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6화 (6/50)

〈 6화 〉 재회, 그리고 아이샤

* * *

시작은 희미한 빛이었지만 이 미약한 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되어 그의 시야를 뒤덮기까지는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수호자의 잔해가 내뿜던 푸른색 빛과는 달리 맹렬히 타오르는 불과 같은 주황색 빛은 그를 붙잡은 모든 것을 불태웠다.

짙은 어둠이 사라지며, 빛이 주는 미약한 온기에 샤하나즈는 간신히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네. 네가 샤하나즈 맞지?”

흰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는 쓰러진 샤하나즈를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녀의 몸에는 불이 붙어있었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쪼그려 앉아 엎드린 그의 얼굴을 들어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응, 맞네. 살아있는 것 맞지?”

“대체 누구......?”

“나? 잘 살펴보면 누군지 눈치 챌 수 있을 텐데. 네가 나를 처음 보는 건 아니거든.”

흰 두건을 벗지 않은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샤하나즈의 대답을 기다렸다.

여자의 불길의 온기 덕에 조금 기력은 찾은 그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서진 벽에 몸을 기댔다.

“재판에서...... 유일하게 손을 들지 않은 사람?”

“정답. 나 혼자서는 결과를 바꿀 수 없지만, 네 편이 한 명쯤 있다는 건 알려주고 싶었거든.”

작게 웃은 그녀는 머리를 가리는 두건을 벗었다.

목에서부터 시작된 화상흉터가 오른쪽 볼까지 올라온 그녀는 머리를 풀며 흰색의 머리칼을 가볍게 흩날렸다.

허나 흩날리는 머리는 그녀의 몸에 타오르는 불길에 닿자 검게 물들었고, 이내 그녀의 머리칼은 샤하나즈와 똑같은 검은색이 되었다.

“아이샤 페이루즈야. 잘 부탁해.”

아이샤는 악수를 청하는 듯, 샤하나즈에게 손을 뻗었다.

샤하나즈는 이에 응해 힘겹게 손을 잡았고, 그러는 와중 무언가 기억났는지 살짝 고개를 들어 아이샤를 바라보았다.

“아이샤? 아이샤라면 누군가 티페레트를 아이샤에게 전달하라는 말을 했었는데...... 설마 그 아이샤인가?”

“뭐야,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가볍게 흔들고 손을 놓으려던 아이샤는 샤하나즈가 티페레트라는 이름을 입에 담자 그대로 손에 힘을 줬다.

의심 섞인 아이샤의 눈빛에 샤하나즈는 그녀의 발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자리에는 그가 집어던진 티페레트가 있었고, 아이샤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를 주워들었다.

“이걸 왜 네가 가지고 있는 거야?”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나한테 줬어. 저 녀석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속여서 여기까지 왔고.”

그 대답에 아이샤는 톱니바퀴를 손에서 던졌다 받으며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래, 티페레트는 영악한 녀석이니까. 여기에 갇혀있기 싫어서 사람들을 속이는 게 일상이거든. 그래, 고생 많았어.”

아이샤는 악수를 청하듯 그에게 손을 뻗었고, 샤하나즈가 이를 잡자 팔을 잡아당겨 그를 일으켜 세웠다.

엉거주춤하게 일어선 샤하나즈는 뭔가 이상한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내가 누군지는 어떻게 안거지? 나는 너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에버니저에게 행동 지시를 받은 건 너희 8번 전대만이 아니라고. 리암과 사일러스는 알아서 도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수호자가 오버홀 중인 두 명, 레티시아와 에라실은 내가 탈출에 도움을 줘야 했거든. 너를 챙기는 것도 내 몫이었는데 갑자기 밤이 되어버려서 좀 늦었어..”

아이샤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이내 순식간에 웃음이 가라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작 에버니저는 지킬 수 없었지만...... 정말로 미안해. 에버니저도 로크도 에이다도. 내가 뭔가 하고 싶었지만 손도 쓸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서......”

잠시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었는지 눈가에 손을 가져다 댄 아이샤는 한참동안 침묵하다가 심호흡과 함께 처음 보였던 밝은 얼굴을 되찾았다.

“아무튼! 일단 너까지 무사해서 다행이야. 이걸로 에버니저의 부탁은 전부 끝났어.”

“그러고 보니 넌 에버니저 전대장님과 무슨 관계지?”

