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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막이 되었다-25화 (25/53)

〈 25화 〉 조연 모으기 (1)

* * *

"베드히로 안아파?"

"나는 괜찮지. 너는 어디 안아프냐? 길가에 널브러져 있던데."

"너, 널브러지다니...! 숙녀한테 실례야...! 그리고 그건 동굴의 어두운 기운을 느끼기 위해서­"

"엎어져있었다?"

"......"

한마디 할때마다 떽떽거리는 반응이 돌아와서 재미있었다.

그래도 이 이상 한다면 진짜 삐져버릴 것 같으니까 적당히 해야겠지.

"그래서?"

루시는 사과를 아삭아삭 씹어먹으며 말했다.

"우움...수업은 중당대써...꿀꺽­ 길버뜨 교광닝도 으음...뚫지 모타는 결계여때."

"먹든지 말하든지 둘중 하나만 해 이뇨속아."

내 말에 루시가 입을 아까의 두배...아니, 세배의 속도로 우물거렸다.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입을 오물거릴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입이 작은지 사과를 삼키지 못하고 한참을 오물거리기에 하다못한 레아가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난리가 났어. 갑자기 누군가가 동굴 안으로 침입하고 영상이 끊겼으니까...비상사태가 되서 수업중이신 다른 선생님들도 오셨는데...아무도 결계를 뚫지 못하셨나봐."

이제는 이름도 까먹은 그 괴한이라면 모를까,

바알 베드히로...그러니까 도플갱어놈이 친 결계는 교관들도 뚫지 못했다.

당장 큰 부상을 당한 레아가 완치된것도, 제국의 고위 사제가 상황을 듣고 이곳으로 달려왔기 때문이겠지.

나는 한숨을 쉬며 물어보았다.

"나 며칠동안 잔거야?"

"음...나흘?"

...많이도 지났네.

­뇸뇸뇸뇸...

할말이 없어서 멍하니 루시가 사과를 먹는것을 지켜보았다.

먹을때마다 흔들리는 분홍머리는 꽤나 재밌는 것이여서, 정신없이 지켜보게 된다.

"앙. 가려워잉."

이내 루시가 오른팔 소매를 걷어올리고 팔을 긁적였다.

그러자 붕대가 풀린 뽀얗고 얇은 팔이 드러나는데...

역시 흑룡의 봉인은 없는거구나...

자세히보니 안대도 풀어놔서 분홍 머리와 똑같은 분홍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다가 포크로 사과 한조각을 찔러 녀석의 입술에 들이문댔다.

"야 한개 더 먹어라."

"웅? 고마어워!"

잘 묵네.

"아...그...베드~? 베에드?"

그렇게 루시를 바라보고 있으니 레아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 나도 사과...사과 좋아해­"

"어? 나도 좋아해."

여자들과 이야기 할때는 공감이 필수라는 말을 인터넷에서 본적이 있다.

역시 난 눈치가 빨라.

레아의 말에 친절히 대답해주고 근처에 있던 빨간 사과껍질을 들었다.

사과를 깍은 사람의 솜씨가 뛰어난지 한번도 끊기지 않고 길게 나열된 사과껍질...

"자. 껍질도 묵자­"

­뇸뇸뇸뇸뇸.

"허허헣허"

껍질의 끝부분을 들이대니, 루시의 작디 작은 입술 사이로 얇은 사과껍질이 쏘옥 들어갔다.

루시가 햄스터처럼 입을 오물거릴때마다 껍질이 끌려가는것이 퍽 재밌다.

"베...베드으~?"

뭔가 참는듯한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레아가 어딘가 분한듯한 억지미소를 짓고 있었다.

"파, 팔이 다쳐서 사과를 못먹겠어...히잉..."

그럴리가.

레아의 팔은 눈으로 봐도 다 나았다.

당장 고위사제가 신성력을 쏟아부웠으니까.

하지만...

그정도 고문이면 레아에게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힘이 안들어갈수도 있겠지...

"자."

"아앙­"

사과를 포크로 집어 레아의 입술 앞에 밀어주니,

레아의 부드럽고 분홍빛이 맴도는 촉촉한 입술이 벌어지며 사과를 물었다.

그녀가 입술을 오물거릴때마다 포크를 들고있는 내 손에 그녀의 여리고 기분좋은 힘이 느껴진다.

"노↗는 왜→ 안↗묵↘냐~?"

"푸하하하"

입에 사과를 가득 물고있어, 사투리처럼 된 루시의 말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루시는 창피하지도 않은지 가녀린 손으로 사과를 집어 내 입에 들이밀었다.

"아~앙!"

