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별 관측소 (3)
* * *
"...죽는다고?"
그녀의 갑작스러운 말에 되물었다.
"응. 정확히는 살해당해. 펑 하고"
사르키스는 키득거리며 입을 가리며 웃어댔다.
도화살에 걸린 것처럼 멍하니 보게되는 외모였지만...그녀는 어딘가 꺼림칙하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갑자기 죽을거라고 해도..."
"그럼..."
갑자기 사르키스가 한걸음 다가오며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무언가 알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와 함께 사르키스의 독특한 향이 밀려들어온다.
"시험해볼래?"
"그게 무슨..."
코가 맞닿을 것 같은 거리가 부담스러워서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뒤로 내려갔다.
"시험하는것 정도는 괜찮잖아."
그녀가 있었던 방향을 째려보았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그 대신 내 등 뒤로 가느다랗고 긴 팔이 내 몸을 기어다니며, 내 귀에 그녀의 숨결이 밀려들어왔다.
텔레포트를 사용하였지만, 어째선인지 그녀는 내 뒤에 나타나있었다.
'권능에도 간섭하는건가...?'
그녀는 자신의 재능이 증폭, 혹은 간섭이라고 설명한 바 있었다.
설마 권능까지 간섭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르륵...
그녀의 손이 내 몸을 기어다닌다.
그녀의 손가락이 또각또각 내 배와 가슴을 기어다닐때마다, 그 손가락이 살을 뚫고 내장과 심장을 어루만지는 망상이 몰려온다.
"이거. 선물이야 베드야."
이내 그녀의 손에 하나의 작은 판이 나타난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나무판자...
그 판자 위에는 이상한 문양들과 별과 달로 보이는 것들이 그려져 있다.
"별자리판...?"
"응. 맞아. 이걸 구교사에 있는 망원경에 끼워놓으면 돼."
"......"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지식들에 멈칫하고 있으니, 사르키스가 또다시 킥킥 웃는다.
그녀가 웃을때마다 고혹적인 목소리와 숨결이 내 뒷목을 타고 귓가로 들어온다.
"죽을 것 같아...? 무서운거야...? 두려워? 킥킥..."
마치 아이를 놀리는듯한 말투.
"저기저기...베드야..."
이내 그녀가 내 어깨에 턱을 기대고 나를 바라본다.
"무서우면 내가"
"그만"
팍!
순간 홀려버릴 것 같은 사르키스의 목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청아한 목소리.
사르키스가 바닥에 꽂히는 발차기를 피해 뒤로 날아가듯 이동했다.
"하아 하아"
정신을 차리니, 내 머리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손에 들려있는 작은 별자리판...
"괜찮아? 바알."
어느새 내 앞으로 온 엘린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묻는다.
"괜찮아..."
다행히도, 가슴이 뚫리는건 상상이였을뿐 현실이 아니였다.
내 대답을 들은 엘린은 고개를 돌려 사르키스를 바라본다.
예의 그 무슨 생각을 할 수 없는 어두운 검은 눈.
"엘ㄹ...나랑 한번 본적 있어. 당신."
"방해꾼이 왔네."
사르키스가 허리를 유연하게 돌리고 한 팔로는 가슴을 받치듯 팔짱을 끼며, 다른 손으로 입술을 매만진다.
서큐버스같은 자태였지만, 그녀의 눈에는 뱀같은 위험함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베드에게만 관심이 있는걸? 그러니까 나가. 훠이훠이"
사르키스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킥킥거린다.
"바알은 못데려가. 엘ㄹ...아니, 나 청소하는거 도와야 해."
....그런 이유였어?
어쨋든, 엘린은 나를 지켜주려 하는듯 사르키스를 잔뜩 경계하며 내 앞에 섰다.
뭔가 지켜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지만...당장 사르키스와 엘린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저들은 마법사들과 수십 수백번은 겨뤄본 실력자일 테니까
"뭐 됐어. 베드야. 나중에 보자."
엘린과 눈을 마주치던 사르키스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뒤돌았다.
"베드야."
