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중간고사 희망편 (7)
* * *
"히야아아! 돌순이야...! 돌붕이도 있어!!"
간단하게 밥을 먹고 퍼레이드를 보려 나왔다.
여러 괭대들과 화려한 옷을 입은 이들이 아카데미의 넓은 길을 행차하고 있다.
음악소리와 희한한 춤 그리고 이제는 못볼 줄 알았던 인형옷들...
"....근데 저거 뭐냐?"
"저, 저걸 몰라...?!"
내 말에 루시가 경악한 목소리를 냈다.
내 앞에서는 2m 크기의 돌맹이 형상의 옷을 입은 사람이 헉헉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돌순이랑 돌붕이잖아!"
"아 멋지네."
"그렇지?!"
내 말에 그제야 표정을 푸는 루시.
나는 내 옆에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있는 엘린에게 말을 걸었다.
계속 이러고 있으니 어색했으니까.
"뭐 재밌는거 있냐? 난 이런거 처음인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방향을 가리킨다.
"저거. 테르피시오라는 거야."
엘린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화려한 공작새같은 인형옷이 걸어가고 있었다.
"오 멋지네. 넌 저게 좋은거야?"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엘린.
"게임에서 나와. 저거 죽이면 재료탬 줘."
"......"
살벌한 말을 무덤덤하게 하는 엘린은 그 테르...뭐시기 하는것을 바라볼 뿐이였다.
"심장...발톱...깃털..."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보았다.
"와아...! 히야아!! 저건 에서 봤던건데에...! 으흥! 이쁘다! 나도 입고시퍼!"
다시 고개를 반대쪽을 돌려보았다.
"심장은 녹이고 에테크랑 벌꿀이랑 하리버섯 섞으면 비약이 돼...저거 먹으면 스테미너 올라가는데..."
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구나.
"베드히로! 저기 분장실도 있다는데 한번 가보자! 난 사실 메이드복이 입고싶었어...!"
"바알. 그거 알아? 지금 나오는 음악. 용사 가람이라는 게임의 3번째 OST야. 게임 제작사가 여기에 후원 했다던데...한번 가보는게 좋아."
루시는 그렇다 쳐도, 평소 말이 없던 엘린도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가 나오자 신났다.
고고한 늑대라고 비유받는 엘린이 게임 좋아하는 오타쿠였다니...
"일단 분장실부터. 게임부스는 그 다음으로 가자."
"그래그래!"
".....응."
엘린의 선택지와 루시의 선택지가 나타났지만, 나는 루시를 선택했다.
메이드복을 입은 루시라니...
밝고 활기차고 애교 많은 분홍머리의 귀여운 소녀가 메이드복을 입고 뛰어다닐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거기."
"음?"
그렇게 메이드 루시를 떠올리고 있는데 엘린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입을 수 있을까?"
"!!"
오타쿠 엘린이 코스프레를 하고 싶다는 눈치를 보내왔다.
"분장실. 꼭 가자."
그렇게 우리 세명은 여러가지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분장실로 걸어갔다.
그렇게 나오게 된 곳은...
"오우야."
여러가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였다.
여러가지 옷들이 걸려있고, 그 옷들을 바라보며 웃는 사람들.
코스프레라는 특성상 대부분 학생이거나 젊었고,
남성의 권위와 명예를 중요시하는 판타지 세계 특성상 대부분 여자들이였다.
게임, 만화, 동화, 평범한 외국의 의류 등등 수많은 옷들이 걸려있었고 더워지는 날씨에 맞게 얇고 노출도가 꽤 있는 옷들...
그런 옷들을 입고 나온 각양각색의 머리색을 가진 여인들이 서로의 매력을 뽐내며 거울 앞에 자세를 잡고 있었다.
"빨리 가자...! 다른거 잔뜩 봐야해!"
솔직히 겁났다.
백화점에서 여성 속옷 매점에 들어가기 힘든 것처럼, 저곳은 완전히 금남의 구역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런 내 손목을 잡고 끌고들어가는 루시.
"야. 자, 잠깐"
갑작스럽게 들어서는 남자인 나를 근처에 있던 여자들이 바라본다.
수줍은듯 어딘가로 피하는 이도 있는 반면, 몸을 피며 당당한 미소를 짓는 이도 있었다.
분장실 안에는 여자들의 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
모험가들의 옷과 가볍고 살랑거리는 옷들, 노출도가 높은 코스프레 옷들을 지나쳐 안으로 끌려가니
"흐흥흐흥~"
루시가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 입을까? 베드히로는 뭐가 어울릴 것 같아? 생도들은 하루종일 입을 수 있대...!"
"메이드복 입는다고 하지 않았어?"