“공생관계라고 보면 편할 거야. 나는 에버니저에게 아카이브에 대한 정보를 해석해서 제공하고, 에버니저는 내게 해석되지 않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줬지. 둘 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곤 있었으니까.”

“하나의 목적?”

아이샤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샨의 해방. 물론 에버니저가 없어진 지금은 우리의 계획이 다 뒤틀렸지만.....”

그 누구도 로샨을 강제로 점령하고 지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시 외곽의 최하층에서부터 기사까지 올라왔던 샤하나즈는 아이샤가 말한 해방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빛과 수호자를 무기로 도시를 지배하는 네 선각자 가문을 몰아내는 것.

도시 외곽은 오로지 도시 중앙에서 공급되는 빛에 의존해 밤을 버티는데, 만약 할당량으로 정해진 아침의 파편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선각자 가문에 대한 반항을 보였다가는 그날 밤 그 구역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단 하룻밤에 수백 명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도시의 외곽에 살며 그런 광경을 몇 번이고 목격한 샤하나즈가 이를 잊을 리가 없었다.

기사가 된 이후로도 그들에 의해 아버지나 다름없는 에버니저와 자신의 일부나 다름없는 로크마저 잃었다.

아이샤의 설명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이유는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진 것이었다.

“이제 더 바쁘게 움직여야지. 계획이 틀어진 것도 있고, 이제는 티페레트의 새로운 기사도 찾아야 하고 말이야.”

“내가 탈게! 내가 타게 해 줘!”

샤하나즈가 즉각적으로 대답하자. 아이샤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기사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건 함부로 허용 못해. 이건 같은 기사가 두 번 이상 탈 수 없는 수호자라서, 오로지 죽기 직전의 부상을 입은 사람만 탈 수 있다고. 네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으면 에버니저의 희생은 뭐가 되는 거야?”

“나라면 괜찮아! 기사가 아니라 엔진이 되어도 상관없으니까 에버니저의 복수를 하게 해 줘!”

엔진이 되겠다는 샤하나즈의 말에 아이샤는 엉거주춤하게 선 샤하나즈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대로 웃옷을 잡아당겨 샤하나즈의 가슴팍을 만진 아이샤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본 사람마냥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네가 그 말을 어떻게 알아? 티페레트에 탄 사람들이 매번 하던 말이 그거였어. 티페레트가 자신을 엔진으로 삼는다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방금 전에 그 티페레트에 탔으니까. 그러니까 타겠다고 한 거야. 복수를 위한 것이라면 뭐라도 상관없어.”

“아니, 한 번만 타더라도 티페레트에 흡수되거나 침식되어 신체가 변형되는데, 넌 대체 뭐야?! 네가 좀 특별하다고 에버니저가 한 적은 있었지만 이건 좀 상식 밖이잖아!”

머리를 미친 듯이 해집는 아이샤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평상심을 되찾고는 티페레트와 샤하나즈를 번갈아 보았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째는 정말로 선을 넘을지도 몰라. 에버니저는 복수가 아니라 네가 살기를 바랐어. 그런데도 죽을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거야?”

아이샤는 샤하나즈에게 물으며 티페레트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내심 그가 받아들이지 않기를 원했는지 망설이는 모습도 보였지만, 그 손에서 티페레트를 낚아채듯 건네받는 샤하나즈의 손길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 삶을 만들어 준 건 에버니저 전대장님과 로크였어. 이제는 내가 그 둘을 위해 살아갈 때야.”

“그렇다면 해방군에 합류한 걸 환영해. 샤하나즈.”

몸을 태우는 불이 점점 거세진 아이샤는 페레슈테의 어깨를 붙잡았고, 아이샤의 몸을 태우는 불꽃은 그대로 페레슈테의 몸에도 옮겨 붙었다.

“그렇다면 바로 움직이자고. 네가 그렇게 결심했다면, 이제 망설일 것도 없을 테니까.”

아이샤는 조금 씁쓸하게 말을 꺼냈지만, 이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가 얼굴에 가득 차기 전, 두 명을 감싼 불꽃은 하늘까지 솟구치며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어 냈다.

그림자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모든 곳이 밝게 빛나는 동굴 광장에 갑작스러운 불꽃이 튀었다.

