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 속 댕댕이가 되었다-27화 (27/51)

〈 27화 〉 26. 멈췄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다음날이 되고, 나는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대피소로 향하는 지도를 보며 밖으로 향했다.

‘거리는… 직선으로 한 5KM정도인가?’

평소라면 그리 멀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가깝다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거리

하지만 지금과 같이 좀비들로 북적이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하루에 1KM는 걸어갈 수 있을지 조차 장담할 수 없었기에 하나는 최대한 가까운 거리를 찾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아무리 순찰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는 이렇게 먼거리를 나온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괜히 긴장한 듯 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근처의 마트나 다른 집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우리가 집안에서 버티고 있던 와중에 이미 누군가 다녀갔던 것인지 집근처에 있는 마트나 식료품점안에 있는 바리게이트들은 이미 좀비 투성이가 되어 버려진 것들 뿐이었다.

물론 안에는 아직 생수라던가 쌀포대 같이 음식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기껏해야 사람 3명과 동물 두 마리로 마트 안에 있는 좀비들을 피해 그 안에 다시 바리게이트를 치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큰 일이었다.

‘물론 지금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려는 것도 충분히 무모한 일이긴 하다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동하려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 들킬 확률이 적다는 것 정도려나?

거기다가 다행히도 대피소에 가까워질수록 거리에 보이는 좀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아직 안심할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이정도라면 근처의 골목길들을 이용해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

그러나 뭔가 어딘가가 찜찜한 이 느낌

나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보이는 좀비들은 기껏해야 한 두 마리 정도, 그 마저도 죽을 당시 어딘가 잘못 된 것인지 한 마리는 대가리를 보도블럭에 박은 채로 바둥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머지 한 마리도 그저 다른 좀비들 처럼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절뚝거리고 있을 뿐.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까부터 자꾸만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킁…킁…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고 냄새를 맡아도 느껴지는 것은 그저 겉만 멀쩡한 시체들의 냄새 뿐, 나를 감시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녀석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기분 탓인가?’

본래라면 그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넘길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나의 감은 이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이른바 동물의 감, 이것을 함부로 무시했다가는 큰일이 난다는 것 쯤은 이미 수십번의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곳에만 신경을 쓰며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는 상황

이대로 나의 감에 따라 주변을 찾아볼 것인지,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정찰을 다녀와야 하는 것인지.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제길…’

결국 나는 나를 감시하고 있는 녀석을 찾는 것을 그만두고는 그대로 대피소를 향해 뛰어갔다.

지금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가 부탁한 정찰이 첫번째

나의 안위는 그 두번째이다.

‘어차피 감일 뿐이야’

물론 이 ‘동물의 감’ 이라는 녀석의 적중률이 상당히 높은 것도 사실이고, 지금까지 이 감을 무시하고는 몇번이고 죽을 뻔 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감.

틀릴 확률 따위는 길가에 널리고 널린 아스팔트 조각 따위 만큼이나 넘쳐났다.

그리고 설령 진짜로 나를 감시하고 있는 녀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찰을 끝낸 뒤 집으로 돌아가기전에 찾으면 그만이었다.

내가 서두르는 이유는 그저 나의 목에 걸려있는 카메라의 배터리 시간 때문

대피소의 주변을 정찰하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상관 없었다.

‘일단 빠르게 가서 살펴야 돼’

그렇게 한층 더 속도를 올려 나는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겨우 도착한 대피소의 모습을 본 순간

“멍?”

베르는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베르…”

언제나와 같이 문 앞에 서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베르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

그런 그녀의 옆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제니도 언제나와 같이 그런 그녀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무엇인가 불안 한 것인지 길다란 꼬리를 가만히놔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뭔가 예감이 안 좋다냐…’

어딘지 모르게 거북한 것 같은 이 감각

마치 어렸을 적 쓰레기통에 있던 상한 통조림을 먹었을 때 같은 기분이었다.

“너무 그렇게 안절부절해 하지 말아요, 대피소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베르는 개니까, 최소한 길을 잃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없을 거에요”

“그럴까요? 그치만 혹시 다치면 어떡하죠? 그러면 제대로 걷기도 힘들텐데…”

“뭐… 좀비들한테 물릴 일도 없고… 그렇다고 설마 사람이나 길 동물들이 함부로 베르에게 덤비겠어요?”

“그치만…”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인지 문 앞에서 안절부절 못해하는 그녀를 진정시키는 두리.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충전기를 돌리며 배터리를 충전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오전의 일상, 집안의 여러가지를 관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던 하나도 이번에는 여유가 생긴 것인지 오랜만에 그들과 이야기는 나누었다.

“그래요, 일단 긴장 좀 풀고 자리에 앉아있어요. 미래씨가 자꾸만 그러니까 제니도 저렇게 안절부절 못해 하잖아요”

“네…”

다행히 하나의 설득으로 겨우 마음을 진정한 것인지 그 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은 미래

제니는 그런 미래의 무릎위로 올라가 미래와 같이 굳게 닫혀 있는 정문을 바라보았다.

“뭐… 저건 그냥 친구가 걱정되서 그러는 것 같은데? 악!!!”

그런 그녀들을 보며 오지랍을 부리고는 그대로 제니의 냥냥펀치를 맞아버린 두리

그래도 요즘에는 미운정이라도 들기 시작한 것인지 이번에는 다행히 발톱을 세우지는 않았다.

두리도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인지 얻어맞은 주제에 싱글벙글 웃으며 제니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고 있었다.

‘칫’

“아악!!”

그런 그를 보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가볍게 그의 손등에 발톱자국을 남기고는 아예 자세를 고쳐 잡고는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 제니.

방금까지만 해도 실실거리던 두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암울해져 간다.

“크윽… 아직은 무리인가…”

‘내가 그녀석을 걱정한다고? 역시 지능이 떨어지는 수컷이었어’

그렇게 평소와 같이 베르가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때, 갑작스럽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크륵…. 크에에에엑!!!!”

“!!!”

“뭐… 뭐야!?”

그들이 지금 거주하고 있는 층은 본래 하나와 두리가 살고 있던 15층.

그 높이도 높이거니와 고급 아파트 특유의 방을 설계로 인해 창문을 활짝 열어 놓지 않는 이상 밖에서 나는 소리가 안까지 들어오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 마저도 지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방에 있는 작은 창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굳게 잠궈버린 이 상황에 들리는 커다란 비명소리에 그들은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되어 마치 석상과도 같이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끼에에에에엑!!!”

그러자 다시 한번 들려오는 머리속을 헤집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비명소리.

그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그들은 서둘러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하나씨! 두리씨! 저기 아래를 보세요!!!”

미래의 외침에 따라 아파트의 밑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서로 뒤엉킨 채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신음소리와 비명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 서로를 먹고 있는 것 같은데?”

마치 고대 그리스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킬 정도로 치열하게 서로의 팔과 다리를 물어 뜯으며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좀비들의 모습.

그나마 겉모습은 평범한 사람과도 같았던 녀석들의 외관은 순식간에 상처투성이에 피범벅이 되어 아무리 보아도 괴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외관처럼 변해 있었다.

“꺄아아악!!!캬아아악!!!”

“끄륵….르…”

저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 창문을 열어놓았기 때문일까, 저 멀리 있는 비명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윽…”

“뭔가 속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

하나와 두리는 저 소리를 듣고 있자니 속이 안 좋은 것인지 그대로 창문을 닫고는 머리를 잡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던 그때.

‘저러면 베르가 오기 힘들텐데…’

‘그 망할 인절미 녀석은 대체 언제 오는거냐?’

그 순간에도 베르의 생각만 하고 있던 그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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