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구교사 (3)
* * *
분노(??)
증오(??)
살의(??)
혐오(??)
오만(??)
등등....
온갖 부정하고 악한 감정들이 끓어올랐다.
죽이고싶다.
나를 몰아넣은 천한 것을 태우고 싶다.
앞을 바라보니 나를 몰아넣은 귀신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볼 뿐이였다.
[영력 : 26 / 200]
.
.
.
[영력 : 44 / 200]
눈을 돌려 옆을 보니, 영력이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치지지직...
그 영력을 모두 사용하니 내 손에 생겨나는 단검...
오직 신만이 가능한 [창조]의 힘을 보며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덤벼 머저리년아."
끼기기긱기기긱!
괴상한 소리를 내며 온몸의 관절이 뒤틀리더니, 이내 팔다리가 채찍처럼 교실 안을 휘저어진다.
평소라면 절대 못피했겠지만, 왜인지 그것은 너무나도 쉽게 눈에 보였다.
가볍게, 최소한으로 몸을 움직여 그 공격들을 모두 피해낸 뒤 녀석을 향해 달려갔다.
녀석의 팔다리를 피해낼때마다 단검이 기어가듯 베어냈기에, 놈의 온몸에는 자상이 남아있었다.
고통에 움츠려드는 녀석의 목...
나는 그곳을 향해 역수로 꽂아넣었...
!!
'피어...'
일부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괴성.
충격음을 쏘아낸 녀석은 그대로 온몸에 피를 흘리며 긴 팔과 다리를 쭉쭉 뻗어 달아났다.
"...뭐 나중에 죽이면 되겠지."
나는 그 뒤 녀석이 빠져나간 곳을 타고 복도로 빠져나왔다.
피하다가 스쳤는지 절뚝거리는 다리...
'....'
내가 뭘 해야하지?
분명 이곳에 들어온 목적이 있었는데...기억이 안난다.
곰곰히 떠올리니, 이곳에 함께 왔던 이들이 떠올랐다.
히로인인 레아, 조연 엘린, 그리고 괴상한 분홍머리...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그것들을 찾아 복도를 걸어갔다.
*****
콩!
"끄엑"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루시는 이내 자신의 이마에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에 정신을 차렸다.
"정신...차려..."
아픔에 글썽거리는 눈을 뜨니, 앞에 보이는 검은 머리의 인물.
"에, 엘린?"
"응...나 여깄어."
1학년 최강자라 불리우는 그녀가 내 앞에 있었다.
여긴 어디고, 내가 왜 엘린한테 맞은거지...?
또 뭔가 잘못했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따라 흑마의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해 장난을 친적은 있다.
몰래 기도를 한다던가, 쓰는 물건에 오른팔을 문질댄다거나...
하지만 그건 베드히로에게만 했을텐데?
"아..."
엘린이 나를 보며 읊조리니 자신도 모르게 움츠려들었다.
"바알은?"
"바, 바알? 걔는..."
베드히로...
어디갔었지?
분명 같이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복도라는 말을 떠올리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떠올랐다.
당장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의 구교사...
"흐엥...엘린"
"응...엘ㄹ...아니, 나 여깄어."
방금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른 것 같았지만...엘린이 옆에 있는것을 확인하니 힘이 빠져버렸다.
베, 베드히로보단 엘린이 더 강하니까.
그리 생각하니 죄책감이 스멀스멀 생겨났지만...그러기에는 이곳은 너무 무서웠다.
"레아랑 바알 찾으려 가자."
"으, 응."
나는 듬직한 1학년 최강자의 뒤에 꼬옥 붙어 복도를 걸어갔다.
당장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살결이 맞닿을 정도로 붙었지만, 엘린은 화를 내지 않았다.
"......"
나는 조심스럽게, 아주 살짝씩 엘린과의 스킨십을 넓혀갔다.
가슴과 배, 볼을 내밀며 그녀의 등 뒤에 딱 붙거나, 떨리는 손으로 소매를 잡거나...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엘린은 나에게 관심도 없어보였다.
화, 화를 내지 않아...!
내가 아무리 귀찮게 굴어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경멸하는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현재 내 친구는 레아와 베드히로...
루카스와 에르시아는 친구가 되어준다고 했지만...
키 크고 무서운 애들 사이에서 하하호호대는 그들에게 다가가는건 너무나도 어려웠다.
하지만, 여기에서 1학년 수석 1위에 누구나 말을 걸고 싶어하지만 차마 걸지 못하는 위대한 여자.
그런 엘린을 친구 리스트에 넣는다면...
나는 용기를 내서 외쳤다.
"에, 엘린님...!"
"....?"
"친구가 되어주세요!"
"......"
엘린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흉가나 다름없는 어두운 구교사에 그녀의 어둡고 캄캄한 눈동자는 너무나도 어울렸다.
당장 '내가 아직도 엘린으로 보여?' 하고 덮쳐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
생각을 알 수 없는 그녀는 무표정으로 나를 빤히 볼 뿐이였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그녀를 바라보니
"응...좋아."
"와, 와아아아...!"
용기를 얻었다.
'행복...! 행복!'
가슴이 웅장해진 감각에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니, 엘린이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재빨리 그녀에게 가서 말했다.
"나, 나 레아 어딨는지 찾을 수 있어...!"
"?"
내 말에 엘린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녀의 어두운 눈동자에 기대라는 단어를 그려준 뒤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 분신이 있잖아...! 레아한테 붙여둔게 있어!"
"찾아줘."
"!!!!!"
수석 1위가 해달라고 하는 말에 신경 하나하나가 쨔릿해진다.
