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조연 모으기 (4)
* * *
결과적으로 루카스와 에르시아는 섭외에 실패했다.
루카스는...
하하. 베드가 먼저 말을 걸다니 의외네. 근데 미안하지만, 나는 신성력을 다루는 수업을 들을려고 아, 그거 들었어? 2학년들중에 미래의 성녀님이 있다는 말을...
성기사가 목적이라는 루카스는 그리 말하며 거절했다.
에르시아는...
어머. 베드히로님은 제가 입부해주기를 바라는 건가요?
눈웃음을 치며 그런 말을 시작으로 말을 끌어댔다.
손가락으로 어깨를 쓸거나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는 탓에 대답을 듣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한참을 에르시아에게 끌려다니고 있으니...
저는 정령술을 배울거예요. 시온이 있는 섬의 구석에는 아름답고 넓은 숲과 호수가 있는걸 아시나요? 그곳에 있는 정령들을 만나는 거랍니다.
당연하게도 거절당했다.
애초에 기대도 안했지만, 막상 거절당하니 귀찮은 마음이 든다.
'자율로 해놔야겠네...'
동아리는 두개로 나뉜다.
수업시간 대신 하는 동아리. 이런 동아리는 모든 조원들이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출석에 반영되니까.
다른 하나는 자율동아리.
이것은 원하는때에 원하는대로 활동해도 된다.
샬롯은 성녀 버프로 괜찮았지만...
루카스와 에르시아는 안되니까.
"일단 냅두자. 자율동아리는 언제라도 입부 가능하니까."
"아으...걱정이네."
"내, 내가 분신이라도 붙여놓을까?"
테러 사실에 대해 말한 그녀들은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벌써 그리 걱정할 거 없어."
아무리 주인공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그들이 죽지는 않을 것이다.
무려 조연이니까.
당장 저번에 결계가 쳐진 산에서 괴물과 싸워 살아남기도 했고.
엘린이라는 넘사벽 약간 아래에 있는 루카스와 에르시아가 이상한것이고.
나머지는 아무리 시온의 생도라고 해도 겨우 학생이니까.
경험이 없어도 재능이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입학한 이들도 많으며, 그들은 평범한 또래 아이들과 다를 것 없다.
그런 이들도 교관들의 보호로 살아남을텐데, 설마 조연이 죽을까.
"그럼 일단 내자."
"아 베드. 나 따라와."
레아가 앞장서서 걸어가는것을 따라가니, 루시가 내 옆에 달라붙었다.
"아...아앗..."
그 모습을 보던 레아가 뒷걸음을 치며 내 옆에 붙었다.
"저, 저기서 오른쪽이야"
"그냥 앞장서주면 안대?"
"하하. 루시야?"
".....!"
레아의 시선에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루시가 뻗뻗하게 몸을 굳혔다.
그렇게 교무실로 간 우리는 담임인 알리시아에게 신청서를 넘겨주었다.
"아이구 우리 애들 왔어?"
저놈의 아이 취급...
나를 포함한 몇몇 귀족이나 타국의 왕족들이 저런 말을 들을때마다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알리시아는 개의치 않고 우리를 애 취급하였다.
"저희는 애가 아니예요."
신청서를 내주며 말하니, 알리시아가 헤픈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히히. 내 눈에는 다 어린애인걸? 그도 그럴게..."
알리시아는 선생이라는 거대한 벽으로 인해 잔뜩 긴장한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리고 귀엽잖아?"
"헤, 헤으응..."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저희가 어린게 아니라 선생님이 나이가 많은...우웁."
"아...! 베, 베드으..."
"......"
레아가 내 입을 손으로 막으며 화악 하고 향기가 몰려왔지만, 그걸 느낄 수조차 없었다.
알리시아의 눈에 살기가 돌고 있으니까.
까드득...
아드득 빠드득 까드득 아드득 빠드득 까드득...
'미, 미친...'
'모, 몬가 일어나고 있어!'
'베드으...그건 금칙어인데...!'
