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 속 댕댕이가 되었다-18화 (18/51)

〈 18화 〉 17. 덤 앤 더머

* * *

“야”

“형이라고 부르라고 새끼야”

“그럼 형 노릇을 하던가”

“이 새끼가?”

언제나와 같이 시덥지 않은 시비를 걸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두명의 모습

190의 덩치에 100KG이라는 거대한 덩치와 170에 56KG이라는 다소 왜소한 체격의 두 남자는 언뜻 보기에는 너무나도 달라 보였지만 마법이 쇠퇴한 이후로는 희귀해진 보라색의 눈동자가 그 둘이 형제라는 것을 나타내 주었다

그날의 사건이 있은 후로부터 어언 18일째

다행히 주로 자택근무를 위주로 하는 첫째 덕분에 집안의 음식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기에 그들은 심심하단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 불편하지 않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 벌써 쌓였냐? 뭐 자리라도 비켜주랴?”

“닥쳐, 그냥 심심해서 부른거니까”

그렇게 오늘도 언제나와 같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서로 농담 따먹기나 해대면서 심심함을 조금이라도 달래 볼까 하던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악!!!!!!”

“!?”

“씨바 뭔소리야!?”

문 밖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비명 소리

그 소리는 텅 빈 아파트의 복도를 몇 번이고 울리며 점점 늘어지고 울리며 본래의 비명소리보다도 훨씬 섬뜩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치 어릴 적 엄마에게 속아 처음으로 귀신의 집에 들어갔던 것처럼 등에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갑작스럽게 들려온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누워있던 자세 그대로 얼어버린 둘

그 둘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마치 텔레파시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 없이 대화하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뭔 소리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거 확인해봐야 하는거 아니냐?’

‘미쳤어? 드디어 미쳐버린거야? 아주 그냥 좀비한테 제발 나 좀 물어주세요~ 하고 빌기라도 하지그러냐!?’

‘그래도, 방금 전 목소리 들어보니까 사람인 것 같던데…’

‘아 몰라 갈꺼면 형 혼자…’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또다시 싸우기 시작한 둘의 말을 가로막듯이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비명에 둘은 이번에는 숨소리도 나오지 않도록 아주 입까지 막아가며 철저하게 소리를 죽였다

그렇게 거실에 가만히 누워있기는 어느새 30분

다행히도 그 소리는 다시는 들리지 않았다

“파하…. 죽는 줄 알았네…”

그제서야 안심한 것인지 겨우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둘은 비명소리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역시 좀비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아니야, 저건 확실히 인간, 그 중에서도 남자목소리였어”

“그럼 좀비한테 습격당한건가?”

“그럴수도 있지”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 한다고는 해도 결국에는 추측일 뿐

그 무엇도 그 둘의 궁금증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하던 와중, 결국 하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되겠어, 한번 가봐야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잘 들어, 지금 이 상황은 우리에게 있어 말그대로 비상상태야, 지금과 같이 조금의 정보라도 필요한 상황에서는 결국 이르나 늦으나 언젠가는 한번 정찰을 나갔어야 했어, 그러니 지금이라도 한번

가봐야지”

갑작스럽게 진지해진 그의 표정, 거기다 확실히 그가 하고 있는 말은 언뜻 들어보면 그리 틀린 말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를 18년 동안 봐온 두리는 알 수 있었다

한껏 진지한 것처럼 무게를 잡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마치 작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저 작고 예쁜 보라색 눈동자를

호기심과 모험심의 가득 찬 저 두 눈을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 저 남자를 그는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딴 건 됐으니까 빨리 밥이나 먹어!!!”

“어? 버… 벌써?”

“벌써는 개뿔, 이제 7시 다 되 가거든?”

“쩝… 알았어”

그렇게 일단은 밥을 먹이는 것으로 그의 말을 멈추게 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마치 5살짜리 아이를 돌보는 것 같은 이 피곤한 느낌

왠지 오늘따라 부모님이 더욱 보고싶었다

그렇게 마치 게눈 감추듯이 밥을 싹 비워버리고는 그대로 자신에 방에 가서 누워버리는 하나

‘아마 내일 아침 내가 일어나기 전에 몰라 나갔다 올 생각인가보네… 하아…’

제 딴에는 아마 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아쉽게도 그의 상대는 자신의 어머니 다음으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신의 동생이었다

“정말이지… 저게 진짜 22살은 맞는거야?”

