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28.사실 슬슬 댕댕이 속담이 바닥나고 있어
* * *
다른 좀비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검붉은 색의 눈동자.
마치 피에 물든 것만 같은 그녀의 두 눈동자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온몸에 피를 잔뜩 묻히고는 군침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사적으로 밖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그러자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흥분한 것인지 고함을 지르며 나에게로 달려오는 그녀.
쿠당!!! 쾅!!! 쿵!!!
나와 그녀의 사이를 막고 있던 책장을 마치 스티로폼을 뜯어버리는 것 마냥 무시하며 막무가내로 돌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느려지지 않는 것만 같은 그녀의 속도에 나는 온 힘을 다해 밖을 향해 달렸다.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어지럽게 그녀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허비할 수 있도록 이 넓은 도서관의 책장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며 달렸다.
‘저놈은 지치치도 않나!!!’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책장들이 짜증이 나는 것인지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괴성을 지르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며 달려오는 것이 마치 불도저를 연상시켰다.
그렇게 그녀 혼자서 이 넓은 도서관의 책장을 절반정도 부쉈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겨우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아직 성이 풀리지 않은 것인지 애꿎은 바닥을 치며 화풀이를 하고 있는 그녀
그녀가 발을 구를 때마다 도서관의 바닥에서 불길한 소리가 가며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괴력에 되려 그녀 자신이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발을 구를 때마다 다리가 부러지고 있었으나 이미 눈동자는 물론 눈 전체가 새뻘게질 정도로 흥분한 그녀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쓰지 않고 그저 바닥을 향해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그것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빠르게 1층을 향해 달려나갔다.
‘빨리… 돌아가야 돼…’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괴물
아마 이 대피소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는 저 녀석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이곳에 있는 물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저런 녀석이 있는 장소에 일행들을 데려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아파트 근처에도 저런 녀석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
나는 이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일행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대로 건물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려 했다.
쿵….쿵….
‘어?’
그런데 갑자기 나의 머리 위에서 들리는 무언가 불길한 소음
“크에?”
“으어어어…”
주변에 있는 좀비들도 그 소리를 들은 것인지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눈동자가 한순간 나의 머리위에 있는 천장을 향했다.
쿵….쿵!!!....
점점 커져만 가는 소음.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내가 2층을 빠져나오기 직전, 그곳에서 화풀이를 하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이런 미친!!!’
그렇게 겨우 상황을 파악한 나는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소리를 듣고 주변에 있는 좀비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일단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기 위해 그런 그들의 다리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으나 안으로 들어올 때와는 달리 좀비들이 하나 둘 씩 걷기 시작하며 여기저기로 뒤엉킨 다리 사이를 지나가는 것은 대형견인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아 좀 나가자 이 새끼들아!!!’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하는 마음에 힘으로라도 밀어내 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녀석들의 숫자는 아무리 적개 잡아도 최소 수십에서 수백마리
고장 강아지 한 마리가 힘으로 밀 수 있는 정도의 물량이 아니었다.
쾅!!!
‘제길!!!’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와중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인지 커다란 소음과 함께 저 뒤편에서 먼지가루들이 날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악!!!”
순전히 자신의 각력만을 이용해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바닥을 부수고 1층으로 뛰어내린 그녀
그녀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인지 크게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이리저리 내젓고 있었다.
나를 찾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체온이 떨어질 정도로 싸늘한 기분을 느끼며 좀비들의 다리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빨리…빨리!!!’
그러나 아무리 다리를 움직여도 마치 파도에 휩쓸리는 공기튜브마냥 조금씩 뒤로 향하고 있는 나의 몸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천천히 걷기만 하던 좀비들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 제발!!!’
결국 그들의 다리 사이사이에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수십개의 다리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크하아악!!!”
그런 꼴사나운 나와는 달리 오히려 좀비들 사이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고 있는 그녀
그녀는 오히려 그들의 사이로 뛰어들어 주변에 있는 좀비들을 마구잡이로 물어 뜯거나 내던지며 주변에 있는 좀비들을 공격했고, 좀비들 또한 마치 그런 그녀를 저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런 그녀를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좀비와 좀비가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근데… 저거 진짜 좀비 맞아?’
지금까지 봐왔던 좀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함을 가지고 있는 그녀.
거기다 다른 좀비들과 달리 어느 정도의 지능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젠 더 이상 놀랄 힘도 없었던 나는 일단은 최소한 더 이상 그녀에게 가까이 밀려나지 않기 위해 4다리를 모두 땅에 붙이고는 버티고 있었다.
퍽!!!
그러나 점점 격해지는 좀비들의 움직임
솔직히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았다가는 그대로 이 좀비 쓰나미에 휩쓸려 밀려날 것만 같았다.
‘조금…조금만 더…’
지금까지 관찰해 왔던 좀비들의 모습에 의하면, 막 좀비로 변해 쌩쌩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이렇게 격렬하게 움직이는 좀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임이 둔해질것이다.
그렇게 버티고 있기를 어느새 3분.
점점 거세지고 있던 좀비들의 움직임도 점점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평소에 움직이고 있던 모습 그대로 절뚝거리고 있었다.
‘크윽… 세상에서 가장 길고 힘든 삼분이었어…’
겨우 3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나는 마치 온몸에 멍이라도 든 것인지 그런 좀비들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온몸이 욱씬거렸다.
그렇게 겨우겨우 좀비 때들을 비집고 나와 겨우 넓은 공간으로 나왔을 때, 나는 일단 상황을 살피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마치 커다란 곤충을 노리고 있는 개미처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좀비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붉은 눈은 오히려 활활 불타오르며 멀리서 보는 것 만으로 마치 공포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크르르륵…..크으으!!!!”
수십마리는 되는 것 같은 좀비에게 짓눌리는 와중에도 한 발자국씩 발을 내딛었다.
아무리 좀비들이 힘이 빠져 움직이기 힘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저건 정말이지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알기 힘들 정도였다.
‘하아… 빨리 가야지…’
이러다가 다시 그녀의 눈에 띄는 순간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상황
나는 일단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는 집으로 향했다.
‘아… 빨리 집에 가서 두리한테 치료라도 받아야지…’
이렇게 온몸이 개떡이 된 상황에서도 부숴지지 않고 나의 목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가 놀라울 따름
이상태로 집으로 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오늘 안에는 도착할 수 있기를 빌 뿐이다.
“쾅!!!우수수…”
‘아 또 뭐야…’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커다란 소리
혹시 천장이 뚫려버린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아예 천장이 주저앉아버린 것인가 했지만 그런 나의 예상과는 달리 나의 눈에 보인 것은 자신의 위에 누름돌 마냥 얹혀있던 좀비들은 모두 어디로내팽겨 친 것인지 모두 던져버리고는 그 자리에 홀로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 뿐이었다.
이번에도 자신의 신체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강한 힘을 준 것인지 그녀의 팔과 다리는 마치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 마냥 이리저리 찢겨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상처와는 달리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에 누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나는 속으로 욕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아… 제발… 나 한테 왜 그래!!!’
조금씩 팔다리가 재생되기 시작하며 절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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