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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막이 되었다-42화 (42/53)

〈 42화 〉 별 관측소 (1)

* * *

싸늘하다...

서늘하다아...!

레아는 천문부의 부실로 들어와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담당이신 알리시아 선생님은 보이지도 않았고, 어찌 된 일인지 베드와 루시도 보이지 않았다.

­뿅! 뾰로롱~

"에...엘린아...?"

­달칵! 삐리링!

반에서 말을 걸기 힘들 정도로 무섭고 어색했던 수석 엘린이 자리에 앉아 게임기를 두드리고 있다.

게임이라는 전혀 먼 거리에 있을 것 같은 아이였지만...

별 모양의 무늬가 그려진 헤드셋을 끼고 게임기를 두드리는 모습은 퍽 익숙해보인다.

'어딘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시온에서 배급한 휴대폰 이라는 것에 선을 연결하고 음악을 들을거면, 어째서 저렇게 게임기 소리를 크게 해놓는 걸까...?

저렇게 게임만 하는데 어떻게 수석이라는 자리까지 올랐던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와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니...관심도 없는거려나?

"하아­"

레아는 자신 또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한숨을 퓨우­ 쉬었다.

반에서 실은 티를 내는것이 눈치가 보이고 부담스러워서 한숨같은걸 쉬기 어려웠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어보인다.

"찾으려 갈까."

어색함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루시가 없다. 그리고, 베드도 없다.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상황.

"루시 이뇨속..."

웃는 얼굴로 방방 뛰며 매달려오면 나도 모르게 끌려다니고 있다.

베드도 분명 그렇게 놀다가 루시에게 끌려갔겠지.

둘이 아무도 모르는 외딴 곳에 가서 서로 웃으며 대화하는것을 생각하니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렇게 뾰루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무거운 가슴을 받치고 있으니..

"하!"

안좋은 생각이 지나갔다.

'나 설마 먹버...당한건가?'

빈민가와 평민들이 사는 도시 사이에 있는 고아원.

그곳에 살다보니 나쁜 말들에 대해 자주 들어보았다.

가끔 골목길에서 담배를 펴대며 낄낄거리는 강도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있을때 들은 단어...

분명, 남자가 여자를 그..세, 섹스...를 하고 관심도 안주고 버리는거라고 했지...

자신이 먼저 덮쳤다는건 안중에도 없는 레아는, 이내 부들부들 떨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대 그렇게는 안되지....'

감히 소녀의 첫경험을 가져가놓고 이렇게 무관심하게 군다고?

사실 전부터 마음에 안들었다.

그의 근처를 괜히 어슬렁거리고, 쑥스러운것도 참고 매혹적인 표정을 지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나의 노력을 슬그머니 피할 뿐이였다.

그때는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화가 나보니까 알겠다.

이건 무조건 베드가 나쁘다는것을.

'일단 잡아내자.'

서늘한 눈으로 일어났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호수 앞 벤치에서 루시와 하하호호 웃으며 밝게 대화하는 베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뿅뿅 거리는 게임소리를 지나쳐 문 앞으로 걸어가니...

"안뇽!"

분홍머리가 짠! 하고 나타났다.

"어. 왔니? 잠깐만 보자~?"

"에?"

레아는 그런 루시의 손목을 잡고 복도로 끌고갔다.

복도로 가서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베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그거겠지.

『쉿~♡ 베드히로오...♡ 들키면 어쩌러고 그래앵! 나 먼저 갈테니 조금 있다가 와~? 쪽!』

『후후. 감히 나에게 뽀뽀를 해?! 부활동만 끝나면...가만두지 않을거야!』

『꺄앗~♡』

­부들부들...

머릿속에 재생되는 이미지에 주먹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너...너어...! 너어어!"

"히, 히익! 나, 나 뭐 잘못한거야?!"

감히 선수를 치다니...아니야, 이건 빼앗긴것이다.

그는 나의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내 인생에서 처음 간직한 소중한 인연이다.

내 목숨을 구해주었고, 황혼이 서린 보건실에서 아름다운(?) 경험을 나누었다.

더이상 혼자 남지 않을거다.

더이상 빼앗기지 않을거다.

처음으로 내가 가지기로 다짐한 것이며, 이미 내 품속에 들어왔는데 어딜 멋대로 나간다는 말인가?

그것도 다름아닌 다른 여자애의 계략으로...

"루시...넌 선을 넘었어."

"죄,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레아는 루시에게 손을 뻗었고, 루시는 그것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며 바들바들 떨었다.

"니들 뭐해?"

그리고, 그 앞에 베드히로가 나타났다.

***

앞을 보니, 서늘한 눈빛을 한 레아가 루시에게 손을 뻗고 있다.

루시는 두 팔로 자신의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숙이고 바들바들 떨고있었고.

그 찐따력 충만한 자세는 보는사람까지 숙연하게 만든다.

"니들 뭐해?"

내가 말하니, 레아의 목에서 뚜둑. 소리가 나며 내 쪽으로 고개가 홱 돌아간다.

서늘하고 무감정한 눈빛.

천사같은 얼굴에 어두운 눈동자를 한 레아가, 나를 보며 히죽 웃는다.

