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던전체험 (2)
* * *
"인원이 부족하면 다른 반과 협력해도 된다. A반과 D반은 경쟁이면서 협력 관계라는것을 인지하도록."
아.
저기가 D반이였구나.
나는 용기있게 걸어가 분홍머리에게 말을 걸었다.
"얌마...같은 조 할래?"
흠칫!
내 말에 몸을 잘게 떨은 루시가 이내 고개를 들었다.
"베, 베드히로오...!"
구원자를 본 것 같은 표정에 괜히 마음이 또 슬퍼진다.
"아니면 다른 조 있냐? 나도 어처피 혼자인데"
"아니야...! 역시 나의 동료!"
아까까지 질질 짜기 직전이였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빠르게 회복한 루시가 벌떡 일어났다.
"그럼 두명은 누구를..."
"아 저기"
내 옆에 붙은 루시를 두고 또 소외되는 이들이 있나 찾아보고 있으니, 우리에게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나도 같은조 할 수 있을까?"
"레아야? 너, 너가 우리따위랑 어째서...!"
루시가 자기비하적인 발언을 하며 레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등 뒤로 수십쌍의 질투와 경계어린 시선들이 우리의 몸에 꽂혀왔다.
"큭!"
"큭!"
그 시선들은 마치 창살과 같아서 나와 루시의 몸을 꿰뚫어냈다.
"아, 아하하...혹시 안되는거니?"
"아 괜찮아."
거절했다가는 '너희 따위가 감히 튕겨?' 라는 시선을 받게될게 분명했기에 나는 레아를 받아들였다.
"그럼 이제 한명 남은거네...!"
"4명이서 괜찮을까?"
레아와 루시가 내 양쪽에 서며 좌중을 두리번거렸다.
사실 레아가 이곳으로 들어온 순간 조원을 모집하는건 걱정이 없었다.
그녀가 히로인 미소를 지으며 손을 번쩍 들은 순간 지원자가 속출할테니까.
'......'
양 쪽에서 느껴지는 향긋한 향기.
레아는 말할것도 없고, 루시도 외모만 보면 예쁘고 귀여웠으니까 괜히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곳을 보니, 에르시아는 상대적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모아놓고 인자하게 웃고 있었고,
루카스는 팬 무리에게 이미 끌려다니고 있었다.
"이봐. 나도 들어가도 되나?"
"상관 없지."
그러고 있으니, 거대한 방패를 들은 남생도가 다가왔다.
정확히는 레아에게 시선이 꽂히는 것 같은게 목적이 뻔히 보였지만...
"조를 다 짯으면, 순서를 정해 입장한다."
A반과 D반 각각 한조씩 인공던전에 입장한다.
남아있는 이들은 먼저 들어간 이들을 평가하고 관전한다.
쓱 보고있었는데,
제국의 기술과 마법사들의 합작으로 만들은 인공던전은 꽤나 신기한 것이였다.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은 전부 소환수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은건 아니야 죽을 위기에 처하면 교수진들이 도와주겠지만, 매년 큰 부상자가 나오는 것을 알아둬라. 실전처럼 하도록"
길버트가 가장 앞에 있는 이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첫번째 순번 입장!"
그 말에 A반과 D반의 조들이 인공던전의 입구로 들어갔다.
평범한 문이지만, 저 문을 넘는순간 결계 속으로 들어가고 시련이 시작된다.
첫번째 조는 바닷가.
먼저 들어간 생도들은 마치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해수욕장이였으니까.
하지만,
꺄아아악!
근처에 있는 바위가 일제히 일어나며 그 아래에 있는 소라게들이 나타났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집게들을 앞세우고 다가오는 수십마리의 거대한 소라게들...
A반의 1조는 전사 둘에 마법사 하나 궁사 하나인 정석적인 조합이다.
캐스팅 시간이 있는 마법사가 마력을 끌어모으는동안 궁수가 지원사격을 하며, 넓은 시야로 주위의 상황을 확인하고 오더를 내린다.
그렇게 마법사의 캐스팅 시간이 끝나면 마법을 쏘아내는 방식.
하지만
깡!
궁수의 활은 소라게의 바위껍질에 막혀버렸고, 탱커는 무게와 숫자로 밀고들어오는 몬스터들에게 아웃당했다.
그 뒤 집중이 흐트려진 마법사의 캐스팅이 끊기며 탈락...
초반에는 그래도 잘 버텨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져 피해를 중첩당한 뒤 전원 아웃.
