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던전체험 (1)
* * *
일요일 오전, 나는 공터로 향했다.
C동 기숙사는 부지의 외각에 있는게 맞지만, 섬의 외각에 있는것은 아니였다.
평민 기숙사 뒤에 있는 산의 중턱에는 작은 샛길이 있고, 그 길을 지나면 아무도 모르는 공터가 나온다.
"창조."
물방울을 생성해내었다.
그 뒤 곧바로 전기를 생성해내 물방울에 덧씌었지만...
파지직...
어제와 같은 효과는 나지 않았다.
어제 내가 한 방법은 마법의 수식이 서로 결합되는 느낌이라면...
지금 내가 한 것은 그저 마법 위에 또다른 종류의 마법이 얹어지는 느낌이였다.
"....후우"
[영력 : 120 / 120]
원래 60이였던 영력이 확인해보니 두배나 올라갔다.
아마도...
어제 레아의 그것 때문이겠지.
원래 소설의 내용대로라면, 열등감과 다급함에 휩싸인 레아가 잘못된 선택을 하며 1부 보스로 나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쏘아낸 영력이 그녀의 몸에 흡수되면서 그녀가 재능을 개화된것이고,
하나의 작은 이야기가 완전히 없어진 거겠지.
레아가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하는 일도 없어졌을테고...
이 세상에 주인공은 없으니, 그녀가 정말로 악마와 계약을 했다면 그녀는 최악의 미래에 다가갔을 것이다.
"영향...."
양피지는 내가 한 행동으로 일어난 영향이 내 힘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히로인을 구한 행위로 인해 세상은 큰 변화를 맞이한 거겠지...
그때문에 영력의 총량이 오른것이고.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았지만, 왜 레아를 구했는데 영력이 겨우 60이나 올랐는지 궁금했다.
'두배...'
60이라고 하면 적어보이지만, 내가 가진 힘이 두배가 된다고 하면 어느정도 납득이 간다.
애초부터 지랄맞은 세계였으니, 이해하는건 멍청한거겠지.
그래도 널널해진 영력 덕분에 마법들을 계속 소환해냈지만...
어제의 그것처럼 마법 폭격같은 것을 해내는것은 불가능했다.
같은 종류의 마법을 여러개 소환하는건 그나마 낫지만,
서로 다른 마법들을 계속 소환해내면 집중력이 흐트려진다.
'각성효과인가...?'
어제 나는 불가능한 힘으로 괴인을 죽였다.
그 후에 일어난 각성효과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제 이성을 되찾은 후에 내 몸속에 모든 영력이 충전되어 있었으니까.
[인과율 : 2.57%]
어제 갑자기 치솟은 인과율.
그것은 50%까지 솟아오르자, 내가 이성을 되찾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아 뭐가 뭔지."
그 뒤로 명상을 하며 심상세계에 마법들을 구현해두고, 이내 그것들을 재빠르게 창조해내는 훈련을 했다.
[영력 : 15 / 120]
"아 씹."
그래도 조루는 조루구만...
텔레포트를 활용하며 훈련을 하면 1분만에 바닥이 난다.
[영력 : 0 / 120]
곧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했고, 산 밑으로 내려와 훈련장으로 걸어갔다.
훈련장에서 교관에게 배운 체력단련을 한 뒤, 검을 휘둘렀다.
검술 수업이나 도서관에 있는 책으로 배우는 것을 최대한 비슷하게 반복하는게 다지만...
적어도 안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다.
"아 현타."
그렇게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루카스가 괴물과 싸우는 장면이 떠올랐다.
루카스가 전기뱀장어라면, 나는 정전기를 두른 람쥐썬더에 불과하다.
그만큼 하늘과 땅같은 차이가 있다.
"....명상해야지."
내 120 영력은 충천하는데 시간이 걸렸기에 바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명상을 하면 가만히 있는것보다 영력이 더 빨리 충천됐으니까.
가부좌를 틀고 침대에 앉으니, 몸의 근육이 이완되며 근육통이 밀려들어왔다.
그래.
오늘 명상도 글러먹었구나.
나는 방 안에 사둔 파스를 뜯고 몸에 구석구석 붙인 뒤 잠에 빠져들었다.
***
"아! 베드히로 안녕~"
교실로 들어가고 있으니, 가는길에 샬롯을 만났다.
그녀의 주위에 있던 여성 친구들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야?"
