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3화 (3/50)

〈 3화 〉 검은 수호자의 그림자

* * *

샤하나즈가 4번 출입구 근처에 도착하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기 직전이었다.

다른 불멸자의 2배 정도 되는 크기의 불멸자의 근처에는 이미 2대 정도의 수호자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채찍과 같은 왼팔을 바닥에 끄는 불멸자는 날카로운 오른손만으로 자신을 가로막은 수호자를 계속해서 몰아 붙였다.

방패와 철퇴를 든 수호자의 뒤에는 정자세로 굳은 3대의 수호자가 기관포를 퍼부으며 간신히 불멸자의 움직임을 붙잡고 있었다.

철퇴와 방패를 든 수호자의 어깨 장갑에 새겨진 숫자 8을 발견한 샤하나즈는 곧바로 불멸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로크! 넌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야? 너희 담당 구역은 저 반대잖아!》

《그건 샤하나즈에게 따져! 에버니저 때문에 여기 왔다고 하는데 어쩌겠어?》

샤하나즈의 수호자를 발견한 불멸자는 바닥에 끌던 채찍과 같은 팔을 휘둘렀지만, 순식간에 몸이 달아오른 샤하나즈의 수호자는 이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샤하나즈는 이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불멸자의 오른팔을 노리고 사슬 톱을 휘둘렀지만, 날카로운 금속이 부딪히는 소음과 함께 사슬 톱의 사슬이 부서졌다.

샤하나즈가 사슬 톱을 팔뚝에 다시 수납하자 로크는 어처구나가 없는 듯 소리를 질렀다.

《대체 이런 놈한테 왜 기관포만 쓰는 거야? 흠집도 안 나잖아! 성형작약탄이나 90mm 철갑탄은 어디에 팔아먹은 거야?》

《도움도 안 되는 놈이 입만 살아서! 너 같은 더러운 핏줄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로크의 투정에 기관포를 쏘던 수호자 중 하나가 기관포를 팔뚝에 집어넣고, 팔 전체를 포신으로 교체해 불멸자를 조준했다.

굉음과 함께 포탄이 발사되자마자 뒤로 물러나 에버니저의 수호자와 거리를 벌린 불멸자는 그 크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몸을 비틀었다.

꺾여서는 안 되는 부분마저 꺾여 절대로 빗나갈 것 같지 않은 부위를 노렸던 철갑탄은 허무하게 빗나갔고, 뒤 이어 발사된 철갑탄마저도 스치는 것이 전부였다.

《너라면 저런 걸 맞출 수 있겠냐! 저기 있는 놈들도 가까이서 쏘려다가 저 꼴이 난 거라고!》

《맞는 말이야. 나하고 에버니저 정도니까 버티는 거지, 가까이 갔다가 조금만 실수하면 순식간에 찢길 거라고. 특히 저 왼팔은....》

에이다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장난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마저도 불멸자가 뒤로 물러나 여유가 생겨 말을 꺼낸 것인지 불멸자가 다시 달려들자 에이다의 말은 그대로 끊겼다.

샤하나즈와 로크는 서로 어떠한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서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지 불멸자를 향해 달려드는 샤하나즈의 수호자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에버니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샤하나즈가 달려들자 불멸자는 곧바로 목표를 샤하나즈에게 돌렸다.

《왼팔은 내가 보고 있어! 오른팔에 집중해!》

조금의 감속도 없이 상체를 뒤로 젖혀 불멸자가 휘두른 왼팔을 피한 로크는 앞으로 미끄러지는 자세에서 하체의 힘만으로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공중에서도 오른팔에 집중하던 샤하나즈는 수호자의 가슴을 노리고 뻗은 오른팔을 잡아 한쪽으로 흘려보냈다.

동시에 이를 지지대로 삼아 몸을 돌린 샤하나즈는 로크가 포신으로 교체한 왼팔을 그대로 불멸자의 입에 처박았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포신이 불을 뿜었다.

영거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된 철갑탄은 간단히 불멸자의 몸을 완전히 관통했다.

