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 속 댕댕이가 되었다-32화 (32/51)

〈 32화 〉 31.원 펀치 쓰리 강냉이

* * *

[이봐… 형씨, 일어나봐!!!]

그녀에게 끌려 온지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희미한 정신 속에서 낯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형씨!!! 일어나라고!!!]

‘아씨… 시끄러워…’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동물의 목소리.

요즘에는 듣기 힘들었던 목소리 들이 나의 주변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상황, 나는 두 눈을 떠 주변을 바라보려고 했지만 마치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란 쉽지 않았다.

[이게 내 말을 무시해? 좋게 좋게 가려고 했더니 안되겠구만!?]

퍽!!!

그런데 갑작스럽게 나의 몸을 강타하는 충격.

익숙한 발바닥 젤리의 느낌이 나의 안면을 강타하여 반쯤 잠들어 있던 나의 의식을 완전히 깨워 주었다.

물론 좀비나 지금까지 싸워왔던 다른 동물들의 공격에 비하면 아프기는커녕 간지럽지도 않은 수준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머리를 맞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꽤나 기분이 나빠졌다.

[칫! 한 주먹거리도 아닌게…]

[오오!!! 역시 형님!!! 저런 커다란 개를 한번에… 대단하십니다!!!]

[감동했습니다!!! 형님!!!]

그러자 훨씬 또렷하게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에 반응하여 살짝 머리를 털어 그녀가 남긴 충격으로 아직까지 어질어질한 머리를 진정시키고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많은 고양이들 사이에서 아부를 받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고등어 무늬의 길고양이

아무래도 저 녀석이 나의 얼굴에 냥냥펀치를 날린 주범인 것 같았다.

[어? 형님, 이 새끼 일어났는데요?]

[어!? 으응!? 아… 그… 그래?]

이제서야 내가 깨어난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꽤나 놀란 얼굴로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뒤를 따르는 여러 고양이들

아무래도 녀석은 이곳에 있는 고양이들의 리더인 모양이다.

[흠흠… 얼굴을 보아하니 아직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한 것인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군 신입]

‘신입?’

[뭐… 밖에서야 그 커다란 덩치로 어디 힘 좀 꽤나 쓰셨나 본데… 아쉽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알량한 힘을 믿고 나댔다가는 큰일나는 수가 있다~ 이 말이야, 이 선배님이 하는 이야기니까 그 덜렁거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제대로 들으라구?]

[오오… 역시 형님…]

[후배에게 자상하게 가르침을 베푸는 그 자세… 역시 모든 고양이들의 귀감이십니다!!!]

[후훗…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아까부터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며 거들먹거리고 있는 녀석.

주변에 있는 부하로 보이는 녀석들은 그런 놈의 행동 하나하나에 아부를 하며 똥꼬를 빨아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길고양이들을 만나왔다고 생각해 왔지만 역시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만나본 놈들 중에서도 가장 피곤해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하아… 그래서, 여긴 어디인데?]

[이놈!!! 어딜 하늘과 같은 제키님에게 반말을!!! 어서 공손하게 존댓말로 부탁하지 못할까!!!]

‘아… 걍 다 엎어버릴까?’

그렇다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니 오히려 불같이 화를 내며 땍떅거리기 시작하는 망할 따까리 녀석들

마음과 같아서는 이대로 전부 조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알아채지 못했고, 거기다가 나 같은 신사적인 강아지가 이런 사소한 일에 화를 냈다가는 우리 전국 댕댕이 협회의 위상을 떨어트리는 꼴이나 마찬가지었기 때문에 나는 참을성을 가지고 저 ㅈ냥이 녀석이 앵앵거리는 것을 꾹 참았다.

[하하…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 아직 이곳이 익숙하지 못하니까 참을성 좋은 우리가 참아야지, 안 그래?]

[넵! 알겠습니다!]

‘시발…’

하마터면 10초 전의 다짐이 박살이 날 뻔했다.

[크흠… 그래, 내 이름은 제키, 그냥 뭐… 여기에 있는 고양이들의 리더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우리 신입은?]

[난… 베르라고 해]

‘참자… 일단 놈들에게서 이곳에 대한 이야기만 들으면 끝이야… 그때 가서 조져버려도 늦지 않아…’

지금 당장이라도 뭉개 버리고 싶은 저 얍쌉한 얼굴로 나에게 악수를 건내는 녀석

나는 그 감정을 숨기기 위해 골든리트리버 특유의 순하고 무해한 얼굴을 하며 녀석의 손을 맞잡았다.

[잠깐…. 베르!?]

[음?]

그러나 나의 이름을 듣고는 무엇인가 놀란 것인지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는 녀석의 따까리 중 한 마리.

그 소리에 놀라 나와 제키를 포함한 대부분의 ㅈ냥이들이 소리가 난 뒤쪽을 쳐다보자 익숙한 얼굴의 검은 고양이가 그 자리에 있었다.

