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1.개팔자가 상팔자
* * *
그렇게 개가 되어 되살아 난지 어언 2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도 몰라 절뚝거리던게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는 어엿한 성인 개가 되어 이 근방을 내 구역으로 삼고 생활하는 중이다.
내가 자리를 잡은 곳은 내가 깨어난 상자가 있던 시장의 입구
처음에는 나를 탐탁치 않아 하던 상인들도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이 시장의 마스코트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되었다.
“베르 안녕?”
“멍!”
매일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의 인사를 받으며 시작하는 하루
일단 매일 아침 시장 주변을 순찰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다른 놈들이 나의 구역에 들어오지 않도록 소변을 뿌려 영역표시를 다시 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오! 누렁아! 오늘도 순찰이니?”
“멍!”
그리고 매일 아침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 상인 분들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누렁이’, 그리고 이곳을 오가는 젊은 학생들이나 꼬맹이들은 ‘베르’, 나는 이렇게 두가지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동네 꼬맹이 중 한명이 나를 보고 케르베로스라고 부른 후부터 이렇게 됐었지 아마?’
고딩들 말로는 인터넷에 아직도 ‘OO시장 케르베로스’ 라는 이름으로 나의 강아지 시절 사진들이 퍼져 있다고들 한다.
그 덕분에 이곳 시장이 덩달아 홍보가 되어 내가 이곳에 지낸 이후로 손님이 늘었다며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사실 처음에야 시장에 개가 돌아다니는 것을 아니꼬워 해 나에게 일부러 못되게 구는 상인 분들도 많았지만 내가 이 차디찬 땅바닥에서 연약한 강아지시절을 무리없이 보낼 수 있었던 이유도 다 상인 분들 덕분이었다.
“아! 그래, 누렁아 잠시만 기다리렴!”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가게안쪽으로 들어가 커다란 대접에 고기를 담아 가져오시는 정육점 사장님
반년 전, 내 덕에 한밤중에 이곳에 들어온 도둑을 잡은 이후로 이렇게 가끔씩 나에게 팔다 남은 고기를 주시곤 한다.
“자! 어제 팔다 남은 고기다! 마음껏 먹어라!”
“멍!!!”
그렇게 정육점 아저씨가 그릇을 땅에 내려놓자마자 그대로 돌진해 머리를 박고 고기를 씹어 넘겼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그딴 건 이미 이곳에 전생한 당일 저녁에 신문지에 잘 싸서 분리수거까지 모두 마쳤다.
‘너희들이 눈물 젖은 음식물 봉투의 맛을 알아!?’
거기다가 어차피 내가 살던 세상도 아닌데다 지금의 나는 누가 보더라도 그냥 덩치가 좀 큰 귀여운 개일 뿐이었다.
개가 개처럼 군다는데 뭐라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이곳이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
그건 간단하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마법을 사용하니까.
“으이구… 천천히 좀 먹어, 입 주변에 다 묻었잖니”
“멍?”
“그래 그래, [클린]”
간단한 시동어와 함께 나의 입 주변에 붙어있는 핏물과 작은 고깃조각들을 한번에 씻어낸 사장님
이렇게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크고 작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파이어볼]이라거나 [헤이스트]라거나 하는 그런 판타스틱적인 것은 아닌
조그마한 불을 붙인다거나 도마를 깨끗하게 닦을 수 있다거나 하는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자잘한 것들 뿐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사장님이 준 고기를 모두 먹고는 나는 순찰을 계속했다.
물론 이 시장의 크기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기에 단순히 살펴보는 것이라면 그리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지만 아쉽게도 시장 분들의 인심은 잘 가던 나의 발을 멈춰 세우기 충분했다.
방금 막 부친 전들을 나눠주는 전집 사장님이나
동물이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수다를 시작하는 나물을 팔러 온 할머니
어제 팔리지 않는 족발의 뼈를 나눠주시는 족발집 아저씨
거기에 장을 보러 온 엄마와 함께 시장에 온 어린 꼬마까지
그렇게 장장 2시간 동안의 긴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다시 시장의 입구에 앉아 방금 전 족발집 사장님이 주신 뼈를 씹어 먹으며 평화로운 오전을 지냈다.
물론 정육점 사장님이 주신 자투리 고기도 맛있었지만 족발집 사장님이 주신 뼈에는 간장 국물이 잘 배어 있어 간도 적당하고 뼈 특유의 고소함까지 전해져 맛있는 간식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적당히 자리를 잡고는 여유롭게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여유로운 일상
이런 대낮에 여유롭게 낮잠을 잘 수 있다니 인간시절에는 꿈도 꾼 적 없는 호사였다.
솔직히 처음 이곳에 전생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어기적대고는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사람이었을 때보다 훨씬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물론 손발이 없는 건 가끔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게 편하게 잠을 자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자니 어느새 시간이 지나 학생들이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나가면서 한두번씩 나에게 인사를 하면 나는 꼬리를 흔들며 답해준다.
그러자 하나 둘씩 나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하는 시장 사람들
나와 사장님들의 공생관계가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베르야, 안녕~”
“멍!”
