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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과 기사-10화 (10/50)

〈 10화 〉 의사를 찾아서 ­ 1

* * *

“의사가 필요해.”

발레리안에서 뛰어내린 에라실은 공을 던지듯 스패너를 신중하게 던져 공구함에 집어넣으며 결론을 냈다.

“당연하지. 지금 누나의 상황을 보면 그런 말이 안 나와?”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 허벅지에 박힌 피스톤을 뽑아낼 수 없어 여전히 피스톤이 박힌 채로 지혈대만 해둔 레티시아의 모습에 사일러스는 살짝 짜증을 냈다.

“그래. 기사에 의료기술 천재까지. 정말 엘리트가 다 됐네. 그렇게 똑똑하면 불평할 시간에 그 피스톤부터 뽑아내지 그래?”

“이 새끼가!”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에라실의 태도에 지혈대를 만들었던 사일러스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사일러스!”

사일러스의 주먹이 에라실의 얼굴에 닿기 직전 레티시아가 소리를 지르자 리암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와 둘을 떼어 놓았다.

“서로 싸울 수는 있어도 지금은 아니야. 지금만큼은 절대로 아니야.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할 수 있게 해 줘야지.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어도 우린 가족이잖아.”

“누나 말 들었지?”

의기양양해진 에라실은 레티시아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며 사일러스에게 보라는 듯 손짓했다.

그리고 뒤 이어진 레티시아의 말에 에라실의 이마에는 한 줄기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에라실. 너는 나중에 나랑 조금 대화를 해야겠어. 잘못된 걸 바로 잡는 것도 가족의 역할이잖아?”

“그건 그렇고 누구나 다 의사가 필요한 건 아는데, 왜 갑자기 의사가 필요하다고 한 거야?”

사일러스도 에라실도 서로에게 공격적인 반응이 옅어지니 리암은 원래 자신이 있던 커티스의 다리로 돌아가 가볍게 기댔다.

방금까지 손에 묻은 기름을 닦던 천으로 식은땀을 닦은 에라실은 여전히 레티시아의 눈치를 보며 사일러스가 있는 아서의 근처로 갔다.

“물론 진짜 의사도 필요하겠지. 근데 내가 말한 건 사람을 보는 의사가 아니라 수호자의 의사를 말하는 거야. 샤하나즈도 한 때 정비공으로 있었으니 알고 있지 않아?”

에라실은 살짝 시선을 돌려 샤하나즈를 바라봤지만 그는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그는 로크의 잔해가 들어있는 상자에서 떨어지지 않고 싶었는지 온 몸으로 상자에 붙어있었고, 모두를 다시 만나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샤하나즈는 잠깐 놔둬. 우리 모두 저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할 테니까. 그보다 그 의사 얘기는 어떻게 된 거야?”

샤하나즈에게 모든 동정의 시선이 쏠리자 레티시아가 모두의 시선을 환기시켰고, 짧은 침묵이 지나고 나서 에라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수호자가 이 정도 손상을 입으면 나도 어떻게 못 해. 이런 심각한 손상을 입은 수호자를 어설프게 수리했다가는 정착된 영혼이 죽어버리니까. 발레리안하고 스펜서는 내가 아예 못 건드리고, 커티스와 아서도 수리는 할 수 있지만 혹시 모르니 의사의 검진을 받아야 해.”

“그러면 다음 목적지는 의사가 있는 곳이네. 아무나 의사가 있을 만한 곳을 알고 있어?”

“한 곳 알고 있지. 로샨.”

“에라실. 지금은 그런 농담을 하기에는 좋은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에라실은 방금 전과 같이 표정이 굳거나 식은땀을 흘리지도 않았다. 마치 당연한 사실을 공고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누나한테 더 혼나게 지금 농담을 할 것 같아? 나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모토르 가문에 기사가 있다면 일라르 가문에는 의사가 있으니까. 최 상위 엘리트를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은 수호자를 탈환하는 건 결국 거의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는 거네.”

조용히 에라실의 설명을 듣던 아이샤는 새어나오는 눈물을 눈가를 누르며 억지로 틀어막았고, 천천히 구석으로 향해 몸을 구겨 넣었다.

“다들 정말로 미안해...... 내가 괜히 헛된 희망만 줘서.......”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 모두 무사히 다시 만난 것만 해도 네 덕분인데.”

“오히려 네 말을 듣지 않아서 이 꼴이 난 거지. 네 잘못 아니라 우리 잘못이야.”

마지막으로 가죽 장갑까지 벗어 던진 에라실은 더 이상 자신이 할 것이 없었는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서의 다리에 기대고 있던 사일러스는 구석에서 울고 있는 아이샤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그녀를 달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각자의 문제로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고, 화물칸 안에 엔진 소리만 울려 퍼지니 리암이 뭔가 생각난 것인지 몸을 일으켰다.

“너희 혹시 전설을 믿어?”

“전설이라면 뭐? 아카이브 같은 거? 탓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가 그 전설 같은 아카이브 때문 아니었어?”

여전히 화물칸 바닥에 대자로 누운 에라실은 자세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나도 곁들은 거라서 확신은 못하지만 밤에만 찾을 수 있는 의사가 있다고 들었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아니.”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도 몰라. 그리고 방랑 기사 사이에 돌았다는 소문인데, 그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그러니 그냥 전설이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더 이상 알고 있는 것이 없는 리암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다시 커티스의 다리에 기댔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이를 붙잡았다.

《나라면 그 의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티페레트?”

