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별 관측소 (2)
* * *
"그럼 성전이랑 협력하는게 좋을 것 같아. 연구 자료도 선생님이 가져다줄게."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알리시아 선생님이 재잘재잘 떠들어댄다.
"베드히로한테는 말했는데, 마왕이 나타나면 신의 화신체들이 많아지고 신들의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해. 그게 악신이든 선신이든."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여 듣는 레아, 루시, 엘린...
알리시아 선생님이 하지만! 이라고 말하니 루시가 숨을 힉! 들이마신다.
"왜 하필 천문학이 주목받은걸까?"
"어어...신님은 별에 있으니까...?"
레아가 동화같은 이야기를 말했다.
레아의 머리를 웃으며 쓰다듬은 알리시아 선생님이 말을 잇는다.
"그건 말이지...사실 별이지만 별이 아닌 것들을 관측하는거란다."
"네?"
"신님들은 저마다의 힘으로 이 땅에 간섭하시거든. 그게 좋은방향이든 나쁜방향이든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이 결계처럼 세계 곳곳에 펼쳐져 있단다.
그러한 거대한 힘을 펼치는 것이 너무나도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처럼 보이는거구."
설명하는듯한 선생님의 말에 앞에 있던 이들이 입을 헤 벌렸다.
나도 대충 알고있었다.
먼지가 묻은 책에서 봤으니까.
그게 발견된 이유는 아마도...
"과거에 신이 죽었거든."
그녀의 말대로다.
과거 악신이 죽고 하늘에서 별똥별처럼 떨어진 거대한 마기.
그것이 떨어진 곳은 마계화가 진행되어 마물들과 마인들이 나타나는 등 마기가 흐르는 땅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마기를 활용해 사교도들이 인위적인 '게이트'를 만들어내 지옥의 생명을 끌어왔다.
서큐버스, 인큐버스, 뱀파이어, 늑대인간, 마귀, 언데드, 좀비 등등 온갖 악한 괴물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오랜 역사 끝에 나타났던 존재...
"그 땅에 '마왕'이 나타났었어."
알리시아 선생님은 침을 꿀꺽 삼키는 일행을 보며 진지하게 말한다.
"다행히도 선조님들과 선신의 화신체분들이 힘을 모아 마왕을 해치웠단다."
"휴우~"
"무섭다..."
루시와 레아가 한숨을 쉰다.
엘린은 말은 안하지만...그녀들의 눈동자에는 미약한 공포가 스며들어 있었다.
세상을 악몽으로 몰아넣고, 인류의 피로 강을 만든 존재.
시간이 지나도 그 강인한 존재로 인한 공포는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천문학이 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시설을 설치하고 조사하는 것과 같다.
신의 힘이 하늘에서 햇빛처럼 내려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그 지식이 활용되는 일이 없었다
그때, 강력한 마족이 나타나면 신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천문학이 중요한거야. 마왕이든 강한 마족이든, 인류에게는 치명적이니까."
신님들의 움직임을 지켜본 뒤, 위기와 기회를 파악하고 미리 대비한다.
하지만 신님들을 감시하는건 옳지 않다는 의견때문에 지체되었지만...결국에는 통과되었고, 성전에서 그 역할을 맡기로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천체관측소도 늦게라도 지어진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 신들이 활동하는지,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직 우리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 당장에도 마왕이 나오면 신들이 움직이는게 맞냐. 정말 하늘에서 힘이 내려오는게 맞냐는 소리로 업계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걸 연구합시다. 알겠죠~?"
"네에~"
"알겠어요!"
어린아이를 다루는듯한 알리시아 선생님의 말에 루시와 레아가 대답한다.
"자~ 그럼 선생님은 카ㅍㅔ...아니, 연구할게 있어서 어디좀 갈게!"
"네에~?"
"알겠어요오...?"
선생님은 그 뒤로 박수를 짝 치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
"......"
"이제 뭐해?"
엘린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그녀의 말에 흰색 배경의 천체관측소를 둘러보며 말했다.
"청소부터 하고. 시설도 둘러보자."
천체관측소는 불이 꺼져있어 어둡고, 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중요한 설정이 녹아든 장소는 주인공과 조연들을 위한 공간인 것 같았다.
"....."
"...열심히 하..자,자자자...."
귀찮아보이는 눈빛의 엘린과 나와 눈이 마주치니 얼굴을 붉히며 몸을 바들바들 떠는 레아.
