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조연 모으기 (3)
* * *
레아 루카스 에르시아 엘린 샬롯
이 5명중 레아는 일단 섭외했다.
왜인지 루시도 자연스럽게 끼어들었고...
"모든 학생들은 하나씩 동아리를 필수적으로 해야해. 그리고 지금은 마음대로 동아리를 입퇴부 할 수 있고."
참고로 동아리는 여러개를 가입할 수 있다.
반으로 돌아가니, 긴 식사시간인지라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우리가 원하던 사람이 딱 한명이 멍하니 앉아있을뿐.
엘린.
수석 1위의 고고한 늑대같은 그녀.
그녀가 멍하니 턱을 괴고 앉아있었다.
끄덕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앞자리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동아리의 부장이 아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제안을 하면 신뢰가 떨어질테니까.
"저기...엘린?"
끼이익...
내가 말을 거니 엘린이 무표정으로 고개를 끼이익 움직였다.
마치 기계가 움직이는것같은 뻣뻣하면서도 유연한 동작.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없는 눈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호, 혹시 동아리는 들었어?"
내 물음에도 나를 빤히 바라보던 엘린이, 이내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검술."
검술동아리구나.
수석 1위다운 탁월한 선택이지만, 그러면 내가 난처해진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혹시 동아리 만들 생각인데 같이 하지 않을래?"
".....?"
나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천문부라고 이번에 새로 세울 생각이야. 여기 둘이랑."
최대한 호의적으로 말하니, 옆에 있던 레아와 루시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부장?"
"응."
곰곰히 생각하던 엘린이 나에게 물었다.
"규칙은?"
"어? 아직 안세웠는데."
"...소지품 검사 안해?"
"당연히 안하지."
엘린은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며 말했다.
"활동은 자유로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쩔지 그냥."
"할래."
어?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엘린이 말했다.
무덤덤한 표정답게 단호한 목소리로.
"할래. 천문부."
"...검술부는?"
"탈퇴."
"아. 음 그래."
엘린은 나에게 뺏어가듯 받은 입부신청서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다.
성격과는 달리 글씨체는 동글동글하고 귀여웠다.
조원이 된 기념으로 무슨 말이라도 할려고 했지만, 엘린은 또다시 멍때리며 턱을 괼 뿐이였다.
'된 것 같지?'
내 시선에 레아와 루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천문부의 동아리 인원수는 4명.
'루카스랑 에르시아는 그렇다 쳐도...'
설마 샬롯이 조연이였다니.
볼때마다 신기하다.
"2학년 샬롯 알아?"
"샬롯 선배님? 당연하지! 대단하신 분이야...! 2학년중에서는 황녀님급 인지도라구...!"
"뭠마?"
나는 전에 보았던 샬롯을 떠올렸다.
『네, 네네넷...넷! 샤, 샤샤샬...샬..로옷...로오옷!』
『"껙!"』
"......"
황녀는 관심도 없고 애초에 다른반이라 이름조차 알고있지 않지만...
샬롯이 설마 그런 인지도였다니...
나는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뭐하는 사람인데...?"
내 물음에 루시가 동경한다는 듯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성전에서 대표로 보내온 학생분이야...! 나중에 성녀가 될 자질이 있다고 하셔!"
성녀라니...
확실히 그렇다면 조연의 위치에 있는게 이해가 되었다.
"근데 그런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만나?"
"몰라!"
루시는 제쳐두고 레아에게 시선을 돌리니, 그녀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나, 나는 조금..."
친화력 만렙 레아도 성녀님은 부담스럽구나...
아까 엘린에게도 제대로 말을 못하더니.
"베, 베드으...그런 눈으로 보지마...! 루카스랑 에르시아에게는 확실히 도와줄테니까."
"후우...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우리들중 2학년과 접점이 있는 사람은 없다.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루시의 말에 의하면 미래의 성녀되실 분께서는 산책을 좋아하신다고 했으니까
혹시 모르겠지.
