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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세상 속 댕댕이가 되었다-43화 (43/51)

〈 43화 〉 42.낙오

* * *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미래씨는 겨우겨우 침대에서 내려 올 수 있었다.

“이젠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더 쉬는게 좋을 것 같은데”

“아니요! 그럴수록 베르를 만나는 시간이 뒤로 미뤄질 뿐이에요!”

이미 베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에 힘이 나는 것인지 빠르게 준비를 마치는 미래씨.

그러나 아무리 숨기려고 하더라도 결국 몸은 한계인 것인지 바들바들 떨리는 두 손을 숨기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았다.

겨우 짐을 쌀 뿐이었지만 이미 새파래진 그녀의 얼굴이 지금 그녀가 지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래씨…”

“형”

아무리 보더라도 밖을 나가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기에 다시한번 그녀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두리가 나의 어깨를 잡으며 나를 말렸다.

“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지만 더 이상은 무리야”

“하지만…”

“이미 미래씨는 몸도 정신도 완전히 한계에 가까워, 어쩌면 저 형씨가 이곳으로 온 지금을 놓치면 우리는 앞으로 미래씨와 함께 밖으로 나갈 수 없을지도 몰라”

평소의 터덜터덜한 목소리가 아닌 한껏 진지해 보이는 두리의 목소리.

나는 현관 앞에서 제니의 감시를 받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실력 하나만큼은 아마 우리 세명이 모두 덤벼도 안될 정도겠지.

물론 저 사람 혼자서 우리 세명을 모두 보호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최소한 자신은 있는 것 같았다.

“하아…”

정말로 이게 맞는 선택인 것인지, 아직도 제대로 모르겠다.

일단 집에 남아있는 식량들은 모두 가방에 담아 나와 두리가 나눠 담았기에 우리는 꽉 찬 가방을 들고 그 남자에게 향했다.

“준비는 끝난 것 같군”

“…그래”

“그럼 출발하지”

그 말을 남기고 그대로 아래를 향해 내려가는 녀석

우리 셋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따라갔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저 우리들의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아파트의 계단

어째서인지 또각 거리는 그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점점 손에 식은땀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후우….후우…”

벌써부터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한 미래씨.

나는 그런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다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그저 식은땀을 조금 흘렸을 뿐 딱히 숨이 거칠어지거나 지친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봐도 딱히 그런 내색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뭐지?’

“하아… 하아…”

그러나 계속해서 나의 귀에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마치 지금 막 마라톤 선수가 내쉬는 무거운 숨처럼 하나하나에서 끈적한 긴장감으로 칠해져 있었다.

혹시 좀비가 나온 것은 아닌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렇게 큰 소리가 들리는데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점점 혼란스러워 지기만 했다.

“저기…”

그 순간 나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내가 뒤를 돌아보자 미래씨는 걱정되는 눈빛을 한 채 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를 불렀다.

“네?”

“아뇨… 힘들어 보여서요… 괜찮으세요?”

“에이 힘들다뇨 그게 무슨…”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래씨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줄 몰랐던 나는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시야에 든 온통 땀투성이가 되어버린 나의 오른손.

나는 그 땀을 대충 바지에 문질러 닦으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나의 바지는 눅눅하게 젖어 손에 있는 물기를 제대로 닦지 못하고 있었다.

“어…. 어라?”

그제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나의 몸 상태.

나는 지금 온몸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흠뻑 젖어버릴 정도로 흘린 식은땀.

앞의 두 사람도 나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인지 층계를 내려가는 것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형? 왜 그래 갑자기?”

“……”

갑작스러운 나의 상태에 깜짝 놀라 다가오는 두리와는 달리 그저 맨 앞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 남자.

나는 그들에게 무어라 답하려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려는 그 순간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형!!!”

그대로 나에게 달려오는 두리.

뒤에서 보던 미래씨도 깜짝 놀란 것인지 어찌할 줄 몰라 곤란해 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윽!!!”

바들거리며 떨리기 시작한 나의 손.

내가 무언가 이상을 느꼈을 때에는 이미 나의 심장은 마치 단거리 달리기를 마친 것처럼 터질듯이 두근대며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하는 시야에 나는 갑자기 막연한 공포심이 들기 시작했다.