나도 그녀를 마주하기 낯간지럽다.
"후후후...."
그렇게 어색하게 있으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은 웃음소리.
그곳을 바라보니, 오른팔에 붕대를 감고 안대를 찬 분홍머리가 고혹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표정으로 웃고있었다.
"자. 내가 누구지?!"
"아드리아."
"아..아앗...그거 말고!"
".....?"
엘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다.
이내 루시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뻣뻣하게 들어올린다.
"나 장래에 어둠의 여왕이 될 몸. 이 정도는 식은죽 먹기라구...!"
'흐아...'
루시가 저렇게 말할때마다 숨고싶어진다.
실제로 같이 걸어다니면 루시는 쉴새없이 재잘거리고, 우리를 지나쳐 가는 생도들이 루시와 나를 바라보며 킥킥 웃어대니까.
뾰보봉!
그녀가 닌자들처럼 손가락으로 인을 맺으니, 루시들이 뿅뿅 하고 튀어나온다.
"노동의 시간이야!"
와아!
귀찮은데...
그래도 재밌어보여!
"귀, 귀가..."
루시들은 저마다 이성이 있는지 서로가 서로를 보며 재잘재잘 떠들어댄다.
이내 내 근처에 있는 루시들이 친구를 만났을때 반가워하는 (진)루시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여! 베드히로쿠운!"
"잘 있었냐구우!"
"너 감히 점심시간에 날 버리고 사라져...?"
짖궂은 표정으로 팔꿈치나 손바닥으로 툭툭 치는 루시들.
생긴거부터가 어딘가 꿀밤을 쥐어주고 싶은 얄미운 이미지인 루시가 저런 표정을 지으니 주먹이 떨려온다.
"자...잠깐만 얘들아아...? 그 너무 가까운게..."
이내 레아가 안절부절하며 내 근처에 있는 루시들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잡아당기지만...
루시들은 수가 너무 많았고, 레아는 나를 볼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났다.
"야! 루시야! 이것들좀 치워봐."
이, 이것들이라니...!
너 나랑 동료가 되기로 했잖아...
왜 나한테 하극상 하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에에
왜 나 무시하는데에에에에
"끄아아!"
내 한마디에 근처에 있던 루시가 잔뜩 억울해하며 외쳐댄다.
문제는, 저들이 하나같이 다 똑같이 생겨서 누가 진짜 루시인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였다.
"엘린은...?"
그나마 힘을 쓸 수 있는 엘린을 찾았지만, 엘린은 이미 저 멀리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뿅! 뾰로로롱~
빗자루의 끝부분을 배로 밀면서 두 손으로는 게임기를 하는 그녀...
저거 나도 해봐서 아는데 저렇게 하다간...
....!
빗자루가 어딘가에 막혔는지 멈춰섰고, 그것을 배로 밀던 엘린이 괴로운 신음을 내었다.
옆을 바라보니, 레아 근처에 있는 두세명의 루시에게 잡혀서 재잘거림을 듣고있으면서도 내 눈치를 보고있었다.
동아리부터는 자유로운 활동이다보니 가벼운 차림이였는데, 레아가 움직일때마다 흔들리는 거대한 가슴...
그리고 내 근처에서 서로 나에게 말을 걸고 말겠다는 루시들의 외침때문에 정신이 없다.
베드!!히로오!!!
왜 나 무시해애!!
베드히로오! 이거 청소도구함 어디이써!!
으아아아!! 시끄러워어어어!
너가 더 시끄럽거드은!!
모두 조용히하자아아!!!
끄아앙! 내 발 밟지마아!
"......"
아 조용히 하고 청소 하자고오오!!!
그때 날카로우면서도 카랑카랑한 외침에 좌중이 침묵에 빠진다.
"오."
이제야 좀 제대로
흐햐하하하아아 방금 목소리 완전 컸어!
오~~~~
루시주제에 대단한데에!
너도 루시거든!!
누가 자기비하 하랬어!! 우린 위대한 흑룡의 그릇이라구우!!!
멋지게! 침묵을 유지해야된다고오오
조용히 하라고오오!
안대 잡아당기지마아아앗!!
"허..허미이....이게...이게 머선 일이고오..."
건물 옥상에 서서 쓰나미가 도시로 밀려오는 것을 바라보는 주인공처럼,
나는 몸을 바들바들 떠며 분홍머리의 파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악...하아악...! 베드히로오...나 연습 많이해서 이따만큼 소환할 수 있게 됐어어..."
