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수호자 탈환 작전 1
* * *
마치 수호자가 낙하하는 것과 같이 황야의 한 가운데 불기둥이 내려앉았다.
대지마저도 불태워 깊게 뚫고 들어갈 듯, 그 순간의 불기둥은 맹렬하게 불타올랐지만 허무할 정도로 한 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을음도 남지 않은 불기둥이 사라진 자리에는 4명의 사람이 눈을 감고 있었다.
“이게 될 줄은 몰랐네. 사실 처음해보는 거라서 별로 확신은 없었는데.”
“다음부터는 그런 일을 할 거면 말이라도 해 줄래?”
본인도 어지러움을 느끼는지 손으로 이마를 짚은 아이샤의 혼잣말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레티시아가 쏘아 붙였다.
아직도 어지러움에 정신을 못 차리는 샤하나즈와 에라실의 몸에서 불꽃을 털어낸 그녀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었다.
밤이 방금 끝난 것인지 약간 어둑하지만 주변이 보일 정도의 빛은 있었고, 하늘은 점차 밝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네가 말 한 대로 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간단하게 요약부터 해 보자고. 작전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시선을 끄는 동안 세프에 도착한 비행선을 너희 둘이서 탈취하고, 그 수호자를 샤하나즈가 엄호하는 것. 합류 위치는 내가 직접 수호자를 통해 전해 줄게.”
레티시아는 그들을 숨겨주는 바위 위로 고개를 내밀어 목적지를 살펴보았다.
위성도시이기에 로샨과 같이 웅장한 건물은 없었다.
그러나 비행선을 유도하는 거대한 등대에서 비치는 빛은 로샨의 하부 도시에서 나오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짙은 증기에 주변의 빛을 뚫고 선명하게 진행경로가 보일 정도였다.
그들과 도시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음에도 도시 안에서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날카로운 금속을 갈아내는 소리는 대화가 힘들 정도로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간간히 주황색 스파크가 도시 주변을 감싸는 벽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수호자를 재활용한다는 특성답게 도시의 입구는 수호자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지만, 그 입구는 이미 5번 전대의 수호자 한 대가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도시에 들어가는 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수호자를 실은 비행선이 도시에 도착한다면 저 수호자는 하역을 위해 도시의 내부로 들어갈 거야. 하역 작업이 시작되면 그때 내가 시선을 끌게. 대신 그리 시간이 많지는 않을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거야? 누가 들으면 네가 이 운송을 계획한 것처럼 들리네.”
정신을 차린 에라실이 떨리는 심호흡으로 목 끝까지 구토를 억누르며 묻자 아이샤는 살짝 머뭇거렸다.
“그래, 내가 계획한 것 맞아. 나는 로샨의 의회에 한 쪽 이었으니까.”
그러자 에라실은 근처의 돌멩이 하나를 주워 아이샤를 향해 던졌다.
아직도 어지러움이 계속되는지 에라실이 던진 돌은 아이샤를 한참 빗나갔지만, 아이샤를 바라보는 에라실의 눈빛만큼은 살의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 처음 봤을 때 느껴지는 그 개 같은 느낌은 이거 때문이었네.”
“그렇지만 모든 건 이렇게 역으로 탈취하는 건 전제로 두고 한 거야. 이것 말고는 8번 전대를 완전하게 구할 수 없었으니까.”
“화내는 건 계획이 틀어졌을 때 해도 충분할 것 같아. 지금은 수호자를 되찾는 거에 집중하자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는 에라실을 도와준 레티시아는 그를 가볍게 다독여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샤하나즈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고, 잠시 뒤 하늘에서 엔진의 진동이 작게 들리니 손가락으로 이를 가리켰다.
“그 비행선이 저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에 푸른색 궤적을 남기며 천천히 날아오는 비행선을 살핀 아이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호자가 들어가면 경비병이 나올 텐데, 둘이 그 교체하는 순간이 무난하게 들어갈 수 있는 기회야.”
“그러면 아마 지금 쯤.......”
그러나 비행선에서 낙하하는 수호자가 타이밍을 재는 에라실의 목소리를 끊었다.
“뭐야! 왜 7번 전대 수호자가 여기 있는 건데! 이러면 들어갈 수도 없잖아!”
“무슨 소리야! 나는 분명 그 비행선에는 다른 수호자가 타지 않도록 조정해 뒀는데!”
당황한 아이샤는 입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착각한 것이길 바랐지만, 그 입구에는 분명 7번 전대의 수호자 한 대가 5번 전대의 수호자와 교대하고 있었다.
“다른 계획은 없어? 이러다가는 손도 못 쓴다고!”
“이곳의 반대쪽에 예비용 입구가 있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고!”
“그러면 하역 작업을 늦추면 되는 것 아니야? 그러면 시간을 벌 수는 있잖아?”
“말은 쉽겠지! 그렇지만 나도 이런 식으로 능력을 쓰는 건 익숙하지 않다고! 해봤자 수호자 하나를 붙잡는 게 전부야!”