꿀꺽 사과를 삼킨 루시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내가 사과를 무는것을 지켜보았다.

­아삭.

"아하하! 이거 재밌네~ 베드히로 마시쪄?"

루시랑 있으면 혼자 걱정하고 고민하는게 멍청한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느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반은 내꺼!"

그러면서 내가 먹고 남긴 사과조각 반쪽을 자신의 입으로 집어넣었다.

얼굴이 작아서 그런지 한쪽 볼이 사과모양에 따라 튀어나온다.

"아...아앗..."

레아의 어딘가 초조해보이는 목소리와 함께 양호실의 문이 열렸다.

"어머. 모두 일어났구나? 여전히 사이가 좋네~"

방긋방긋 웃으며 다가오는 양호선생님.

작가놈 이름이 이 소설에 그대로 반영되었는지, 그 풍만함때문에 눈을 둘 곳이 없다.

걸어올때마다 흔들리는 그 아름다움이란...

가뜩이나 여자 경험이 적은 나였기에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다.

"어머어머..."

자연스럽게 하트 모양으로 뚫린 그곳으로 시선이 가니, 양호선생님이 매혹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끼셨다.

으잉레아마망쮸쮸의 정신병에 가까운 관념이 반영된건가?

엉덩이를 뒤로 빼고 상체를 숙이며 내 이마에 손을 올린다.

싱긋 웃으면서 내 표정을 빤히 관찰하는데­

"응. 괜찮은 것 같네."

그러면서 유연하면서도 천천히 상체를 세우는데, 그 움직임에서 눈을 뗄수가 없다.

"어디보자­"

뒤로 걸어가 짧은 치마에 감싸진 엉덩이를 쭉 내민 채 무언가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아, 아앗...잠깐만 베드~?"

레아가 퍽 다급하게 내 앞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그러자, 옷이 터져버릴것 같은 가슴이 내 앞으로 나타나며 양호선생님의 건강한 신체를 가려버렸다.

"아 여깄네."

이내 양호선생님이 향초같은것을 가져다주며 내 옆에 피운다.

"정신이 안정되는데 도움이 될거야. 앞으로 할 얘기는...우리 친구한테 안좋을테니까­"

그러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혹시...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떠오르는게 있니?"

그 말에 심장이 철렁거렸다.

무슨일이 있냐니...

그때의 나는 순간적으로 엘린을 압도할 정도로 강해졌다.

교관들도 이해할 수 없는 권능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했으니까.

심지어 내가 쏘아낸 리볼버는...

"난장판이 된 동굴에서 베드히로가 기절해 있었어."

얼굴이 굳어지는 나를 향해 레아가 말을 꺼냈다.

"많이 다치지는 않은 것 같던데...하두 안일어나서."

레아의 말을 양호선생님이 이었다.

"혹시 저주같은거라도 받았을까봐 여러가지 검진을 해봤는데...멀쩡하더라. 그러니 걱정은 안해도 돼..."

그들을 보니,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알고있었다면 내 앞에 있는건 친절한 양호선생님이 아닌 길버트같은 무서운 교관이겠지.

양옆에서 양호선생님과 레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위로해주니 뭔가 어색하다.

나는 양호선생님에게 적당히 말을 지어내 주었다.

하지만, 중간에 레아를 만났던 탓에 꽤나 지어내기 힘들었다.

그래도 레아가 나를 만난 뒤 긴장이 풀린지 기절했기 때문에 겨우겨우 지어낼 수 있었다.

"레아를 데리고 텔레포트를 쓴 다음 다시 돌아갔어요..."

"왜 그랬니...? 혹시 뭔가 술수가..."

"아뇨. 어처피 도망 못갈 것 같아서­"

내 말에 양호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수업을 중단하신 모든 교관님들이 달려들어도 해제하지 못했던 결계였으니까..."

양호선생님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면 레아를 안전한 곳에 두고 그곳으로 돌아갔다는 거지? 무언가...세뇌같은게 아니라­"

"아 네."

내 대답에 옆에서 레아가 감동했다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한말이 틀린말은 아니지만....뭔가 죄책감이 드네.

좋은 감정이 꿀처럼 뚝뚝 떨어지는 레아의 시선을 피하며 양호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 뒤 공격하는걸 텔레포트를 쓰면서 겨우겨우 피하고 다녔어요...그녀석은 어째서인지 마무리를 안하고 돌아갔고."

"응...그래...잘했어...착하다 착해...무서웠겠네...오구오구­"

애를 다루는것처럼 내 얼굴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양호선생님의 농밀한 향기가 훅 밀려들어오고 양 볼에 부드럽고 거대한것이 맞닿았다.