눈치 채기 힘들 정도로 작은 불씨는 순식간에 타오르며 거대한 불기둥으로 변했다.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기둥은 순식간에 꺼지며 그 한가운데서 아이샤와 샤하나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해방군 전진 기지에 온 걸 환영해.”

이러한 현상에 멀미라도 느끼는지 샤하나즈가 비틀거리자, 아이샤는 쓰러지는 그를 붙잡곤 어깨에 붙은 불꽃을 털어냈다.

“처음에는 좀 어지러워도 곧 익숙해질 거야.”

머리를 몇 번 흔들며 어지러움을 털어낸 샤하나즈는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팔을 위로 뻗으면 천장에 닿을 정도로 동굴 자체는 그리 넓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는 다른 장소와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터널 4개가 사방에 있었고, 터널을 통해 얼핏 살펴본 것만으로도 이러한 공간이 꽤나 여러 개가 연결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가 주변을 마저 다 살펴보기도 전에 누군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샤하나즈!”

샤하나즈보다 한 뼘 정도 키가 큰 레티시아는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달려든 속도 그대로 그를 끌어안았다.

몸이 멀쩡한 상태라 할지라도 그보다 체격이 큰 레티시아가 그렇게 달려들면 중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몸 상태마저 좋지 못하니 샤하나즈는 반쯤 날아가듯 뒤로 넘어졌다.

그러나 레티시아는 이런 샤하나즈의 상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끌어안은 상태 그대로 샤하나즈의 머리가 헝클어질 때 까지 마구 쓰다듬었다.

“무슨 일이 있을까봐 걱정했다고! 동생들이라도 전부 무사해서 다행이야! 다시는 못 만나는 줄 알았다고!”

“레티시아 누나도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수호자 손상이 커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뒤로 넘어진 것 때문인지 온 몸이 얼얼하고, 레티시아의 근육이 다부진 억센 팔에 안겨있으니 호흡도 조금 힘들었지만 샤하나즈는 오히려 그 상황이 편한지 편히 웃었다.

“당연히 무사하지! 내가 안 무사하면 너희는 누가 지키겠어?”

“반가운 건 이해하지만 누나도 적당히 해요. 샤하나즈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런 레티시아의 뒤에선 한쪽 팔을 부목으로 고정한 에라실이 절뚝이며 다가왔다.

흰머리에 거뭇거뭇하게 검은 머리가 섞인 그는 아직 몸에 수호자 손상의 후유증이 있는지 레티시아와는 달리 달려드는 대신 샤하나즈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손만 흔들었다.

“아니다. 누나, 계속 해도 될 것 같네요. 저거 보니까 아주 멀쩡해 보여요. 아주 그냥 꽉 쥐어서 터트려 버려요.”

“너도 크게 다를 것 없어, 에라실. 아주 멀쩡해 보이는데 너도 같이 안기지 그래?”

장난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레티시아는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아직 절뚝이는 에라실도 함께 끌어안았다.

이런 상황이 조금은 황당했지만 싫지는 않았는지 에라실과 샤하나즈가 눈을 마주치며 실없이 웃자 이를 지켜보던 아이샤는 가볍게 박수를 치며 시선을 모았다.

“사일러스와 리암은 각자의 수호자에게 합류 지점을 전달했어. 아마 지금쯤이면 다른 해방군하고 합류 했을 거야. 그리고 반가운 건 이해하지만 지금은 급하게 진행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회의실로 모여 줄래?”

“급하게 할 일이라니, 지금은 다들 쉬는 게 우선 아닌가요?”

레티시아가 샤하나즈와 에라실을 보호하듯 더 강하게 끌어안으니 터널을 통해 밖으로 나서던 아이샤는 뒤를 돌았다.

“그렇게 쉴 시간도 없을 정도로 급한 일이야. 샤하나즈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 수고해 줘야겠어.”

“대체 무슨 일인데요?”

“기사를 구했으니 이번에는 수호자를 구해야지. 아니면 저 둘의 수호자도 로크와 같은 운명을 걷게 할 생각이야?”

“수호자 탈환 작전이라고요?”

“그래. 제대로 들은 것 맞아. 우리의 목표는. 레티시아의 수호자, 발레리안과 에라실의 수호자, 스펜서를 탈환하는 거야.”