"헤, 헤으응...아, 아앗! 그럼 지금 바로 할게"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니, 내 감정이 무언가와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분명 연결되어 있다.
"왁! 왁!"
".....?"
"왁! 왁! 왁!"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외쳐댔다.
내 친구 엘린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친히 알려주었다.
"사람들이 똑같은 소리로 외치면 따라하고 싶어지잖아...!"
"......"
엘린이 '이게 무슨 소리야?'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에 움츠려 들지 않고 용맹하게 외쳐댔다.
"왁! 왁!"
엄청 무서운 구교사지만, 엘린이 있으니까 괜찮아!
왁! 왁!
소리에 집중하니, 저 멀리서 내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즈으으으아!"
"루시, 조용히...위험해."
"아, 미안..."
그렇게 소리가 났던 방향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니
"모, 모야 저거!"
2m는 되보이는 흰색 옷을 입은 괴인이 레아를 쫓고 있었다.
온 몸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팔을 채찍처럼 휘두를때마다, 내가 만들어낸 분신이 터져나간다.
루시들 사이에 숨어 겨우 버티고 있는 레아...
"에, 엘린...! 레아도 정신오염이 됐었어...!"
"나 무서워서 정신차렸어! 빨리 도와줘어어!"
죽을듯이 무섭지만, 친구를 구하기 위해 주먹에 업화를 태워올렸다.
"지금 구하려"
타닷...!
그때 내 옆을 스쳐지나가 앞으로 쏘아지는 인영...
엘린이 한마리의 맹수처럼 쏘아져 귀신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레아가 있는곳으로 달려간 엘린이,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팔을 피해내며 발차기를 날렸다.
팡!
하지만, 옷을 때리는 소리만 날 뿐, 귀신에게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그 모습에 엘린이 입술을 짓씹고 있으니
"엘린! 내가 할 수 있어!"
그 목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 회피에만 집중했다.
우드드득...!
귀신이 팔을 휘저을 때마다 뼈가 부셔지는 기괴한 소리가 나며, 채찍같은 팔에 맞은 벽은 조금씩 깍이듯 부셔진다.
영적인 귀신을 공격하지 못했기에, 엘린은 회피만 할 뿐이였다.
하지만...
"와아..."
마치 나비처럼 가볍게 움직이는것만으로 귀신의 공격을 모두 피해낸다.
"현혼!"
그리 시간을 끌고 있으니 날카로운 레아의 외침과 함께
펑!
영력이 풍선처럼 불어나오며 귀신을 품었다.
"하아압!"
레아의 마력이 끓어오르며, 희끄무레한 영력 안에서 아름다운 백색의 빛이 피어오른다.
!!
귀신이 피어를 사용하지만, 영력에 파묻혀서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고
백색의 빛은 그 귀신에게 달라붙어졌다.
"어서 성불해!"
레아의 말과 함께, 그 공포스러운 존재는 녹아드는 잎싹처럼 서서히 사라졌다.
"....후우"
영혼을 정화시킨 뒤, 밝았던 구교사는 또다시 어두워졌다.
"주, 죽을뻔했어..."
"레아야아!"
털썩 주저않는 레아의 품에 루시가 달려들었다.
"응..옳지 옳지...무서웠어?"
"흐엉..."
방금까지 죽을 위기에 있던 레아는, 어째서인지 품 속에 달려든 루시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엘린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제, 바알을 찾아야해."
그 짧지만 무거운 힘이 있는 말에, 레아와 루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수 없는 위험한 존재가 있는 이 공포스러운 공간에 혼자 있을 그가 걱정되었으니까.
"베드..."
레아는 마음을 졸이며 뛰어갔다.
세상이 고아였던 자신을 보는 시선은 두가지였다.
혐오와 경멸 그리고 귀찮음...그리고 성욕에 절여진 소름돋는 시선.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을 도와주고 구해주었다.
그가 없었다면 난 분명....
'죽었겠지.'
동굴에서 괴한에게 잔혹하게 폭행당할때가 떠올라 몸이 떨렸다.
아니, 그 전에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악마와 계약한 뒤 토벌당했으려나?
"레아. 집중해."
옆에서 달리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엘린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어둡고 서늘한 구교사를 달려갔다.
*****
문뜩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뒤를 돌았다.
"드디어 눈치챘구나."
작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어두운...정확히는 감정이 매마른 것 같은 죽은 눈동자.
꽤나 반가운 눈을 한 녀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야."
"흐음...난 널 모른다."
내 말에 그녀는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다는듯 킥킥 웃었다.
그녀의 죽은 눈동자에서, 그녀가 사람을 쉽게 해할 수 있는 악인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해해...킥킥."
날 보며 웃는 표정에 떠올랐다.
나에게 시비를 걸던 베르트를 포함한 4인방 사이에 있던 여자...
분명 갈색머리에 조금 더 얄미운 인상을 한 여자아이였는데, 지금은 피처럼 붉고 뻣뻣한 머리에 차갑고 어딘가 색기가 느껴지는 얼굴을 하고 있다.
"알아냈구나."
눈치가 꽤나 빠른지, 내 표정을 보고 아쉽다는듯 읊조렸다.
하지만, 그 아쉽다는 표정에서는 어찌되든 좋다는 듯한 감정이 들어가있는 것 같았다.
"너. 뭐하는 년이야..."
내 살기어린 읊조림에, 그녀가 죽은 눈동자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의 편, 당신의 동반자."
이내 그녀가 나를 향해 싱긋 웃어주며 말한다.
"마왕 바알...그리고 너의 동료."
그녀가 이내 황홀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왔다.
"아아...! 만나고 싶었어. 베드히로...줄곧"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