"....?"
"중간고사때 보자."
사르키스는 의문스러운 말을 내뱉고는 그대로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
"....바알."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엘린이,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본다.
그 시선에 살짝 움츠려들고 있으니 그녀가 내게 가까이 와서 말했다.
"땡땡이 피운거야?"
"뭐...아니라고는 못하겠네."
이내 그녀는 불만족스럽다는듯 눈꼬리를 약간 세웠다.
그러고서는 한대 칠 것만 같았던 주먹을 주머니 속으로 넣더니
"무, 뭐."
삐리릭.
주머니 속에서 게임기가 튀어나왔다.
"엘린도...아니, 나도 땡땡이 피울거야."
"아..크흠."
살짝 쫄아있던 나는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서있었다.
그런 나에게는 관심도 없다는듯 바닥에 앉아 게임기를 키는 엘린.
"빨리 내려가야 돼."
"....왜?"
"아래층 난리났어. 레아랑 루시...어흥..."
"....."
평소 덤덤하던 엘린이 기겁한 듯한 말투로 부르르 떨더니 입을 다문다.
***
"엑 샤워하고 싶어...샤워하고 시퍼!"
"....야 넌 무슨"
"베드으...너무 그러지 마"
팔을 붕붕 휘두르는 루시를 어이없다는듯이 쳐다보니 나를 다독이는 레아.
우리는 노을이 지는,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은 도로를 걷고 있었다.
당장 나와 레아와 루시는 망신창이였고, 엘린은 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따라온다.
"내가 아는 분신은 명령만 잘듣는 착한 녀석인데."
"나, 나는 그런 못된짓 안한다구...!"
루시도 찔리는게 있는지 얼굴을 붉히며 어버버 거렸다.
당장 셀 수 없이 늘어난 루시들 때문에 오히려 건물에 있던 가구 몇개가 쓰러지거나 청소도구가 루시의 발에 밟혀 부러지거나...
중간부터는 루시들이 뛸때마다 먼지가 흩날려서 호흡하는것조차 힘들었다.
다행히 루시 중 하나가 물양동이를 들고 뛰다가 넘어져서 바닥에 있는 먼지가 공기로 올라오지는 않았지만...내 신발은 이미 푹 젖어있었다.
"후우...그래도 잘했어..."
"그, 그치?"
루시가 눈치를 보며 밝은 표정을 짓는다.
"먼저 들어갈게."
그렇게 걸어가니, 엘린이 고개를 돌리며 평민 기숙사... 정확히는 C동 기숙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아. 그럼 나"
"나 무서운데...?"
"아는 루시 데려다주고 갈게."
내 말에 엘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터덜터덜 걸어간다.
"아하하..."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등을 다독여주는 레아.
"잘있어! 내일도 힘 찬 하루 보내자! 문자 보낼테니 무시하면 안돼...!"
"오냐"
팔을 높이 들어 붕붕 흔들던 루시가 이리저리 뛰며 기숙사 안으로 사라진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러퍼질때마다 근처에 있는 생도들이 우리를 쳐다보는데...
"크흠...빨리 가자"
그 시선은 꽤나 부담스러웠기에 몸을 돌려 평민 기숙사를 향해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했다.
"...베드야 루시랑 문자도 해...? 나랑은 안하잖아..."
"....아"
그러고보니 레아와 번호를 교환하지 않았었다.
"흐흥...그래도 둘만 남았네?"
번호를 교환하니, 레아가 나를 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린다.
그러고서는 내 팔을 확 잡아끄는 레아.
"항상 무시했지만, 이제는 못도망갈걸?"
"아니 무시한게 아니라"
"아, 아앗..."
내가 변명하듯 말하니 또다시 얼굴을 붉히는 레아.
그 뒤 우리는 침묵 속에 평민 기숙사로 걸어갔다.
어색함을 못버티고 말을 걸려고 할때마다 고개를 홱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는 레아.
하지만, 귓가가 빨갛고 입꼬리가 씰룩거리는게 나쁜 기분은 아닌 것 같았다.