"아. 일단 입어야겠다. 우리 가문 메이드분들은 맨날 귀한것만 입으래!"
루시가 분한듯 읊조리더니, 구석에 있던 메이드복을 바라보았다.
여름옷처럼,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치마에 나풀거리는 프릴.
검은색 베이스에 흰색 무늬가 새겨지고 가벼워보이는 이미지.
"예쁘다..."
루시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이 세상에는 메이드도 있었지.
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짜 메이드.
이곳에 온 뒤로 본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는구나.
나는 목소리가 떨리는것을 숨기고 루시에게 말했다.
"한번 입어보지 그래?"
"그래야겠다. 사진도 찍어야해...!"
찰랑이는 분홍빛 머리의 루시는, 따끔한 어금니가 보이도록 씨익 웃으며 얇은 메이드복을 들고 들어갔다.
"......"
그 모습을 보니, 뭔가 마음 속이 뭉글뭉글해진다.
루시가 나에게 연애감정이 없는 것은 알겠지만, 이렇게 서로 걸어가니 루시와 연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
"바알도 입어보지 그래?"
그렇게 있으니, 엘린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아니. 나는 됐어. 어울리지도 않고."
내 말에 엘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강요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엘린의 손에 들린 그것을 볼 수 있었다.
"한...복?"
한복이 있다.
단아하고 어딘가 차가운 인상에 깨끗하고 하얀 피부, 흑발흑안에 어울리지 않는 푸른색과 흰 색이 섞인 한복이였다.
하지만, 그 어울리지 않음이 서로 조화가 이루어져 더욱 예뻐보였다.
어딘가 반전매력같은 산뜻한 느낌.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입는 전통 옷이래. 예뻐."
"흐흐 그러네. 한번 입고오는게 어때?"
"......"
내 말에 엘린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복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나한텐 안어울려."
말은 그렇게 해도, 예쁘고 밝은 한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엘린은 항상 혼자 외롭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외딴 곳에서 게임기만 두드리고 있고.
그나마 재미있게 하는 게임도 우리를 제외하고 다른 생도들이 볼때는 꺼내지도 않는다.
남의 눈치를 보는것은 맞는 것 같은데...
사실 엘린도 또래의 여자아이처럼 놀고 웃으며 예쁜것을 입어보고 싶은게 아닐까?
지금 인사 몇번한 사이인, 아직 어색한 우리의 제안을 덮석 물고 같이 축제에 따라온걸 보면 분명 그런거겠지.
물론 이게 과한 생각이라고 해도...
"그냥 입고와. 사진만 찍어보자. 오늘 말곤 기회 없잖아?"
무표정으로 한복을 흘겨보는걸 보면, 무심코 말하게 된다.
"....응. 그렇네."
내 말에 옷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는 엘린.
뭐야...! 엘린도 입으려고? 그 옷 뭐야? 예쁘다!
...응
그 안에서 엘린과 루시가 서로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이 괜히 뿌듯하고 어울려서 나도 모르게 미소지으고 있으니 들려오는 소리.
엘린...운동해서 그런가? 몸 엄청 이쁘다. 가슴도 엄청 커...!
자, 잠깐...만지지 말아줘.
"크흠."
탈의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루시가 감탄하는 소리와 어딘가 쑥스러우면서도 곤란해보이는 엘린의 가느다란 목소리.
스르륵..거리며 하나씩 벗겨지는 듯한 옷의 소리가 이상한 망상을 떠오르게 한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쨔잔! 쨔자자잔~?"
루시가 탈의실에서 나왔다.
메이드복을 입은 분홍머리의 귀여운 소녀.
평소에는 가만히 있어도 괜히 얄밉고 괴롭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저 산뜻하기만 하다.
"헤헤...이, 이상한걸까나...?"
내가 멍하니 있으니 내 눈치를 보며 어색한 소리를 하는 루시.
"루시. 엄청 잘어울려. 예쁘다."
"예...뻐? 옷 이쁘지? 하하..."
루시가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꽤나 자주 루시를 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어딘가 부끄러우면서도 어색한 웃음과 말투.
상대방이 칭찬할때 나오는 자세였다.
나는 괜히 짖궂은 마음이 들어서 루시에게 장난치듯 말했다.
"아니, 옷 말고. 루시가 이쁘다고 너 잘어울리는구나?"
"......"
내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입꼬리를 헤실헤실 거리는 루시.
"나, 나는 이쁘지 않다구우~"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그리 말하지만, 입꼬리는 끝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푸하하. 아니야. 사진 찍는다고 했지? 찍어줄까?"
"아, 아니...그건 조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런가?
연인사이도 아닌데
"쑥스러운데..."