그래도 일단은 내일 아침 일찍 나가는 것을 막아야 했기에 그도 자신의 형을 따라 일찍 잠에 들기로 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빌어먹을 아포칼립스라는 녀석 덕분에 그저 숨을 쉬고 있는 것 만으로도 힘들고 지쳐갔기 때문에 언제 잠자리에 들더라도 금방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내일 아침 자신의 형을 어떻게 조져버릴 수 있을지를 생각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호기심 하나에 생각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진짜 그 소리는 뭐였지?’

결국은 형제는 형제라는 것일까

그 자신도 신경 쓰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까지 자신의 형과 함께 나누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박혀 떠나가지를 않았다

‘하아…. 씨바…’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무시하고 자려고 해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의문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겨우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다음날 새벽

역시나 자신의 예상대로 나 몰래 밖으로 향하려는 것인지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야”

“어? 엉!?!? 이… 일어났어?”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깜짝 놀란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나 우왕좌왕 하기 시작한 하나

두리는 그런 그를 보며 작게 실소를 퍼트렸다

“저기 두리야, 그게 아니라… 내가 잠깐만 보고 오려는 거거든? 그러니까 아주 살~짝! 들키지도 않게 조심히…”

“하아… 내 이럴줄 알았다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툭…

그렇게 자신에게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 형에게 무언가를 던지듯이 건네는 두리

하나가 받은 것은 마치 창고의 공구 상자에서 찾은 커다란 파이프 렌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형 혼자서는 불안해서 안 되겠더라고, 나도 같이 좀 가자”

그렇게 자신에 어깨에 야구방망이를 들고는 그는 자신의 형을 일으켜 세웠다

***

그렇게 인사를 마친 우리과 그들은 일단 서로 준비를 하기 위해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1503호, 우리가 있는 14층과는 불과 한 층 밖에 차이나지 않는 곳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비명소리를 듣고 내려왔겠지’

물론 그들이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층수가 가까운 것 보다는 그 놈 때문에 문이 박살이 나버린 바람에 방음이 하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 더 컸을 것이다

아무튼 일단 그들의 집으로 가기 위해 급하게 짐을 싸기 시작하는 나와 그녀

물론 손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참치캔과 같은 작은 물건들을 옮기는 것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녀는 안방에 있던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들고 와서는 그대로 그 안에 물건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짐을 싸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그녀가 무엇을 그리 집어넣나 살펴보았지만 화장품이나 세면 용품들을 집어 넣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두꺼운 옷들을 위주로 캐리어를 채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수도도 끊긴 상황이기에 세면도구 같은 것들은 그리 필요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식수가 풍부하더라도 결국 혼자서 모을 수 있는 물의 양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아마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서 저렇게 짐을 챙기는 것이겠지

그녀는 그 후로 여러 속옷들과 수건 정도를 챙기고는 간단하게 짐 정리를 끝냈다

생각보다 훨씬 거침없는 그녀의 태도

솔직히 아무리 한층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소중한 물건은 한 두개라도 챙길 법 하건만, 그녀는 그저 지금까지 적어온 그녀의 일기를 한 손에 쥐고는 아무런 미련없이 캐리어 안을 적당히 채워 넣었다

물론 아직 남아있는 식량과 최소한의 식수를 넣어야 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짐을 다 싼 그녀는 지친 것인지 크게 한숨을 쉬고는 미리 꺼내 놓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녀의 머리색과 비슷한 빨간 츄리닝을 입고는 그대로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는 그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마치 몇 달은 집에서 놀고 먹은 것 같은 백수 같은 꼴이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퇴폐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외모와 지퍼가 터질 것만 같은 그녀의 크기에그 무엇보다 건전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봤던 츄리닝이라는 복장에서 야시꾸리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짐을 싸는 와중에도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그저 묵묵하게 캐리어를 끌고 나가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조심히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나오셨네요? 짐은 저한테 주세요”

그러자 마침 우리를 마중 나오고 있었던 것인지 위에서 내려오던 두리씨

그는 낑낑대며 겨우겨우 계단을 올라가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캐리어를 빼앗아 들고는 그대로 위를 향해 올라갔다

그러자 멍하니 그런 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본래 자신이 살던 집을 잠시 보고는 그대로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역시 아직 미련이 남아있던 것일까, 그녀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조금 붉은 것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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