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 속 댕댕이가 되었다-19화 (19/51)

〈 19화 〉 18.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 * *

“일단 들어오세요”

“…네”

그렇게 두리의 뒤를 따라 들어간 둘의 집은 생각보다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물론 오래동안 남자만 지내왔기 때문에 풍기는 그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방향제라도 뿌린 것인지 그리 심하게 나지는 않았다

우리를 안내해준 두리는 미래의 캐리어를 들고는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뭐… 짐 정리가 안 되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서 지내는데 문제는 없을 거에요”

그를 따라서 들어간 안방

미래의 집과 같이 커다란 작은 화장실까지 달려있는 그 방은 부엌이 없는 것을 제외한다면 원룸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커다란 방이었다

본래라면 그들의 부모님이 사용하시던 방이었을 터

그녀를 들여보내는 두리의 얼굴도 마냥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괜찮으세요?”

“네, 뭐… 어차피 미래씨를 데려 오기로 한 시점부터 쓸 방은 여기 하나뿐이니까요, 아마 미래씨가 안 오셨으면 아마 이 방은 그대로 먼지만 쌓여갔을 겁니다, 그런거에 비하면 차라리 이게 훨씬 낫죠…”

걱정스러운 듯이 묻는 미래의 물음에도 꽤나 덤덤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은 의젓해 보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어딘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부모를 잃은 슬픔

그것이 어디 하루이틀이 지난다고 사라질 슬픔일까

거기다 이렇게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존재하는 부모님의 흔적을 자신의 손으로 포기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덤덤하게 말하는 와중에도 점점 붉어지는 그의 눈동자만이 그 슬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크흡!!! 아무튼 앞으로는 여기서 지내시면 돼요, 그럼 저는 일단 형이랑 같이 정리할게 남아있어서 그만…”

결국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던 것인지 그는 코를 훌쩍이며 서둘러 말을 마무리 하고는 그대로 안방을 나가버렸다

“좋은 사람이네… 그치?”

‘동감이야’

그렇게 밖으로 나간 그를 바라보고는 캐리어를 풀고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캐리어에서 나온 여러가지 속옷들과 옷가지들

그녀는 일단 이것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일단 침대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고는 방의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옷장으로 다가갔다

마치 처음부터 벽에 붙어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두개의 옷장은 마치 오늘 아침에 옷을 갈아입고는 미쳐 닫지 못한 것처럼 아주 살짝 연린 채로 안에 있는 옷들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일단 그녀가 가져온 옷들을 넣기 위해 옷장의 문을 완전히 열자 그 안에서 나오는 수십개의 옷들

하나와 두리의 어머님이 쓰시던 옷장이었던 것일까, 더 이상 들어갈 곳이 보이지 않은 채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옷들의 모습에 처음에는 커다랗다고 생각한 옷장의 모습이 오히려 작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설마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던 것인지 이 많은 옷들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 안방의 문을 두드리면서 안에 있는 우리를 불렀다

똑똑

“혹시 지금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아… 네!!! 들어오세요!!!”

약간은 까칠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두리의 목소리와는 달리 굵고 크게 울리는 하나의 목소리

그는 들어오라는 미래의 말을 듣고는 어수룩한 표정을 지으면 안방으로 들어왔다

“방금 전에 동생 놈이 울면서 나오는 것 같아서요, 혹시 아직 설명 못 해준게 있나 싶어서요”

“아… 네…”

190정도는 되는 듯한 거대한 키에 두툼한 몸집

안 그래도 또래들에 비해 키가 작은 편인데다 몇일 동안의 고생으로 마르기까지 한 미래의 옆에 서 있자니 마치 판타지에 나오는 거인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비벼볼만한게 있다면 가슴사이즈 정도려나?

“혹시 필요하신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아… 그럼 혹시 커다란 박스 같은 것 없을까요?”

“박스요?”

“네, 그… 옷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눈으로 자신의 뒤에 있는 옷장을 힐끔 거리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그도 상황을 이해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디선가 커다랗고 파란 플라스틱 상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마치 이삿짐 센터에서나 볼 것처럼 생긴 사각형의 상자는 다행히 옷장에 있는 옷들을 모두 넣을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상자는 몇개 더 있으니까 옷장안에 있는 옷 다 넣으시고 나서는 다른 물건들도 쓰실 것 빼고는 넣어주세요”

“네? 그래도 되나요?”

