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48. 기다림
* * *
마치 폭풍이라도 지나간 것만 같은 상황.
방금까지 두 좀비의 싸움을 보고 있던 미래 일행은 그 싸움으로 인해 생긴 소음 듣고 모여든 좀비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맨 처음 몸을 숨겼던 장소에서 순을 죽이고 있었다.
‘이제… 다 사라진 것 같군...’
‘바… 방금전 그 두 좀비는 뭔가요? 평범한 좀비들은 아닌 것 같았는데…’
지금까지 보아왔던 좀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파워와 회복력을 보여주는 비 이상적인 좀비들.
지금 자신들의 앞에 있는 남자가 단 두번의 칼놀림으로 좀비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는 안심하고 있었던 자신의 마음을 정면에서 부정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둘의 강함에 미래와 두리는 그 자리에서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눈앞의 남자를 보고 있자니 왜인지 모를 오싹함까지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보아왔던 좀비들은 그저 게임의 잡몹과도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에 둘은 그저 자신들의 몸에 걸린 마법이 풀리지 않도록 서로의 손을 더욱 강하게 붙잡을 뿐이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안전한 장소에 도착하면 알려주도록 하지, 주변에 있는 좀비들도 대부분 물러 났으니 아마 한두시간만 더 걸으면 도착할거다.’
‘.......도착하면, 정말로 다 알려주시는거죠?’
‘이런 상황에서까지 거짓말을 할 정도로 고약한 심보를 가진 건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들의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는 그.
그저 답답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그의 뒤를 따라갈 뿐이었다.
‘베르…’
만약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저 남자가 아닌 베르였다면 어땠을까.
확실히 단순한 전투력이나 안전함으로만 따졌을 때는 분명 이것이 가장 나은 선택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자신들과는 철저하게 담을 쌓은 채 자신의 일만을 묵묵히 이어나가려 하는 그에게는 베르와 같은 든든한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자를 따라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던 것인지, 어쩌면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하나씨와 두리씨에게 피해만 준 것이 아닌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꽈악…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미래의 양손에는 어느새 축축하게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미래씨…’
‘아… 저는 괜찮아요…’
지금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라 믿으며 기도할 뿐.
그렇게 그녀는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베르를 생각하며 앞으로 향했다.
***
[으음…]
[왜그러세요?]
[아니… 그냥, 목줄 부분이 근질근질해서 말이야]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목줄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에 나는 가려움을 느끼며 뒷발을 이용해 목주변을 벅벅 긁고 있었다.
고양이 놈들과의 냉전이 시작 된지도 꽤나 시간이 흘러 사실상 언제 다시 한번 패싸움이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
물론 내가 지는 일은 0.01%미만의 의미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이 갑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마치 장난감을 두고 싸우다 토라진 유치원생들과 같은 유치한 상황이라는 것쯤은 나도 자각하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나는 지금 댕댕이일 뿐인걸,
끽 해봐야 동물 수준인 내가 지적이고 냉정한 사고 따위를 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그저 동물로서 본능의 충실하게 임하는 것 뿐이다.
물론 잠을 자려고 할 때마다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거나 물건을 떨어트려 큰소리를 내고.
밥을 먹으려고 할 때마다 내가 먹는 모습을 기웃거리며 결국 내 머리 위에 물을 쏟아 붓는 다거나.
아직 뜯지도 않은 음식들의 포장들을 몰래 찢어 버린다거나 하고 있지만.
나는 절대로 저 떼껄룩 놈들에게 ‘사람으로서' 화가 난것이 아니다.
“쨍그랑!!!”
[아오 진짜 저것들을 그냥 확!!!]
[차… 참아요. 베르님!!!]
한시간에도 몇번이고 ‘물어죽일까?’ 하는 살심이 들기는 했지만 옆에서 날 말려주는 꼬미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 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아오…. 한번만 더 봐준다 개색… 아니 떼껄룩 새끼들’
끼이이익…
그렇게 서로를 죽일듯이 노려보는 것도 잠시, 갑작스럽게 열린 철문소리에 나와 고양이 놈들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언니!!!]