샤하나즈와 레티시아가 믿기 힘든 목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동안, 에라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면 우리야 좋죠. 그러면 계획이 뭔가요? 로샨으로 가서 ‘돌려주세요’ 하고 공손하게 부탁하는 건가요? 아니면, 7m짜리 수호자를 주머니에 슬쩍 하거나? 뭐든 쉬워 보이네요.”

에라실이 비아냥거리니 아리송한 표정의 레티시아가 그 자세 그대로 손만 들어 가볍게 에라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물론 가벼운 손목의 움직임과는 달리 에라실의 뒤통수에서는 동굴 전체에 울리는 소리가 나며, 그대로 머리를 탁자에 박았다.

잠시 기절한 것인지 신음소리도 내지 않던 에라실은 탁자에 머리를 박은 그대로 손가락을 다시 치켜들었다.

“그러면 누나는 다른 좋은 생각 있어요? 5초 안에 생각 안 나면 누나도 나처럼 머리 박기.”

잠시 뒤, 있는 대로 생각을 짜내는 걸 얼굴로 표현하듯 얼굴을 잔뜩 구기던 레티시아가 탁자에 머리를 박았고, 모두가 어색해질 정도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에라실의 말이 조금 그래도 맞는 것 같은데요. 지금 발레리안과 스펜서는 둘 다 오버홀 중이라서 로샨의 중앙에 있어요. 그 가운데까지 들어가는 건 솔직히 불가능해요.”

“그래, 불가능하지. 만약 아직까지도 격납고에 있다면 말이야.”

아이샤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지도를 펼쳤다.

본인이 직접 그린 것인지 그림이 약간 엉성하긴 했지만, 중앙에 그려진 로샨을 중심으로 외부에 있는 위성도시의 위치나 숫자만큼은 정확했다.

그 중에는 기사였던 샤하나즈도 알지 못한 위성 도시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다들 지도를 살피느라 정신이 팔려 있으니 아이샤는 중앙의 로샨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시선을 모았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두 명의 수호자는 오늘 밤이 끝나면 비행선을 통해 도시 밖으로 옮겨질 거야. 위치는 여기.”

지도 중앙의 로샨에 머물던 손가락은 서서히 도시의 남서쪽에 있는 작은 원에 도착했다.

“제 7 위성도시, 세프. 더 이상 수리할 수 없는 수호자를 폐기하거나 재활용하는 곳이지. 우리의 계획은 위성 도시에 도착하는 직후, 내가 시선을 분산시켜 경계가 늦춰지는 사이 너희 둘이 비행선을 탈취 하는 거야. 그 비행선으로 도망치면 그걸로 끝,”

“주머니에 슬쩍 하는 것보다는 그럴듯하네요. 근데 이쪽 전력은 얼마나 있는데요? 아무리 쓰레기로 가득 찬 도시라도 5번 전대가 지키고 있을 텐데. 어떻게 움직인다 해도 부서지기 직전의 수호자로는 아무것도 못 해요.”

이마에 살짝 멍이든 에라실이 고개를 들며 물어보니, 아이샤는 샤하나즈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조사한 바로 지금 세프에 있는 수호자는 3기. 그 정도면 너희들이 도망치는 동안 내가 시선을 분산시키고, 샤하나즈가 너희를 엄호하는 게 가능할 거야. 합류지점은 내가 각자의 수호자를 통해 알려줄게.”

“잠깐만요! 샤하나즈는 수호자가 어떻게 수호자를 붙잡아요? 맨몸으로 그런 짓을 시키는 건 그냥 죽으라는 뜻 아닌가요?”

“저도 그건 반대하고 싶은데요. 얼마 전에 수호자를 잃은 샤하나즈를 미끼로 우리는 수호자를 되찾는다? 나도 이런 농담은 안 하는데, 지금 장난 하자는 건가요?”

“장난이 아니야. 진짜로 할 거야. 내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상관없으니까.”

샤하나즈는 아이샤에게 향한 두 명의 이의를 단호한 목소리로 쳐냈다.

“그렇지만 샤하나즈 로크 없이는.......”

“저도 알아요! 로크는 이제 없어요! 없는 걸 안다고요!”

로크라는 이름에 감정이 폭발한 샤하나즈는 레티시아의 우려에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샤하나즈의 그런 과격한 반응을 본 적이 없는 두 명은 모두 말을 잃었고, 두 명의 염려 섞인 눈빛에 감정을 가라앉힌 그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두 명 모두 같은 일을 겪게 할 수는 없어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할 테니까 두 명은 제발 협조해 주세요.”

