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에르시아는 수심이 깊다 (2)
* * *
왜일까.
에르시아가 나에게 차갑다.
그렇게 느끼는건 나뿐만이 아니겠지.
저 옆에 레아도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상황에 그걸 넣으신다구요...? 수업때 주무신걸까요?"
"저는 진작에 했는데...훔쳐보실거면 잘좀 훔쳐보시지..."
"다른분들은 알려주지 마세요. 여긴 제가 직.접. 할테니까요. 후후..."
내 옆에 서서 내가 손가락 하나 움직일때마다 눈알을 희번득거리며 노려본다.
'얘 왜이래...?'
에르시아같은 이들은 누군가를 싫어하면 딱 티가 난다.
평소 행실이 좋으니까.
지금 에르시아는 누가봐도 나를 적대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나를 노려보지는 않겠지.
달그락.
"아앗..."
"하아...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집중하시라고."
시약 재료를 잘못 만져서 양 조절에 실패했다.
그것을 본 에르시아가 표정을 잠깐 밝히더니, 이내 다시 굳은 표정으로 나를 질타한다.
보다못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저기...에르시아야? 내가 뭐 잘못했어?"
"네, 네?"
"나한테 까칠한 것 같아서..."
"...아니에요."
"뭐?"
"아니라구요...!"
그녀의 표정을 보니, 자신은 절대 절대 결백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한편 에르시아는 속으로 당황했다.
'실수했다...'
앤젤라는 성전과 협력하고 있었기에 흑마법사들이 얼마나 악한 짓을 많이 했는지 뼈저리게 알고있다.
그렇다보니, 그들보다 더 짙은 악함이 느껴지는 베드히로에게 무심코 까칠하게 대해버렸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했는데...!'
설마 의심하지는 않겠지...?
나. 앤젤라 가문의 천재 에르시아가 자신을 의심하고 뒷조사를 하고있다고 의심하고 있지는 않을까?
온갖 망상들이 뇌를 뒤흔든다.
이내 식은땀을 애써 은빛 머리카락으로 숨기며 그를 힐끔거리니...
"하암..."
또 바보같은 표정으로 하품을 하고 있다.
음. 아니구나.
딸그락!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려 바라보니, 또 베드히로가 실수를 했다.
순간 화색이 된 표정을 숨기고,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또다시 그를 꾸짓는다.
"하아...손에 기름칠이라도 하셨나요? 어떻게 그걸 떨어뜨릴수가...심지어 지금은 시.약.제.조. 시간인데...!"
그의 불행은 나의 행복...
정의감이 차오르며 가슴 속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진다.
***
"쒜엣..."
"베드으...괜찮아?"
점심시간 지친 몸으로 주스에 꽂힌 빨대를 빨고 있으니, 내 옆자리에 온 레아가 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본다.
"레아야. 오늘도 그...혼자 먹는거야?"
"우리는 먼저 먹고있을게. 외로우면 식당에서 우리 찾아야해"
"밥 꼭 챙겨먹고"
레아와 친한 여자애들 몇몇이 나를 힐끔거리며 교실 밖으로 나간다.
절대 곱지 않은 시선...
'하아...'
반에서 외롭게 지내다보니 반 애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어딘가 못난 아이로 인식한 것 같다.
레아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만...다른 이들은 그냥 레아가 착해서 나같은 놈한테도 말을 걸어준다고 생각하고 있고.
원래 이렇지는 않았는데, 대련에서 루시에게 패배한 뒤로 주가가 곤두박질 쳤다.
훈련이나 검술 등등에서도 꾸준히 처참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고.
귀족과 왕족은 저마다의 개소리로 무시하고, 평민들은 귀족에게 당한 스트레스를 나에게 푼다.
바알이라는 가문의 정보는 없었으니, 나를 몰락 가문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떡락 멈춰...'
나를 힐끔거리며 은근히 무시하는 시선이 따갑다.
"뭐야! 베드히로 왜그래? 어디 아파?"
그렇게 책상에 엎드려 있으니, 루시가 텅 빈 교실 안으로 들어와 말을 건다.
차마 너때문이라고 할 수 없어서 적당한 핑계를 대었다.
"그냥 수업시간이 피곤해서"
"무슨 수업이였는뎁?"
"괴수학."
"아앗..."
몬스터들의 생태와 습성 등등을 배우는건데, 존나 재미없는 수업중 하나였다.
