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37. 밑장 빼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
* * *
“미래씨 상태는 좀 어때?”
“내가 의사가 아니라서 정확하게 뭐라고 할 수는 없겠다만… 아무래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아”
베르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지 하루
겨우 하루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베르가 없는 이 잠깐의 시간동안 집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단순히 쓰러져버린 미래씨를 제외하더라도, 지금까지 눈과 귀가 되어 주었던 베르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나와 두리까지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많이 답답해 하고 있었다.
물과 음식들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가지였다.
베르가 가져다 준 정보 없이 무작정 이곳을 떠날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계속 버티고 있을 것인지
“하아…”
둘 중 무엇을 고르더라도 무어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
나는 일단 방안에서 끙끙대고 있는 미래씨에게 물수건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거야?”
“…이제 생각해 봐야지”
그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무언가 제대로 된 아이디어가 생각 날리가 없었던 나는 그저 한숨을 쉬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아픈 미래씨를 간호하는 것뿐
그 마저도 힐을 쓰는 두리에 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물수건으로 미래씨가 흘리는 땀을 닦아주는 것 뿐이었다.
‘한심하네…’
지금까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서 자신이 리더인 것 마냥 지휘해 왔건만, 정작 행동 대장이었던 베르가 사라지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이렇게 안절부절해 하
는 것 뿐이었다.
“형은 일단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라도 생각하고 있어, 나머지는 내가 하고 있을게”
“어? 아… 응…”
그렇게 물수건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간 나는 일단 침대 위에 누워 뭐라도 생각해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냐아아”
“응? 왜 그래 제니야? 악!!!”
그러자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마치 아침에 나를 깨울 때처럼 나의 배위로 올라와 나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는 제니
그러고서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도 그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았다.
“저기… 제니야… 일단 오빠 위에서 좀 내려올래?”
“냐아아…”
나는 일단 가슴으로 점점 올라오는 답답함을 막기 위해 제니를 바닥으로 내리려고 했으나 요지부동의 자세로 오히려 나를 꾸짖는 것 마냥 때리기 시작하는 제니.
나는 그 냥냥 펀치에 맞을 떄마다 숨이 쉬기 어려워졌기에 빠르게 제니를 치우려 했다.
‘잠깐… 위?’
그런데 갑자기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가지 키워드
나는 제니의 팔을 붙잡고는 그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위? 갑자기 이게 왜? 잠깐만… 여기서 위라고 할 수 있을 만한게…’
그렇게 생각이 날까 말까 한 애매한 상황
나의 분위기가 달라진 덕분일까? 제니는 나를 때리던 것을 멈추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 본래 앉아있던 자리로 향했다.
***
쾅!!!
내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진 것을 알아차린 후
나는 그 것을 이용해 이 창고안에 있는 상자들을 하나 둘씩 부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강해진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딱히 몸에 이상이 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기에 나는 일단 강해진 나의 신체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려고 했다.
[와!!! 물이다!!!]
[물은 벌써 몇 번이나 나왔잖아]
[그래도요!!! 솔직히 여기에 있는 동안 물은 제대로 못 먹었단 말이에요]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이곳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모를 조그마한 수도꼭지 뿐
하지만 너무 사용하지 않아 안이 녹슬어 버린 것인지 이곳에 있는 모두가 마시기에는 나오는 물의 양이 너무나 적었다.
다행히 이곳에 있는 박스들의 안에는 꽤나 많은 양의 물이 들어있었다.
페트병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뚜껑을 따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나의 걱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는 아예 페트병을 물어 뜯어버리고는 안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꼬미를 보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요 베르님!!!]
[응? 이건 또 뭐야…]
그러는 사이에도 꼬미는 나도 모르는 사이 상자 안에서 나온 담요를 이용해 나와 꼬미가 쉬던 곳을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꼬미
내가 그곳으로 가 눕자 꼬미도 나를 따라 푹신한 담요 위에 몸을 뉘였다.
‘이게 그 허니문인지 뭐시기인지 그런거냐?’
[허… 이게 다 뭐냐?]