모두가 어떻게든 임기응변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동안, 한 손에 티페레트를 든 샤하나즈는 먼저 몸을 움직였다.
“다들 어떻게든 도시로 들어가! 내가 시간을 벌어볼 테니까 그 동안 뭔가 해 보라고!”
7번 전대의 수호자로 달려가는 샤하나즈는 자신의 가슴에 티페레트의 원뿔을 박았고, 그가 몇 걸음 움직이기도 전에 하늘에선 검은 수호자가 그의 위치에 떨어져 내렸다.
“샤하나즈!”
“뭐야!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이게 무슨 일이냐고!”
샤하나즈가 있는 자리에 수호자가 떨어져 내리자 레티시아는 곧바로 아이샤의 멱살을 잡아 얼굴을 후려쳤다.
그러나 입에서 피를 흘리는 아이샤는 똑바로 보라는 듯, 레티시아와 똑같이 주먹으로 그녀의 얼굴을 치며 검은 수호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잠시 움직임이 없던 검음 수호자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도시의 등대는 순식간에 붉은 빛을 내며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냈다.
두 명이 처음 보는 모습에 굳어있으니, 레티시아의 손을 쳐낸 아이샤가 소리를 질렀다.
“저것 때문에 샤하나즈가 나선다고 한 거야! 알겠으면 움직여!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이젠 계획이고 뭣도 없어! 어떻게든 수호자를 되찾아!”
《어라? 저런 것도 있었나?》
자리에서 일어난 티페레트가 앞에 있는 수호자를 보곤 아리송한 목소리를 냈다.
물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적대적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인지 티페레트는 곧바로 팔뚝의 기관포를 꺼냈다.
《넌 대체 정체가 뭐야? 검은 수호자? 네가 다른 전대원이 말하던 그 놈이냐?》
티페레트가 기관포를 꺼내자 7번 전대의 수호자는 한쪽 팔뚝의 장갑을 전개해 방패처럼 들었고, 다른 한 팔은 팔뚝에서 희붉게 달아오른 칼날을 꺼냈다.
《그래, 잘 만났다. 너 때문에 우리 전대에서 두 명이나 죽었는데, 한 번 그 안에 뭐가 타고 있는지 뜯어보자.》
그 말에 샤하나즈가 이빨을 앙다무니 아직 조준도 하지 않은 티페레트의 기관포가 한 발 발사되었다.
《뭐야, 대체 얼마나 화났으면 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증언에서는 본 적도 없다고 한 검은 수호자를 7번 전대의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그 뻔뻔함으로 에버니저를 죽였다는 생각에 차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티페레트. 내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엔진으로 협력해 줄게. 내 몸을 얼마나 혹사시켜도 상관없으니까 있는 대로 날뛰어줘. 그 대신 눈앞에 있는 저 놈은 완전히 찢어버려.”
《바라는 게 그런 거라면 사양할 건 없지. 날뛴다면 나야 좋으니까.》
기관포의 조준을 마친 티페레트는 곧바로 발포를 시작했고, 7번 전대의 수호자는 곧바로 방패를 치켜들었다.
기관포의 화력은 그리 약하지 않았지만, 장갑을 뚫을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는지 탄환은 모조리 튕겨나갔다.
《원래 저런 애들은 이렇게 단단한가? 대부분 이거면 찢겨 나가던데.》
무기를 바꾸라고 지적하거나, 자신이 조종할 수 있게 부탁하고는 싶었지만 이미 분노로 눈이 먼 샤하나즈는 그저 엔진으로서 티페레트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방패를 앞세운 수호자가 정면에서 화력을 막아내며 다가오니 티페레트는 양손을 치켜들고 연사 속도를 올렸다.
무식할 정도의 화력이 한 점에 집중되자 타격점이 점점 희붉게 달아올랐고, 이내 강철이 찢겨나가며 구멍이 뚫렸다.
그러나 이미 팔이 닿을 정도로 다가온 수호자는 바로 칼날을 휘둘렀다.
티페레트는 곧바로 뒤로 물러났지만 기관포중 몇 개가 칼날에 잘려나갔고, 소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꺄악!》
살짝 티페레트의 자세가 흐트러지니 그 틈을 노린 7번 전대의 수호자는 티페레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티페레트는 수호자가 품안에 완전히 들어올 때 까지 제대로 반응하질 못했고, 그와 함께 칼날에 베였던 오른팔이 방패에 맞으며 꺾여 나갔다.
《아프다고! 저건 대체 뭐야!》
“저것도 수호자야! 지능이 없는 불멸자하고는 다르게 상대해야한다고! 정신 차려! 이걸로는 아무것도 안 돼! 날뛴다면서 이 정도 밖에 못하는 거야?”
《엔진 주제에 명령하지 마! 너는 부품이라고!》
샤하나즈의 도발에 티페레트는 망가진 팔뚝을 강제로 회전시켰다.
