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11화 (11/50)

〈 11화 〉 의사를 찾아서 ­ 2

* * *

화물칸 안의 빛이 점점 희미해지자 사일러스, 리암, 에라실은 각자의 수호자의 콕핏트로 향했다.

3명 모두 콕핏트의 안에서 30cm정도 되는 금속 재질의 상자를 꺼냈고, 조금 더 행동이 빨랐던 리암은 발레리안의 콕핏트에서도 같은 상자를 꺼내 레티시아에게 던졌다.

상자의 안에는 전구가 달린 리볼버 한 자루와 교체용 실린더 3개, 그리고 어깨에 앞뒤로 전구가 달린 조끼 한 벌이 들어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3명은 모두 조끼를 입고 권총을 들고 레티시아는 능숙하게 조끼를 뜯어내 양쪽의 전구가 바닥에 놓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들 전투 준비해. 샤하나즈, 움직일 수 있겠어?”

“아직 마비가 안 풀렸어. 움직이는 건 무리야.”

“그러면 에라실한테 무슨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전해. 에라실은 조종실로 가서 알려준 방향으로 비행선을 돌리고, 나머지는 레티시아 누나하고 샤하나즈를 지키는 쪽으로 가자고.”

“아이샤는 레티시아와 샤하나즈와 같이 붙어있어. 그 뭐냐. 예전에 보여준 불길 같은 것도 쓰면 좋고.”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할지 지시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티페레트는 여기서 조금 더 왼쪽으로 돌려야 한다고 했어!”

“조금? 지금이 조금 위험한 상황이면 몰라도 심각하게 위험한 상황이면 심각하게 정확한 방향이 필요하거든?”

권총을 들고 조종석으로 뛰어가려던 에라실은 두루뭉술한 샤하나즈의 설명에 멈춰 섰다.

그와 함께 그의 옆, 전구의 빛이 닿지 않는 계단 사이의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오자 사일러스가 곧바로 총을 발사했고 부패한 성대가 내는 특유의 불쾌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냥 돌리라고 해! 나도 정확히는 모르고 그냥 가까이 있나 없나 정도만 알 수 있으니까!》

여전히 바꾸지 않는 대답에 한 번 더 따지고 싶었지만, 빛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뭔가 따질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방향을 돌리래! 위치는 자기가 알려준다고!”

“그거 참 더럽게 도움 되네!”

대답은 거의 바뀌지 않았지만, 에라실은 곧바로 조종실 쪽으로 뛰었다.

그 사이 전구의 빛이 닿는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럴수록 주변에선 불사자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반대로 에라실이 조종실로 달려가며 내는 총성은 점점 멀어졌고, 자신의 팔을 붙잡은 불자자의 팔을 총으로 쏴 뜯어낸 리암은 서로 모여 있는 샤하나즈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뭐 하나만 물어볼게. 지금 그 티페레트가 아카이브로 가는 거라고 했지?”

“일단은 그런 것 같아. 거짓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한 번 걸어볼만 하겠는데? 야! 사일러스!”

사일러스를 부른 그는 사일러스가 시선을 돌리자 그에게 자신의 권총을 던져주었다.

“왜!”

“엄호해줘! 지금 수호자에 탈 생각이니까!”

“뭔 생각이야? 이미 기동 한계까지 움직여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 하잖아!”

“그래! 하지만 아카이브로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전대장님이 수호자가 도시 내에서 무한정 움직일 수 있는 이유가 아카이브라고 했잖아!”

리암의 설명은 반쪽짜리였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 양손으로 권총을 든 사일러스는 수호자의 위에서 나타난 불사자들을 쏴대며 리암의 길을 확보했다.

커티스에 올라탄 리암은 자신을 끌고 가려는 불사자의 머리를 잡아 해치의 안으로 들어가며 모서리에 내려쳤고, 그대로 해치를 닫아 머리를 잘라냈다.

에라실이 방향을 틀었던 것인지 비행선이 약간 기울자 커티스에는 희미하지만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래! 뭔가 좀 되는 것 같네!”

수호자가 기동을 시작할 듯 보이자 흥분한 샤하나즈는 실린더를 갈아 끼우며 흥분에 찬 소리를 냈지만, 티페레트는 냉정하게 혀를 찰 뿐이었다.

《글쎄. 내 생각에는 일시적인 것 같은데. 지금은 몰라도 아카이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 저렇게 빛나는 것으로 끝일걸?》

“그러면 뭔가 해보라고! 이딴 식으로 나올 거야?”

총성 사이에서 샤하나즈의 외침을 들은 것인지 레티시아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소리지르는 샤하나즈의 어깨를 잡았다.

물론 불사자들은 그들이 대화할 여유를 줄 리가 없었고, 레티시아는 일단 그의 어깨를 지지대삼아 팔을 올리곤 권총을 발사했다.

“왜? 무슨 일이야?”

