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 속 댕댕이가 되었다-31화 (31/51)

〈 31화 〉 30. 주객전도

* * *

검은 포니테일에 붉은 눈동자에 군살 하나 없는 건강한 몸매를 가진 그녀, 거짓말이라도 절대 ‘못생겼다’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반나체의 여성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남성들의 꿈을 하나로 모은 것만 같은 이 황홀한 상황.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꿈과 같은 상황이 제발 진짜로 꿈이었다면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씨발…’

말을 할 수 없기에 차마 입으로는 낼 수 없었던 한마디

그 한마디에는 지금 나의 모든 감정이 담겨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크흑….크히히힛!!!”

드디어 나를 찾은 것이 기쁜 것인지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마치 웃고있는 것만 같은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웃음소리가 나의 귀로 흘러 들어올 때마다 나의 몸은 반사적으로 자리를 벗어나려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저 붉은 눈동자에 잡혀 있는 나는 내가 지금 서있는 장소에서 단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지능이 나의 생각보다 훨씬 높았던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사냥꾼으로서 그녀의 본능이었던 것일까

‘아니… 이경우에는 내가 멍청하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그녀는 나를 완전히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에 성공했다.

뒤로는 벽, 앞으로는 그녀

거기다가 그녀에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계속해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삐걱거리는 오른 쪽 다리까지.

아까 전처럼 수십 미터의 거리차이가 있다면 모를까, 애초에 본래의 컨디션으로도 겨우겨우 도망칠 수 있었던 그녀를 지금의 몸상태로 그녀에게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길…’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이제는 아주 여유까지 가지며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절망하여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미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모두 져버린 상태

애초에 지금까지 서있던 것만해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였기에 나는 그 상태 그대로 눈을 감고 앞으로 몰려올 고통에 대비하여 마음을 다잡았다.

‘미래는 괜찮으려나…’

그러나 이미 삶을 포기한 순간에서 마저도 나의 머릿속 한구석에서 자꾸만 생각 나는 그녀의 모습

나를 껴안으며 울던 그녀의 가녀린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내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건만… 이제 그건 제니에게 맞겨야 할 것만 같다.

이미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나의 두 눈을 덮어버린 눈꺼풀 너머로 느껴지는 어두운 그림자.

이미 나의 앞에 도착한 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숙이며 쓰러진 나에게 다가왔다.

‘살이 물어 뜯기는 건많이 아프려나?’

아직 개가 되기 전 이미 한번 경험한 죽음

그렇기에 죽는다는 것 자체가 두렵거나 떨리지는 않았다.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이렇게 했으면 좀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해보는 그런 아쉬움 말이다.

툭…

그렇게 여러가지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때 즈음

그녀의 손이 나의 몸에 닿으며 그 서늘한 온도를 전해주었다.

단숨에 잡아먹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마치 나를 쓰다듬고 있기라도 한 것인지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

살아있는 사람과는 달리 그 어떤 온기나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손은 예상외로 꽤나 부드럽고 기분 좋았다.

물컹…

‘응?’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고통을 준비하고 있던 나의 몸에 느껴지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에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확연하게 높아진 나의 시야

그녀는 마치 공주님 안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팔로 나의 몸을 감아 들어올린 것이다.

‘뭐… 뭐야?’

당최 무슨 상황인지 도동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꽈악!

‘커억!!! 자.. 잠깐 타임!!!’

내가 그런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이라도 몸을 뒤척일 때면 그녀는 나의 몸을 휘감은 팔에 힘을 주고는 내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나를 구속했다.

그럴 때마다 안 그래도 욱신거리는 온몸의 뼈에 마치 금이라도 가는 것 같은 고통이 따라왔기에 나는 얼마 안가 그녀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을 멈추고는 나를 들고 가는 그녀의 모습을바라보았다.

“흥~흐흠~”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마치 나를 죽일 것 마냥 사나운 얼굴로 쫓아오던 그녀가 맞긴 한걸까? 싶을 정도로 완전히 달라진 그녀의 인상.

