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급변 (3)
* * *
크르르르...
머릿속에 혼란이 찾아왔고, 눈을 떳을때는 모든게 그대로였다.
심상세계의 깨진 조각들이 무너지며 그 너머로 보이는 우주의 무한한 공간...
그리고 그 깊은 곳에 있는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심상세계의 조각들...
짝!
루시가 내 뒤통수를 후려쳤을땐, 모든게 그대로였다.
심상세계도, 나도, 루시도, 이 앞에 있는 괴물도...
'잘못본건가...?'
눈 앞을 가릴듯 범람했던 문자들..
그것은 정말 환상이였던 걸까?
[영력 : 60 / 60]
[인과율 : 0%]
"......"
눈 앞에 있는 광경을 혼란스럽게 바라보고 있으니
"베드히로...!"
쾅!!
나와 루시를 향해 괴물이 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테, 텔레포트...! 언제봐도 신기해!"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눈 앞에 있는 적에게 집중한다.
끄르륵...
옆구리가 터진 녀석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녀석의 신체가 부글부글 끓는것을 보니, 살점을 재생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펑!
저 멀리 소설 속 위기의 등장인물답게 각성한 레아를 바라보며 집중하였다.
.......
심상세계 속, 내 주위에 수많은 마법구체들이 떠다녔다.
불, 바람, 물, 돌 전기 등의 온갖 자연계 마법들.
아까는 루시가 혼란에 빠져있었기에 괜찮았지만...그녀가 빤히 보고있는 상태에서 흑마력을 사용할수는 없었으니까.
"루시야. 너 뭐할수 있어?"
내 말에 루시가 주먹을 앙 쥐며 내게 자신의 주먹을 내밀었다.
"파이어 펀치."
제기랄...
상황이 악화되었다.
내 옆에 있는 아이는 판타지 소설의 마법사가 아닌 그냥 응원토템이였다.
우리들중에 최약체인 치코리타나 다름없는 분홍머리의 그녀...
'재생하기 전에 잡는다.'
나는 곧바로 창조의 권능을 사용하였다.
심상세계에 구현되었던 마법들이 현실에 현현하여 내 주위로 나타난다.
"호에에..."
그 모습에 놀란 루시가 괴상한 소리를 내었지만...
'결합.'
불과 바람을 결합시키고, 물과 전기를 결합시킨다.
타다당!!
작지만 날카롭고 단단한 돌이 총알처럼 날라갔다.
돌을 이용한 공격은 원래라면 그리 빠르지 않겠지만...
나는 영력을 소모해 속도를 극단적으로 빠르게 만들었다.
상상은 했지만, 실현을 못시킨 어려운 운용법.
허나 지금은 왜인지 가능했다.
퍼버벅!!!
놈이 입에서 뿜어낸 실로 돌을 막아냈다.
펑!
하지만, 바람을 머금은 불이 화염방사기처럼 날아가 그 실들을 불태우고, 놈을 덮쳤다.
끼에에엑!!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공격들...
비록 에르시아보다 양적인 면에서는 부족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그녀를 웃돌았다.
영력을 활용한 내 창조의 권능은, 하급정령따위와는 비교가 안되니까.
[영력 : 30 / 60]
[영력 : 24 / 60]
[영력 : 15 / 60]
그렇게 소환해낸 모든 공격들을 쏟아내고 나서야 놈은 쓰러졌다.
'이게 이렇게 되네...'
평범한 학생들의 마법이라면 놈은 버텨냈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영력이 얼마나 강한 힘인지 깨달았다.
저 멀리 바라보니, 조연들이 싸우던 괴물도 이제 쓰러져있었다.
루카스의 검에 심장이 뚫린 녀석...
"......."
윌리엄 루카스, 앤젤라 에르시아, 레아...
언젠가 내 목적을 방해할 이들을 보니, 또다시 살인충동이 일어나며 눈 앞이 붉게 변해갔지만...
짝!!
나는 내 두 뺨을 내려침으로써 이성을 지켜냈다.
"얌마 가자."
"오, 오옹."
죽고 이제는 먼지로 변해가는 괴물을 빤히 보던 루시가 고장난듯 대답했다.
"여, 역시 나의 서번트!"
"내가 니 서번트여?"
"내 친우!"
이 분홍머리 오타쿠는 괜히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괜히 친구라는 말을 부정한다면 초롱초롱하면서도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영애의 맨탈이 가루가 날것이리라.
"그건 맞지..."
