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막이 되었다-45화 (45/53)

〈 45화 〉 중간고사 희망편 (1)

* * *

"하아...베드히로야아...정므아알...! 나 똑땽해!"

"야임마."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는 기분이다.

공부는 안하고 계속 나를 관찰하며 히죽히죽 웃는 루시가 끊임없이 훈수를 두었으니까.

우리는 모든 수업이 끝난 뒤 우리는 아카데미 부지 내에 있는 카페에 들어왔다.

스터디모임을 위한 카페인듯 방이 나뉘어져 있어서 그런지, 루시가 쉴새없이 재잘거린다.

"뚁땽해!"

"쓉."

오직 나를 놀리기만을 위한 말투.

공부중이랍시고 똥머리로 묶은 분홍머리와 루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내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흐으...어, 어려워..."

"레아야 이건...자 봐~ 여기에 이 식을 넣은다음에 풀면 돼. 이걸 모르겠으면...3번이랑 4번도 틀렸을거야! 5번은 그 둘의 응용문제거든."

"아하! 그렇구나. 루시는 똑똑하네~"

"헤, 헤헤..."

그러면서 레아와 대화할때는 한없이 친절해진다.

여성조차 끌어당기는 레아의 미친외모와 포근하면서도 푹신한 몸매, 그리고 자신의 친구라는 점이 루시에게 가산점을 준 것 같다.

"히익!! 이문제를 틀!!렸!!어엌!!"

­까드득!

그러면서 나에게는 한없이 불친절하다.

이 무슨 부조리함...!

부들부들 떨리는 고개를 애써 드니, 헤벌쭉 웃고있는 루시가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악독하게 짙어지는 미소...

"후히히..."

"후우­"

반응을 보이면 안된다.

그나마 레아가 말려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우리 히로인님은 지금 교과서와 씨름하고 있다.

작가놈이 히로인 컨셉을 제대로 잡았는지, 레아의 공부실력도 처참했다.

실제로 대련 등수도 40등이였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잖아...'

알지도 못하는걸 지금 공부하는거보단, 집중하는 히로인의 외모와 책상 위에 올려진 묵직한 가슴을 보는게 이득 아닐까?

초등교육부터 배워야하는 수준인데, 갑자기 고등교육을 배우라고 해봤자 이해도 못한다.

마나니, 몬스터니 이 세상의 역사와 신화...이런것들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으니까.

"자, 잠깐 베드..."

내 시선을 받던 레아가 얼굴을 붉히며 가슴을 가린다.

가슴에 팔을 올리니 푹신푹신한 그것에 팔이 들어가며 가슴이 푸딩처럼 흘러나올듯 하다.

"베드히로! 내가 집중 하랬지!"

그런 나를 보던 루시가 표정을 와락 구기며 외친다.

"알았어..."

"에휴웅...그러니까 나한테 대련도 지지..."

"그게 여기서 왜나와?"

"뭐~라아~고오~? 대련도 필기도 진 베드히로가 하는 말이라 안들리는데에~?"

참자.

나는 마음속으로 인내라는 글자를 그리며 화를 식혔다.

얼음이 담긴 컵으로 손을 뻗었지만...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계속된 맨탈공격에 얼음물따위는 다 삼켜버렸으니까.

"풉! 푸흑...! 콜, 콜록­"

그때 그런 내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레아가 마시던 물을 뿜었다.

아름다운 히로인곡선을 그리던 물방울은 내 뜨거운 볼에 달라붙어 흘려내였다.

"콜, 콜록...베, 베드...푸흐흐..미, 미안해!"

날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레아를 보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그렇게 해탈한 마음에 한숨을 쉬니, 루시가 나에게 말한다.

"베드히로. 공부 집중해서 열심히 하자! 시험기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가거든"

루시는 그러면서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크게 끔뻑였다.

아무리 그래도 시험까지 2주나 남았는데 그렇게 빨리 갈리가­

『베드히로...!!』

"어, 어어?!"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니, 루시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나처럼 트램의 정거장에서 나를 마중나온 루시...

잠깐, 등교라고?

"오늘 시험인데 잘 공부했지?"

그런 나에게 루시가 말한다.

"아."

그렇구나...

시험기간은 원래 눈 깜빡하면 가는거였어­

너무 오래되서 잊은 상식을 되살려냈지만...오늘이 시험날짜다.

"가자!"