"그럼...푹 쉬렴? 내일 자세히 이야기하자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돼~"

그 뒤 레아와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양호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가셨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에 정신이 멍해졌다.

마음이 안정되는게 그녀가 피워둔 향초때문인지, 양호선생님의 몸에서 나던 애틋한 향기때문인지 모르겠다.

"베드...얼굴이 빨갛네?"

그리 말한 레아가 내 볼에 손을 올렸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볼을 꾸욱 꾸욱 눌르는데...어딘가 강한 힘이 실려있다.

"베드히로! 나가도 된다고 하신거지? 바로 밖으로 나가보자­ 밥도 먹어야 하잖아."

"사과 많이 먹지 않았어?"

"밥은 하루 세번 꼭 먹어야해...!"

루시의 말을 들으니 배가 고파지는 기분이였다.

아카데미 부지 내에는 식당같은게 많았으니까 대충 밖에 나가서 사먹으면 되겠지.

"밥먹으려 가자."

"뭐먹으려 갈까~?"

내 말에 루시가 신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발랄하게 일어났다.

나도 좀 기대가 된다.

이곳의 음식은 엄청나게 맛있으니까.

"베드. 밥은 꼭 죽으로 먹어야해?"

그렇게 신나는 우리의 옆으로 레아의 목소리가 들렀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레아가 생글생글 웃고있지만...어딘가 서늘하다.

"환자잖아? 착하지? 내 말 듣자?"

"아...응!"

입을 꾹 다물고 버틸려고 했지만, 기세에서 밀린 레아가 고개를 끄덕여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죽집이 있나?"

"응. 내가 알고있어."

내 말에 레아가 손뼉을 치며 방긋 웃었다.

"아이고..."

"베드...?! 괜찮아? 그냥 여기 있을래...? 밥은 가져다줄게­"

"에흉...친히 내 오른팔에 기대는걸 허락해 주겠어."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이니 레아와 루시가 내 등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양호실을 빠져나가 복도를 거닐었다.

수업은 모두 끝났고, 창 밖에서는 석양이 뜨고 있었다.

정말 오랫동안 잤구나...

"내, 내가 복도를 3명이서 걷고있어...! 이제 누가 와도 어깨빵을 칠 수 있어...!"

그렇게 복도를 걷고있으니, 루시가 외쳤다.

밝아진 표정이 점점 흉신악살처럼 변해가며 이를 빠득빠득 가는게...뭔가 안좋은 추억이 있는 것 같았다.

저 작은 몸에 얼마나 큰 분노가 잠들어있었다니...

루시의 몸에 흑룡이 봉인되어 있다는건 거짓말이 아닐수도 있겠지.

루시같은 여자아이들의 분노는 쉽사리 감당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아! 베드. 깨어났구나?"

그렇게 길을 걷고있으니, 루카스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

무언가가 내 등을 붙잡는 느낌이 들어서 뒤돌아보니, 루시가 내 뒤에 숨어서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삐죽이고 있다.

헛소리 하다가 루카스랑 에르시아한테 안쓰러운 눈빛을 받은게 트라우마가 됐나...?

"안그래도 갈려고 했는데, 안가도 되겠다. 혹시 지금 어디 가는거야?"

루카스가 선하게 웃으며 말하니, 레아가 나 대신 대답해주었다.

"우리 밥먹으려구."

"그럼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 에르시아도 밥 안먹었다고 하더라구."

조연인 루카스와 에르시아가 한자리에 오다니...

이런건 꼭 가봐야겠지.

"그럼 같이 갈­"

"아 괜찮아. 우리는 죽집 가는거거든."

내 말을 끊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레아가 예의 생글생글 웃는듯한 표정으로 루카스에게 말했다.

친절하기보다는 상대를 압박하는 듯한 시선...

"아. 음. 그래 알겠어."

아무리 조연이라고 해도 히로인님의 압박이 가득 담긴 시선은 이기지 못했는지 그리 말하면서 돌아갔다.

"......"

"베드~ 빨리 가자."

"배고파."

허망하게 어딘가 쓸쓸해보이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레아와 루시가 나를 이끌었다.

"아앗...!"

"왜그래?"

루시가 나를 불안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 안대 안가져왔어...밤의 기운을 받으면 봉인이..."

나는 '나 버리고 갈거야...?' 라는 듯한 울상어린 시선을 받다가 루시에게 손을 건냈다.

"이, 이건?"

"안대야. 그럴줄 알고 내가 가져왔지."

내 말에 얼굴이 화악­ 밝아진 루시가 안대를 들었다.

"와아아햐­"

"......."

얘가 왜 친구가 없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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