"왔...어? 어디..갔..던...걸까? 베드"

"어? 어?"

이내 레아가 나에게 느릿하게 다가온다.

몹시 당황한 마음에 어떻게 된 일이냐는 시선을 루시에게 보내왔지만...

'저거 저거...!'

눈치를 잔뜩 보던 루시가, 이내 나를 보더니 '헹! 살았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의기양양해한다.

그러면서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당장 꿀밤을 때리려 가고 싶지만, 내 앞을 막아선 레아때문에 다가갈 수 없었다.

­포옥...

이내 내 몸에 자신의 커다란 가슴을 짓누르는 레아가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한다.

"저기 베드. 나 몰래 어디에 있었을까나? 누구랑 있었던 걸까...?"

그 어두운 눈동자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으니 레아가 손가락을 세워 내 가슴팍에 대고 빙글빙글 돌린다.

"혹시 루시랑 있었어...?"

그 말에 뒤에서 힉! 소리가 났다.

나는 속마음을 숨기고 담담하게 말했다.

"에르시아랑 있었어. 잠깐 할 얘기가 있어가지고."

"그럼 이 냄새가 에르시아였구나? 뭘 했길레..."

이내 레아가 내 몸에 코를 박고 냄새를 스읍­ 맡는다.

"이렇게 진한 냄새가 나...?"

"그, 그건! 베드히로는 에르시아님 기숙사에 들어갔거든!"

그녀의 말에 루시가 소리를 빼액 지른다.

"뭐?"

정색을 하며 쳐다보는 레아.

그 시선에 쫄아버린 루시가 목소리를 떨며 설명한다.

"베, 베드히로가! 여자 층에 올라와서 에르시아님 방으로 들어가써! 그 다음은 몰라!"

"흐응."

이내 루시가 손을 들어 교실 안을 가리킨다.

"루시는 들어가 있어."

"넵!"

루시는 사고를 친 뒤 자연스럽게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베드."

"어?"

"나는 베드를 좋아해. 그래서 그때 서로 야한짓 잔뜩 한거잖아?"

그녀의 말에 얼굴이 빨개진다.

레아의 얼굴을 이렇게 좁은 거리에서 바라보니, 어색함이 몰려온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구경하게 되는 여자애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듣게된다니...

사실 나는 꽤 행복한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있으니 이내 레아가 말한다.

"여자층은 왜 갔어? 거기에서 무슨 일 있었니...?"

"....잠깐 에르시아랑 할 얘기가 있어서­"

솔직히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이다.

루시만 아니였다면 대충 어딘가에서 자다가 왔다고 할려했는데...!

"베드...내가 말했잖아...너만은...너만큼은 그러지 말아달라고"

그녀는 이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무표정으로 말한다.

"왜 나 무시해?"

"저기. 에르시아야? 어째서 에르시아 기숙사에 찾아간거야? 하긴...에르시아 예뻐­"

"그도 그럴게 나는 고아에다가 부모님도 없고 가난하고 능력도 없고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데, 에르시아는 완벽하잖아?"

레아가 또다시 자기비하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나를 믿고있다고.

레아는 나에게 나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가와 준다고.

레아가 자기비하를 함으로써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나'라는 사람을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괴로움에 손을 떨면서도 멈추지 않고 말하는 거겠지.

".....?"

"근데. 너는, 너는...베드히로는 그러면 안되는게 아닐까? 우, 우리 야, 야한것도...했잖아..."

이내 레아가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엔 슬픔과 애절함이 담겨있었다.

"마음에 안든다구...나한테 먼저 말 걸어준적도 없어..."

나는 그녀의 한탄을, 그저 듣고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나도 찔리는게 있었으니까.

수업에서도, 쉬는시간에서도, 전부 그녀가 대화를 주도했고 먼저 다가와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눈빛을 어색하게 피할 뿐이였다.

"내가 그렇게까지 다가가줬는데...어떻게 루시랑만 놀아? 내가 쳐다보면 무시하고 고개 돌리고...지금도 봐. 내 눈 안바라보잖아."

나는 전생에 자존감이 꽤나 낮았다.

아니, 많이 낮았다.

그렇다할 인연도 없고 사람을 대하는법도 잘 모른다.

최대한 안그러겠다고 다짐했지만...그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다.

"정말...속상해...베드가 그러면 내가 얼마나 속상한지 알아...? 그럼 처음부터 섹스 해주지 말던가...희망따위 주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레아의 입에서 섹스라는 말이 나오니 뭔가 굉장히 이상하다.

저 천사같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인지, 그녀가 나에게 다가오기 위해 노력한건지 모르겠다.

"흑...흐흑...루시랑만 놀더니 이젠 또 에르시아야...난 또 뒤로 밀려나는거구나...?"

레아의 목소리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당황하니 말을 잇는 그녀.

"베드는 아니잖아...겉으로는 웃으면서 나 무시하는애들 아니잖아...힘들때 옆에 있어줬잖아...나 지금도 힘든데 옆에 있어주면 안돼...?"

여자의 울음은 치명적인 무기다.

