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중간고사 절망편 (1)
* * *
그렇게 레아와 함께 시험장소로 이동했다.
온갖 사람들이 이번 시험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어 가고 있다.
시험의 주인공인 교복을 입은 우리가 지나갈때마다 휘파람을 불거나 어깨를 토닥이며 응원해주는 사람들.
몇몇 꼬마들에게 꽃도 선물받았다.
하지만, 그건 딱히 중요한게 아니였다.
방금전부터 무언가가 계속 나를 짜증나게 하고있었으니까.
'왜.'
저기있을까.
심안으로 바라본 심상세계, 그곳에서 바라보면 이 세상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것처럼 바라볼 수 있다.
시점이 자유롭다는 말.
그렇게 내가 본 세상에서, 저 건물 뒤에 사르키스가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앞에 베르트가 있다는 거겠지.
사르키스가 무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고, 베르트는 그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였다.
"레아. 먼저 가있어. 나는 어디좀 갔다올게"
"응? 알겠어."
내 말에 레아는 긴장하지마! 라고 덧붙이며 우리반 아이들이 모여있을 대기장으로 걸어갔다.
나는 곧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인과율의 영향이 조금씩 내 정신에 미치고 있는지, 권능 사용이 전보다 부드럽다.
'그럼...'
이제 확인해봐야지.
사르키스가 떠나자 마자, 어딘가로 걸어가는 베르트를 미행했다.
충분히 떨어졌을 때쯤, 나는 그의 앞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너는. 몰락귀족놈."
"닥쳐라."
[매혹 (활성화)]
매혹.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
그것은 이성과의 애정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낭만적 사랑
우애적 사랑
유희적 사랑
실용적 사랑
이타적 사랑
소유적 사랑 등등...
성별이 같아도 매혹이 통하지 않는건 아니다.
물론 기분은 더럽지만....
어째서인지 정신이 멍해보이는 베르트는 내 이능에 별 저항없이 당해주었다.
"아...아아.."
"너, 사르키스와 무슨 대화를 했지?"
내 말에 고개를 떨구며 바들바들 떨던 베르트가 말했다.
"흑..마법을 익히고...영혼을 팔아서...시험이 시작하면 사람들을 공격하라고 했다."
"...그 외에는?"
"없다."
"누가 또 그런 말을 들었지?"
내 물음에 잠시 가만히 있던 베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
"쯧"
그의 말에 인상을 강하게 찌푸렸다.
아까부터 자동으로 켜지는 인과율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온다.
"해제."
나는 그의 몸에 있는 어두운 기운을 거둬들었다.
하급 세뇌따위, 쉽게 풀 수 있었으니까.
무위이화를 사용하여 베르트의 몸 속에 있는 암기(??)를 거둬들이니 이내 휘청거리며 쓰러지는 베르트.
"하아..."
마왕 바알의 편이라던 사르키스가, 기어코 일을 내는구나.
저번에 중간고사때 보자는 말을 흘려듣는게 아니였는데.
그렇게 골목길을 떠나려고 하니
파스슥...
내 오른손이 멋대로 들어지며, 베르트에게 다시 세뇌를 적용시켰다.
"허어?"
실수겠지.
내가 뭘 잘못했던 거야.
어지러운 뇌를 다잡으며 다시 암기를 빼낼려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냥 그러기 싫었으니까.
"몰라 씨발..."
며칠동안 밤을 샌 것처럼 금방 쓰러질듯 정신이 몽롱하다.
'내가 잘못본거야.'
잘못본거라고...?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수긍하고 다시 걸어갔다.
"베드야. 어디가는거니?"
"...사르키스."
그러는 도중, 골목길 끝에서 사르키스가 나타났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바라보는 사르키스...
"흐응..."
그녀는 내 뒤에 쓰러져있는 베르트를 힐끔거리더니 이내 미소지으며 말했다.