뼈대에는 큰 손상이 없었는지 팔을 돌리자 장갑과 함께 손상된 기관총들이 떨어졌고, 그와 함께 손이 팔뚝의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며 거대한 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포신을 보자마자 수호자는 포신으로 겨눌 수 없는 몸 안쪽까지 다시 파고들었고, 이번에는 칼날이 왼쪽 허리로 파고들었다.
이를 티페리트보다 먼저 눈치 챈 샤하나즈는 있는 힘을 다해 티페레트의 몸을 움직였다.
그 덕분에 치명적인 손상을 유발할 공격은 외부 장갑을 베어내는 정도로 그쳤다.
“사격에 집중해! 지금처럼 공격은 내가 피할게!”
《알겠으니까 조용히 해!》
평소에는 로크가 하는 일을 자신이 한다는 점이 조금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좋고 나쁘고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았다.
지금 당장 추가적인 시선을 끌지 않는다면 발레리안과 스펜서는 로크와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이성이 없는 불멸자만 상대해 온 것인지, 단순한 것을 멍청한 수준의 티페레트를 보조하느라 모든 정신을 쓰는 샤하나즈는 점점 모든 감각이 고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하나의 생각이 샤하나즈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있는 대로 갈겨봐! 못 맞춰도 상관없으니까!”
《명령하지 말랬지!》
“그럼 뭐라도 할 수 있어? 그딴 같잖은 자존심은 버리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나는 그 개 같은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게 더 많다고! 이딴 식으로 할 거라면 넘겨!”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통과 이미 한계까지 다급해진 마음에 샤하나즈는 있는 대로 말을 뱉었다.
갑작스럽게 그가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하니 티페레트는 몸의 제어를 잃은 것인지 조금씩 비틀거렸다.
반대로 샤하나즈는 티페레트의 제어를 조금씩 가져와 넘어지는 동안 적 수호자가 아닌 요란하게 소리를 내는 등대를 향해 포신을 겨눴다.
티페레트가 쓰러지는 순간 지축을 흔드는 포성과 함께 철갑탄이 등대를 향해 날아갔다.
거의 조준이 없는 수준이기에 뒤로 넘어지는 그대로 탄착지점은 점점 위로 향했다.
그러나 그런 철갑탄이 등대에 3발 박히자 요란한 사이렌 소리는 멈췄고, 조금 중앙에서 벗어난 지점에 박힌 철갑탄은 등대의 절반을 날려버리며 무너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모습으로 만들었다.
《선 넘지 마! 네가 뭔데 멋대로 움직이는 거냐고!》
“그래서 내가 없으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방금도 내가 없으면 죽을 뻔 했잖아!”
뒤로 넘어진 티페레트를 노리고 수호자가 검을 찍으려하자 투정을 부리는 티페레트를 대신해 샤하나즈가 몸을 움직였고, 희붉게 달아오른 칼날은 바닥에 깊게 박혔다.
그리고 아직도 서로 제어권한을 두고 다투는 와중, 다른 수호자 두 기가 벽을 넘어 뛰어 나왔다.
《너 때문에 이 지경이 됐잖아! 뭔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야!》
“네 상황은 내 알바 아니야! 나한테는 나한테 중요한 게 있다고! 그걸 위해선 뭐든 할 거라고!”
아직도 누군가 확실히 제어를 가져오지 않았는지 티페레트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고, 엉거주춤하게 티페레트가 중심을 잡으니 철갑탄 한 발이 그녀의 어깨를 정통으로 관통하며 오른팔이 날아갔다.
《꺄아악! 아파! 아프다고!》
곧바로 비명을 지르는 티페레트와는 달리 이미 심각한 고통을 받던 샤하나즈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고통으로 인해 한 명에게 제어 권한이 몰렸는지 가슴을 노린 그 이후의 사격은 움직임으로 피했지만, 옆구리와 왼쪽 허벅지에 철갑탄이 스쳐 지나가며 장갑이 뜯겨 나갔다.
“이제 좀 상황이 이해 돼? 이제 그 자존심을 버릴 수 있겠냐고?!”
《싫어! 이 자유는 내거야! 누구도 나를 가둘 수 없어!》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이라도 들었는지 티페레트는 가까스로 일어나 도망치려 했지만, 왼쪽 어깨에 지원 온 수호자가 쏜 사슬이 박히며 그대로 붙잡혔다.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너를 태우는 게 아니었어!》
“그래서 이대로 나를 버리고 끌려갈 거야? 그깟 자존심 때문에 그 자유까지 버릴 거냐고!”
《몰라! 죽고 싶지 않아!》
“그러면 엔진을 돌려보라고! 내가 부품이라면 극한까지 성능을 끌어낼 수 있게 해 보라고!”
《도와줘!》
티페레트의 호소는 절박함에 울먹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가식을 벗은 외침과 함께 티페레트의 몸 안에 숨겨져 있는 푸른 빛을 내는 톱니바퀴가 모습을 드러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