이러다가 밖에서 샬롯을 만나게 될수도.
"어머. 베드히로구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멀리 벤치에 앉아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샬롯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방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와 함께 근처에 있는 두자릿수에 가까운 이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는데...
"으아아..."
루시는 선배들의 시선을 버티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다 교인들인가?'
저들중 십자가 같은것을 목에 걸고 있는 이들이 일부 보였다.
그리고 대부분 '나 선해요~' 하는 인상으로 있는데...
나는 대부분이 여성인 그 집단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쭈볏쭈볏 대답했다.
"아..뭐...안녕하세요?"
"응. 안녕. 날씨 좋네."
히로인 미소에 꿀리지 않는 성녀 미소를 지은 샬롯이 단아하게 말했다.
뭐든지 들어줄 것 같은 연상다운 상냥함이였지만...솔직히 이번에는 거절당할 것 같다.
샬롯은 아카데미 내에 있는 거대한 교회에서 활동을 하니까.
"아...음..."
"아. 잠시만요 여러분"
내가 말을 더듬고 있으니, 샬롯이 눈치빠르게 양해를 구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어디 고민 있니? 상담 필요하면 와달라고 했는데 잘했네~ 보통은 쑥스러워서 안오는데."
내 등을 부드러운 손길로 토닥여주는 샬롯.
처음 만났을때의 그 괴상함은 상상할수도 없다.
"후배님들 뭐 마시고 싶은거 있어요?"
샬롯은 자연스럽게 걸어가 근처에 있는 자판기 앞으로 갔다.
중세 배경에 왜 자판기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저는 커피로..."
"아 감사합니다...! 저는 과일주스로 해주세요."
"저, 저도..."
샬롯은 포인트를 사용해 음료수를 능숙하게 뽑아냈다.
그 옆모습을 보니, 그녀의 찬란한 백금발이 오후의 햇살을 받고 반짝이는게...
루시의 분홍머리와는 달리 중독되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뭘까?"
샬롯이 방긋 웃으며 손뼉을 치고 말했다.
거절당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말을 꺼냈다.
"동아리를 만드는데 가입해주실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요..."
내 말을 예상하지 못한듯, 샬롯이 눈을 동그랗게 떳다.
"후후. 동아리를 만드는구나? 1학년인데 장하네."
그러고선 검지를 볼에 대고 생각에 잠긴 그녀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누나는 '시온 선교회'라는 동아리에 있는데..."
샬롯은 우리가 실망할까 걱정했는지 금새 다시 우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베드히로가 만드는 동아리는 뭘까?"
"천문부예요! 하늘을 관찰하고 신님들에 대해 배우는거에요."
여태껏 조용히 있던 레아가 샬롯에게 말했다.
샬롯은 와아 하면서 마치 어린아이에게 대하듯 말했다.
"천문부...낭만있구나? 그러면 대부분의 활동을 밤에 할텐데 힘들지는 않겠니?"
"아 그건 괜찮아요. 어처피 알고있었고."
샬롯은 천문부 천문부...하며 읊조리다가 말했다.
"혹시 지금 정원이 몇명이니?"
"저희 셋이랑 다른 한명까지 포함해서 4명이요."
내 말에 샬롯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동아리가 만들어질려면 최소 5명은 필요한데..."
이내 이해했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우리 베드가 그래서 누나한테 왔구나...? 한명을 구하는게 힘들어서."
"....?"
내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샬롯이 슬프다는 듯 말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선배한테 왔을까...1학년들은 선배들을 무서워 하던데..."
'몬가...몬가가 일어나고 있어...!'
루시가 눈동자로 말하는걸 보다가 잽싸게 말했다.
"그렇죠."
샬롯이 이내 다짐했다는 듯 힘차게 말했다.
"그럼. 이 선배님이 한 자리 받아줄게. 그러면 5명이 되니까 동아리를 만들 수 있을 거야?"
"네...? 하지만 선배님은 선교회가..."
레아의 말에 샬롯이 베시시 웃었다.