"응응!"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나무 기둥에 매달렸다.
내가 텔레포트를 쓸때 꽤나 높은곳의 가지로 갔으니까.
스르륵...
나무에 딱 매달려 미끄러지듯 내려간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아쉽게도 여기선 내 흑마술사로써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어...! 위기에 처해야 강해질텐데, 이녀석은 너무 약한 것 같아"
아까까지 바들바들 떨지 않았나?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은 위기에 처하면 봉인된 흑룡의 기운이 폭발하며 강해질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연들이라면 모를까 루시가 그런 각성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저 멀리 위기의 상황에 각성하여 괴물을 몰아붙인 레아를 보며 밝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보니까 재밌더라고.
*****
"어? 베드야?"
결계가 깨지고 산이 원래대로 돌아가자 조연 3인방과 마주쳤다.
"헉...유명인사들이야...예쁘고, 잘생겼다아...."
교내에 소문이 자자한 그 3인방의 등장에 루시가 내 뒤로 숨으며 속삭였다.
나한테는 막 들이댔으면서...
근데 그거가지고 마음이 상하기에는 저 3명이 넘사벽이기는 하다.
주로 외모가.
"그 아이는 누구야...? 계속 같이 있네?"
레아가 내 뒤로 숨은 루시를 바라보며 어딘가 감정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아...! 안녕, 아, 아아니...안녕하세요! 안녕안녕!"
"하하. 안녕."
루카스의 빛나는 미소를 받은 루시가 히익 소리를 내며 내 뒤로 숨으며 얼굴을 붉혔다.
이런 좆같은 외모지상주의를 보았나.
"웬일이야?"
꼴받은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루카스는 예의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할뿐이였다.
"하하...산책했는데, 오늘은 뭔가 운이 안좋네."
"우, 우리도 결계 안에서 싸웠어!"
뒤에서 루시가 외치는 말에 그들이 말했다.
"그런가요? 혹시 다치신곳은 없으신지...."
"아...너희도 갔었구나? 도대체 그게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어. 교관님께 보고해야겠다."
우리의 몸을 빤히 바라보던 에르시아와 루카스가 이내 저들끼리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었다.
...어딘가 다른 세상 사람 같네.
"저기 꼬마야."
그때, 조용히 루시를 바라보고 있던 레아가 말했다.
"으, 응?"
"이름이 뭐야?"
루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내 등을 꽉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걸 보니 긴장한 것 같다.
"루, 루시...아드리아 가문이야..."
"아드리아 루시?"
레아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과장되게 제스처를 취했다.
짝!
박수를 치며 활짝 웃은 레아.
"우리 친하게 지내지 않을래?"
"어...어어?! 내, 내가?!"
레아의 말에 루시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응. 이참에 우리들이랑 친구하자. 루카스랑 에르시아도 괜찮지?"
"저야 환영이랍니다."
"하하...나도 좋아."
넘사벽 외모에 선한 성격을 가진 에르시아와 루카스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니
"와..와아아...!"
감격에 북받쳐 오른 루시가 이내 입을 크게 벌리며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치, 친구가 4명...! 이틀만에...! 헤에...
루시가 나에게만 들릴 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내 흐아아, 하고 만족감 가득한 신음을 내던 그녀가 또다시 조연 3인방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을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오빠가 말한 야스인건가...?
"얌마...!"
기, 기분조탸아...
갑자기 들려온 충격적인 소리에 루시를 내려다보니, 그녀는 여자아이가 아니게 되버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
"응! 친구!"
레아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음. 일단 돌아가자. 여기 더 있는건 불길해."
이내 에르시아와 대화를 나누다가 생각을 마친 루카스가 말했다.
신을 믿지 않아도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피가 흐르는 녀석의 몸에는 잔잔한 황금빛 마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자. 모두 내려가요. 어서."
동급생이라기보다는, 성인 여성처럼 연상의 매력을 내뿜는 에르시아가 우리 셋의 등을 다독였다.
이곳은 위험하니 빨리 내려가게 해주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손길에 우리는 산을 내려갔다.
'......'
앞을 보며 산을 내려가면서도, 심상세계로 등 뒤를 확인했지만 그 불길한 구슬은 없어졌다.
조연들의 품 속에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니, 소멸한 거겠지...
[인과율 : 2.57%]
0%였던 인과율도 또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베드히로! 오늘 즐거웠어~ 오늘 밤은 심연을 엿볼 것 같아...!"
"베드, 오늘 너도 싸운거지? 열심히 했다."