루시는 친구들과 수다떠는 생도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내 옆으로 한발자국 다가와 말을 건다.

"오늘 아침밥은 날씨처럼 참 맑다 그치?!"

뭐라는거지...

그러면서 눈은 나를 바라보는게 아니라 근처에 '혼자' 등교하는 생도들을 보면서 승리의 표정을 짓는데...

"아. 근데 레아는?"

"레아...?"

레아는 아침잠이 많아서 항상 1분 전에나 온다.

그에 비해 루시는 아침 체질인지 매일매일 일찍 일어나는 것 같고.

지금 당장 졸려 죽으려 하는 생도들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루시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겠지...

"너임마 너때문에­"

"응?"

"아니다."

항상 일어나고 준비하자마자 트램의 정거장 앞으로 달려온다.

그러면서 성격은 이상한 면에서 소심해가지고 지나가는 생도들의 눈치를 잔뜩 보고...

보다못한 내가 잠 잘 시간을 깍으면서 이렇게 빨리 나오는거다.

"하아..."

"왜그래? 역시 시험이 걱정인거야...?"

평소에 잔뜩 놀리더니, 막상 때가 오니까 나를 걱정해주는 루시.

"그래...하나도 모르겠어..."

그런 나를 보며 루시가 활기차게 손을 번쩍 들며 외치듯 말한다.

"걱정 마! 시험기간처럼 시험시간도 눈 깜빡할 사이에 가니까!"

"에이...아무리 그래도­"

『베드히로...!!』

"....!!"

정신을 차려보니, 앉아있는 내 앞에 있는 시험지...

"자~ 모두 걷어오세요~"

심심한 인상의 선생님이 말하니, 뒷사람이 시험지를 걷는다.

"베드히로 잘 봤어?"

평소 인사도 안하지만, 나름 친화성이 좋은 여생도가 묻는다.

그 물음에 나는 내 시험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대련도 필기도 진 베드히로가 하는 말이라 안들리는데에~?』

시험지를 보자마자 내 뇌 속으로 재생되는 루시의 목소리...

내 시험지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곳보다 레아의 피부처럼 밝고 깨끗한 부분이 더 많았다.

나는 아무말 없이 시험지를 여생도에게 들려주었고, 그런 내 시험지를 힐끔 본 그녀가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베드...잘봤어...?"

그렇게 멍하니 있으니, 레아가 나에게 다가오며 묻는다.

그렇게 물어보는 레아의 표정은...당장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울상이다.

나름 걱정해주는 것 같지만...그녀의 표정에는 '제발 너도 못봤다고 해줘...!' 라고 써져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매너남.

"훗­"

"히히..."

내 웃음을 본 레아가 헤픈 웃음을 짓는다.

"통했네...우리..."

아니, 공부 못하는것까지 통하고 싶지 않은데...!

"그래서 다음 시험은 뭐야?"

"응? 오늘 시험 끝났는데?"

그렇구나.

고개를 돌려 칠판을 보니 3개의 과목이 써져있었다.

각각 1시간20분동안 보는 시험들...

'나는 4시간동안 멍때렸구나.'

사실 답지에 뭘 적었는지도 생각이 안난다.

하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내 기억속에서는, 분명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밥 먹으려 갈..."

­베드히로야아! 레아야아!

그때 복도에서 와다다 하는 뜀박질 소리와 익숙한 밝기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히, 히익!"

고개를 돌려보니, 키 190cm의 전투계 생도와 부딪힐뻔하여 몸을 바들바들 떠는 루시.

"야...자, 잠깐 그런 표정 짓지마라­ 다, 다른 애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미, 미안해요...아니 죄송해요!"

"나, 나 안때렸어! 너 왜 그런눈으로 보는데!"

그런 남생도를 근처에 있던 친구들이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사실 저 뒤에 몸을 잔뜩 숙이며 바들바들 떠는 루시는 거의 패닉에 빠진 사람과 같아서 보는 사람이 다 불쌍해진다.

저게 자존심이라고는 없는 루시만의 방어본능이겠지만...저걸 모르는 생도들은 오해할수밖에 없지.

"가자..."

"응..."

그렇게 레아와 함께 위기에빠진 루시...가 아닌 거구의 남생도를 구하려 가니­

"레아야~ 같이 밥먹으려 갈래?"

"우리 스터디 모임도 할건데. 같이 가자."

"혹시 끝나고 시간 있어?"

