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8화 (8/50)

〈 8화 〉 수호자 탈환 작전 ­ 2

* * *

샤하나즈의 전신을 불태우는 것 같은 고통은 점차 가라앉았다.

철갑탄을 맞아 날아간 오른쪽 어깨에 격통은 여전했지만, 제어권이 완전히 샤하나즈의 손에 들어온 것인지 정신도 더욱 선명해졌다.

평소라면 이 상황에서 로크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이 있는지, 가동할 수 있는 범위와 가동이 가능한 시간 그리고 낼 수 있는 최대 출력까지 전부 알려주었겠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티페레트는 그저 훌쩍거리는 것이 전부일 뿐이었고,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에게 완전히 협조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가지고 있는 90mm 철갑탄으로 한쪽 팔까지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완전히 멀쩡한 수호자 3대를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최소한 발레리안과 스펜서가 탈출할 때 까지 버티거나.

확실한 것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매우 제한되었다는 것이다.

“정신 차려! 네가 협조 안 한다면 아무것도 안 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나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저런 것도 처음보고!》

샤하나즈는 몸을 돌려 포신의 끝으로 사슬을 찍어 눌렀다.

그 무식한 구경의 대포를 발사하는 것으로 사슬을 끊은 그는 움직일 때 마다 부서진 부품이 튕겨 나오는 몸을 다른 수호자의 철갑탄을 피해가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상태로 가속하는 건 로크로도 해 본적이 없는데.....!”

마치 로크를 움직일 때처럼 티페레트의 톱니바퀴가 회전 속도가 올라갔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불타오를 것 같이 붉게 달아올랐던 로크와는 달리 티페레트의 몸은 아이샤가 아침의 파편을 으스러뜨릴 때처럼 문자가 새겨지며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푸른빛으로 달아올랐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으면 끝까지 버티기만이라도 해 달라고!”

그리고 그가 첫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모든 것을 티페레트의 시야로 보는 샤하나즈조차 믿지 못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자신이 철갑탄이 된 것처럼 움직이려는 생각을 하자마자 자신은 그 지점에 도착해있었고, 다른 수호자들은 샤하나즈의 움직임에 대응은 물론 아예 그가 움직였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철갑탄을 이용해야 꿰뚫을 수 있는 가장 두꺼운 흉부 장갑은 샤하나즈의 속도와 포신만으로 간단히 관통되었다.

《뭐야 이건? 이 수호자는 대체 뭐냐고!》

《기관포라도 사용해서 움직임이라도 제한해! 장갑이 얇아 보이니까 찢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내가 이 틈에 묶을게!》

티페레트의 포신에 수호자가 꿰뚫려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으니 사슬로 티페레트를 꿰뚫었던 수호자가 또 다시 사슬포를 장전했고, 다른 수호자는 맞은편에서 팔뚝의 기관포를 꺼냈다.

그 사이 티페레트는 수호자에 박힌 포신을 팔에서 분리해냈고, 쓰러지는 수호자를 발로 차내며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사슬포와 기관포가 서로 교차하자 허공에서 사슬들이 찢겨나가며 파편들을 흩뿌렸다.

“다른 무기 아무거나 꺼내봐! 뭐라도 좋으니까!”

《나도 뭐가 있는지 몰라! 지금까지 써본 무기는 이게 다라고!》

“수호자라면 뭔가 더 있을 것 아니야! 있는 대로 끄집어 내봐!”

울먹이는 티페레트의 목소리에도 샤하나즈는 끝까지 그녀를 몰아붙였고, 잠시 뒤 포신을 분리해 뭉뚝한 왼팔에서 미세한 톱날이 달린 체인이 떨어져 내렸다.

《무......뭐야 이거? 이런 게 왜 있어?》

갑작스런 변화에 샤하나즈보다 더 당황한 티페레트는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것 같지만, 샤하나즈는 달랐다.

스스로를 갉아먹고도 남을 정도의 난폭한 회전을 보이는 체인을 채찍같이 가볍게 휘두르며 신체를 다시 가속시키기 시작했다.

상식에서 벗어난 속도였지만, 그 속도를 한 번 본 덕분인지 이전과 같이 허무하게 흉부 장갑이 뚫리는 일은 없었다.

티페레트가 공중으로 뛰어오르자 그 둘의 총구가 움직임을 따라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녹아내릴 듯 장갑이 빛나는 티페레트가 천장을 박차고 내려오듯,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꿔 가속하는 것 까지는 반응할 수 없었다.

사슬포를 쥐고 있던 수호자는 티페레트가 자신을 스쳐지나가자 그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것 까지는 성공했지만, 이미 그의 수호자를 묶은 체인 올가미는 비명 같은 소음과 함께 장갑을 파고들었다.

수호자가 벗어나려할수록 늘어나는 체인은 점점 장갑의 사이를 파고들며 전신을 얽매었고, 한계점을 넘은 순간 체인은 뼈대까지 파고들어 수호자를 한순간에 산산조각 냈다.

그러나 그것을 마지막으로 회전하는 티페레트의 톱니바퀴가 부서지며 파편들을 허공에 흩뿌렸고, 철갑탄이 스쳐 지나갔던 왼쪽 다리마저 박살나며 티페레트는 완전히 중심을 잃었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부서지고, 무장도 없고, 부품마저 부서져 거의 고철이나 다름이 없는 티페레트를 여전히 경계하는 것인지 티페레트의 몸이 검게 돌아올 때 까지는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다.

《이건 대체 무슨 괴물인거야? 이런 미친 수호자가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거야?》

완전히 대파한 두 수호자를 돌아보며, 철갑탄을 새로 장전한 수호자가 총구만 들이밀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끄아아아악! 아악! 어억! 아악!”