저번과 같이 그녀가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아래를 향해 달려가는 꼬미.
하지만 그런 꼬미의 뒤를 따라 평소라면 그저 가만히 앉아 그저 빤히 문너머에서 들어온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나와 제키 녀석은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꼬미의 뒤로 따라 붙었다.
그녀가 손안에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고양이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
[제니!!!]
내가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제니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나를 따라 달려오던 이 뚱냥이 새끼는 그런 나의 말을 중간에 잘라버리고는 그대로 제니를 향해 달려갔갔다.
온몸이 살로 뒤덮혀 있는 것만 같은 녀석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점프력.
물론 당연하게도 그 점프가 제니에게 닿는 일은 없었지만 제니를 들고있던 그녀가 갑작스러운 녀석의 점프에 놀랐던 것일까, 제니를 들고있던 손의 반대쪽 손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공중에 떠있는 녀석을 밀쳐내 버렸다.
물론 그것 뿐 만이라면 평범한 고양이가 다칠 일은 없었겠지만, 아쉽게도 뚱냥이를 밀어낸 그녀는 ‘평범한'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손에 내쳐진 제키는 그대로 나의 뒤으로 날려보내졌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형님!!!]
“으에!?”
그러자 정작 제키를 날려버린 당사자인 그녀도 깜짝놀란 것인지 급하게 자신의 손안에 든 제니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리고는 그대로 나가떨어진 녀석을 향해 달려갔다.
단 30초만에 난장판이 되어버린 창고 내부.
물론 나는 그딴 건 상관없었기에 자신을 반겨주지 않아 시무룩해진 꼬미를 데리고는 바닥에 눕혀진 제니를 향해 다가갔다.
[야! 니가 왜 여기있는거야! 미래는!?]
[…지금 내가 죽을 것 같은 상태인데 이 와중에 내 걱정이 아니라 자기 주인 먼저 찾는거냐?]
나의 물음에 제니는 마치 어이없다는 듯이 눈을 치켜세우며 나를 째려보았지만 지금 나에게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히 제니는 내가 집 밖을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래 일행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제니가 지금 그녀와 함께… 그것도 이렇게 엉망이 되서 돌아왔다는 것은…
[내가 너를 한두번 보는 줄 알아? 입놀리는거 보니까 한두시간만 쉬면 다시 멀쩡히 움직이겠구만! 그래서 미래는 어디가고 너 혼자 여기있는데!!!]
순간적으로 욱해지는 감정으로 인해 평소와는 달리 꽤나 공격적인 말투로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제니는 오히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렇게까지 격해지는 건 처음 보는데… 너도 결국은 개다 이거야?]
[지금은 말장난 할 기분이 아니야… 미래는 어떻게 된거야.]
[걱정 하지 마, 최소한 아직은 안전하니까.]
내가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일단 내가 집 밖으로 나온 후부터 그녀가 이곳으로 오기까지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의 표정을 살피는 것처럼 중간중간에 눈을 힐끔거리는 그녀.
나의 옆에서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꼬미도 평소처럼 나의 옆에 붙어있기는 했지만 어때서인지 겁에 질린 것처럼 나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고 있었다.
지금 나의 표정이 그렇게나 안 좋은 것일까, 나는 일단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그대로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래서… 곧 있으면 미래가 이곳으로 올 거라고?]
[그래… 애초에 그녀가 집 밖으로 나온 이유가 다름아닌 너 때문이었으니까.]
[…..]
[베르?]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놀라 나를 불러 세우려는 제니.
하지만 더 이상 그녀의 말은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짜증과 불안으로 인해 답답하던 마음도 이제는 완전히 풀려버려 오히려 후련할 지경이었다.
나는 그렇게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철문의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뭘 하려는거야?]
[뭐하긴, 개라면 개답게, 그렇게 하고 있는거야]
그녀는 분명 이곳으로 올 것이다.
그 확신에 이유 따위는 없다. 그저 믿을 뿐.
탈출을 위한 빈틈을 찾기 위한 불확실한 확률에 맡긴 채 하염 없이 기다리던 지난 날들과 달리, 자신의 주인이 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반겨줄 것이라.
그렇게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