그리 우리 셋이 시선을 교환하고 있으니, 이내 알리시아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러면서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미소를 짓는다.
"써언...생..님은...말이지...? 아지근...젊단...다?"
"아 넵."
알리시아의 나이는 아킬레스건. 메모.
이내 알리시아가 내가 건내준 신청서를 보며 말했다.
"정원은 잘 맞췄네? 음...천문부라~ 별에 대해 알아보는거니?"
"정확히는 별이 상징하는 분들도 알아보는거죠."
"아아. 그렇구나? 장하네!"
하늘의 별, 태양, 달 뿐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대지, 바다, 하늘, 곡식, 바람 등등
우리의 삶에 빠질 수 없는 대부분의 것들에는 신의 기운이 깃들어진다고 믿는다.
그중에는 별과 태양 달 등등을 의미하는 네임드도 있지만, 무명인 신도 많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지옥을 제외한 모든 선신은 별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별 그 자체거나, 혹은 별 내에 살고있거나.
"으응...좋은 생각이야. 마왕이 나오면 신의 화신체들도 많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니까. 그때문에 요즘 종교계에서는 천문학이 중요해지는거 알고있지?"
알고있다.
천문부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그것때문이니까.
"그러면?"
내 말에 알리시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짝짝! 합격입니다아~ 담당은 내가 해줄게. 할 일도 없고 우리 애기들 응원해주고 싶으니까"
그 말에 레아와 루시가 나를 보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어이구...샬롯도 있네? 우리 베드는 마당발이구나~?"
"예?"
"D반인 루시와 레아랑도 친하고 우리 미래의 성녀님도 영입했을 정도니까."
그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베드가 혹시 겉돌지는 않고있나 걱정했는데...다행이야 정말"
...괜히 나이 가지고 놀렸나?
나는 대충 감사하다고 대답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뒤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을 들었다.
지루하고 관심도 없는 역사수업이 끝나니 오늘의 마지막 수업인 대련수업...
타 반과 하는 경쟁수업이였기에 모두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마치 구기대회에서 다른 반과 축구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나조차도 약간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가장 늦게 나가려고 하니
"이봐. 평민."
'영력이 200이니까...전보다 훨씬 무난하게 싸울 수 있겠어.'
"어이! 무시하냐?!"
툭.
나는 내 어깨를 누군가가 치는 감각에 고개를 돌렸다.
내 앞에 있는 이들중 험상궂은 표정을 하는 이들, 그리고 그 앞에 있는건...
"베로토냐?"
"베르트다 이 천한 것아!"
저번에 던전 탐사에서 같은 조를 했던 탱커놈이다.
분명 방패와 단창을 썻었지...
갑자기 와서 천한 것이라고 하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헬코리아에서 온갖 욕설과 패드립에 익숙해지는 인터넷 여포인지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왜?"
"왜? 왜에에에엑~?"
이 미친놈이 미쳤나.
눈알이 튀어나올 듯 눈깔을 화등장만하게 뜨는 녀석.
나보다 덩치가 크기에 상당히 위협적이다.
"깔깔깔. 베르트. 얘 겁먹은 것 같은데?"
옆에 있던 밤하늘같은 남색의 웨이브진 긴머리를 가진 여자가 나를 보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키 크고 어딘가 비열한 생김새의 멸치, 그리고 험상궂은 웃음을 짓는 덩치 큰 돼지가 있었다.
나 선해요~ 하는 레아, 루카스, 에르시아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인상.
"무슨 말을 하고싶은거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니, 베르트가 위협적인 표정을 하며 말한다.
"너...레아한테 다가가지 말라는거다 이 천한것아"
"누가 누구보고 천한것 이라는거야?"
진심으로 의문이 들어서 물었다.
딱히 뛰어나 보이지도 않던데...
"나는 변방의 왕국 테레아의 왕자다. 너같은 평민과 비할바가 아니지."
이녀석이 저번에 레아에게 과도하게 친근하게 대하는것을 떠올렸다.
"그리 말하면 레아도 평민 아닌가?"