그것으로 난폭하게 날뛰던 불멸자는 한순간에 제압되었고, 불이나기 직전까지 달아오른 샤하나즈의 수호자도 천천히 식었다.

“그래서......이거로 된 건가?”

《아마? 아직 사라지지 않는 거 보면 살아있는 것 같은데, 똥꼬가 하나 더 생겼는데 쉽게 움직이지는 못하겠지.》

로크는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작게 웃었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전신에서 증기를 뿜는 샤하나즈의 수호자가 아직도 꿈틀거리는 불멸자를 끌고 천천히 걸어오니, 에버니저의 수호자가 달려와 그를 끌어안았다.

《샤하나즈 모토르. 너를 우리 가문으로 받아들인 건 내 삶에 있어 가장 최고의 선택이었어.....라고 에버니저가 전해 달라고 하네. 물론 이어지는 말은 많지만 그 정도만 해 둘게. 나도 네가 자랑스러울 정도인데, 에버니저는 오죽하겠어?》

다시 장난기가 돌아온 에이다의 말에 실소한 샤하나즈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이 정도도 못 하면 전대장님을 볼 낯이 없지. 나를 기사로 만든 것 때문에 8전대로 좌천당하신 건데......”

“쾅!”

그런 와중 갑자기 포성이 울려 퍼지며 샤하나즈의 혼잣말을 끊었다.

방금까지 뒤에서 기관포만 쏘던 수호자 중 하나의 포신에서 연기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고, 샤하나즈가 끌고 온 불멸자는 머리가 완전히 박살나 천천히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너야 말로 뭐하는 거야? 이건 나하고 루시안이 처리한 불멸자인데, 네가 손을 댄 거잖아?》

철면피를 넘어선 발언에 어처구니를 잃은 로크는 실소마저 못했다.

《지금 장난쳐? 도움도 필요 없다면서 뒤에서 아무것도 못하던 놈이 뭐? 네가 처리해?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네 안에 탄 기사는 머리가 뭐 이상하게 됐냐?》

《세상 누가 실적이라고는 뭣도 없는 8번 전대의 수호자가, 그것도 더러운 핏줄 출신의 가짜 기사가 탄 수호자가 혼자서 처리했다고 하면 믿을 것 같아?》

《나도 네가 뭘 한건 못 봤는데. 전부 루시안의 수호자가 처리했지.》

《거짓보고로 처벌받기 싫다면 그냥 닥치지 그래?》

3명이서 입을 맞추기 시작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한 로크가 움직이려하니 에버니저의 수호자가 그를 붙잡았다.

《그만, 어차피 싸워봤자 좋을 것 하나 없어. 이기지 못할 싸움이라는 건 알잖아.》

《너라면 참겠어? 지금까지 실적 뺏긴 건 알게 모르게 당한 거라고 쳐도 이딴 식으로 노골적으로 하는데도 보고 넘길 거냐고!》

“에이다 말 들어. 어차피 싸워봤자 우리만 손해야.”

하지만 로크는 에이다의 말이나 샤하나즈의 지시는 들리지 않는지, 에버니저가 붙잡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루시안의 수호자를 공격할 것 같이 움직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루시안은 대놓고 수호자의 해치를 열곤 샤하나즈를 향해 꺼지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들었지! 이미 끝났으니까 가짜는 가짜답게 꺼지라고! 도움도 안 되는 더러운 잡종아! 저 멍청이도 지금쯤 너를 받아들인 걸 후회하고 있을걸! 아예 에버니저도 가문에서 잘라버려야 했는데 말이야!”

수호자와는 다른 목소리였지만, 루시안의 조롱은 수호자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에버니저를 향한 조롱에 이번에는 로크만이 아닌 샤하나즈까지 함께 움직였다.

《그만해! 너까지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샤하나즈가 자신을 뿌리치자 에이다는 다급하게 샤하나즈를 불렀다.

그러나 역린을 자극당한 샤하나즈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해치를 닫은 루시안은 더 이상 접근하면 쏴버리겠다는 듯, 기관포를 겨눴지만 샤하나즈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뻣뻣한 움직임의 루시안이 조준하는 속도보다 샤하나즈가 파고드는 속도가 한층 더 빨랐다.

