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2. 개도 기르면 은혜를 안다
* * *
“크르르르…”
그가 다가올수록 조금씩 강렬해지는 공포감
언뜻 보기에는 그저 술 취한 아저씨 마냥 비틀거리는 행인 같아 보이지만, 그런 그에게서 나는 마치 덫에 물린 쥐가 된 기분이 들 정도로 강렬한 살기가 나의 온몸을 짓눌렀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이곳에서 도망친다면 아직 안쪽에 남아있는 상인 분들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개가 된 영향일까
이성적으로는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먼저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개로서의 본능이 나를 이 자리에 굳건히 서있게 만들었다
“컹!!!컹!!!”
위협의 신호로 그를 향해 짖기 시작하는 나
당연하게도 그는 나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터덜터덜 걸어올 뿐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울음소리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녀석 뿐만이 아닌 시장 안쪽의 상인분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였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더욱 큰소리로 짖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시장, 그 안쪽 깊숙한 곳까지 나의 울음소리가 퍼져나갈 수 있도록
“뭐야... 누렁아… 아침부터 뭔 일이냐?”
그러자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하나 둘씩 모여드는 상인 분들
지난 2년간 내가 이렇게 강하게 짖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기에 안에 있던 상인 분들이 깜짝 놀라 모두 몰려온 것이다
그분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마구 짖기 시작하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이고, 누렁아… 평소에는 안 그러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냐, 사람한테 막 짖고 그러면 안돼”
그러다 결국 내가 짖는 것을 멈추기 위해 정육점 사장님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그 순간
지금까지 느릿느릿 움직이던 녀석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는 사장님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왔다
“크르륵!!!”
“멍!!!”
인간의 입에서 나올 리 없는 마치 굶주린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포효 소리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사장님과 그 녀석의 사이에 끼어들고는 그대로 그의 팔을 베어 물었다
“아악!!!”
그러나 이미 움직인 그의 팔을 막기에는 역부족 이었던 것일까
그의 손톱이 사장님의 팔에 긴 자상을 남겼다
“정사장!!!”
“이봐! 일단 다들 저 사람부터 막아!!!”
그 모습을 보자 이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상인 분들이 하나 둘 그 남자에게 달라 붙어 그를 제압했다
4명은 되는 사람들이 들러붙었는데도 막기 힘들 정도로 강하게 발버둥을 치는 녀석
내가 물고 있는 오른손도 조금이라도 힘을 풀면 바로 뛰쳐나갈 것만 같았다
“으드득…”
뼈가 씹힐 정도로 강하게 물고 늘어지는 와중에도 팔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을 제압하려고 하는 상인 분들이 지치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씩 몸에 녀석의 손톱으로 인한 상처가 늘어가고 있었다
“그르륵…”
이제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까지 어떻게든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하는 녀석을 보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렇게 20분가까이 이어지던 길고 긴 싸움
이미 시장의 입구는 상인 분들과 이 녀석이 흘린 피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마치 범죄현장을 보는 듯 했다
이 녀석도 이젠 지친 것인가, 몸을 움찔거리는 기색은 있었지만 처음과는 달리 거의 반항도차 하지 못하고는 그대로 사람들의 무게에 눌려 그저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끼이익!!!
“신고받고 찾아왔습니다! 잠시 비켜주세요!!!”
그제서야 도착한 경찰차에서 다급하게 내리며 소리치는 경찰들
나는 그제서야 한참동안 물고 있던 녀석의 오른팔을 놓아주었다
“끼이잉…”
기절한 것인지 축 늘어진 녀석을 경찰차에 태우는 것을 두 눈으로 본 순간 겨우 긴장이 풀린 것일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낑낑대고 있었다
너무 오래동안 물고 있던 영향인지 턱이 빠질 듯이 아려왔고 녀석이 흘린 피로 범벅이 되어 비릿하고 기분 나쁜 짠 내가 입안에 가득 남아있었다
“고생했다 누렁아… 너 아니었으면 진짜 사람 하나 골로 갈 뻔 했구나”
그런 나를 쓰다듬어 주시는 정육점 사장님
사장님의 왼팔은 일단 응급처치를 마쳤다고는 하지만 녀석의 손톱으로 인해 살이 뭉텅이로 찢겨나가 깊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아… 이건 별거 아니란다! 누렁이 너는 모르겠지만, 원래 정육하는 사람들한테 이정도 상처는 상처도 아니야! 진짜다?”