"역시 알아줬네. 기뻐...열심히 준비했는데 몰라주면 속상하거든. 가짜 용사인 베드라면 분명 알아줄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내 말에 사르키스가 여전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마치, 기계같은 미소를 지으며
"데이트 가자."
"......."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사르키스에게 왜인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심상세계에 방어막을 구현시키고 대기했지만...
턱.
사르키스가 이내 내 손을 잡았다.
레아의 따뜻한 손과는 다른 차가운 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금방 쓰러질듯이.
"다른 여자애들이랑은 놀아주면서 나랑 데이트는 안해주는거야? 나 슬퍼."
"......"
내가 그녀를 노려보니, 사르키스가 방긋 웃으며 말한다.
"구교사. 가기로 했잖아. 아직 시험까지 시간 많아."
그 말과 함께 사르키스가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아니, 싫어."
"...어째서?"
나를 따쓰하게 품어주려는 사르키스의 차가운 손을 뿌리쳤다.
"그냥 마음에 안들어서."
사르키스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려는 계략을 꾸몄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또 나중으로 미루려는 거니?"
나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르키스.
그녀는 지금 나를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을까?
한심함? 혐오? 경멸? 증오? 분노?
....모르겠다.
굳이 방해하지 않아도, 굳이 죽이려 하지 않아도.
내가 언제나 봐왔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언젠가는 답이 보일 것이리라.
또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는걸, 뒤로 미뤄지면 미래는 없다는것을 알고있었지만, 또 그렇게 생각했다.
"도망치는 것 같아."
나는 사르키스의 비웃음이 머금어진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도망치는거 맞아."
"베드야. 혹시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지 구교사로 가. 베드에게 답이 보일거야."
나는 사르키스의 호의에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레아가, 루시가, 엘린이, 에르시아가 있을 곳으로 걸어갔다.
...아직은 조금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
*****
"앗 베드! 왜이렇게 늦게 왔어?"
"몸은 괜찮나요?"
내가 A반의 대기실로 들어가니, 레아와 옆에서 열심히 점수를 따던 에르시아가 나에게 인사했다.
그와함께 몰리는 시선.
관심.
눈에 띄는 시선이 느껴져 옆을 바라보니, 저 멀리 엘린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무표정이였지만, 그 눈이 나에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응...괜찮아."
말썽을 부려대던 인과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머리아픈게 사라지니, 아름다운 그녀들의 표정이 보였지만...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자~ 그럼 모두 모인거지? A반이 가장 먼저 시험치니까 긴장 제대로 해!"
담임 알리시아 선생님의 말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웃으며 반발한다.
긴장 풀어라 하는거 아니냐. 라고.
그 말에 모두 웃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첫 경기 대련상대 : [샬롯]
"......."
유일한 2학년 조연인 샬롯이 내 대련상대라는것을 확인했으니까.
"베드야 너무 긴장하지 마."
그렇게 무표정으로 있으니, 레아가 내 옆에 와서 나를 다독여준다.
"첫 경기는 쇼 같은 거거든, 이기지 못해도 다들 이해해줄걸?"
"알겠어."
어떻게 해야할까.
사르키스로 인해 이 중간고사 중에 테러가 일어난다는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믿을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내 속을 털어놀 수 있는 사람은...냉정하게 생각해도 사르키스밖에 없다.
레아, 루시, 엘린, 에르시아, 루카스, 알리시아 선생님 등등...
말을 해도 믿지 않거나, 썩 도움이 안되거나, 나를 의심하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굳이 막아야 할까?
나는 조연들만 살리면 된다.
그리고, 조연들이 아니라 제국의 아카데미인 생도들이 크게 다치거나 많이 죽는다면 나에게도 충분히 이득이다.
내 근처에 있는 모든 학생들, 지금 웃고 긴장하는 모든 이들이 내 적이니끼.
'애초에 정말 살아있는거 맞아?'
이 세상을 만든 신이, 이 세상을 소설 속 이라고 했다.