레아의 외모에 끌린 이들이 몰려와 레아를 감싼다.

나는 재빠르게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루시의 옆으로 이동했다.

'너, 너어...!'

'미안하다.'

우리 반에서 나는 소위 말하는 아싸다.

내가 등교하지 않아도 아무도 모를만한 투명인간...

그나마 베르트와 쫄따구 몇몇이 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도망쳤다.

이런 상황에서 반의 마스코트인 레아의 옆에서 다른 생도들에게 둘러쌓이는건 부담스럽다.

사실 레아가 나에게 말을 걸때마다 몇몇이 나를 잔뜩 노려보며 소근거릴때마다 괜히 신경쓰였고.

"가자."

"그래!"

나는 친구들에게 둘러쌓여진 레아의 눈빛 레이저를 가볍게 회피한 뒤 복도로 빠져나갔다.

"무, 뭐."

갑작스럽게 변한 루시의 태도에 당황한 거체의 남생도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

"진짜 너무해"

"......"

오후수업이 모두 마친 나와 레아는 생기있고 발랄한 생도들 사이의 거리를 걸었다.

루시를 데려다준 뒤 평민기숙사로 향하는 길...

"나 애들이랑 어색하단 말이야..."

"그런것 치고는 다른애들은 좋아하던 것 같은데?"

레아는 내 옆에서 아까의 일을 추궁하고 있었다.

"너무 친절해서 문제야...부담스러워..."

레아는 그러면서 한숨을 쉬듯 말했다.

"원래 사람들은 이렇게 친절하지 않았는데...요즘 왜이럴까? 베드는 알고있어?"

"......그러게"

레아는 불쌍한 인물이다.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고아원에서 자라났고, 이상한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는것을 보면 그 고아원 내에서도 밝은 삶을 보낸건 아니였겠지.

약하고 작고 외로운 아이에게 천사같은 외모는 독이 되었으리라.

그런 아이가 주술이라는 재능을 가지고 시온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주인공을 만났다.

불쌍하고 외로운 아이가 주인공에게 구원받고 사랑에 빠지는건 뻔하디 뻔한 레퍼토리다.

그녀의 불행은 부조리했다.

고작 히로인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한 요소로 인해 고아가 되었고 불행한 삶을 보내왔다.

하지만,

"괜찮을거야."

그녀는 이 아카데미에서 구원받을것이다.

그게 주인공이든, 다른 생도들 덕분이든...

내가 보았던 소설의 마지막화에서 주인공은 레아를 애틋한 감정으로 떠올렸다.

그렇다는건, 레아는 분명 구원받고 수많은 회귀에 피폐해진 주인공을 따쓰하게 보듬어주는 역할을 받았겠지.

"앞으로 더 부조리한 일은 없을거야."

레아를 구원해주는게, 마왕들과 대적하는 인간들인지, 아니면 주인공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잠시동안 같은 편이 되었으니, 이정도는 도와줘도 괜찮지 않을까?

"다른사람이 또 괴롭혀도, 내가 있잖아?"

"......"

"......"

'아.'

내가 있잖아라니...

나도 모르게 말해버린 그 말에 얼굴이 화끈해진다.

뱉고 나니 구워지는 오징어처럼 말려지는 손가락들...

"푸흡­"

"....."

그와중에 레아의 웃음소리는 치명타였다.

"아하핳하­ 그러게~"

레아는 뒷짐을 지고 앞으로 걸어갔다.

발 뒤꿈치를 세우고 나비가 날듯이 가는 걸음거리.

왠지 기분이 좋아보이는 그 발걸음에, 한번정도는 얼굴 화끈해지는 말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저기 베드~"

"왜?"

이내 레아가 밝은, 세상 누구나 구원해보일 히로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시험 말이야...한과목 더 남았는데, 호, 혹시 내 방에서 같이 공부하지 않을래...?"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노을빛을 받은 작게 홍조띈 레아의 얼굴은 멍하니 볼 정도로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제야 쑥스러운 얼굴을 지우고 미소짓는 레아.

"흐흫­ 약속한거다~? 무르기 없기?!"

그 말과 함께 레아가 내 손을 잡고 총총 걸어갔다.

걷는것보다 살짝 빠른 속도, 내 손을 어루만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린 손...

그 친절함에 나도 모르게 내 목적이 떠올랐지만,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떨쳐낸 뒤 레아를 따라 거리를 달려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