티페레트에게 뭔가 해보라는 말을 하려는 했지만 이미 샤하나즈의 모든 오감을 대신한 통각이 그의 목을 졸라대 비명 말고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도 없었다.

호흡마저도 비명이 대신하고 있었고, 총구가 그의 티페레트의 머리에 직접 닿는 순간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네가 뭔가 해보라며! 그런 네가 이런 식이면 어쩌라고!》

“읽어.....! 나를...... 읽어......!”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 깊은 곳에 있는 본능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기사와 수호자의 기본.

그녀의 안에 있는 것이 엔진이라 하더라도 다를 것은 없었다.

감응.

기사의 의지를 읽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도시에서 시작된 거대한 폭발과 불길에 가려졌다.

“방금처럼 도시 안에 뿅 하고 들어갈 수는 없는 건가요?”

“그래서는 수호자를 상대할 수 없어. 이게 완전히 만능인 능력은 아니라고!”

방금 전의 이동으로 지친 것인지 아이샤가 한참 뒤로 떨어지니 레티시아는 그녀를 등에 들쳐 매곤 다리기 시작했다.

“불평하지 말고 달려! 샤하나즈가 시간을 벌어줬는데, 그걸 날려버릴 셈이야? 지금 당장 우리 수호자가 갈려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그리고 당신은 다른 입구가 어딘지 정도는 알려줘요!”

아이샤를 업고도 에라실보다 빠른 레티시아는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이샤가 손가락으로 멀리 있는 문을 가리키기도 전, 먼저 방향을 돌린 에라실이 벽에 있는 틈에 몸을 비집어 넣었다.

몸을 억지로 구겨 넣는 것 같았지만 스스로 어깨를 탈골시켜 그 좁은 틈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간 에라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어깨를 다시 끼워 맞췄다.

“여기 정도면 문보다는 조금 더 빠를 것 같은데?”

“그렇지만 여기는 너무 좁은......”

“귀 막아요. 숨도 참으면 좋고.”

어깨를 끼워 맞춘 에라실은 소매 안쪽에서 손가락 마디 두 개 정도 크기의 금속 파이프를 하나 꺼내 자신이 들어온 좁은 틈에 끼워 넣었다.

끼워 넣은 파이프의 끝을 돌로 후려치니 그 안에서 작게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에라실이 몸을 돌리자 폭발과 함께 벽의 균열이 사람이 여유롭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고, 그 넘어 레티시아가 아이샤를 들여보냈다.

“대체 그 소매 안에는 뭐가 있는 거야?”

“신경 끄세요. 어째 됐든, 계획보다 빨리 들어왔으니 더 좋은 계획을 쓸 수 있겠죠?”

자신의 생각을 가속하고 싶었는지 레티시아의 등에서 내려온 아이샤는 주변을 서성이며 자신의 관자놀이를 계속 문질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원래 계획이라면 티페레트도 여기 있어야 했어. 내부에서 내가 1대, 티페레트가 2대를 붙잡아서 비행선을 탈취해야 했는데......”

“그 말은 본인이 한 대 정도는 붙잡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요?”

“일시적으로야! 아침의 파편을 쓴다면 일시적으로 수호자를 붙잡을 수는 있어. 한 5분 정도. 그게 전부야. 그거면 너희가 탈출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지.”

한탄에 가까운 아이샤의 설명에 선착장만 바라보던 에라실은 될 대로 되라는 듯 손짓했다.

“나한테 그것보다 더 괜찮은 계획이 있는데 들어볼래요? 무계획이라고.”

“에라실. 도움 하나도 안 되는 것 알고 있지?”

레티시아는 마치 어린아이를 꾸짖는 것 마냥 에라실을 쏘아 붙였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진짜로 하는 말인데. 지금 당장 들어가서 뭐라도 해 보자고. 어차피 두 대는 하역작업을 할 거 아니야? 한 대는 막을 수 있다고 하니까 그 사이에 선착장에 들어가면 되는 거잖아? 뭔가 해 봐야지! 샤하나즈도 그렇게 했잖아?”

그의 말이 동의하듯 등대가 철갑탄을 맞고 반쯤 박살이 나자 무언가 홀린 듯 보이는 에라실은 레티시아와 아이샤를 뒤로하곤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지금이 기회야!”

레티시아가 무작정 달리는 에라실을 뒤쫓으니 아이샤도 하는 수 없이 그 뒤를 따랐지만, 여전히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설명하려면 어려워! 대신 저 녀석의 본능은 틀린 적이 없다고만 할게! 방금도 벽에 있는 균열을 찾는 것도 봤잖아! 저 소매부터가 저런 본능을 이용하기 위한 모든 도구를 담아두는 거라고!”

“수호자! 오른쪽!”

레티시아가 뒤처지는 아이샤에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설명을 뱉자 멀리서 에라실의 외침이 희미하게 들렸다.

“오른쪽?”

아이샤가 직접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다른 수호자가 오른쪽에서 접근하는 소리가 그녀를 강제로 이해시켰고, 그녀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다른 아침의 파편을 꺼냈다.

“5분이야! 5분! 그 사이에 뭔가 해봐!”

그녀가 아침의 파편을 으스러트리자 강렬한 푸른 섬광이 아이샤의 몸을 감쌌다.

그대로 불기둥이 치솟았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그녀의 몸에 새겨진 문자들이 지면을 타고 내려와 선착장을 향해 뛰는 두 명에게 총구를 향하는 수호자의 몸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몸과 똑같이 전신에 푸른색 빛을 내는 문자가 생기자 아이샤는 주먹을 쥐었고, 마치 앵커로 전신을 묶은 것처럼 수호자에서 부품이 튀며 장갑이 일그러졌다.

“빨리......! 이건 얼마 못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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