그저 작가의 뜻대로 움직이는 무생명체들...
생명을 흉내내는 데이터 쪼가리들.
"자 그럼 모두 힘내자~!"
그렇게 생각할때쯤, 알리시아 선생님이 외쳤다.
그와 함께 먼저 나가게된 1순위가 아이들의 격려와 응원을 받으며 밝게 웃으며 떠난다.
"......."
저건 무생명체...
생명을 흉내내는 것...
"레아야 내가 몇번이였지?"
"베드가...거의 마지막인데? 아니, 마지막이다."
"그래."
아직 많이 남았다.
"베드? 어디가?"
나는 레아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주었다.
"잠깐, 내가 해야할 일이 있어."
내 차례가 오면 연락해달라는 말을 해주고, 대기실에서 뛰쳐나왔다.
와아아아아!!
이겨라아!!
거대한 콜로세움 같은 형상의 대련장.
그 건물 안에 있는 복도 안에서 민중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두 사람의 대결을 보려 온 사람들의 흥분, 희열, 광기 등등...
얼핏 보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을 보려온 것 같지만
둘 다 힘내라!!
으하하하!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고!
"하아아...."
그들의 기쁨과 웃음, 응원 등등 온갖 선한 감정들이 귓속에 파고들어 내 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이제, 저곳에, 테러가 일어난다.
이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았다.
신이 만든 세상, 주인공이 수천번 회귀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구해낸 세상.
그런 세계관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테러가 별거 없을리가 없다.
"나보고 어쩌란거야..."
무기력함이 온몸을 감싼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사르키스가 연관이 되어있다는것을 알지만...어째서인지 주동자는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테러에 한 손 받치는 것 같은 느낌.
걷는 내내 있는 경비원들과 용병, 모험가들이 의심스럽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주인공이 없는 세계에서, 이들이 이겨낼 수 있을까?
거대한 위험이 닥쳐올 것이라는것을 아는데, 그 여파가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한다.
나는 헉헉거리며 달려갔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고있었으니까.
그렇게 달려간 곳에서는
"흠? 뭐지? 바알 베드히로."
길버트, 전쟁 영웅이라는 남자가 내 앞에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상한 사람들을 봤어요."
"...그게 무슨 헛소리지?"
나는 그에게 여러차례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멍청하게 이르는것말고 할 수 있는게 없다는게 헛웃음이 나왔지만...나는 수치스러운 감정을 애써 참으며 말을 이었다.
"수상한 사람들이...테러니 습격이니 같은 소리를 하는걸 들었어요. 텔레포트로 건물 뒤에 숨어서"
"...그게 정말인가?"
그는 이 축제의 모든 생명을 책임지는 경비대장이다.
그런 책임있는 직책을 가진 자로써 아주 사소한 것도 흘려들으면 안됐다.
여러 전쟁이 그것을 증명해주었으니까.
보호대상인 생도가, 마법사인 내가 그런 말을 하니 길버트가 굳은 표정으로 묻는다.
"농담이라면, 멀쩡히 넘어가지 못할거다."
"거짓말 아닙니다."
길버트는 무전기같은 것에 입을 대고 말했다.
"수상한 자가 목격됐다는 증언이 있다. 즉시 조사하고 경비를 강화하도록."
그리 말한 길버트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가보도록."
"그것만으로는"
"아니."
길버트는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영웅만이 보일 수 있는 굳은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네가 생각하는것처럼 나약하지 않다. 이런 테러는 많이 있었거든."
그 말과 함께, 길버트는 어딘가로 걸어갔다.
"후우..."
'이제...'
나는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내심 가기 두려워서 피했던곳.
'사르키스는 그곳에 가면 답을 알 수 있을거라 했어.'
너무 믿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나는 불행이 살고 있는 곳.
구교사를 향해 달려갔다.
뒤에 있는 함성이 비명으로 바뀌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