"하하...이런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내가 특별취급이라서..."
"아아..."
깨달았다는 루시의 반응이였지만, 나는 뭔소린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런 반응이니 나를 바라보던 레아가 설명해주었다.
"성녀님이 되실 그릇이시니까...아카데미에서도 많이 편의를 봐주시는 거야."
아.
그렇구만.
"누나도 밤하늘 좋아하는데...가끔 힘들때마다 가도 될까? 그러면 땡땡이 피우는것도 아니니까~"
샬롯이 옆에서 주스를 홀짝이는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말했다.
"그럼 종이좀 줘볼래?"
"아 넵."
이게 된다고?
그리 생각하고 있으니 샬롯이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냈다.
이로써 동아리를 신설하기 위한 최소정원이 맞춰졌다.
"그럼. 고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NPC처럼 나를 볼때마다 하는 말을 하던 샬롯이 이내 레아와 루시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 후배님들은 이름이..."
"아. 레아예요."
"루, 루시!"
샬롯은 양손으로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후후..귀엽네 정말...레아랑 루시 후배님들도 걱정 있으면 언제라도 오셔야 해요?"
성녀 미소에 반한 레아와 루시의 눈동자가 몽롱해진다.
그 눈빛을 받은 샬롯이 또다시 후후 웃으며 말한다.
"벌써 후배님 두분이랑 친해졌네? 우리 동아리에 있는 1학년분들은 저를 무서워 하셔가지구..."
이내 슬프다는 듯 말한 샬롯이 조신하게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 조장님 휴대폰좀 주실래요~?"
참고로 이곳에는 휴대폰이 있다.
지구에 있는 멋들어진 기능들이 있다기보다는...그저 신문이나 메신저, 통화같은것들만 가능한 물품이지만.
"아 넵."
샬롯이 내 휴대폰에 자신의 번호를 찍어주며 화사하게 웃었다.
"후배님이랑 전화번호 교환했네~? 우리 완전 단짝이다. 그쵸?"
그 미소에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샬롯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하더니 이내 등을 돌려 떠나갔다.
"...예쁘다..."
"...응"
그 모습을 레아와 루시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베, 베드히로...! 나도 흑마법사 말고 저런 사제나 할까?"
샬롯에게 반한 것 같은 루시가 발작을 일으키듯 말했다.
"응? 흑마법사...?"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레아.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시가 재잘거렸다.
"흑마법사도 멋지지만...저런 수녀님도 완전 취향이야! 반해버린거 있지?"
중2병인 루시가 흑마법사가 되려는 이유는 멋있어서였으니까...
확실히 쉽게 변할수도 있겠지.
"그럼 흑룡은?"
"흑룡...?"
내 말에 레아가 또다시 읊조렸지만, 루시는 못들었는지 쭈볏쭈볏 대답했다.
"흐, 흑룡을 다루는 사제인거야...빛과 어둠의 공존...! 이, 이거야!"
이내 눈을 화등잔만하게 뜬 루시가 거의 발작을 했다.
"빛과 어둠을 다루는 마법사라니...! 완전 멋지잖아...! 오른팔은 어둠, 왼팔은 빛을 내뿜는거야!"
루시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모, 모두 나를 우러러볼거야...! 세계 유일 마법사 루시! 배, 백명이 와서 친구해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빵 백개나 살 돈은 없는뎁!"
흑마법사라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던 레아가, 이내 안쓰러운 눈빛으로 루시를 바라본다.
"빛인 천국과 어둠인 지옥을 잇는 연결고리 루시...! 그녀가 없으면! 세상이 위험해요!"
루시의 저 깊은 눈동자에서는 이미 하나의 영화가 연출되고 있는 것 같았다.
기나긴 아웃사이더 생활이 애를 망쳐놨구나...
레아가 상상의 나라로 떠나버린 루시를 끌어안아 들었고, 우리는 그대로 어딘가에 있을 루카스와 에르시아를 찾기 위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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