한번 흘려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고, 보는 이를 마음아프게 만든다.

그게 레아처럼 이쁘고 착한 아이라면 더더욱.

나는 이내 다짐하고 얼굴을 약간 붉히며 그녀에게 말했다.

"레아...너 무시한거 아니야­"

"......"

이내 그녀가 울컥한 마음에 물기를 머금은 눈동자를 올려 나를 바라본다.

또 변명하는거야? 라는 표정.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것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너, 너가 너무 예뻐서 제대로 못쳐다보겠어­"

그녀는 히로인이고, 나의 적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계속 거리를 둬야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게 아니였다.

그녀는 이쁘다.

레아가 웃을때마다 주위에 있는 이들이 신분과 성별을 막론하고 멍해진 표정을 짓는다.

당장 몇몇 이들이 애써 질투의 시선을 보내거나, 친해질려고 몇마디 걸려고 하는것을 보면 답이 나오겠지.

"에?"

내 말을 들은 레아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 어어? 자, 잠깐마..안?"

점차 사과처럼 새빨개지는 그녀의 얼굴.

나는 이참에 확실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녀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너가."

내 손짓에 화들짝 놀라며 동공을 지진처럼 흔드는 레아.

"너무 예뻐서 말도 걸기 힘들다고­"

"......"

내 말에 레아가 입을 헤­ 벌리며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내 가슴에 맞닿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헤, 헤응­ 헤으으응...후헤헤헤..."

얼굴이 루시의 분홍머리와 똑같은 색이 된 레아가, 이내 헤픈 웃음을 지으며 얼굴에 손부채질을 한다.

"그, 그런...그러언...거였어...? 아하하...저, 저기? 베드...그...뭐라고 해야하...헹?"

그 다음으로 결고 끝나지 않는 문장들을 계속 읊조리던 레아가, 고장나가는 기계같은 움직임으로 몸을 돌려 천문부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그녀가 떠난 자리에 멍하니 있으니...

"안녕하세요~"

알리시아가 밝게 웃으며 다가온다.

레아나 루시, 엘린같은 이들과는 다른 성인의 농후한 몸매를 지닌 알리시아가 총총거리며 올때마다 나무판자가 비명을 지른다.

"앗. 베드히로니? 마침 잘됐다. 조원들 데리고 와봐~ 선생님이 선물 가지고 왔어."

학생을 대하는 선생님의 가까운 거리때문에, 내 눈앞에 선생님의 거대한 가슴이 보인다.

나는 애써 시선을 처리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쨋든, 알리시아의 말에 따라 천문부 안으로 들어가니, 안에 있던 루시와 엘린이 나를 바라본다.

엘린은 어느새 게임기를 숨겨놨는지 평소와 같은 덤덤한 표정...

레아는 고개를 홱­ 돌려 창 밖을 보았고, 루시는 그런 레아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다.

"잠깐 나와줘."

내 말과 함께 엘린, 루시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고개는 그대로 하며 몸만 삐걱 거리며 기괴하게 움직이는 레아...

"베드히로. 갑자기 왜그랭??"

"나도 모르지."

복도로 나가니, 알리시아가 우리를 보며 웃고있었다.

"자~ 그럼 다들 이리온~"

유치원생을 끌고가는 말투의 알리시아를 따라 계속 걸어갔다.

그렇게 몇십분을 이동한 뒤 나온것은...

"와­"

생소한 건축물인 천체관측소가 나왔다.

아카데미에 있는 거대한 성전의 뒤로 조금 걸어가니 나타난 건물...

"별은 신님들을 상징하니까. 성전 뒤에 하나 지어놨어. 뭐...별로 쓰지도 않으니까 홱 낚아챘지!"

사람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며 세상을 바라본다.

그것은 지구에 있던 원시인들도,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도 다르지 않겠지.

실제로는 이곳의 세계는 신이라는게 존재하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알리시아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니 이 천체관측소는 잘 쓰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였다.

내가 살던 지구의 종교에서도 천체관측소를 지어놓고 신을 위해 기도하는건 아니였으니까.

"그, 그럼 여기가 새로운 아지트인가욧?!"

루시가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며 팔을 붕붕 휘저으며 말한다.

알리시아 선생님은 그것을 귀엽다는듯 바라보며 밝게 웃으며 말한다.

"아니!"

".....?"

저 표정은 분명 '그래!' 라는 말이 나오는 표정이였는데.

"아무래도 건물 하나를 동아리 하나가 부실로 쓰는건 힘들지~"

알리시아는 그리 말하며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 부장님? 우리 천문부는 무슨 활동을 할까? 보통은 밤이 좋은데..."

아카데미에 소등시간이 있지만, 의외로 야간까지 하는 동아리는 꽤 있었다.

하지만 야간의 경우 부원들의 참여가 자유롭지만...천문부 특성상 밤에밖에 활동하지 못한다.

알리시아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저희 천문부 활동은­"

나는 나를 바라보는 이들을 보며 말했다.

"신과 하늘, 그 별의 연관점­"

[소설 속 설정이 깊게 관여된 공간입니다.]

[메인 시나리오의 '핵심'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영력 : 300 / 450]

"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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