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3. 복날 개패듯 한다
* * *
“끄응…”
그렇게 마치 탈진 한 듯 쓰러져 잠들어버린 사이 벌써 몇시간은 흐른 것일까
이미 태양은 나의 머리 위를 지나 오후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아악!!!”
“자... 잠깐 정사장 정신차려!!!”
“!?”
그러나 그런 여유로운 하늘과는 달리 비몽사몽한 나의 귀에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졸린 기운을 기운을 억지로 떨쳐내고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나의 눈앞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철물점 아저씨의 모습
“멍!!!”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뛰쳐나가서는 사장님을 이렇게 만든 녀석의 팔을 물어뜯었다
“누… 누렁아!!!”
그런 나를 보며 아저씨는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바닥에 쓰러진 채 나에게 소리쳤다
“누렁아 빨리 도망쳐!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멍!?”
다짜고짜 도망치라고 하는 아저씨의 외침
나는 그런 사장님의 말에 의아해 하며 사장님을 이렇게 만든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장님을 이렇게 만든 녀석의 외관이 꽤나 익숙해 보였다
펑퍼짐하고 싸구려처럼 보이는 시장제 옷과 하얀 앞치마에 온몸에서 나는 꾸릿꾸릿한 생고기의 냄새, 거기에 목장갑과 비닐장갑을 동시에 낀 커다란 양손까지
아저씨의 피로 온몸이 범벅이 되어버려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분명히 정육점 사장님이었다
“끼이잉…”
그 모습을 보자 나는 당황하여 그대로 입에 문 그의 팔을 놓아버릴 수 없었다
개에 본능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성격 때문일까
평소 친하게 지내왔던 사장님의 팔을 물어버렸다는 것만으로 나는 패닉 상태에 빠져 머리가 하얗게 변해 몸이 굳은 채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누렁아!!!”
그런 나를 보며 소리를 지르는 철물점 아저씨
내가 그 소리를 듣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정육점 사장님의 발이 나의 배에 닿은 후였다
퍽!!!
“깨갱!!!”
그렇게 사장님의 발차기에 날아가버린 나는 그대로 벽에 등을 박고는 축 늘어져 버렸다
‘이… 이게 무슨….’
내가 아무리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 개라고는 하지만 이래뵈도 대형견이다, 딱히 재 본적은 없지만 최소 3~40kg은 될 터
그런데 정육점 사장님은 그런 나를 마치 축구공 마냥 차버려 벽에 박아버렸다
얼마나 강하게 박은 것인지 순간적으로 시야가 하얗게 물들어 버리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딘가 이상한 상황
나는 일단 가쁜 숨을 내쉬며 겨우겨우 일어나 다시 한번 나를 날려버린 정육점 사장님을 바라보았다
오늘 새벽 시장 앞에서 만났던 그 녀석에게 느껴졌던 공포감, 그것과 비슷한 살기가 사장님에게서 느껴졌다
“크륵…”
저 사람은 이미 사장님이 아니었다
방해꾼이었던 내가 사라지자 다시 철물점 아저씨에게 달려드는 사장님
나는 그런 사장님을 막으려고 했지만 방금 전의 충격으로 한발자국 내딛는 것조차 힘들었다
“누…렁아…”
사장님에게 덮쳐진 상태에서 나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방금 전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공포감 때문일까
나의 몸은 아까부터 마치 온몸이 쇠사슬에 묶여버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으드득...끄득…
“아아악!!!”
그런 나의 앞에서 마치 사냥을 마친 맹수와도 같이 아저씨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사장님
어떻게든 사장님을 떼어놓기 위해 발버둥치던 아저씨의 움직임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저씨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바닥을 적시며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 때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움직임을 멈춘 아저씨
“크아아아!!!”
사장님의 모습을 한 무언가는 마치 자신이 사냥에 성공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허공을 향해 포효하고는 그대로 아저씨를 남기고는 자리를 떠나갔다
그러나 나는 사장님이 떠나간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순간에도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비릿한 피 냄새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자꾸만 다리에서 힘이 빠져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어떻게든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의 기어가다시피 시장의 밖으로 나가려 하는 그 순간
으득…
“!!!”