내 말에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레아는 다르지. 후에 메이드로 와서 나에게 봉사할 시녀니까. 소중히 대해줘야 된다."
그러더니 얼굴을 들이밀며 말한다.
"너같은 버러지녀석이 자꾸 레아한테 달라붙어댈려고 하니까 교육해줘야 하는거 아니겠나?"
"아 그래."
그래도 이해는 된다.
그만큼 히로인의 외모는 사기적이였으니까.
당장 레아가 웃을때마다 움찔거리는 남자가 대부분이였다.
자존심 강한 왕족과 귀족이라면, 평민인 레아를 독점하고 싶은게 당연하리라.
당장 근처에 있는 루카스나 에르시아같은 이들이 아니면 치근덕 거릴 놈이 한둘이 아니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짧게 대답해주니, 녀석들이 마음에 안든다는 듯 더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이새끼...밖에 나가면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베르트의 말에, 그 뒤에 있던 비열한 멸치가 말한다.
"시온이 아니였다면 눈도 못마주쳤을 분이야 이 멍청아 지금 당장 고개를 숙이면 넘어가주지."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주먹을 내 눈앞에 들이밀며 위협하는 돼지.
"레아는 베르트의 첩이 될 거다. 개짓거리 하지 말고 꺼져"
"흐흐흐...당연하지"
그 둘의 지원에 흡족해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하던 베르트를 빤히 보다가.
"아. 그러냐?"
텔레포트를 썻다.
[영력 : 185 / 200]
영력 15가 줄어들었지만 이정도는 문제 없겠지.
조연들을 상대하는것도 아니니까.
"베에드~ 누구게~?"
그렇게 영력을 보고있으니 누군가가 내 눈을 가렸다.
"레아야?"
"정답입니다~"
짝짝짝
하며 박수를 치던 레아가 나에게 말했다.
"오늘도 D 반이랑 수업이래. 빨리 와. 루시 외로워하고 있어"
나는 내 소매를 끄는 레아를 따라 걸어갔다.
그렇게 내 양옆에 앉은 루시와 레아에게 끌려가듯 떠들고 있으니
쒸익...쒸익...
마치 그런 화난듯한 숨소리와 함께 아까 나에게 시비를 걸던 4명이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저, 저녀석들이 나를 째려보고 있어...!"
그 모습에 괜히 근처에 있던 루시가 공포에 질렸다.
"......."
손톱 세워서 잡지마.
그렇게 있으니 길버트가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자. 다들 정렬하도록."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 서니, 뒤에서 나에게 시비를 걸던 4명이 나를 째려보는게 느껴졌다.
뭐 어쩌라고.
나는 히로인인 레아와 친했기에 괜히 이긴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어깨가 높아지는것을 느끼고 있으니 길버트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A반과 D반의 합동수업이다. 수업이라고 해봐야 대련이지."
길버트는 언제나처럼 험상궂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직까지 몸이 안풀린 버러지놈은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바로 시작하지"
그 말에 각 반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첫 대련에서 상대 반의 기를 꺽어놔야 한다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길버트가 말한다.
"첫 경기. A반 바알 베드히로."
바알 베드히로...?
텔레포트 쓰는 애네.
텔레포트는 변수가 안돼. 이미 소문이 다 났을테니까.
저번에 보니 검술은 형편없던데.
전에 엘린이랑 대련했을때 썻던 마법도 파괴력은 없었어.
사용하는 마법은 다 기초마법 같던데...
내가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했나...?
그래도 이해는 한다.
루카스와 대련할때는 텔레포트를 제외하고 마법 두세개 쓰고 끝이였으니까.
엘린때는 아예 데미지가 없는 기술이였고.
"D반."
길버트가 이내 D반의 한 곳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드리아 루시."
뭠마?
길버트의 말에 고개를 홱 돌려 D반을 쳐다보니, 익숙한 분홍머리가 경악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이는게...
루, 루시야...?
D반의 분위기가 싸해진다.
그 모습에 괜히 눈치를 많이보는 루시의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
그때문에 나는 남모를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