"처음보는데...샬롯님에게도 남자친구가 있었나요?"
"정말?"
샬롯이 고개와 손을 저어댔다.
"아, 아니야...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인데, 어쩌다 보니 친해졌어. 내가 챙겨주고 있는 애야."
누가 누굴 챙겨줘?
"아하~1학년이구나?"
"이번에 새로 입학한애야? 완전 애기네 애기..."
"꺄아..귀여워.."
...너희랑 1년밖에 차이 안난다...
"아 뭐...전 가볼게요."
"응! 혹시 어려운거나 상담하고 싶은거 있으면 누나한테 꼭 말해야 돼?"
"아 넵."
샬롯은 자신이 2학년이고 내가 1학년인것을 괜히 강요하고는 했다.
그러면서 어른이 된 것처럼 뿌듯함을 느끼곤 했는데...
아무리 예쁘더라도 꼰대는 꼰대더라.
"헤이헤이!"
교내로 들어가 1학년 복도를 거니는데, 또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크큭...비밀임무를 완수하고 잘 귀환했는가? 오늘도 밤의 마력이 충만해보여..."
분홍머리에 안대+오른팔 붕대를 낀 루시였다.
오늘은 무슨 기분이 들었는지 평소와는 달리 분홍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있었다.
"아침부터 웬일이야?"
"베드히로랑 루카스랑 에르시아 오는거 기다리고 있었어...! 혹시 못마주칠까봐 2시간 전에 왔다구!"
"......"
괜히 무안해진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너도 뭐...잘 들어갔냐?"
"당연하지! 그리고 내가 루카스랑 에르시아한테 내 비밀에 대해 알려줬어...!"
그걸 알려줬어?
루시는 비밀이라더니 조금이라도 친해진 애들한테 막 말하고 다니는 것 같았다.
"너, 너랑 그 두명한테밖에 말 안했어..."
내 표정의 뜻을 알아본 눈치빠른 꼬맹이가 말을 더듬었다.
"흑룡 말하는거냐?"
"크큭....당연!"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구나.
루카스와 에르시아한테 말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학교에 갔다가 돌아온 자식이 사고친걸 듣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이 정신머리 사나운 분홍머리가 걱정이 됐다.
"그래...잘했어..."
"크큭...이렇게 친구를 많이 만들어서 흑룡교를 만들거야...! 참고로 베드히로는 2인자야! 1인자는 나라구우! 권력을 넘보면, 큰일나게 될거야."
점점 대화를 따라가는게 힘들어진 나는 분홍머리를 대충 밀어냈다.
"어어...수고하고."
"아, 잠깐마안..."
이내 루시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내 눈치를 보았다.
손을 꼼지락 거리면서 나를 올려다본 루시가 이내 나에게 말했다.
"그..그으...저번에 말한거 안잊어버렸지?"
그게 뭔데 씹덕아.
라고 말하면 내 눈치를 보며 잔뜩 긴장한 영애님의 멘탈이 부셔질게 분명했기에,
변명을 하듯 대답했다.
"말한게 워낙 많아서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 그거 그거!"
루시가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바, 밥 같이 먹기로 했잖아...!"
아 그거.
"거, 거짓말이였으면 흑룡의 저어주우가...!"
나를 무섭게 할려는듯 음산해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크앙 하는 자세로 내밀어댔다.
가느다란 10개의 손가락이 내 얼굴을 마구 쓰다듬는것을 느끼며 루시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아, 알겠어. 너가 내 반으로 와라. A반이야."
"그, 그건 난이도가 너무 높은걸?"
아 얘 찐따였지?
"몇반이야? 내가 갈게."
"D반!"
"오냐."
그렇게 루시와 헤어지고 반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 베드"
"아, 음 그래."
내 대각선 앞자리에 있는 레아가 방긋 웃으며 대답하자, 근처에 있던 추종자들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성격이 밝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레아여서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
그런데 레아가 고개를 앞으로 돌리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에 따라 레아의 근처에 있는 두자릿수에 가까운 이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존나 부담스럽다.
버티다 못한 나는 마지못해 말을 꺼냈다.
"할 말 있어?"
"안녕 베드~"
입꼬리를 늘리고 싱긋 웃으며 하는 인사에 근처에 있던 남자 몇몇의 입꼬리가 찔끔찔끔 올라가는게 보인다.
"어 그래 안녕."