아저씨가 쓰러져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다시 한번 그 자리에 굳은 채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으득…으드득…
그러자 마치 관절과 관절이 어긋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저씨
사장님에게 물린 상처에서는 이미 새살이 돋아나며 빠르게 상처부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상처가 낫는다기 보다는 마치 상처부위를 억지로 뒤덮는 것 같은 기괴한 현상에 나는 자연스럽게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것인지 마치 썩은 음식 위를 기어 다니는 구더기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저씨
그러나 그런 인간답지 않은 괴상한 움직임이 더욱 공포감을 가중시켰다
마치 온몸에 피가 거꾸로 쏟는 듯한 기묘한 감각
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온몸에서 땀이 나고 숨이 가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째서 나의 다리에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것인지
나는 자꾸만 힘이 풀리는 다리를 속으로 욕해가며 조금씩 밖을 향해 기어갔다
그러나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도 그저 조용히 크르릉 거릴 뿐 덮쳐오지 않는 아저씨
‘뭐…뭐지?’
만약 덮친다고 한다면 이렇게 내가 약해져 있을 때가 최적기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아직 의식이 남아있는 것일까
하는 다소 희망적인 망상을 펼쳐 보기도 했지만 지금 아저씨의 저 눈동자조차 사라진 하얗고 흐리멍텅한 눈동자에는 다른 놈들과 같이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설마…’
나는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나의 주변에 있는 괴물 놈들은 세 마리
그들은 모두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저 크르릉거리며 의미 없이 절뚝거릴 뿐이었다
‘아아… 그런가…’
이놈들은… 인간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거구나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가 녀석들과 싸웠을 때는 대부분 내가 먼저 그들을 물었던 경우뿐
아마 그들에게 있어 나는 방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겠지
그렇다면 최소한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면 공격당할 일도 없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온몸을 감싸던 공포감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최악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은 상황
나는 일단 최소한 다친 몸을 편히 쉴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라도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거의 기어가듯 걸어갔다
[속보입니다, 현재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사태에 대해…]
이미 피범벅이 되어버린 한 가게의 조그마한 TV에서 흘러나오는 이름 모를 기자의 목소리
방금 까지만 해도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던 비명소리는 마치 한순간의 악몽이었다는 듯이 고요해진 시장의 모습
으득…. 으드득….
그러나 아직까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만이 지금의 상황이 악몽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차라리 진짜 악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방금 까지만 해도 화창해 보이던 파란 하늘은 어느새 붉은 핏빛으로 변해 나를 삼키는 것만 같았다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힘들었던 나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일단 문이 열려있는 아무 가게에나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어느 한 떡집
다행히 밖에 있는 녀석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천천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꼬르륵…
그렇게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긴장이 풀린 것인지 배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
생각해보면 새벽부터 지금까지 쌀 한 톨도 먹지 못한 채 이렇게 구르고 있었다
“끼이잉…”
그렇게 내가 배가 고프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방안을 은은히 채우는 달콤한 떡 냄새
나는 일단 이빨로 봉지를 대충 뜯어버리고는 진열대 위에 있는 떡들을 마구잡이로 입안에 쑤셔넣었다
‘이 와중에도 배가 고플 줄이야’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의 몸은 열심히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입을 움직였다
마치 꿀이라도 바른 듯 달콤하고 따뜻한 가래떡과 절편, 고소한 콩고물에 범벅이 된 인절미에 구수한 시루떡,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콩떡마저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마치 산해진미라도 되는것처럼 나의 입을 만족시켜 주었다
그렇게 떡을 집어 먹은 나는 겨우겨우 주린 배를 채우고는 그대로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배가 가득 찬 것과는 별개로 아직 충격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커다란 미닫이 문을 겨우겨우 닫고는 본래 떡집 아주머니가 앉아있었을 방석 위에 엎드렸다
문의 잠금장치를 잠그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의 생각이 맞다면 일부러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덮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끄으… 어딘가 부러진 것은 아니겠지…’
물론 그랬다면 여기까지 기어오는 것도 무리였을 터이니 설마 어딘가 부러진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방금 전의 장면으로 너무나 긴장하고 있었던 것일까
다리를 한번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마치 온몸에서 비명을 지르듯이 뼈마디와 근육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설마 개가 되고 나서도 근육통을 느낄 줄이야…’
아마 근육통이라기 보다는 환상통에 가까운 통증일터이다
마치 다리를 절단한 군인이 상처가 아문 후에도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듯이
나는 이미 통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뇌와 몸이 그때의 통증과 공포감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길…’
방금 전의 상황을 상상할 때마다 머리와 온몸의 관절이 지끈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내가 살다 살다 트라우마에 걸리게 될 줄이야
그나마 이미 한번 죽었던 경혐이 있었기에 이렇게 자각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일까
‘으으… 일단 더 이상 이런 건 생각하지 말자…’
방금 전 뉴스에서 들은 대로라면 이곳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루어진다면 모를까, 만약 때를 놓치게 된다면 정말로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좀비 사태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도 있는 상황
나는 일단 지친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어지러운 머리를 애써 떨어내고는 그대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하아… 일어난지 얼마 안됐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