“으으… 그냥 데려다 키우고 싶다…”
“그럼 너 엄마한테 죽을 걸?”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몇 번 나를 쓰다듬거나 같이 사진을 찍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는 사라지는 사람들
장사라는 것도 말처럼 쉬운 건 아닌 모양이다.
물론 시장 입구에 자리를 깔고 있는 분식 포차의 사장님은 기분이 좋은 것인지 어묵 몇 개를 꺼내 나에게 주셨다.
“이거 우리 누렁이 덕분에 오늘도 이 아저씨가 많이 버는구나!”
“멍!”
“하하하!!!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라!”
그렇게 따뜻하고 감칠맛 넘치는 어묵을 먹고 있는 와중
저벅저벅
“!!!”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나는 바닥에 있는 어묵을 한입에 삼키고는 꼬리를 흔들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헥헥헥!!!”
“어? 베르! 기다리고 있던거야?”
“멍!”
그러자 그곳에는 한 소녀가 평소와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미래
그녀는 어째서인지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
그래서인지 사람이 없는 한가한 시간마다 매일 시장에 들리다 보니 나와 친해졌다.
“잠시만 기다려, 오늘도 너한테 줄게 있거든!”
“멍?”
그러면서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는 그녀
그녀는 얼마 안가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서는 내게 주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작고 검은 무언가, 초콜릿이었다.
“어? 아가씨! 개한테 초콜릿 먹이면 안돼”
나와 그녀를 보고있던 포차의 사장님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그런 사장님의 말에도 당당한 얼굴을 하며 말하는 그녀
“걱정 마세요! 이건 강아지용으로 만든 수제 초콜릿이거든요! 개가 먹어도 괜찮아요”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이 초콜릿에서는 다른 초콜릿과는 달리 달거나 씁쓸한 냄새만 아닌 고소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육향이 섞여 있었다.
그 냄새를 맡고 잠시 고민을 한 나는 그대로 그녀가 건내 준 초콜릿을 씹어 삼켰다.
‘사나이 김댕댕,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런 미소녀가 만들어준 수제 초콜릿을 거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까짓거 죽기 밖에 더하겠냐는 마음으로 그것을 씹어 삼킨 그 순간, 그 초콜릿은 말그대로 나의 미각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처음에 느껴지는 혀가 녹을 것 같은 달달함과 그런 단맛을 보조해 주고 입맛을 돋구는 약간의 쓴맛 거기에 초콜릿을 씹을수록 강해지는 감칠맛에 나의 입안은 말그대로 홍수가 일어난 것처럼 침이흘러나오고 있다.
그렇게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초콜릿을 먹어 치우고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헥…헥헥…”
‘이런 초콜릿을 직접 만들었다고? 결혼해 주세요!’
진담 반, 장난 반의 속마음을 담은 눈빛
그러나 당연히 그녀가 나의 속마음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그저 환하게 웃으며 나를 쓰다듬었다.
“맛있었어?”
“멍!”
“후후… 그래, 그럼 다음에도 또 해줄게”
나는 그런 그녀에 손길을 따라 그녀의 품에 안겨 마구잡이로 몸을 비볐다.
그러자 그녀도 기분이 좋은 것인지 나의 온몸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나 기분 좋은 시간은 빨리 지나가기 마련
어느 새인가 어둑어둑 해진 하늘
그녀는 그런 하늘을 바라보고는 아쉽다는 듯이 나에게서 손을 때고는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을 고쳐 잡았다.
옷은 이미 개털로 범벅이 되었는데, 딱히 상관 없는 걸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는 이만 가볼게”
“끼이잉…”
물론 헤어지기 싫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감정에 솔직한 나의 꼬리는 이미 푹 내려가 바닥을 쓸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는 한번 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그녀
“너무 그렇게 실망하지 마, 내일 또 만나면 되지”
“멍!”
“그래, 내일 다시 보자 베르!”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후다닥 집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나는 일단 남은 초콜릿을 모두 먹어치우고는 다시 한번 시장을 순찰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나는 내일을 위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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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르르…”
그렇게 잠을 자고 있던 와중
어디선가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가 들린 나는 잠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해가 채 뜨지 않은 새벽
그러나 그곳에는 그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행인 한 명 뿐이었다.
‘그냥 취객이었나…’
개가 되고 인간에 비해 우월한 오감을 가지게 된 것은 좋았으나 이렇게 가끔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것은 꽤나 불편했다.
그렇게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다시 잠에 들려는 그때
비틀거리면서 걸어가던 그 행인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
그 순간 갑자기 온몸에 털이 솟구치는 듯한 이 소름 돋는 감각
“크르르르….”
나는 본능적으로 경계 자세를 취한 채 그 행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제서야 보이는 어색한 행인의 모습
처음에는 그저 취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서는 단 한 방울의 술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거기다 눈동자조차 보이지 않는 저 새하얀 눈을 볼 때마다 본능적으로 뛰쳐나가려는 것을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온몸을 곤두세우고 그를 주시한 것도 잠시
저벅...
그가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