A반이 끝나는걸 보고, D반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들 역시 모두 탈락당해 있었다.
"쯧 역시 생도들이군."
길버트의 한숨소리.
나도 그와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당장 이곳에 있는 생도들보다는, 전에 모험가 일을 하면서 보았던 리샤나 파올로가 더 뛰어나 보였으니까.
생도는 어려서 훈련기간이 부족하고, 경험도 적으며, 외부에서 인류의 미래다 라고 띄어주니 오만해지기까지 하는 것 같다.
아마 맞서싸우지 않고 후퇴하면서 상황을 관망했다면 몰랐을텐데...
그 뒤로 생도들이 인공던전에 들어갔다.
몇몇은 1조처럼 아웃당했고, 클리어한다고 해도 조원들중 몇몇이 아웃되어 있었다.
길버트의 표정이 굳어져갔고, 그 모습을 본 훈련장의 분위기도 식어갔다.
"그 다음. 4조."
하지만, 그 분위기도 깨지고 생도들의 시선에 기대감이 서렸다.
'엘린...'
1학년 수석 1위가 나타났으니까.
4조가 나타난 곳은, 숲과 초원이 조화를 이룬 장소였다.
엘린의 무기는 꽤나 넓은 면적의 롱소드.
엘린은 빠르게 접근하여 무기를 휘두르고, 무게와 힘으로 압박하는 전투법이였다.
심지어 기술까지 뛰어나기에 상대하는게 여간 까다로웠다.
퍽!!
엘린이 고블린에게 검을 휘두르니, 고블린 하나가 그대로 절명했다.
고블린들이 활을 쏘거나 단검을 던지지만...
엘린은 미친 반사신경과 민첩성으로 모두 피하거나 막아내며 앞장섰다.
뒤에서 일행들이 싸우고 있었지만...
그냥 엘린의 독무대나 다름 없었다.
그런 엘린의 끝에 있는것은 트롤과 비슷한 크기의 고블린 워리어.
엘린이 공격을 흘려내고 파고들어 배에 칼을 날렸지만,
고블린 워리어의 질긴 가죽에 놈을 일격에 사살하지 못하였고, 엘린은 워리어의 발차기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타탓.
하지만, 금새 낙법을 취하고 일어선 뒤, 워리어가 자세를 잡기 전에 목을 베어냈다.
"4조. 잘했다."
엘린이 워리어와 일기토를 하는동안 일행들이 다른 고블린들을 견제하였기에 일어난 상황.
길버트가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완벽한건 아니다. 협력에 대해 더 신중히 생각해보도록"
그 말에 엘린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루카스는 4명의 소녀들을 끌고다니며 어색하게 웃더니, 신성력으로 회복과 방어에 집중하며 벨런스있는 자세로 헤쳐나갔다.
탱커인 루카스 혼자서 모든 앞라인을 막아냈기에, 뒤에서 여성생도들이 몬스터들을 해치워냈다.
그 뒤 에르시아는, 그냥 정령들에게 해주세요~ 라고 부탁하니 그대로 몬스터들이 쓸려나갔고.
'저게 제일 사기 아니야...?'
에르시아는 정령에게 사랑받는다.
계약을 하지 않은 정령들이 에르시아를 도와주기 위해 나설 정도.
교실에서 수업하는 도중에도, 지나가던 정령이 에르시아를 위해 교실의 공기를 정화시켜주는걸 보면 참 사기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생도들을 구경하는 중,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흠..."
"베드. 힘내자!"
"그, 그래!"
레아가 나에게 말했지만, 루시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옆에 있던 방패를 든 탱커가 레아에게 시선을 보내오니, 레아가 웃으며 힘내자고 해주었다.
"하하하. 나만 믿고 뒤에서 숨어있어."
자신의 방패를 텅텅 치며 호탕하게 웃는 녀석.
히로인 미소 한방에 호구 하나가 나타났다.
"베드히로? 어디 안좋아...?"
내가 표정을 굳히니, 루시가 내 볼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음? 아니야."
별일이야 있지.
'.....'
저 인공던전 안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저 내 감각이 아니라, 심상세계에서 느낀 감각이였기에 틀리지 않았다.
주인공이 없으니, 그 시련이 모조리 히로인에게 오는구나
"출발하도록!"
이내 길버트의 외침과 함께 우리는 인공던전으로 들어갔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니 보이는 어두운 동굴...
나는 즉시 심상세계에 방어막들을 구현해냈다.
그렇게 걸어가니, 이내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케륵...