나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사장님은 오히려 자신은 괜찮다면서 강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왼팔이 덜덜 떨리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건만, 그럼에도 계속 괜찮다 말하는 사장님은 오히려 [클린]을 사용해 내 입에 묻어있는 핏자국들을 말끔히 없애고는 유유히 시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시장 입구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조사를 시작한 경찰들과 참고인으로 남아있는 상인 몇 분들 뿐
나는 그런 사람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지친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다시 자리로 돌아가 그대로 쓰러지다시피 자리에 누워버렸다
‘아침 순찰… 가야 되는데…’
그러나 그런 나의 이성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시아를 가리는 눈꺼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의식은 마치 수면 아래의 물고기처럼 완전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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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마치 땅이 꺼질 것만 같이 김은 한숨을 내쉬며 걸어가는 한 소녀
그녀의 얼굴에는 그저 지루함과 우울함만이 가득 담긴 채 마치 만사에 귀찮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학교 가기 싫다…’
한국의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나이와 학력을 불문하고 모두가 원한다는 자그마한 소망을 속으로 삼키며 그녀는 오늘도 천천히 학교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그녀는 오늘도 은근슬쩍 학교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녀
그 앞에는 어느 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그녀와 친해진 ‘베르’라는 이름의 개였다
‘오늘은 운이 좋네’
그 개가 매일 아침 일어나 시장을 한바퀴 돌며 순찰 한다는 사실은 상인분들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학교를 가는 시간에는 자리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같이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혹시나 있나 없나 하는 마음으로 시장을 바라본 지도 슬슬 1년이 넘어갔다
어찌나 부지런 한지 이런 아침에 자고있는 그 개를 본 것이 지금까지 단 세번 뿐
그렇기에 오늘은 그녀에게 있어서 매우 운이 좋은 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기분에 따라 덩달아 빨라지는 발걸음으로 인해 눈깜짝할 새에 도착한 학교
그렇게 시작한 지루한 수업시간
그녀는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 만든 것도 좋아해 주려나…’
그러면서 책상 밑에서는 베르에게 줄 강아지용 초콜릿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제와는 달리 단맛보다는 육포의 비중을 늘렸기에 베르는 어쩌면 이쪽을 더 좋아 할지도 몰랐다
이 초콜릿을 받고 좋아할 베르를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
마치 발렌타인데이 때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순수한 여자아이처럼
자신의 초콜릿을 받고 좋아해주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미 베르에게 반한 듯 속으로 웃으며 계속 그를 상상하는 그녀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반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웃긴 이야기였지만
최소한 그녀는 그 강아지를 보고는 한번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아아… 차라리 우리 집에서 키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디 좁은 아파트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그런 좁은 곳에서 베르와 같은 대형견을 키울 환경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거기다 베르는 이미 이곳 시장을 자신의 구역 삼아 자리를 잡은 상태
베르가 그곳을 버리고 자신에게 올 확률은 말그대로 0%에 가까웠다
“하아…”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쉬는 그녀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매일매일 사람이 없는 시간을 틈타 베르를 독점하듯이 놀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빨리 수업이 끝나기를 기도하면서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던 와중
삐이
갑자기 들려오는 기계음, 평소에는 종소리 이외에는 들리지 않던 스피커에서 한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교내 학생들에게 알립니다! 전교내 학생들에게 알립니다! 지금 교내에 신원불명의 괴한이 침입했습니다, 교내 학생들은 안전을 위해 신속히 강당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뭐야? 갑자기”
“아이씨… 귀찮게 오라가라야…”
“하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방송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방송의 내용을 모두 들은 학생들은 지금 당장 강당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불평불만을 토로하면 하는 수 없이 하나 둘 일어나 교실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한번에 너무 많은 인원이 복도에 몰린 탓일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학교의 복도는 마치 만원 지하철과 같은 상태가 되어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들이 겨우겨우 아이들을 천천히 인도할 정도였다
그렇게 마치 한 마리의 커다란 애벌레 마냥 꿈틀거리며 이동하기를 수분
슬슬 옆에 있는 남자들의 땀냄새에 짜증이 몰려오려고 하는 순간
쩅그랑!!!
어디선가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높고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