[어? 오랜만이다? 니가 여기 왜 있냐?]

[히… 히익!!! 니가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

분명… 좀비 사태가 나기 얼마 전 제니네 무리에 합류했던 신참이었나?

제니가 나에게 도전할 때 가장 뒤에서 멀뚱멀뚱 서있던 모습이 기억났다.

뿔뿔이 흩어졌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제키네 무리에 기어들어간 것 같았다.

[아니 대체 이놈이 뭐길래 그렇게 호들갑이야!? 조용히 안해?]

[아니, 전에 제가 말했던 거 기억안나세요!? 배르라고요!!!베르!!! 지옥의 수문장!!!]

이무튼, 갑작스럽게 큰소리를 낸 것에 깜짝 놀란 것인지 짬이 좀 높아 보이는 고양이가 주의를 주려고 하는 듯 하였으나 되려 자신에게 다가온 고양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녀석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꽤나 떨어져 있는 나의 귀가 울릴 정도였다.

‘그나저나 지옥의 수문장은 또 뭐야?’

[길냥이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사거리의 시장 입구에 자리를 잡고는 단 일년만에 그 주변을 모두 자신의 구역으로 만든 괴물! 단신으로도 그곳에서 가장 강한 무리였던 제니님의 무리를 몇 번이고

물리치고 존재 자체만으로 사거리 근처에 있던 모든 길냥이들의 힘의 균형을 유지시키던 억제제 역할을 하고 있던 시장의 마스코트이자 지옥의 수문장!!! 그게 바로 저 녀석이라고요!!!]

마치 설명충이라도 빙의 한 것과 같이 뭐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자신의 말을 내뱉는 녀석.

계속 듣고 있자니 무슨 삼류 소설 속 먼치킨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뭔가 점점 듣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그냥 시장 앞에 누워서 낮잠 잔 것 뿐인데…’

[저… 저 녀석이 그 수문장이라고?]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 있어… 혼자서 17대1의 전설을 찍었다고 했었지?]

[거짓말… 저렇게 바보같이 생긴 녀석이?]

그러나 얼떨떨해 있는 나와는 달리 녀석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갑작스럽게 소란스러워진 내부.

대부분은 녀석의 말을 믿지 않거나 도시전설 같은 것으로 치부하며 되려 그를 비웃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대부분이 그의 말에 쫄아버린 것인지 아까 까지만 하더라도 제키의 뒤에서 마구 야유를 보

내던 따까리 놈들이 하나 둘 나의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따까리 놈들 뿐이지만 말이다.

[하핫! 그래! 니 놈이 바로 그 놈이었구나!!!]

[음?]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한껏 똥폼을 잡으며 거들먹거리기만 하고 있었던 녀석에게서 느껴지기 시작한 작은 살기

녀석은 방금 전까지 취하고 있던 거만한 자세를 그만두고는 지금 당장이라도 나에게 달려들기라도 할 것처럼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이유도 모르게 처맞기 일보직전인 상황, 다행이도 녀석은 바로 달려들지 않고는 자신이 어째서 이러는지 자신의 입으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니놈이 나의 예비 신부인 제니를 몇번이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던 그 녀석이구나! 용서 못한다 이놈!!!]

‘아… 그렇게 된거구만…’

아무래도 제니를 노리고 있던 ‘변태 같은 망할 수컷’은 아무래도 녀석을 말하던 것이었던 것 같다.

[제니가 니 예비 신부라니… 당사자의 허락은 받은거냐?]

[훗!!! 강한 수컷이 아름다운 암컷을 얻는 것은 자연의 순리!!! 허락을 구하고 말고 할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긴, 자신의 구역을 버리고 한낱 인간의 뒷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니 놈이 이런걸 알

리가 없지!!!]

[…뭐?]

[내가 모를 것 같았나? 고작 인간 암컷에게 홀딱 반해 자신의 구역을 내팽겨 치고 도망간 겁쟁이!!! 그게 지옥의 파수꾼이라 불리던 녀석의 실체라고 말하고 있는거다!!!]

빠직…

녀석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자니 머릿속에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계속 참고 있었건만, 설마 제니도 모자라 미래까지 들먹일 줄이야… 정보고 자시고 아무래도 이 녀석은 일단 한번 조져 놔야 할 것 같았다.

[왜 그러지? 너무 정곡이라 대꾸도 제대로 못…컥!!!]

빠악!!!

아직도 의기양양하게 나를 향해 무어라 씨부리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 완벽하게 들어가는 나의 라이트 훅.

시바견 만큼은 아니라도 꽤나 자신 있는 한방이었다.

녀석은 그렇게 나의 한방에 그대로 뒤를 향해 쓰러지며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

그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정적이 흐리기 시작한 방의 내부.

나는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 땍땍거리던 ㅈ냥이 놈들을 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더라? 선배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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