"어쨋든 밥 먹으려 가자. 루시도 왔으니까."
"아..아아...그, 그래."
루시가 올때까지 밥 먹는걸 기다려줬다고 하니, 분홍머리가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한다.
"아하핫! 동지~"
"달라붙지 마 임마."
"......"
루시는 왜 저럴까.
레아는 가만히 내 사랑에게 달라붙는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할 정도로 발랄하며 애교도 많다.
그리고 웃을때 기분좋게 올라가는 입꼬리와 상대방을 저절로 웃게 만드는 눈웃음...
"베드히로! 그럼 밥먹으려 가자~ 가쟈 가쟈~"
까드득...!
연인 사이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하는 스킨십까지...!
자신도 모르게 이빨이 갈려온다.
웃을때마다 어깨나 팔뚝을 쓰다듬고, 식사 후 벤치에 앉아있으면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 무릎베개를 한다.
꼭 베드히로에게만 하는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거슬린다.
"아! 베드히로~ 내가 도서관에서 재밌는 책을 봤는데~"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하는 모습...
'여우였어...'
작고 귀여운 아이라고 했는데, 방심했다.
서로 친한 마음에서 시작하고, 점점 대화를 나누며 점차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진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베드가 루시에게 반한다는 최악의 상황에 마주하지 않을까 손톱을 뜯고있는데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또 무슨'
여자가 봐도 예쁜, 찬란한 은빛 머리의 에르시아가 다가왔다.
***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복도를 걸어 식당으로 향하는데, 에르시아가 나타났다.
"어...어어?! 어엇!"
루시가 에르시아를 보며 크게 당황했다.
전에 루카스와 에르시아와 기숙사로 돌아갈때 중2병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안타까운 눈빛을 받은게 트라우마가 됐었으니까.
쓰담쓰담.
"헤에..."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 루시의 분홍머리를 쓰다듬는다.
싫어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잠시, 루시가 입을 헤 벌리며 기분좋은 표정을 한다.
탁.
그렇게 루시를 쓰다듬는 내 팔목을 우왁스럽게 잡는 예쁜 손.
"베드?"
어딘가 서늘한 표정을 한 레아가 방긋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조심해야지~"
뭘 조심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알아들었으리라 믿어.' 라는 표정을 한 레아가 내 팔목을 놓아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팔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저기...에르시아?"
"네."
에르시아 또한 내 팔목을 잡고 있었으니까.
"이거 놓아주시죠."
내 말에도 그녀는 웃는 표정으로 내 팔목을 쥐어잡으며 말했다.
"아하하. 조심하셔야죠. 숙녀분의 머리는 함부로 쓰다듬는게 아니랍니다."
그러면서 루시의 머리를 자신의 가녀린 손으로 쓰다듬는다.
어딘가 더러운것을 털어내는 손동작인것은 기분탓이겠지?
나는 에르시아의 쓰담쓰담을 받으며 기분좋게 갸르릉 거리는 루시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러지 뭐."
괜한 다툼은 피하는게 낫겠지.
"그럼 갈까요?"
훗. 하고 웃은 에르시아가 귀족스러운 발걸음으로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그렇게 에르시아를 따라 걸어가니...
.....
나에게 시비를 걸던 베르트와 멸치, 돼지가 나를 노려본다.
싫어하는 감정보다는, 질투와 부러움이 섞인 표정.
사르키스는 역시 없구나.
'너가 왜 거기있나...'
'몰라.'
베르트의 눈빛을 무시해주고 에르시아를 따라 식당으로 도착했다.
"흐햐...맛있는 냄새."
"후후. 시온의 식사는 최고를 자랑하니까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루시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에르시아.
"자. 갈까요? 레아양."
"아...응!"
에르시아가 레아에게 팔짱을 끼니, 내 눈치를 보던 레아가 앞으로 걸어간다.
"루시양. 이리온"
"네, 넵!"
존댓말을 하는 에르시아가 무서운 루시는, 군기 있는 신병처럼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어색하게 그녀들을 따라 걸어가니, 에르시아가 또 안절부절 했다.
"루, 루시양을...아니, 레아양도..."
"....."
그것을 무시하고, 에르시아의 반대편 대각선 자리에 앉으니
"옆자리 내꺼!"
루시가 내 옆의 의자에 엉덩이를 떨어뜨렸다.
"이, 이익...."