이런 대화를 지켜보던 아이샤는 팔짱을 끼곤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이것 정도는 말 해줄게. 만약 이 작전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참가하지 않아도 좋아. 다만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빨리 선택해야할 거야.”

“그 전에 하나 확실히 해 두죠. 당신이 에버니저 전대장님과 아는 사이인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대체 당신의 정체는 뭐죠? 뭔데 당신은 아카이브의 정보를 알고, 그 정보 때문에 우리 전대장님이 죽어야 했냐고요. 대체 뭐가 목적인데 이런 일을 하는 거죠?”

에라실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아이샤를 노려보았다.

아이샤의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레티시아의 눈에는 그가 탁자의 아래에서 소매 아래에 숨겨뒀던 단검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에라실과 다를 것이 없이 남아있던 의심이 있던 레티시아는 아무 말도 없이 아이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과 같은 8번 전대의 인원을 구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에버니저의 이름을 들먹이며 모두를 이용하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약한 긴장감과 함께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샤는 팔짱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버니저는 언제나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이었어.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을 품었지. 그렇기에 그들이 가진 모든 고통의 시작인 이 밤을 영원히 끝내기로 결심한 거야. 누구도 어둠에 두려워하지 않고, 빛으로 위협받는 일도 없도록. 그러다가 나를 만나게 된 거지.”

야이샤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손가락에는 불이 붙었고, 잠시 이를 바라보던 그녀는 손가락을 휘저으며 불을 껐다.

“우리들은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이름으로 불려왔지. 선구자, 메시야, 지도자, 병기, 마녀. 지금은 역사 속의 올드 원이라고 불리지. 아카이브를 만들어낸 고대의 존재의 남긴 지식과 힘을 받았다는 뜻에서 말이야. 이런 나를 알아본 에버니저는 자신의 직책을 통해 알아낸 정보의 해석을 내게 맡겼고, 나는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그를 도왔지.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거야, 이 밤을 영원히 끝낼 수 있는 방법을.”

모두가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아이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거기서 멈췄다.

“안타깝게도 에버니저가 없는 지금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야 돼. 너희들이 나를 의심할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말했던 것처럼 하나는 확실히 해 두지. 나는 절대 에버니저의 뜻을 배신할 생각이 없어. 너희들에게 에버니저가 소중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는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아이샤가 지긋이 주먹을 쥐자, 에라실은 말없이 자신이 쥐었던 단검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좋아요, 이번 한 번은 믿어보죠. 저렇게 에버니저 전대장님의 이름을 들먹이는데, 우리 전대원을 개죽음으로 몰고 갈 리는 없으니까요. 아니면 이게 당신 면상에 박히겠지만.”

“나는 아직 모르겠어. 그렇지만 내가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너희들을 전적으로 지원하도록 할게. 그게 누나의 역할이잖아? 동생들을 봐주는 것.”

침울해 보이는 샤하나즈를 한쪽 팔로 끌어안은 레티시아는 그를 격려하듯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래서 작전은 언제 시작하는 거죠?”

“지금. 말했잖아? 시간 없다고.”

아이샤는 주머니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손톱보다 작아 거의 보이지도 않는 수준이었지만, 아이샤가 이를 주먹에 쥐고 으스러트리자 그 손 안에서 푸른색 섬광이 번쩍였다.

이내 그 푸른빛은 아이샤의 피부를 타고 내려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문자를 문신과 같이 새겼고, 이 문자들을 시작으로 몸은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거칠 테니까 서로 손이라도 잡는 게 좋을 거야.”

아이샤의 몸을 휘감았던 불길은 한순간에 탁자에 모인 3명 모두에게 옮겨 붙었고, 레티시아는 양팔로 에라실과 샤하나즈를 붙들었다.

“그러면 준비해. 도착하는 동시 작전 시작이니까.”

아이샤의 불길이 강하게 불타오르는 만큼 둘을 끌어안는 레티시아의 팔 힘도 강해졌다.

팔에 안긴 두 명이 고통을 호소하기 직전, 한계까지 타오른 불길은 위를 솟구치며 강렬한 불기둥을 만들어 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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