏘아진 충격파가 놈의 몸을 터트렸다.
혈액이 하늘로 비산하며 비처럼 쏟아졌지만, 그중 내 몸에 닿는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우리 조연님들을 죽이려 갈까?
나는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시키며 녀석이 있을 곳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텔레포트를 한번 사용해 높은 나무 위에 서니, 앞에서 싸우는 이들이 보였다.
윌리엄 루카스, 앤젤라 에르시아, 그리고 레아.
'루시는...?'
곰곰히 생각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여자 죽든 말든 내 알바 아니였으니까.
아니, 오히려 귀찮으니까 만나면 내가 죽여야겠지...
흐아압!!
상처투성이의 루카스가 녀석에게 달려들었고, 거대한 영력이 종유석처럼 도깨비에게 쏟아졌다.
아까와는 달리 레아의 공격에 튕겨져나가지 않고 버틴 다음 루카스를 공격하는 괴물이였지만...
레아가 영력의 모양을 바꾸어내 루카스의 앞에 벽을 생성해냈다.
촤악!
레아의 영력의 벽 덕분에 공격을 막아낸 루카스가 놈의 가슴팍을 베어냈고
콰과과광...!!
그 상처에 에르시아의 정령들이 뿜어낸 바람과 돌, 불, 전격 등등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크아아악...!!
죽어가는듯한 괴성...
조연 3명은 크게 지친 것 같지만...저 상태로 있으면 무난하게 이기겠구나.
음.
이제 죽여야지.
나는 내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하며 검지손가락을 앞으로 내뻗었다.
내 상상속에서 손가락 끝에 빔이 쏟아져 저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창조의 권능을 사용한다면, 그것이 현실에 반복되겠지...
나는 창조를 하기 위해 영력을 끌어내려고 했다.
....베드히로...!!
"......"
하지만, 하지 못했다.
저 멀리서 루시의 것으로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어디야...!
강화된 오감으로 인해 확실히 들리는 목소리.
그녀가 이 괴물이 도사리는 숲속에서 큰 소리를 내며 나를 찾고있다는것을 알아냈다.
...분명 조연 3명에게 붙어먹을 줄 알았는데
나는 다시 집중을 하여 가장 거슬리는 에르시아를 죽이려고 했지만...
'.....'
손가락이 떨려왔고, 능력을 도저히 사용하지 못했다.
"하아 하아"
숨이 가빠지고, 눈동자가 떨린다.
어두운 5평짜리 방 안에서, 초췌한 얼굴로 컴퓨터만 바라보는 폐인이 떠올랐다.
깨끗한 이 몸으로 들어와 아카데미에 가고, 나에게 말을 걸어준 이들...
'꼭 죽여야 하나...?'
저들은 허상일 뿐인데, 이상한 죄책감과 더이상 그래서는 안된다는 후회가 등을 타고 흘렀다.
쾅!!
꺄아악!!
그리고 그런 내 귀에 들려오는 충격음과 루시의 비명소리...
"발...."
[인과율 : 40%]
자, 잠깐...! 베드히로 어딨어...!
"씨발...."
[인과율 : 24%]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괴물과 루시가 보였다.
괴물이 팔을 들어올렸고, 루시는 팔로 얼굴을 감싸며 죽음의 공포에 질려있었다.
"이런 썅!!!!"
곧바로 앞으로 쏘아내지듯 쇄도한 나는 놈의 몸통에 충격파를 쏘아냈다.
거대한 버섯구름처럼 발현된 충격파는, 이내 놈의 팔 한쪽과 옆구리를 터트리며 저 멀리 날려버렸다.
[인과율 : 0%]
".....하아 하아"
내가 뭘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error : §■#※♠◈으로...‡⊙※..*@&%...변동이...]
[ .....]
내 앞에 나타나는 수많은 해독할 수 없는 문자들...
그리고 그들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글자.
[설정의 급격한 변동으로 예상치못한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내 눈앞에 있는 또하나의 어두운 심상세계가,
마치 조각처럼 깨지며 빨려들어가 흩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