레아가 루시를 보고 분한듯 노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노려보는 탓에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돌린 시선에는, 에르시아가 루시를 아쉽다는듯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는게 보였다.
"하아...어쩔 수 없죠. 다들 메뉴부터 정할까요?"
메뉴를 정하고 번호표를 뽑은 뒤 그것을 내면 요리사들이 조리해준다.
요리하면서 마법이라도 쓰는지, 만드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어쨋든, 나는 여유있게 메뉴를 고
[7100G]
'.......'
아까 음료수를 사느랴 500G를 사용했었다.
나는 손을 덜덜 떨며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지랄맞은 가격들...
나는 손을 움직여 다른 메뉴판을 꺼내들었다.
골드 없는 거지새끼들이 먹는 최하급 메뉴판...
"풋."
그 모습을 에르시아가 어린아이를 보는 부모처럼 흐뭇하게 바라본다.
'압도적 굴욕...!'
"흐음~ 저는 역시 데일립 스테이크에 디저트로는 과일 파르페가 좋을까요? 아...! 단풍을 올린 홍차도"
지랄하네 증말.
루카스와 에르시아를 포함한 무리들이 밥을 먹는걸 훔쳐본 적이 있다.
내가 아는 에르시아는 절약하는 습관때문에 저런 비싼것들은 안먹었거늘...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메뉴 하나를 정했다.
1000G짜리 가장 저렴한 음식.
그냥 쌀밥, 된장국, 생선구이다.
그것을 주문하니, 에르시아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머. 벌써 주문하신건가요?"
".....?"
"오늘은 제가 쏘려고 했는데..."
슬픈 표정을 짓고있지만, 눈동자는 웃고있다.
"와...! 와아아? 아아...아앗"
자신과 똑같은 메뉴를 두개 더 시키는 에르시아를 보고 두 팔을 번쩍 올리며 좋아하던 루시가 이내 내 눈치를 본다.
"아...난 됐어 나, 나는 베드랑 같은걸로..."
"이미 제출했답니다?"
레아가 내 눈치를 보며 고민하니, 에르시아가 그녀의 옆에 달라붙어서 유혹한다.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 먹고싶잖아요...? 그리고 디저트로는 과일 파르페...여기 홍차는 건강에도 좋답니다?"
침을 꿀꺽 삼키는 레아를 보며 악마의 속삭임을 하는 에르시아.
"참는건 몸에 좋지 않다구요...? 이 저하고 정~말 기분 좋아지는 거라구요?"
"그, 그럼 한번만..."
이내 입꼬리를 주체 못하던 레아가 유혹에 넘어갔다.
"앗...!"
그러고선 나를 보며 슬픈 눈을 하는 레아.
"베, 베드으...나도 돈 없어서 스테이크같은거 못먹어봤단 말이야..."
"아 그래."
"아...아앗..."
이내 메뉴가 나왔다.
내 주변에 있는 루시와 레아, 그리고 에르시아의 앞에 두껍고 육즙이 잘잘 흐르고 윤택이 나는 스테이크가 나왔고.
'빈부격차 뭐야...'
내 앞에는 살아있을적 많이 굶주렸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생선과 된장을 절약한것을 알 수 있는 국물이 있었다.
그래도 쌀알은 때깔 곱구나...
"와...와아아...! 와아? 와아...아아아..."
루시가 스테이크를 보며 감탄하면서도 나를 바라볼때면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는다.
눈이 쉴새없이 떼굴떼굴 굴러가면서 바껴가는 음성...
"에엥? 에...와, 와아? 아아아? 와!"
그러다가 머릿속이 어지러웠는지, 포크를 앙 쥐며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한다.
"된장국 맛 좋기만 하네 거."
후루룩
된장국을 한 손으로 들고 마셨다.
"후후...맛있어요?"
그 모습을 에르시아가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어딘가 소악마같은 표정으로...
"자. 우리도 먹읍시다."
그러고서는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스테이크를 썰어먹는다.
그런 나를 향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레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너가 잘못한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맛은 있는'
"에췽!"
내 옆자리에서 재채기 소리가 들리며 볼에 무언가가 튀었다.
그와 함께 내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려온다.
"크응! 스테이크 마시써."
바, 방금 내 밥 위에 뭔가가 들어간 것 같은데
"후후..푸흡...크, 크흡...! 루시양 맛있어요?"
"네엡! 마시써효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