“뭐… 안될건 또 어디 있습니까? 어차피 이제는 쓸 사람도 없는데, 아니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 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옷장 정리

미래와는 달리 힘이 좋은 하나가 있는 덕분에 정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으나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어머님의 옷들에 처음에는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상자를 결국 두 개나 더 가져오는 작은 헤프닝이 있었다

다행히 그런 어머님의 옷장과는 달리 끽해야 셔츠 몇 벌이 전부인 것 같은 아버님의 옷장 덕분에 다시한번 상자를 가져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아직 두 분들의 남은 물건을 정리해야 했기에 결국은 상자를 하나 더 가져와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4번째 상자를 겨우 채웠을 즈음에야 겨우 끝난 안방의 정리

미래는 결국 정리를 마치자 지쳐버린 것인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후우… 그럼 일단 쉬고 계세요, 저녁 준비가 끝나면 부를게요”

“네...감사해요..."

"뭘요"

그렇게 비틀거리는 미래를 보고는 그녀를 쉬게 하려는 것인지 옆에 놓여있는 상자를 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다시 나와 단둘이 남은 그녀

그녀는 일단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안방의 방문을 꼭 잠그고는 그대로 침대위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그녀의 방안에 있던 조그마한 1인용 침대와는 달리 나와 그녀가 동시에 눕더라도 넉넉하게 잠들 수 있는 커다란 더블침대

물론 아파트의 특성 상 그녀의 집에도 이렇게 안방이 있었고 커다란 침대가 있었지만 어째서일까 나와 그녀는 지금까지 그 넓은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언제나 그녀의 방에 있는 작은 침대나 쇼파에서만 잠을 청했다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하자면 뭐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 이곳에 살고 있는 하나, 두리 형제와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부모님의 마지막이나 다름 없는 흔적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망가트리는 것이 싫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나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미래의 부모님을 본적이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결국 나와 그녀는 이 푹신하고 커다란 침대에 누워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

“후우… 오랜만에 땀 흘렸네…”

안방에서 나온 4상자 분량의 짐들을 모두 창고로 옮기고는 방으로 돌아와 중얼거리며 말하는 하나

그는 자신의 앞에 누워있는 동생이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땀을 닦는 척 약간의 오버액션을 곁들였다

그런 그를 보며 얼굴을 와락 구기는 자신의 동생을 보니 힘들었던 기운이 싹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지랄…”

“지랄은 개뿔, 니가 미래씨 안내해주다가 괜히 질질 짜버리니까 나 혼자서 미래씨 둘이서 그 많은 짐들을 정리했다고”

“……”

물론 처음에는 욕하던 동생이었지만 그도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인지 의외로 평소와는 달리 시비를 걸거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무려 여자 앞에서 울먹거리며 눈물을 쏟을 뻔 하지를 않다니!!!

앞으로 15년은 놀려 먹을 껀덕지를 붙잡은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쩔건데?”

그러자 그런 그를 보며 갑작스럽게 물어보는 두리

오늘 아침,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에 자신의 형이라는 작자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던 내용을 그대로 자신에 형에게 물어보았다

“흠… 글쎄… 없는 건 아닌데…”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무런 계획 없이 ‘앞으로 생각하면 되겠지’라고 말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예상과는 달리 계획을 세워 두었다는 하나

두리는 자신의 형에게 이 정도의 지능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여 놀란 얼굴로 멍하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런 자신의 동생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하나

그런 그의 모습이 얼마나 얄미워 보였는지 아마 그는 절대로 모를 것이다

“그래서, 그 계획이라는게 뭔대?”

“흠… 잠시만, 이거는 미래씨도 같이 들어야 하는 거라서 말이야”

“뭐? 그래도 조금은 말해 줄 수 있는 것 아니야?”

도대체 어떤 계획이길래 여기서 미래씨의 이름이 나온다는 말인가

그는 궁금한 마음에 자신에게 미리 알려 달라며 형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전혀 알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그저 그의 말을 무시하며 저녁을 차리기 위해 방 밖으로 향할 뿐이었다

“응 안돼, 돌아가, 안 알려줘, 알려줄 생각 없어”

“아오 저 개새끼 저거…”

그렇게 오늘도 평화로운 둘의 일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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