그리고 샤하나즈가 루시안의 수호자에 닿으려는 순간.

“쾅! 쾅! 쾅!”

3번의 포성과 함께 루시안의 수호자를 포함한 다른 7전대 수호자의 가슴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무엇이라 전해지는 말도 없이 세 수호자는 무력하게 쓰러졌고, 샤하나즈는 곧바로 뒤로 돌아 에버니저의 수호자에게 달려들어 몸으로 이를 감쌌다.

“로크! 대체 무슨 일이야!”

《수호자! 수호자가 있어! 어둠 속에 수호자가 있었다고! 검은색 수호자가!》

《그래, 내가 쐈어. 3명이서 내 실험작을 망쳤다고 해서 싹을 잘라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나름 공들여서 만든 건데.》

로크의 말 대로 어둠 속에서 검은색의 수호자가 걸어 나왔다.

방금 전의 포성은 그 수호자가 쏜 것이었는지, 오른손의 포신을 팔뚝으로 집어넣은 수호자는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바닥에 엎드린 샤하나즈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그 수호자에 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이라는 것을 확신한 샤하나즈는 에버니저의 철퇴를 들고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순간적인 일격을 노렸지만,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철퇴를 피한 검은 수호자는 샤하나즈의 팔을 붙잡았다.

《어라? 여기에도 이런 엔진이 있었네? 영원히 못 볼 줄 알았는데.》

《대체 넌 뭐야! 정체가 뭐냐고!》

샤하나즈는 검은 수호자의 손을 쳐내고 다시 철퇴를 휘둘렀지만, 검은 수호자는 샤하나즈와 다를 것 없는 움직임으로 철퇴를 가볍게 피했다.

《나는 너와 다를 것 없는 존재야. 아카이브의 의지지.》

샤하나즈의 수호자는 또 다시 달아올랐지만, 검은 수호자는 이러한 가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든 공격을 간단히 피했다.

“대체 뭐야! 하나도 모르겠어! 로크, 너는 알아듣겠어?”

《몰라! 아카이브고 자시고, 뭔 저딴 움직임이 되는 건데! 대체 뭘 하면 저게 되는 거냐고!》

지금껏 상대해 본적이 없는 속도에 두 명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계까지 가속했지만 검은 수호자는 이들의 속도를 한참 상회하고 있었다.

샤하나즈가 필사적으로 휘두르는 철퇴를 휘두르는 동안 다른 수호자들이 그들의 뒤로 강하했고, 이를 본 검은 수호자는 사하나즈의 철퇴를 붙잡았다.

《우린 다시 만날 거야. 다음에는 어떻게 만날까? 적? 아니면 아군? 아니면 네가 내가 될까? 궁금해지네.》

철퇴를 놓아준 검은 수호자는 불멸자와 같이 천천히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놓치지 마 로크! 저게 뭔지는 몰라도 절대 그냥 두면 안 돼!”

샤하나즈는 곧바로 검은 수호자를 쫓으려 했지만, 로크가 막은 탓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냥 사라졌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게다가 이제 기동 한계야! 더 움직이면 나도 더 못 움직일 거라고!》

로크의 만류에 결국 추격을 멈춘 샤하나즈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뒤로는 4전대의 수호자들이 와서 현장을 파악하고 있었고, 뿌리칠 수 없는 찝찝함에 샤하나즈는 혀를 차며 돌아섰다.

“일단 이 검은 수호자에 대해서 보고해야겠어,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게 분명해.”

그러나 이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정비를 담당하는 일라르 가문의 사람들이 아닌, 긴급 상황에 파견되는 0번 전대의 수호자들이었다.

이들은 본 샤하나즈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어둠을 가리키며 자신이 본 것을 보고 했다.

“지금 당장 파견팀을 마련해 주시죠. 지금 의문의 수호자가.....”

그러나 샤하나즈의 말을 듣지도 않았는지 돌아온 대답은 샤하나즈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샤하나즈 모토르. 너를 수호자의 파괴와 기사의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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