이런 천상 여자와 함께 밤 거리를 걸어간다니...
분홍색으로 보이는 분위기를 만끽하며 어색하지만 기분좋게 평민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이주일 뒤에 중간고사인거 알지~?"
레아와 어색하게 인사하고 있으니, 반 안으로 들어온 알리시아가 밝게 외쳤다.
"씹..."
중간고사라니...
그런거 들은적도 없다. 아니...말했어도 몰랐겠지. 수업시간에 멍때리기만 했으니까.
".....!"
내 앞에서 놀라며 경악하는 레아도 처음듣는 것 같았다.
앞자리에 있는 우등생 에르시아와 루카스, 엘린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고.
'...이제라도 열심히 해야하나...?'
솔직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점수를 딸 이유가 없다.
하지만...
[4900G]
'쉐엣...'
돈이 없다.
배급받는 돈은 생도의 등수에 따라 달라진다.
실전과 이론 그리고 수업 등을 조합한 뒤 점수를 매기고, 그에따라 등수가 나뉜다.
그리고, 1학기가 끝나면 그 등수에 따라 A반에서 E반까지 반이 나뉜다.
'조연이랑 멀어지면 골치아픈데...'
엘린, 레아와는 접점이 있다.
하지만, 에르시아와 루카스 그리고 샬롯이 문제다.
에르시아와는...그렇고 그런 관계를 맺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해진건 아니다.
루카스와도 요즘 대화 자체를 잘 안하고 있었고.
샬롯은 동아리에 이름만 올려놨지 최근엔 본적도 없다.
상담을 해달라고 하면 기꺼이 만나주겠지만...나는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싶다.
그리고, 조연들처럼 강해질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나도 유능해져야만 한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터인데...
1교시 괴수학
세상에 있는 괴물들의 서식지와 던전, 그리고 던전에 느껴지는 마나를 측정하여 등급을 확인하는법
그리고 수백 수천마리의 괴물들의 공통점을 찾고 어떤 괴물의 어느 부위가 학계에...무슨 식용으로 할 수 있다느니...
솔직히 마법사 선생님이 홀로그램으로 띄어주는 괴물들을 보니,
평생 만나보지도 못할 것 같은것들 투성이다.
2교시 마나 감응과 간섭
나는 마나가 없다.
간섭할줄도 모른다. 느끼지도 못하고.
3교시 신체단련.
나를 포함한 몇몇 여생도와 마법사들이 뒤로 불려나가서 개처럼 굴렀다.
훈련이라는 이름의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고, 길버트의 공격을 피해 텔레포트로 도망치던 나는 이내 반응할수도 없는 속도에 붙잡혀 바닥과 딥키스를 했다.
그렇게 구르고 버티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하아..."
수업은 따라가지도 못하겠다.
애초에 시온 아카데미정도면 충분히 명문학교일텐데, 그것을 이곳에 온지 반년도 안된 내가 수업을 따라가는게 불가능하다.
그렇게 침울하게 자리에 앉아있으니...
"응? 내가 알려줄까?"
우리반에 쪼르르 달려온 루시가 분홍색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너가?"
나는 루시를 빤히 바라보았다.
천진난만한 얼굴에 원래의 나이보다 몇살은 어려보이는 생김새.
가까이 가면 아기에게나 날 법한 우유냄새가 난다.
보기만 해도 말랑말랑한 볼에 커다랗고 순둥순둥한 눈매...
게다가 가끔씩 멍 하니 있는게 참 바보같다.
거기까지만 하면 괜찮겠지만...오른팔에 감긴 붕대와 오른눈에 씌인 괴상한 문양이 새겨진 안대때문에 신뢰도가 확 깍인다.
"무, 뭐! 내가 뭐! 나 공부 잘하거든?!"
내 의미심장한 눈빛에 루시가 발끈하며 빼액 소리친다.
"아니 너 공부 잘한다고?"
"응!"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못한 눈으로 보니, 루시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나. 우리반에서 이론수업 1등이야."
".....!"
나와 레아는 충격받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