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구교사 (4)
* * *
'뭐야 이 미친년은...'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기가 내 편이라는 개소리를 짓걸이며 다가온다.
'죽여...?'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나에게는 치명적인 제약이 걸려져있으니까.
까드득...
'그런 머저리같은 실수를...'
이내 나는 다가오던 여자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그딴 개소리를 나보고 믿으라는건가?"
내 말에 앞에 있는 여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죽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게 무슨말일까나?"
확실히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레아나 다른 조연들보다 나에게 많은 이득을 줄 것 같았다.
아직 인류가 모르는 마왕 바알의 존재, 그리고 안티용사인 나...
분위기나 눈동자만 봐도 선(?)이라는 감정이 없어보인다.
뭐, 결국엔...
"이곳에 온 이유가 뭐지?"
녀석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글쎄...내가 뭘 할것같아?"
캉!
입술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미소짓는 그녀에게 달려가 단검을 휘둘렀다.
의문의 여자는 손을 들어 내 단검을 막아냈다.
"간 쳐보지 말고 말해라"
"어머어머...무서워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녀는 나를 향해 비웃음같은 것을 띄우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제 얘기를...?"
나는 뒤로 사뿐 물러나 또다시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 여자에게 칼을 휘둘렀다.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그녀는 팔을 들어 내 검을 막아내거나 재빠르게 회피하지만
쾅!!
"....끅"
내가 쏘아낸 충격파는 막아내지 못했다.
[영력 : 0 /200]
'존나게 다는구만...'
인과율이 활성화중일때만 가능한 이 공격은 데미지는 뛰어나지만, 영력 소모가 너무 심했다.
"한가지 착각하는게 있는 것 같다만..."
나는 그녀의 어깨를 짓밟으며 말했다.
"너같은것 없어도 나 혼자 다 죽일 수 있다. 버러지년아"
벽에 기대앉아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나를 보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기대할게 베드히로."
팟!
그 뒤, 또다시 공간이 뒤바꼇다.
어두워진 시야가 점차 밝아지고 내 앞에 나타난것은...
"문.."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였다.
정확히는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가는 문...
지금 내가 있는곳도 지하인 것이 느껴졌으니까.
별다른 고민 없이 앞에 있는 문을 여니, 어둡고 깊은 계단이 나왔다.
"뭐. 방법도 없어보이는구나."
나는 심상세계를 활성화하였다.
구교사에 있을때보다 훨씬 불길한 기운들이 넘쳐흘렸지만, 인과율을 활성화한 지금은 조금이나마 앞이 보였으니까.
나는 피에 젖은 단검을 들고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
한편,
레아와 루시는 엘린에게 붙어 떨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둡기만 했던 구교사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 마치 살아있는 생물의 내장처럼 꿈틀대는 복도...
와앗!
마치 전이되는 것처럼, 구교사 곳곳으로 이동되며, 근처에 있던 분신 루시 하나가 떨어져나갔다.
"붙어야해...!"
영적인 면에서 눈치가 빠른 레아의 말과 함께 루시와 레아는 엘린에게 더욱 붙었다.
다만, 인간 샌드위치가 된 엘린은 오직 앞을 바라볼 뿐이였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의문의 존재...
공간이 시시각각 변하지만, 복도 끝부분에 있었던 저곳 만큼은 형태가 변할지언정 건물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 위치에서, 한 붉은 머리의 여자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끄, 끝났어? 이제 혼자는 싫어..."
루시의 칭얼거림을 끝으로, 더 이상의 변화는 멈췄다.
"....밖이 아니야"
레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맑았어야 했던 하늘은 없고, 어둡고도 붉은 불길한 하늘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였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안녕."
그리고 저 멀리 반대편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의문의 여성.
"너...! 누구야!"
와락 외치는 루시에 붉은 머리의 여성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러블리아 사르키스라고 해. 나는"
"아, 안뇽! 난 루신뎁!"
당황한 루시가 외쳐보았지만, 사르키스는 불길한 미소를 띄며 사뿐사뿐 걸어올 뿐이였다.
"너 누구니? 혹시 너도..."
"으응...아니야 나는 갇히지 않았어."
그녀는 그리 말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리에, 레아와 루시는 잔뜩 긴장하며 불안한 시선을 보내왔다.
"베드히로가 끼어들지 말라고 했지만...선물정도는 주고싶은게 여자 마음이잖니?"