《그 의사를 밤에만 찾을 수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그 의사는 높은 확률로 아카이브에 있을 거야. 그리고 나라면 아카이브를 찾을 수 있지.》

자신의 머릿속에 올리는 목소리에 로크의 부품이 담긴 상자를 끌어안던 샤하나즈는 살짝 자세를 바꿨다.

“네가 아카이브를 어떻게 아는 거야?”

《그야 내가 아카이브를 만든 사람들이 나를 만들었으니까. 나도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은 것처럼 아카이브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지만, 그 위치 정도는 알고 있지.》

“왜 이걸 처음부터 말을 안 한 거야! 왜!”

시작은 머릿속에서만 이어진 대화였지만 티페레트의 발언을 듣자 참아왔던 무언가가 폭발했는지 샤하나즈는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또 다시 샤하나즈에게 집중되었고, 씩씩거리던 샤하나즈는 화를 가라앉히며 모두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바로 앉았다.

“티페레트가 그 의사를 찾을 지도 모른다고 해요. 밤에만 찾을 수 있는 의사라면 아카이브에 있을 거라고요.”

“그 말은...... 티페레트가 아카이브를 찾을 수 있다는 거야?”

아이샤가 되묻자 샤하나즈는 자신의 안 주머니에 들어있는 에버니저의 수첩을 만졌다.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정보 때문에 에버니저가 죽었다는 사실에 황당할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고, 그 황당함은 한 순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그래...... 이 망할 것만 빨리 찾을 수 있었어도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었잖아! 에버니저 전대장님도! 에이다도! 로크도......! 네가 이 망할 애새끼에게 물어보기만 했어도 이렇게 죽을 이유는 없었다고!”

샤하나즈는 가슴에 박힌 톱니를 뽑아내려 했지만, 이제는 가슴과 톱니바퀴의 경계선마저도 흐릿할 정도로 동화되어버린 티페레트가 그렇게 간단히 뽑혀 나올 리가 없었다.

피가 날 정도로 가슴을 헤집어도 톱니바퀴가 뽑혀 나오질 않자 그 분노는 아이샤에게 향했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그가 아이샤에게 향하니 그녀를 달래주던 사일러스가 그를 막에 세웠다.

“네 심정은 이해 가지만 그건 대화로 풀어, 이래봤자 누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사일러스 말이 맞아. 지금 우리는 해결할 수 있는 걸 해결하는 게 먼저야. 그 티페레트라는 애는 어디에 의사가 있다고 해?”

《지금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조금 더 왼쪽으로 틀어. 그쪽으로 계속 가면 가장 가까운 아카이브로 갈 수 있을 거야. 밤이 되기 전에.》

티페레트가 레티시아의 질문에 바로 대답했지만, 샤하나즈는 이를 전하지 않았다.

“내가 너를 왜 믿어야 하는 거지? 이전에도 나를 이런 방식으로 속인 걸 잊었을 것 같아?”

《그때는 내가 엔진이 필요했으니 어쩔 수 없었고. 지금은 엔진을 구했으니 속일 이유가 없지.》

“네가 새 엔진을 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아니면 내가 속박되기 싫어서 나를 죽이려는 가능성은?”

흥분으로 가득한 샤하나즈의 목소리에도 티페레트는 조금도 위기감이나 압박이 느껴지지 않는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마음대로 해. 그 망가진 수호자들로 알아서 잘 해보던가.》

“이 쓰레기 같은 놈이! 내 몸에 붙어 있지만 않았어도 죽여 버렸을 거라고! 이번 일만 끝나면 널 뜯어서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버릴 거야.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자유하고 미리 작별이나 하라고!”

샤하나즈가 혼자서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모두가 입을 닫고 지켜볼 뿐이었다.

그가 가슴의 톱니를 어떻게든 뜯어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는지 결국 에라실이 그의 왼팔을 붙잡았다.

“네가 미친 놈 인건 예전부터 알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어. 진정해. 네 상황도 이해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이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나갈 정보가 필요해.”

“너라면 참을 수 있겠어? 이 놈만 제대로 했다면 전대장님이 돌아가실 이유도 없었다고! 모든 건 이 녀석 때문이야! 이 망할 놈 때문이라고!”

몸이 절반 가까이 마비되었지만, 분노로 움직이는 그를 막기는 힘들었는지 에라실이 고전하니 레티시아가 직접 일어났다.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그 모습을 보지도 못했는지 여전히 몸부림치던 샤하나즈는 레티시아가 뺨을 후려치자 몸부림을 멈춘 그는 자신의 뺨을 잡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그만해. 어리광 부릴 때는 이미 지났잖아.”

“누나는 지금 이게 어리광 부리는 걸로 보여?”

“그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여. 전대장님을 잃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징징대는 것을 밖에 안 보인다고! 정신 차려! 지금은 탓하는 사람을 찾는 것 보다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먼저라고!”

뺨을 맞은 것도, 언제나 친누나와 같이 친근하게 대하던 레티시아가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소리를 지른 것도 처음이기에 잠시 충격을 받았는지 샤하나즈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티페레트 또한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출혈로 인해 창백해진 레티시아가 자리에 주저앉고 나서야 샤하나즈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잠시 로크 때문에 내가 이성적으로 행동하질 못 한 것 같아.”

“알았으면 됐으니까 어디로 가야하는지 말 해줘. 의사부터 찾자고.”

“다 좋은데, 지금 눈앞의 문제는 의사를 찾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불길한 감이라도 느낀 것인지 밖을 확인한 리암은 어두운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밝았던 하늘은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선 내부의 빛도 점차 희미해졌다.

“밤이 왔어. 이제 곧 불사자들이 몰려 올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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