그렇게 방금까지의 힘든 노동을 마치고 쉬고 있자니 나와 꼬미가 상자를 부수는 소리에 일어난 것인지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하는 제키
녀석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오는 와중에도 부럽다는 눈으로 부숴진 상자안의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자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선 나와 꼬미가 자리를 잡은 곳의 앞을 지나가야 했기에 무턱대고 가지 않고 일단 나에게로 온 것이다.
[설마 저기에 있는 상자를 전부 부순거냐?]
[뭐… 그렇지? 몇 개는 내가 아니라 꼬미가 한 거지만]
[헤헿…]
내가 저곳에 있는 상자들을 모두 부셨다는 말에 놀란 것인지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고양이 녀석들.
아무래도 나나 꼬미가 없었을 무렵에 고양이 녀석들도 저 상자를 부수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했던 모양이다.
[크흠… 그… 그래… 그럼 저기 있는 물건들은 어떻게 나눌 생각이지?]
[나누다니… 그게 뭔 소리야?]
[으…응?]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상자 속의 물건들을 나눌 것인지 물어보는 제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저곳에 있는 고양이들에게 이 물건들을 나눠줄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럼 저 많은 물건들을 전부 너 혼자서 쓸 작정이야?]
[나 혼자서 쓰기는, 나랑 꼬미 둘이서 쓰는거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애초에 내가 나의 힘으로 저 상자들을 부숴서 연 시점에서 저 물건들의 소유권은 모두 나에게 있는 법
녀석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평소와는 달리 꽤나 저자세로 부탁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신의 무리 이외에는 도와줄 의무도 없었고, 저 고양이 너석들에게 딱히 좋은 추억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안에 있는 물자를 나눠 쓰자?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나는 개가 아니라 성자로 태어났을 것이다.
[크…크윽…]
[뭐… 그래 인심 썼다, 안에 있는 담요들은 가져가도 돼]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가는 최악의 경우 다시 이곳에 있는 녀석들을 전부 상대해야 할 수도 있었기에 나는 적당히 담요들을 녀석들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물론 전에도 그랬다시피 녀석들이 모두 덤빈다고 해서 내가 질 일은 없지만… 솔직히 귀찮다.
‘그리고 어차피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완전 앙숙 관계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차피 담요라는게 물이나 음식처럼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가 상자 안에 있는 담요의 양이라면 여기에 있는 고양이 놈들이 모두 사용하기도 남았기에 딱히 상관이 없기도 했다.
거기다가 녀석들에게도 애초에 창고로 만들어진 덕분에 난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방에서 늦가을의 추운 밤을 지내는데 담요는 충분히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에 놈들에게도 이득이었다.
[아… 알았어. 그럼 담요만 가져갈게]
[음식 몰래 빼돌리다가 들키면 알지? 나 개코다?]
[칫… 알았다고!!! 야!!! 다 들었지? 다들 담요 하나씩 챙겨!!!]
그렇게 시작된 고양이들의 담요 쟁탈전
애초부터 양도 충분하고 공장에서 찍어낸 담요가 달라봤자 얼마나 달르겠냐만…
고양이 놈들은 그 와중에도 자기가 더 좋은 담요를 쓰겠다며 서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에휴… 잘들 논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물론 나는 그런 놈들의 똥꼬쇼를 보며 꼬미와 함께 팝콘을 뜯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바탕의 소동이 지나가고
점심이 지나자 이곳에 있는 동물들은 하나 둘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딱히 무언가 의미가 있어서 낮잠을 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방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한정되어 있다 보니 할 것이 없기에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 뿐.
내 옆에 누워서 담요위를 뒹굴거리며 놀던 꼬미도 얼마 안가 질린 것인지 다시 나의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와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동물들이 잠을 자고 있을 때.
나의 귓가에 무언가 의미심장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언뜻 듣기에도 무언가 이질적인 발소리
아무리 잠을 자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난 2년간 그 커다란 시장 전체를 나의 구역에 놓고 그곳을 지키고 있던 나였기에 그 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그 발소리의 정체를 알기 위해 살짝 눈을 떴을 때
상자 안에 있던 식량을 몰래 가져가고 있던 이름 모를 따까리와 두 눈을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