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32. '개'연성
* * *
순식간에 싸늘해진 방안의 분위기.
나는 나의 펀치를 맞고 쓰러진 저 ㅈ냥이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 뭐 이리 약해?’
아무리 내가 진심으로 때렸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무게조차 제대로 실리지 않은 평범한 싸대기나 다름없는 공격이었다.
이 녀석에 비해 훨씬 여리여리한 제니도 가볍게 무시하는 공격에 이곳의 대장이라고 하는 녀석이 겨우 한방에 뻗어버릴 줄이야…
물론 그 덕분에 어느정도 분위기를 잡는 것에는 성공 했지만 이렇게 쉽게 쓰러지니 오히려 내가 다 당황할 지경이었다.
[혀… 형님!!!]
[거짓말… 예전보다 몇배는 강해지신 형님이 이렇게 간단하게…]
그렇다고 따까리 놈들의 반응을 보니 이 자리를 꽁으로 얻어먹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만…
생각해보면 지금 녀석에 주변에 우글거리고 있는 놈들은 대부분 페르시안이나 먼치킨처럼 다리가 짧고 뚠뚠한 놈들이 대다수인걸 보면 어쩌면 단순히 리치의 차이로 이겨왔던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미 기절한 녀석을 여기서 더 팼다가는 오히려 상황이 안좋아 질 수 있었기에 나는 일단 화를 가라 앉히고는 다시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결국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큭… 저리 꺼져라 이 괴물자식!!! 이미 기절한 형님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다들 모여!!! 아무리 니 녀석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를 상대하긴 힘들거다!!]
그렇게 외치더니 하나 둘 나의 앞에 모여 경계자세를 띄며 살기를 풀풀 풍기기 시작하는 따까리들
물론 별로 탐탁치 않아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런 놈들은 대부분 짬에서 밀리는 것이었던 것인지 한껏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를 적대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이놈들이 이런 지능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신기해징 지경이었다.
[다들 돌격!!!]
[[냐야야야야!!!]]
‘아… 나도 이제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제키 일당과 나의 싸움
10마리는 우습게 넘어가는 양의 고양이들이 한번에 나에게로 몰려드는 모습을 보니 왠지 옛날 생각 나는 것 같았다.
[크헉!!! 가… 강하다!!!]
[크흑… 분하다… 형님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이렇게 가다니..]
‘안 죽였어 이 새끼야!!!’
그러나 그 기세와는 달리 한두번씩 툭툭 칠 때마다 맥 없이 쓰러지기 시작하는 녀석들
마치 만렙 계정을 가지고 뉴비를 학살하는 쓰레기 고인물이 된 기분이었다.
[냐악… 우… 우리 고양이는 아직 지지 않았다…]
[아주 지랄에 염병을 해요]
그렇게 고작 3분만에 깔끔하게 정리되어버린 제키의 패거리들
물론 중간에 싸우기를 포기하고 도망치려고 하던 녀석들도 몇 있기는 했지만… 이미 나에게 적대한 시점에서 내가 놈들을 봐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아 맞다, 캐물을 녀석이 하나 필요했는데]
그러나 실수로 이곳에 있는 놈들을 전부 날려버렸다.
아직 의식이 있는 놈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이미 기절해 버린 녀석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내가 깨어났던 장소로 돌아가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하아… 이거야 원…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야 어떻게 빠져나가든 말든 할 텐데…]
창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하에 있는 창고 같은 곳인 것 같았다.
체육관의 지하시설인 것일까?
아마 내가 기절해버린 사이에 그녀가 나를 이곳까지 끌고 왔던 것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굳게 닫혀 있는 방의 철문을 향해 다가갔다.
끼익…
닫혀 있기는 하지만 잠겨져 있지는 않은 듯한 하였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미닫이 문이 아닌 여닫이 문이었던 관계로, 손이 없는 나로서는 열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물론 빠져나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얼마 안가 그녀에게 잡힐 것이 뻔하지만…’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게서 벗어날 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남은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건가…]
[저… 저기… 누구 계신가요?]
[응?]
그렇게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와중, 창고의 구석진 곳에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아직 남아있는 패거리가 있었던 것인가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뭔가 푹신푹신해 보이는 엉덩이 하나가 커다란 파이프 하나에 꽉 끼인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엥?]
[오? 지금 거기 누구 계신거죠?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저 좀 꺼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젯밤부터 이렇게 있었더니 슬슬 배가 아파와서 말이죠?]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할 때마다 꼬리를 좌우로 미칠 듯이 흔들며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그녀의 목소리
그러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자력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 그 짧은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일단 나는 일단 그녀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꼬리를 물고는 있는 힘껏 잡아당겨 주었다.