키르르륵...
"저, 저기...우리만 난이도 높은것 같지 않아...?"
레아가 겁에 질리며 읊조렸다.
우리의 앞에는 흉포한 얼굴로 침을 질질 흘리는 놀들이 있었다.
놀들은 꽤나 만만한 몬스터라고 생각했지만...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등은 굽어져있고 몸은 근육질에 가죽은 질겨보인다.
한 손에는 작디작은 방패와 손에는 메이스나 녹슨 철검이 들려져 있었다.
'살아있네...'
그 모습에 인상을 강하게 찌푸렸다.
소환수는 마나로 만들어지거나 세뇌당했다는 듯한 마나의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것들은 말 그대로 몬스터.
소환수가 아니였다.
"전투 준비!"
레아와 루시를 힐끔힐끔 보던 녀석이 멋들어지게 목소리를 높였다.
'탱커 하나에...레아는 영력을 이용한 방어와 밀치기...그리고'
"너 특기가 뭐냐?"
나는 구겨진 휴지처럼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놀을 노려보는 루시에게 말했다.
"파이어 펀치."
"아 그래."
"히야으햐앗! 도술!"
루시가 괴상한 기합과 함께 내 앞에 루시루시루시루시가 나타났다.
갑자기 생겨난 분홍색들로 인해 시야에 혼란이 찾아왔지만, 명상으로 다져진 내 정신력은 금새 이성을 되찾았다.
"파이어 펀치!"
파이어펀치!
파이어펀치!
파이어펀치!
파이어펀치!
"아악...!"
루시가 주먹을 올리고 스킬 이름을 외치니, 다른 분신들도 똑같은 자세로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작은 주먹에 피어오르는 화염.
"얌마 동굴에서 불 피워도 되는거냐?"
"어..어어..."
내 말에 다섯 루시가 이리저리 눈동자를 흔들어댔다.
"모두 집중해! 레아야...! 베르트 오빠 뒤에 붙어있어. 내가 꼭 지켜줄게"
왜인지 우리보다 한살 많다는것을 강조한 이 미친놈이 눈을 찡긋 하며 윙크를 날렸다.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다니...
그 모습을 보고 말은 내 눈에 데미지가 들어왔지만...
키르륵...!
우리가 방심하고 있다는것을 깨달은 놀들이 일제히 돌진해왔다.
총 6마리.
"이, 이녀석들 빨라...!"
"에잇!"
놀들은 고블린 따위보다 훨씬 빨랐다.
똥개도 제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이 개의 몬스터들이 있는 동굴은 저놈들의 세상이였다.
날카로운 동굴 안의 공간, 그리고 생겨나는 어둠을 무대삼아 서로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잠시 눈을 떼면 6마리중 한두마리는 꼭 사각으로 들어가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공격 당하는 베르트를 레아가 현혼시킨 영력의 기운이 막아냈다.
반투명과 투명 사이에 있는 그것이 놀을 밀쳐냈다.
놀들이 손도끼나 조잡한 창으로 공격하지만...그것은 잠시 움푹 들어가기만 할 뿐 다시 빠져나왔다.
이 무슨 탱글탱글함...!
퍽!!
내가 만들어낸 날카롭고 단단한 고드름이 놀에게 꽂혔다.
키륵...!
".....?"
즉사는 못시켜도 가죽은 뚫어냈지만, 왜인지 녀석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기어코 우리에게 달려왔다.
'집중력이...'
심상세계에 마법 물질을 구현해내고, 그것을 창조하는 것에 별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난장판에서 그런 집중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깡!
지금 당장 내 옆으로 놀이 던진 기분나쁜 무언가가 날라왔으니까.
다행히 방어막을 생성해내 막아냈지만, 집중력이 또다시 흐트려진다.
"씹....안보여"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집중이 흐트려진다.
"어둠을 잡아먹는 업화여!"
루시의 분신채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어두운 동굴 안으로 달려갔다.
파이어 펀치!
키륵!
루시의 파이어펀치는 놀의 몸에 닿아 털에 불을 붙였다.
놀이 잽사게 바닥을 구르니, 불이 꺼졌지만...어두웠던 시야는 걷어진다.
"어둠을 밝히는거야!"
(진) 타이틀을 달은 루시가 외치니, 분신들이 파이어 펀치를 내지르며 달려갔다.
"프, 플라잉 횃불이다...!"
동굴이 밝아지는 것을 본 나는, 나에게 오는 공격이 없다는것을 확인하고 집중력을 끓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