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25. 개가 당신의 무릎에 앉는 이유는 당신이 좋아서 이고 고양이가 당신의 무릎에 앉는 이유는 그곳이 따뜻해서 이다
* * *
그렇게 제니가 집에 온 지 일주일정도가 지났다
“아얏!!!”
언제나와 같이 제니를 쓰다듬으려다 실패하여 손등에 제니의 손톱자국을 남기는 두리
제니는 그런 두리를 보고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미래의 곁으로 도망쳤다
다른 사람들은 근처에 오는 것만해도 기겁하는 녀석이 유독 미래에게만 관대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래는 하나와 두리의 질투를 한 몸에 받는 처지가 되었다
“크윽… 어째서 미래 너만…”
“어… 글쎄요?”
“글쎄요? 라니!!!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쓰다듬어 준 적도 없는데!!!”
이제는 제법 친해진 것인지 아예 반말까지 하기 시작하는 두리
그리고 나를 대신해서 그녀의 옆에 있던 제니 덕분에 미래도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예전의 성격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덕분일까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확연히 밝아진 집안의 분위기
물론 그 안에서도 제니 저 녀석은 마치 자신은 다른 세계에 있다는 듯이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미래의 무릎위에 앉아있었다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살짝 쓰다듬는 미래
방금 전 두리의 손을 할퀴어 버렸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딱히 상관이 없었던 것인지 그저 그녀를 향해 살짝 눈을 흘길 뿐, 그녀의 손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받아 주었다
“왜… 왜 나만…”
그러자 결국 그 모습을 보고는 뭔가 마음속의 중요한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인 것 그대로 나에게로 달려들어 마구잡이로 쓰다듬기 시작하는 두리
아무래도 그는 제니를 쓰다듬지 못하는 설움을 나에게 풀고 있는 것 같았다
요 몇일 사이 그들과 친해진 덕분인 것인지 이제는 나에게도 꽤나 거침없이 다가왔다
“흐윽… 내가 먼져 좋아했는데!!!”
‘무슨 일본 NTR물도 아니고 왜 이러는 건지…’
진짜로 실망 한 것인지 정말로 훌쩍거릴 것만 같은 그의 목소리
고양이에게 거절 당하는 것이 그렇게나 충격적이었던 것일까? 내 털에 콧물만 뭍히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지 말고 그냥 한번 쓰다듬게 해주지 그러냐]
[싫어, 저 녀석 변태 같아]
[아니… 그냥 한두 번 쓰다듬는 거잖아]
[몰라, 눈빛이 무슨 발정 난 수컷 같은 눈빛이란 말이야]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제안을 마치 개껌 씹듯 씹고는 자신을 대신해 그에게 잔뜩 쓰다듬 당하는 나에게서 눈을 돌리고는 아예 미래의 무릎위에 자리를 잡고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물론 쓰다듬 자체는 기분이 좋았기에 딱히 피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이러고 있으니 왠지 저 ㅈ냥이 녀석의 대용품이 된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았다
‘저걸 진짜 내쫓을 수도 없고…’
차라리 그때 저 녀석이 아니라 그냥 저놈 밑에서 굴러먹던 놈 중에 한 놈을 데려올 것을 나의 생각이 너무 짧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어떻게 하면 저 녀석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묻어버릴 수 있을까 속으로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식량의 재고를 확인하고 있던 하나가 창고에서 나와 우리를 불러 모았다
“저기 잠시만 모여줄래?”
“뭐야, 뭔 일인데?”
그렇게 시작된 저녁 회의
이 회의에 관심이 없어 저 멀리 쇼파에서 본격적으로 잠을 청하기 시작하는 제니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부엌에 있는 식탁에 둘러 앉았다
그러자 텅 빈 식탁 위로 한 장의 종이를 올려 놓았다
종이 위에 쓰여있는 뜻을 알아보기 힘든 글자로 추정되는 검은 것들과 여러 숫자들이 뒤섞여 그려져 있는 삐뚤뺴뚤한 표
우리를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는 멍하니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게 뭔데?”
“뭐긴 뭐야, 식단표지”
“…이게?”