그런 생각을 하기 잠시, 루시가 몸을 베베 꼬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은 꽤나 치명적인 매력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레아의 눈웃음을 하도 많이 봐서 왠만한 여자들로는 가슴이 뛰지 않았지만...그만큼 지금 루시의 모습은 귀여웠다.
당장 달려가서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
"찍자."
"에?"
"사진. 찍어야해 이건."
"흐, 흐흫...나, 나아...띄워주지 않아도오...되는데에."
개구쟁이같은 모습이 아닌, 수줍은 소녀같은 모습을 한 루시.
옷이 사람을 만드는구나.
막상 메이드복을 입으니, 그 느낌이 꽤나 이상한지 평소의 날아갈듯한 텐션이 아닌 조신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브, 브이이..."
내가 루시의 휴대전화를 받아 사진을 찍으니, 루시가 손으로 브이를 만든다.
쑥스러워 죽겠는지 허벅지를 꼬고 있고, 다른 팔로 어색하게 자신의 껴안고 있다.
화끈거리는 얼굴 옆에 있는 앙증맞은 손.
찰칵!
"으, 으햐아악! 세, 셀카로 해야해! 더이상은 안대! 취소야! 금지야!"
이내 루시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고 탈의실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아."
연애하고 싶다.
모쏠 기간과 살아온 세월이 같았던 나는 처음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나도 달달해서 입 안이 근질거렸다.
"바알. 루시 왜그래? 얼굴이 빨갛던데."
그렇게 달달함에 취해있으니, 엘린이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옷 갈아입는다고 하지 않았어?"
"......"
엘린은 한복을 입은게 아니라, 평소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나를 지나쳐 한복을 원래 있던 곳에 놓는 엘린.
그와 함께 평소대로 유령처럼 내 옆에 나타나 무덤덤한 무표정으로 가만히 서있었다.
"입고싶어지면 말해. 또 오면 되니까."
내 말에 엘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루시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를 한참.
무언가가 내 소매를 잡아당기는 느낌에 돌아보았더니, 엘린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음..."
입을 우물우물거리며 어울리지 않게 눈치를 보는 엘린.
"전화번호."
"아. 그래."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내가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휴대전화기를 내밀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번호로 전화를 걸은 엘린이 다시 나에게 휴대폰을 돌려준다.
"...왜?"
의미 모를 행동에 멈춰있으니, 엘린이 내 시선을 피한다.
"와, 왔어..."
그와 동시에 탈의실에서 루시가 나왔다.
"뭐야. 이제 더 입을거 없냐? 흐흐."
그 모습에 짖궂은 웃음을 지으며 말하니, 루시가 눈을 질끈 감고 빼액 소리친다.
"없어! 다른거 보러가자...!"
그러더니 루시가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본다.
"엘린은 생도복이네...? 언제 갈아입었어? 베드히로는 보지도 못했겠다...완전 예뻣는데."
"응..."
루시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이는 엘린.
나는 말을 돌리며 루시에게 말했다.
"흐하하. 그래. 그래도 잘 어울리대?"
"으으..."
얼굴을 붉히며 바닥을 박차며 쿵쿵 걸어가는 루시를 따라 분장실을 나왔다.
그렇게 이번에는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루시를 따라 사람들을 구경하니
꾸욱...꾸욱...
"어? 왜그래?
엘린이 또다시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엘린을 바라보니,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휴대폰을 톡톡 건드린다.
그 뒤 할말은 했다는듯 총총걸음으로 나를 지나쳐 루시의 옆으로 걸어가는 엘린.
그 모습을 보다가, 내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와 함게 화면에 떠있는 메세지가 도착했다는 알림.
의문이 들어 그것을 바라보니
[엘린]
←따돌리면 불쌍하니까
그런 메세지와 함께, 하나의 사진이 도착해있었다.
아까 엘린이 스스로 정한, 푸른색의 한복을 입은 엘린의 모습.
탈의실 안에서 쑥스러운듯, 어색한듯한 모습으로 셀카를 찍은 것 같았다.
끝부분에 분홍빛이 감도는 푸른색 민소매 저고리 안에는 흰색의 부드러운 옷이 입어져 있었고,
팔 부분은 속이 비쳐지는 투명한 재질에, 손목을 감싸는 부분만 저고리와 같은 푸른 천이 감싸져 있었다.
그 상체 아래로 내려가는 아름다운 곡선을 띈 푸른 치마.
허리에 리본 모양의 장식이 달려있는게 포인트였다.
기왕 할거 제대로 하고싶은지 검은 머리에 꽃 장신구를 달은 모습.
귀여움과 차가움이 2:8 정도로 공존하는 외모에 저런 밝은 옷을 입고 어색한듯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셀카.
나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조용히 저장 버튼을 눌렀다.
이건, 죽을때까지 소장해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