"베드히로님. 오늘 꼭 양호실 가보세요."
루시, 루카스, 에르시아가 그리 말하며 걸어갔다.
저 3명은 A동에 거주하고 있으니까.
아싸로 지낸 세월과 태어나고 살아온 세월이 같은 루시가 어떤 실수를 할지 걱정되지만...
실수를 하면 그건 그것대로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베드...나 알고있어."
그렇게 3명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니, 레아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에게 영력을 쓸 수 있게해준 사람이 너인거지...?"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예상하는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 말 안해주는구나...고마워하고 있어."
"아. 그래."
그러자 레아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베드히로는 우리가 싫은거야?"
레아의 말에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 말과는 달리 그 얼굴에는 긴장도 뭣도 없었다.
그저 깊은 눈속에 내 모습을 담을뿐.
"아니야. 오해하지마."
"...웃..주잖아..."
그녀가 읊조리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안웃어주잖아. 베드히로는. 우리랑 얘기할때."
부정하려고 했지만, 이내 그럴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조연들에게 느끼는 부담과 적대감.
그것으로 생기는 긴장감으로 인해 저들을 볼때마다 할 말이 없어지니까.
안그래도 친화력이 적은 나였다면 필시 표정이 굳어져있었겠지.
나는 그런데 왜 레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먼저 다가와서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는건 그럴수도 있었다.
레아라는 히로인은 선한 '캐릭터'였으니까.
"나는 베드히로랑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우리 둘다 돌연변이잖아?"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다.
"나는 어릴때 영혼을 다룬다는 이유로 많이 미움받았어. 가족한테도 버려졌거든."
"......"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베드히로를 처음 본 날. 너랑은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동질감을 느꼇어."
이내 레아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벌써 이겨냈구나. 나보다 훨씬 강해...응...멋져"
레아의 멋져라는 말은 나에게 하는 말보다는,
미움받은걸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를 이겨낸 자신의 모습을 나에게 투영시키는 것 같았다.
"거짓말 안해도 돼...그날 테러사건때 내 재능을 개화시킨것도 베드히로잖아?"
나는 이내 거짓말이 의미가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의도한건 아니였어."
내 말에 그녀는 무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래. 그거면 좋아..."
그러면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를 도와줘서 고마워."
그녀는 아무런 높낮이 없는 억양으로 말했다.
"사실 많이 힘들었거든...네가 아니였다면 잘못된 선택을 했을거야..."
그러면서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했어.
"조금만 있었으면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지 몰랐을걸~?"
그녀가 웃었지만, 나는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말을 하기 싫다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보였지만, 멈출 수 없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정말....정말 힘들었거든..."
눈시울이 약간 붉어진 레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지만, 달빛에 비친 그녀는 참 아름답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까 말한것처럼..."
그러면서 어깨를 약간 숙이며 내 손을 두손으로 감싸잡았다.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꼭 불러줘..."
내 손을 상냥하게 쓰다듬던 그녀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말했다.
"정말 고마워."
울리는듯한 목소리, 새빨개진 얼굴...
그녀가 울고있다.
"그, 그럼 갈게...!"
운다는 것이 쪽팔렸는지 등을 돌려 서둘러 다다다 뛰어갔다.
그저 소설 속인 세상에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온지 모르고, 그녀가 어떤 기분일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그 등이 초라해보였다.
철퍼덕..
아, 아앗...!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던 레아가 엎어졌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팔을 프로펠러처럼 돌려대며 뛰어가다가 화단에 얼굴을 박았다.
달빛에 젖은 감성이 쫙 사라진 기분...
나였다면 쪽팔려서 죽어버렸을 것 같다.
아아아...아앗...
레아도 그것을 느끼는지 내밀은 엉덩이를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크흡..."
히로인의 몸개그는 아주 재밌는 것이라,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고,
멀리서 그 소리를 들은 레아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응! 웃으니까 더 멋져"
활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눈이 가늘게 떠지며 입술이 올라가는 인상깊은 웃음.
천사같은 히로인의 달빛을 받은 미소에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쿡쿡...그럼 월요일날 보자!"
레아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 뒤 들어갔다.
'.......'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얼굴을 만져보니 화끈거렸다.
하지만 괜히 창피하지는 않았다.
저 웃음을 보면 누구라도 반해버릴테니까.
쿵쾅거리는 심장과 그녀를 죽여야 한다는 내 목적이 부딪히는 것에 혼란을 느끼며, 부랴부랴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