“형!!! 진정해!!! 숨!!! 숨쉬어!!! 자 따라해, 쓰으으읍…하아…”

“후우… 하아….”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자 그런 나를 붙잡고 심호흡을 시키는 두리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제대로 따라하지는 못해지만 다행히도 흐려지는 시야를 다잡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두리다 힐을 사용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두리의 힐.

두리의 마나가 나의 몸 안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며 곳곳을 보듬어주는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쓰으으읍….하아….쓰으으으읍….하아….”

그때가 되어서야 겨우 진정된 나의 호흡

두리도 겨우 안심 된 것인지 나의 가슴에서 손을 때고 뒤로 물러났다.

“괜찮으세요?”

“네… 덕분에 괜찮아진 것 같아요”

그렇게 겨우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나 마치 계단에 완전히 붙어 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나의 발.

분명 나는 밑으로 내려가려고 마음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다리는 마치 가위라도 눌린 것 마냥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무리다”

그렇게 내가 단단히 굳어버린 다리를 들어올리려 애쓰고 있을 때, 아까까지만 해도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그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뭐라고?”

“’무리다.’라고 했다.”

“아니 그게 무슨… 읏…”

그러더니 다짜고짜 나에게 이상한 말을 시작하는 녀석.

나는 그런 녀석에게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내가 있는 곳까지 올라온 그를 보고는 그대로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마치 연기와도 같은 움직임.

바로 앞에서 봤음에도, 그렇다고 그리 빠른 움직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수가 없었다.

“잠깐!!! 지금 무슨 짓을 하는거야!!!”

그런 나를 감싸는 두리와 미래씨.

갑작스러운 녀석의 행동에 당황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는지 두 사람 모두 몸을 작게 떨며 눈앞의 녀석을 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며 마치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쉬는 녀석.

그리고 그런 녀석이 내뱉은 말에 우리는 모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쓰러진 그 남자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뭐? 잠깐! 약속이 다르잖아!!!”

분명 그가 우리와 한 약속은 우리가 그들의 그룹에 들어가는 대신 그들이 베르를 구해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일단 우리 셋을 모두 녀석의 일행이 대형마트로 향해야 했다.

그러나 녀석은 화를 내는 두리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약속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그저 그 남자 스스로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 뿐이었다.”

“그게 무슨!!!”

“지금 니 꼴을 봐라! 아직 제대로 된 좀비를 만나기는 커녕 그저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 것 만으로도 겁을 먹고 이렇게 벌벌 떨면서 주저앉아버리고는 어떻게 밖으로 나간다는거냐!!!”

내가 그에게 무어라 대꾸를 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녀석.

지금까지 그저 무표정한 눈빛으로 일관하던 그의 모습과는 달리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마치 훈계하듯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말에 충격을 먹고 두 눈을 멍하니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겁을… 먹었다고? 내가?’

그리고는 나는 다시 시선을 옮겨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공포 때문인 것인지 피로 때문인 것인지 이미 벌벌 떨고 있는 자신의 손과 그런 나의 온몸을 뒤덮을 정도로 흥건하게 흘리고 있는 땀

그리고 굳어버린 채 그대로 쓰러졌던 나의 다리는 이미 온몸을 다 쓴 것인지 더 이상 발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니가 그렇게 약하다고 생각하던 그녀를 봐라, 그녀는 지금 아픈 몸을 이끌고도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밖으로 향하고 있다.”

그에 말에 나는 미래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미래씨의 두 눈을 마주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결국 그대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는 정말로 겁에 질려 있던 것일까.

아직 집에 물자가 남아있다는 핑계로, 베르가 있다는 핑계로, 그녀의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그저 집안에 숨어 벌벌 떨고만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얼마전 두리와 함께 잡았던 좀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런 감정이 없이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시체

두개골이 깨지고 머리가 터지며 두 눈과 뇌가 흘러나오고 있는 와중에도 그저 우리를 먹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던 저급한 몸부림을

“우욱!!!”

그러자 자연스럽게 헛구역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섭다.

그런 존재를 만나는 것이.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 마치 짐승만도 못한 그런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

두렵고, 무섭고, 역겨웠다.

그렇기에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형…”

“하나씨…”

지금까지 들어왔던 익숙한 목소리.

나를 생각해 주고, 이해해 주던 샹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런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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