"레아. 루시. 뒤로."
엘린은 사르키스가 싱긋 웃으며 손목을 풀며 하는 말에 짙은 살기를 느꼇다.
이내 나타난 정적...
엘린과 사르키스는 서로 대치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
사르키스는 뒤를 돌아 떠나갔다.
"나중에 보자...기회가 된다면"
"자, 잠깐!"
레아가 그녀에게 외치며 다가갔지만, 엘린이 레아의 손목을 잡아세웠다.
손목을 잡는 순간 또다시 공간이 뒤틀리며 장소가 바꼇고, 사르키스는 사라졌다.
"이, 이제 어떡하....레아?"
"베드히로라고 했어...그 여자애."
레아가 불안해하며 몸을 떨어댔다.
"다, 당장 구하려 가야해...! 그 여자애 위험해 보였단 말이야"
주술사이기에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자의 몸에 묶여있는 불길함...
평범한 사람이였으면 못버티고 죽어버렸을 정도의 사술이 걸려있었다.
아니...걸려있는게 아니라.
"사람이 아닐지도..."
"뭐가?"
"아, 아니야."
레아는 엘린의 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빨리 가자...베드가 위험해..."
불안감과 소중해진 사람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몸이 떨려오고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베드...베드...제발...어딨는거야"
"레아야..."
루시또한 불안한건 마찬가지였지만, 패닉에 빠진 레아때문에 어쩔 줄 몰랐다.
"기다리자."
"....엘린."
엘린의 말에 레아가 싸늘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내 간절해진 표정으로 엘린의 손을 두손으로 맞잡는다.
"제발...엘린이 있으면"
"못가는거야. 저거 봐."
엘린이 앞을 가리키니, 복도가 꿈틀거리는게 보였다.
"......"
"......"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내장처럼, 마치 무언가가 그곳에서 자신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불길하게 꿈틀거렸다.
"바알은...걱정마."
아까 보았던 요괴의 팔과 다리에 칼로 베인듯한 상처가 남아있었다.
사르키스라는 여자는 검사로 보이지 않았기에, 그런 상처를 낼 사람이라면 분명 바알이겠지.
엘린은 홀로 떨어진 뒤 구교사를 끊임없이 걸어다녔지만, 다른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반대편도 무언가 있는듯 공간이 기분나쁘게 꿈틀거렸다.
"다들 나 따라와..."
그때 레아가 꿈틀거리는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물컹..
"....흐"
"레아, 위, 위험"
"아니. 괜찮아."
레아는 긴장하며 읊조렸다.
"괜찮을거야..."
주술사이기에 알고있다.
기분나쁘게 움직일뿐 왜인지 영적인 것은 잠들어있지 않았다.
그렇게 걸어가는 레아의 뒤로 루시와 엘린이 따라 걸어갔다.
쨍그랑!!
"꺄아악! 게게겍..."
"루, 루루루루...루시! 괘, 괘괘괜...괜차나!"
"레아. 안괜찮아보여."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지만, 그곳에 유리같은건 없었다.
찰박..찰박...찰박...
"히, 헤헤헤헥! 헤헥!"
"다, 다들 나, 나나나를 따라와..."
"레아. 루시 기절하려고 해."
물기에 젖은 발자국 소리가 났지만, 그 소리는 천장에서 났다.
'괜찮은거 맞냐구...!'
레아는 지금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복도 곳곳에서 괴상한 심령현상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내, 내가 부족한거였어!'
"애들아 미안해! 나 열등생인거 잊어버린것 같아! 엘린 살려줘! 아까 째려본거 미안하니까아...!"
"레아...루시 기절했어."
"엣?"
뒤를 돌아보니 엘린이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루시를 업고 있었다.
진짜로 죽은 것처럼 기절한 루시의 모습에 앞이 막막해졌다.
*****
...
휘파람을 불며 계단을 내려간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음?"
무덤과 비석이 있었다.
비석은 붉은 밧줄로 묶여있었고, 곳곳에 부적들이 붙여져 있었다.
나는 그 비석을 한번 손으로 훑어보았다.
"붉은게 아니였네."
밧줄의 색이 붉은게 아니였다.
다만, 피에 절여졌을뿐.
왜인지 아직 미미하게 타오르는 촛불덕분에 바닥에 툭 툭 떨어지는 피를 볼 수 있었다.