"후후"
만족했다는 듯 앞을 돌아보았다.
근처에 있던 이들이 의미모를 시선을 내게 보내왔지만....뭐. 어쩌라고.
나는 고개를 숙여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었다.
[마력의 운용]
단순하지만 명확한 제목.
명상을 하고 집중하면 영력이 회복되는 속도가 빨라지기에 혹시 마나 운용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만족스러운 답은 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안녕~?"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초록머리의 알리시아가 손을 번쩍 들며 반으로 들어왔다.
"아침 종례는 없어. 다들 훈련장으로!"
우리 교수님도 어딘가 머리가 이상해보인다.
어리둥절한 학생들을 보며 양 손의 검지손가락을 찌르듯이 움직이며 생도들을 재촉했다.
"어서~ 어서 움직이자~"
쉣...
아침부터 굴러야 한다니.
그렇게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훈련장으로 가니 길버트 교관과 알리시아가 대기하고 있었다.
"흐흐흐..."
알리시아가 뭔가 음흉한 표정을 짓는것을 본 생도들은 저마다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어머...우리 애기들 어떠케...히히..."
미친년이구만.
아카데미에 악질 세력이 있다면 분명 알리시아도 포함될것이다.
"자 모두 모였나."
길버트의 묵직하지만 좌중을 울리는 소리.
이 넓은 훈련장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반 또한 앉아있었다.
그들도 어리둥절한 표정...
"오늘 1교시부터 3교시까지는 조별훈련으로 대체한다."
아 미친.
"각자 자른 조들이 하는것을 보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평가하며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 반영하도록."
그 뒤로 길버트의 설명이 있었다.
4~5명이서 한 조로 움직이며, 남은 사람들은 그 조들이 활동하는 장면을 이곳에서 지켜본다.
인공 던전에 들어가 함정을 피하고 몬스터들을 해치우며 정해진 미션을 클리어.
게임같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겠지.
'흑마법은 못쓰겠네.'
그래도 영력 120이면 할만하겠지.
"그럼 다들 자유롭게 조를 편성하도록."
아앗.
그 말을 끝으로 생도들이 저마다 시선을 교환했다.
하지만 나에게 오는 시선은 단 한개도 없어보였다.
나는 그냥 아싸찐따니까...!
아웃사이더인 엘린은 멍때리고 있지만, 이미 수십명의 간절한 시선을 받고있었다.
"참고로 엘린, 루카스, 에르시아는 한 조로 편성되면 안된다."
'씹...어떻게하지?'
1,2,3위는 당연하고 반의 분위기 메이커인 레아또한 인파에 파묻혀져 있었다.
나는 쓸쓸이 바닥에 앉아 무릎을 껴안고 있었고...
"......"
근처에서 아싸를 보는 환멸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싸늘하다.
비수가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아..음...안녕?"
그렇게 앉아있으니, 한 여자아이가 나에게 쭈볏쭈볏 다가왔다.
"너 그거지? 텔레포트."
텔레포트라니...
"어..."
처음에는 신기해했지만, 학생들은 이미 내 재능이 텔레포트라고 기정사실화 했는지 그 다음부터는 별다른 접근이 없었다.
이제 내 이름은 텔레포트로 정해졌구나.
"혹시 같은 조가 없으면 우리쪽으로 오지 않을래?"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3명의 생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표정이 밝아지는것을 애써 관리하며 대답했다.
"아. 그ㄹ..."
"셀리아!"
나에게 말을 걸어준 생도 옆으로 한 여자아이가 깡총 하고 뛰어왔다.
"나도 끼워주라...정원초과라고 쫓겨나버렸잖어..."
아, 아앗...!
"아...그, 그래?"
셀리아라는 이름의 여자가 내 눈치를 보았다.
야 그러지 마.
"크, 크흠...이, 이름이 뭐였지?"
"........"
"아앗...! 베드히로였지...! 그...저기 아무래도"
"아니야...괜찮아."
"아, 아하하 그래~"
순간 눈 앞이 핑 돌았지만 버텨냈다.
만약 내 멘탈이 루시정도였으면, 지금 당장 고개를 땅에 쳐박고 눈물을 펑펑 흘렸을 것이리라.
크흡...흐흡...!
그런 내 귀로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시선을 돌리니, 다른 반으로 보이는 무리들 사이에 익숙한 분홍머리가 쪼그려앉아 슬픈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