[으에에에엥!!! 저기~? 이거 생각보다 아픈데요???]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더 아프니까!!!]
[네…넵!!!]
무언가 잘못 걸린 것인지 꽉 끼어서 움직이지 않는 그녀의 몸
그녀도 아픈 것은 싫었는지 그곳에서 나오기 위해 온몸의 힘을 최대한 풀었다.
그러자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 그녀의 몸
그렇게 10분간을 낑낑댄 결과, 겨우 그녀의 몸을 파이프에서 빼낼 수 있었다.
[히잉… 너무 아팠다구요…]
[그럼 애초에 거기에 있지를 말던가…]
그렇게 빠져나오자마자 자신의 꼬리를 붙잡고는 바닥을 뒹구는 그녀
그러는 와중에도 얼마나 에너지가 넘쳐나는 것인지 아주 그냥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엄살이랑 엄살은 모두 부리고 있었다.
‘저건… 웰시코기인가?’
연갈색의 몸과 하얀 배, 이리 저리를 구르며 파닥거리는 짧은 다리에 토실토실한 엉덩이까지
누가 보더라도 단번에 알아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
꼬리를 자르지 않은 것을 보니 애완용으로 길러진 것이라기 보다는 아무래도 버려진 개들 사이에서 태어난 2세인 것 같았다.
그 영향인 것인지 평범한 다른 웰시코기와 비교 하더라도 훨씬 압도해 버릴 정도로 활발해 보이는 그녀의 성격
아마 체력도 그녀의 성격 못지않게 엄청날 것 같았다.
‘…괜히 구해줬나?’
[…일단 진정하지?]
[아… 죄송해요!!! 제가 감사 인사도 못 드렸네요, 이렇게 샹냥하신 고양이 분이 계실 줄은 몰….]
[음?]
그렇게 내가 주의를 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인지 자세를 바로잡고는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그녀
그러나 그렇게 인사를 건네던 와중에 겨우 나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본 그녀는 하고 있던 말을 그대로 멈춰 버리고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응? 왜 그래? 어디 잘못 됐어?]
무언가 잘못 된 것일까, 마치 사자라도 만난 것처럼 새파래진 그녀의 모습에 나는 혹시 파이프를 빠져나올 때 어딘가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에…에…]
[응?]
[에에에에에에엑!?!?!?!?!?]
그런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신들린 뒷걸음질을 이용해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그녀
그녀는 순식간에 내가 그녀를 꺼내 주었던 파이프의 뒷 편으로 이동해 자신의 몸을 숨기고는 덜덜 떨며 나를 보고 있었다.
[호… 호호호…. 혹시… 개… 이신 건가요?]
[응? 그럼 네 눈에는 내가 뭘로 보이는데?]
[아… 그건… 그러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와중에도 뭐가 그리 부끄러운 것인지 점점 안으로 숨어들어가는 그녀
그런 그녀의 행동에는 딱 봐도 당황감이 온몸에 묻어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잘생긴 분 앞에서 내가 무슨 짓을… 서… 설마 전부 다 보신 건 아니겠지? 흐에엥!!! 이제 교미하기는 다 틀렸어!!! 엄마가 좋은 수컷이 나타나면 무조건 잡으라고 했는데!!!]
그러더니 파이프의 뒤쪽에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는 그녀
나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만… 아쉽게도 그녀가 하는 말들은 혼잣말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하게 컸기 때문에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정확하게 나의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리 개라고는 하지만 방금까지 너무 허물 없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더니만… 아무래도 지금까지 나를 이곳에 있던 고양이 중 한 마리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물론 주변을 둘러보면 이곳에 있는 개라고는 그녀와 나 단 두 마리 뿐이니 어찌 보면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만…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애초에 지금의 상황이 그렇게 난리를 칠 정도인가? 싶기도 했다.
‘흠… 그러니까… 한 여학생이 이러쿵저러쿵한 겪은 덕분에(?) 벽에 몸이 끼어 엉덩이만 내민 채로 방치 되어버려 길을 가던 사람에게 부탁하여 겨우 빠져 나왔더니, 알고보니 그 사람이 같은 대학사람이었다… 같은 느낌인가?’
[뭔가 사람기준으로 생각하니 저렇게 난리 칠만 한 것 같기도?]
왠지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미묘하게 안되는 그런 기분
내가 그렇게 애매한 감상을 품고 있을 때 즈음, 그녀는 결국 폭발해 버린 것인지 방금까지 자신이 끼어 있던 파이프에 얼굴을 처박고는 그 짧은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으아아!!! 이 바보!!!바보!!!바보!!!]
[……엉덩이 다 보인다]
[히익!!!]
결국 나는 또 다시 끼어버린 그녀를 꺼내기 위해 10분간을 낑낑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