마치 생일선물을 받은 유치원생처럼 자신의 기쁨을 숨기지 않고 아예 콧노래까지 부르며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이 느끼고 있었다.

거기다가 콧노래라니, 방금전까지만 해도 으르렁 거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하던 그녀와 정말로 동일 인물이 맞긴 한걸까?

이 정도면 정말로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크윽…’

그러나 그런 의심과는 달리 이미 한계에 가까운 몸 상태였던 나는 더 이상 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이 정도로 다쳐본 것은 내가 처음으로 좀비와 1대1로 겨웠을 때와 그 미친 변태새끼로부터 미래를 지켰을 때 였기 때문에 이 정신이 아찔한 감각은 좀처럼 익숙해지기가 힘들었다.

거기다가 좀비인 주제에 의외로 부드러웠던 그녀의 품 안은 마치 한여름의 냉수 매트 만큼이나 시원했기에 나의 눈꺼풀은 점점 내려 안기 시작했다.

‘제길… 여기서… 잠들면… 안되는데…’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솔직했던 나의 몸은 어느새 나의 두 눈과 귀를 가리고는 나의 온몸에 난 상처를 하루라도 빠르게 치유하기 위해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쓰담…쓰담…

그렇기에 그런 나를 보며 만족한다는 듯이 웃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녀의 모습은 아마 꿈이었을 것이다.

***

“크아아악!!!크르아!!!”

집의 문과 문은 모두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들려오는 밖의 소리

계속해서 그 소리를 무시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머리속을 계속해서 후벼 파고 있는 저 소리에 우리의 신경은 점점 예민해져만 갔다.

“저 미친 새끼들은 언제까지 으르렁 거리고 있는거야!!!”

퍽!!!

저 소리를 피하기 위해 아예 귀마개에 헤드셋까지 끼고는 방안에 들어가 있던 두리는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했던 것인지 방문을 박차고 나오며 그대로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물론 그 대가는 좀비들의 정적이 아닌 그런 그를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제니의 눈빛과 하나의 손바닥이었지만 말이다.

“저 놈들보다 니가 더 시끄럽다 이 새끼야!!! 다른 사람들도 다 가만히 있는데 니가 뭔데 난리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하잖아!!! 이미 저녁 8시인데 아직도 저러고 있다고!!! 무려 12시간이야 12시간!!!”

그의 말 대로 이미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을 한참 지난 저녁 8시

이미 파랗던 하늘은 검게 물든지 오래 였으며 이제는 늦가을의 쌀쌀한 한기가 방안을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언제나와 같이 가벼운 말싸움으로 시작해 투닥거리기 시작한 하나와 두리, 그리고 그런 둘을 멀리서 바라보며 시시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고 있는 제니.

그러나 그런 그들과는 달리 미래는 그저 멍하니 곧 베르가 돌아올 정문을 바라보며 맨 처음 베르를 기다리던 그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배르가 밖을 나간지도 이제 약 12시간

본래라면 이미 점심을 먹을 때 즈음 돌아와 저 문 너머에서 그녀를 불렀을 터

그러나 이번에 순찰을 간 곳은 평소와는 달리 먼 거리였기 때문에 아직 돌아오는 중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몇 번이고 마음을 가라 앉히는 그녀였다.

‘베르…’

하지만 그런 그녀의 자기 최면에도 불구하고 이미 질겅질겅 물어 뜯긴 그녀의 손톱들이 지금 그녀의 불안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괜찮아… 베르는 개니까…. 하나씨도 그랬잖아… 베르가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다고….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으면 곧 도착할거야… 그래….’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반 강제로 억누르고 있는 그녀.

그녀는 이미 몇 시간이고 같은 자리에 앉아있음에도 힘들어 하기는 커녕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그런 그들의 눈빛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가 관심이 있는 것은 그저 베르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 뿐

‘빨리… 제발… 빨리 와줘… ‘

고작 몇 시간 만에 마치 몇 일 밤은 샌 것만 같은 그녀의 모습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문 앞에 앉아 베르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 저녁, 베르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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