"뭐야! 어디야!"
이내 그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진)루시를 찾기 위해 고개를 홱 돌렸지만...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충 30명 정도로 보이는 루시때들...
적다고 생각한 수인데, 이렇게 보니까 존나게 많다.
이만한 인원이 파이어 펀치와 찌릿찌릿 펀치를 사용한다니...
사실 루시가 이 시온 아카데미 세계관 최강자가 아닐까?
일단 상대방을 정신착란에 빠뜨리는 것부터가 사기적이다.
"자, 잠깐...레, 레아야?"
"어...어어? 자, 잠깐...! 나 쳐다보지 말아줘어..."
나와 눈이 마주친 레아가 얼굴을 붉히며 주저앉는다.
그녀가 다리에 얼굴을 파묻으려고 하니 그녀의 거대한 가슴이 뭉개지고, 쭈구려앉으니 엉덩이의 라인이 그대로 보인다.
나는 애써 시선을 돌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청소도구함 저깄거든? 루시들좀 잘 챙겨줘"
"무, 뭐어? 자, 잠깐만 베드야...! 나 두고가지마아!"
나는 곧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빠져나왔다.
"바알. 올라가는거야?"
"어어. 잠깐 시설들좀 둘러볼려고."
"흐응...."
이내 어두운 눈의 엘린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상대방을 위축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있으니
"잘 다녀와."
엘린이 이내 몸을 돌려 청소를 시작한다.
인사를 하려 했지만, 엘린이 별 무늬가 그려진 재미있는 생김새의 헤드셋을 끼는게 빨랐기에 그냥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탁. 탁. 탁.
계단을 오르는 소리.
생전 처음 보는 천체관측소다 보니 어딘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1층에 홀. 2층에는 작지만, 좁지는 않고 아늑한 분위기의 원형의 방...
그 위를 한번 더 높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옥상으로 올라온다.
옥상에는 4개의 망원경이 규칙적으로 세워져 있었다.
이조차도 오래 사용하지 않았는지 먼지 투성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저게 아니겠지.
[메인 시나리오의 '핵심'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아까 보았던 알림...
심안을 사용하여 어두운 세상 속에서 바라보니
"......"
문이 달려있는 건축물의 윗부분.
몰래 잠자기 좋은 그곳에 낡은 망원경이 하나 더 있었다.
낡아서 불투명해진 유리들이 곳곳에 달려있고, 지지대의 중앙에 낡은 지구본이 달려있는 그것.
그것에서 '위험한' 것이 느껴졌다.
구교사처럼 어두운 안개같은것이 흘러나오는건 아니지만...본능적으로 저것이 위험한 물건이라는게 느껴진다.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앞에 다가가 그것에 손을 대려고 하니
"안돼."
"......?!"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세웠다.
옆을 보니 익숙한 붉은 머리에 아름다운 눈동자.
"오랜만이야. 만나고 싶었어."
사르키스가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너가 왜 여깄는거지?"
인과율을 사용하면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게 되지만, 기억까지 사라지는건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공격당한 것을 떠올리며 강하게 경계했다.
"위험해보여서 왔어. 그거."
사르키스가 손가락으로 쿡쿡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하늘을 바라보는 망원경이 있었다.
"이게 뭔지 알아?"
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하니,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비밀. 베드히로한테 알려주지 않을거야."
이내 그녀가 뻗은 상태로 멈춰있었던 내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래도, 만지면 안돼. 구교사에 있는걸 사용해."
"구교사에도 이런게 있다는 말이냐?"
"응. 눈치채고 있었잖아? 뭔가가 있다는건"
알고있었다.
구교사의 계단 뒤, 혹은 어딘가에서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으니까.
내가 멍하니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그녀가 선심썻다는 듯 말한다.
"그래도, 하나는 알려줄게."
나는 이야기 해보라는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당장 보호막과 텔레포트를 준비하면서
"그건 하늘을, 별을 보는 망원경이 아니야."
"...그럼?"
"신을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이지."
그러면서 사르키스가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나를 뒤로 이끈다.
그것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처럼.
"그거 쓰지마. 사용하면"
사르키스가 사람을 홀려버릴 것 같은, 위협적이기보다는 매혹적인 붉은 눈동자로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넌 죽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