두리는 하나의 대답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식탁 위에 놓인 종이를 가리켰다
제대로 읽기도 힘든 글자들과 숫자
하나의 말을 들어보니 약간 음식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애매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계속해서 식단표를 바라보고 있자 결국 말로 설명하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 했던 것인지 하나는 그대로 그 종이를 다시 회수해 갔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몰린 시선
하나는 마치 길고 지루한 훈화말씀을 준비하는 교장선생님 마냥 목을 풀었다
“…크흠! 본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저희 집에 남은 식량이 열흘 치 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말이야”
“뭐? 그 많던게 벌써?”
“그마저도 베르가 가끔씩 양갱이나 에너지바 같은 것들을 한 바구니 씩 가져온 덕분에 그나마 지금까지 버틴거야”
나는 하나가 우리에게 말을 하는 사이 슬쩍 고개를 돌려 하나가 식량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방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 까지만 해도 방을 2/3가까이 차지하던 여러 이름 모를 인스턴트 식품들은 이제는 양이 많이 줄어 이제는 처음 봤을 때의 절반도 겨우 넘길 수준이 되었다
아무래도 미래와 나, 거기다가 제니까지 받아드리게 된 바람에 본래 예상보다 식량의 소비가 더 격렬해 진 것 같았다
“죄송해요, 저희 때문에…”
“아, 아니 너를 탓하려는 건 아니야, 애초에 너희가 온 덕분에 이렇게 밖의 상황도 알 수 있게 된 거니까…”
“맞아! 그리고 어차피 언젠가는 다 떨어질 거였어!!!”
미래는 지금의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고 둘에게 사과를 하였으나 오히려 둘은 그런 미래의 사과를 말리고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하나는 마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일단, 갑작스럽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빠르면 일주일 안에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아”
그의 말 그대로 갑작스러운 그의 이동 선언
그의 선언에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머리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어디로?”
“글쎄… 일단 최대한 가까운 대피소로 가봐야겠지…”
“저기… 이 근방에 대피소가 있었던가요?”
“없…는건 아니야”
엄밀히 말하자면 대피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길이 너무 멀고 험할 뿐이었기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좀처럼 갈 생각을 하지 못한 것 뿐이었기에 그의 말이 아예 현실성이 없는 제안은 아니었다
그저 그 확률이 너무나도 낮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
“…저희가 갈 수 있을까요?”
“일단…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이대로 굶어 죽을 수는 없잖아”
그렇게 한껏 다운되어버린 식탁 위의 분위기
하나는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한번 훑어보고는 한숨을 쉬며 방금 우리에게서 회수해 갔던 종이를 다시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아까 보았을 때는 몰랐지만 그 종이에 적혀있는 식단표의 뒷면에는 작은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삐뚤빼뚤 했던 글씨와는 달리 의외로 정상적으로 나와 있는 약도의 모습에 나는 남몰래 감탄했다
“일단 이건 대피소 위치를 대략적으로 그린 지도인데…”
“어차피 갈 때는 우리 전부 다 같이 가니까 상관 없는거 아니야?”
“그건 그런데… 일단 베르에게 먼저 위치를 외우게 하려고”
그렇게 말하면서 바닥으로 내려온 나를 바라보는 하나
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발언에 놀라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하나를 똑같이 바라보았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들고 있는 약도를 외우게 해 먼저 그곳을 정찰을 시킬 생각인 것이었다
“이걸? 베르한테? 개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니야?”
“아니, 아마 베르라면 할 수 있을거야”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 우려를 표하는 두리
그런 그의 말에 하나는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문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찬 단호한 목소리가 아닌 마치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듯한 간절한 목소리로 두리에게 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손에 든 약도를 미래에게 건내는 하나
미래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리고는 그대로 약도를 한 손에 쥐고는 나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부탁한다”
“네, 해볼 수 있는 만큼은 해볼게요”
그런 미래의 뒤에서 다시한번 애원하듯 부탁하는 하나의 모습에 나는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후우…. 베…. 베르? 잠시 이리로 와 볼래?”
“멍”
일단 나를 자신의 앞에 앉히고는 그대로 약도를 보여주나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기 시작하는 그녀
마치 내가 그녀에거 처음 보드게임을 배웠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와는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이미 약도를 모두 외워버린 상태였기에 그때와는 달리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닌 그저 약도를 손에 들고는 나를 향해 몸짓과 발짓까지 사용하며 나에게 설명하려 하는미래의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으으…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가르치는 이는 있지만 배우는 이는 없는 이 신기한 상황
그 상황은 밤 이 깊어져 더 이상 약도를 육안으로 알아보기 힘들 때가 되서야 겨우 끝을 맺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