구교사는 꽤나 오랫동안 방치됐다고 했는데...
나는 무덤을 밟고 올라가 비석을 만지며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다."
이것도,
[인과율 : 17.2% (활성화)]
.
.
[인과율 : 17.5% (활성화)]
.
.
.
[인과율 : 18% (활성화)]
저것도...
심상세계로 보니, 적색과 흑색이 섞인 안개가 손으로 빨려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낙인처럼 손가락을 타고 피부 속을 파해쳐 타오르는 그것...
그것은 이내 인과율이 되어 내 몸에 흡수된다.
"기분나쁘네."
나는 그것을 발로 찼다.
발에 치인 비석은 기울어지더니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치지지직...
그와 함께, 관 속에서 어두운 기운이 피어오르며 뚜껑이 열려버릴듯 몸부림친다.
그리고...
쾅!!
어두운 기운이 솟구쳐서 나에게 쏘아진다.
곧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피해냈지만,
"......"
내 손이 썩어가고 있었다.
"흠...그래...이렇게 하는거였나?"
나는 곧바로 심상세계를 펼쳐내 [구현]의 권능으로 내 영혼에 간섭했다.
난 꿈을 매개로 이 세상에 존재하니까.
원래 세상과 이 땅의 연결점인 심상세계에 간섭하면, 이정도 저주는 풀어낼 수 있겠지.
치지직...
내 예상대로 손을 썩게 만들던 검은 기운이 타오르며 소멸했다.
아까 비석을 만질때 내 손에 빨려들어오던 기분나쁜 것 덕분에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진짜 되다니...
'머저리같아도 창조주라는 건가...'
신체를 순식간에 썩게 만들은, 마법보다 짙은 저주를 곧바로 해주시켰다.
나는 시선을 돌려 관 속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검은 기운이 나에게 붙어대며 살을 썩게 만들려고 했지만...곧바로 해주시켰다.
콰드득...
그렇게 뚜껑을 열은 관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인과율로 인해 악한 것에 예민해진 지금도 눈치챌 수 없다는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거겠지.
그런데 왜 이런 저주를 내뿜는거지?
'....아'
이내 나는 한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사라진 마왕의 잔재인가."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뛰어난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당장 전지전능한, 신조차 창조해낸 창조주가 설정 좀 만졌다고 해서 작가놈을 악신으로 구분했으니까.
주인공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없었던 것이 되었지만...
시스템으로 인해 없어져야 했던 마왕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아니면 뭐 그냥 기분나쁜 저주아이템 같은 거거나.
"꽝이군."
나는 뒤를 돌아 계단을 올라갔다.
"이제 조연들 방해하려 가야지."
꽤나 부지런히 성장하고 있으니까.
팔다리 한두개정도는 부러뜨려놓는게 좋겠지.
"이게 뭔지 알아?"
그런 내 뒤에 들리는 미성...
두꺼운 관 위에 아까 본 붉은 머리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어떻게 들어온거지?"
"후후...그건 중요한게 아닌거 알잖아."
그녀의 말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베드히로는 이게 뭔지 알아? 알려줄래?"
"내가 왜 알거라고 생각하지?"
내 말에 그녀는 눈웃음을 지었다.
피같은 붉은 눈동자와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가 기분나쁘다.
"너는 가짜 용사니까...분명 나보다 예민할거라 믿어."
그리 말하며, 그녀가 자신이 앉아있는 관을 살며시 쓰다듬는다.
그 손길에 또다시 늘어나는 검은 기운...
"기분만 나쁘군."
그 기운은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지만, 아까처럼 피부가 썩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게 네놈의 능력이냐?"
내 말에 그녀가 미소지으며 설명해준다.
"내 재능은 '증폭'이거든...무엇이든 간섭할 수 있어."
관 속에 남아있는 찌꺼기를 늘린건가...
내가 시온에서 듣던 수업중에는 마나간섭도 있었으니, 분명 그것에 연계되는 재능이겠지.
이 구교사에 기분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난것도, 그녀가 손을 쓴 것일테고.
"그래서?"
"응...?"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왜 네 몸에 살기가 피어오르는거지?"
내 말에 그녀가 놀랐다는듯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이내 배시시 웃는다.
"베드히로...네 힘을 알고싶으니까?"
이내, 그녀가 앉아있는 관 속에서 검은 기운이 솟아올랐고, 그것은 우리가 있는 이 지하를 채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