“아카이브의 영향권을 벗어나면 수호자는 가동하지 않을 거래요. 이렇게 됐다면 대강이 아니라 정확하게 아카이브로 가야 해요.”

총성으로 이명이 울렸지만, 샤하나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최대한 레티시아에게 전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주변을 밝히는 아이샤를 불렀다.

“아이샤. 지금 수호자 안에 타고 있는 리암을 빼내올 수는 없어?”

“무리야. 내 능력은 그렇게 섬세하게는 쓸 수 없다고. 아침의 파편만 있었다면 여기서 비행선 방향을 바꿔보기라도 했지만, 그것도 지금은 불가능해.”

어둠을 뚫고 간신히 모두와 합류한 에라실도 그 말을 들었는지 표정을 구기며 대답했다.

“큰일인데, 지금 불사자 때문에 조종간도 망가졌어, 그 시체가 구동부에 밀려들어간 것 같아 이제 더 이상의 방향 전환도 무리야.”

“그럼 어쩌자고! 이미 불사자들이 커티스를 뒤덮어서 리암을 빼낼 수도 없단 말이야!”

전신을 짓누르는 어둠 속에 깊이 빠진 경험이 있던 샤하나즈는 한 가지 확실한 대답은 알고 있었다.

만약 수호자가 기동하지 않는다면 리암은 절대로 이 밤을 넘길 수 없다.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던 샤하나즈는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인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에 박힌 톱니에 손을 올렸다.

“아이샤!”

“왜?”

“나를 비행선 밖으로 보내줘! 내가 뭔가 해 볼 테니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밖은 어둠밖에 없어! 그리고 혼자 뭘 하겠다고!”

“빨리! 리암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나도 모르니까!”

샤하나즈의 재촉에 아이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의 손을 붙잡았고, 이내 점점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둘을 휘감았다.

그리고 샤하나즈가 눈을 떴을 때, 둘은 모두 바람이 몰아치는 비행선의 위에 도착해 있었다.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짙은 어둠이 세상을 뒤덮어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이샤의 불길을 삼키려는 듯 점점 그들을 좁혀왔다.

“이제 어쩌려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티페레트라면 아카이브가 어디에 있는지 알겠지!”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지만, 샤하나즈가 조금 움직이니 그는 비행선의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순식간에 샤하나즈를 뒤덮은 어둠은 야이샤의 비명마저 그대로 삼켜 공허함만 남겼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하늘에서는 한 줄기의 빛이 샤하나즈가 떨어진 궤적을 따라 강하했고, 그 자리에는 푸른빛으로 주변을 밝히는 검은 수호자가 천천히 일어났다.

잠시 어둠 속 깊이 파묻힌 바람에 정신을 잃은 것인지, 샤하나즈는 성대를 울리는 요란한 들숨과 함께 눈을 떴다.

《뭐하는 짓이야? 너 미쳤어?》

“네가 나를 죽게 놔둘 리가 없다고 도박을 건 거지. 그리고 내가 이긴 것 같네.”

아직 제어 권한에 대해서는 교착상태에 있는 것인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자 샤하나즈는 티페레트의 의지에 반해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그러나 다시 몸이 멈추자 눈을 찌푸리며 티페레트를 불렀다.

“그리고 제어 권한이나 넘겨.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내가 언제? 이렇게 된 이상 나 혼자 도망칠 거야. 막을 테면 막아보라지.》

“장난쳐? 누군가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그딴 식으로 나오겠다는 거야? 얼마 전에는 도와 달라면서 질질 짜더만!”

《나는 그런 적 없어! 그건 네가 나를 방해해서 그런 거지 너만 제대로 부품 역할만 했어도 전부 찢어버렸을 거라고!》

티페레트가 억지를 부리는 동안 비행선은 점점 멀어지는 중이었고, 그럴수록 샤하나즈의 마음은 급해졌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지금은 내가 움직이게 해 줘! 이제 노닥거릴 시간은 없어! 지금 당장 아카이브로 가야한다고!”

《그딴 사과로 될 것 같아? 방금 전에는 일만 끝나면 나를 버린다면서?》

“그때는 화나서 그런 거였으니까! 빨리!”

비행선 위에 있는 아이샤의 불로 비행선의 위치를 가늠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유를 얻기 위해 도망친다는 두루뭉술한 목표만 있는 티페레트와 달리 비행선을 쫓는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는 샤하나즈가 조금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티페레트는 샤하나즈의 의지대로 움직였지만, 거의 기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티페레트!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싫어!》

이제 아이샤의 불빛은 아예 보이지 않았고, 샤하나즈의 다급함은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면 날 도와줘! 저번에 내가 도와줬던 것처럼!”

절박한 샤하나즈의 외침에 천천히 기어가던 티페레트의 움직임마저 완전히 멈췄다.

그 대신 거의 멈춘 것 같던 티페레트 몸 안의 톱니바퀴가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양쪽 팔뚝의 장갑은 완전히 전개되어 그 내부의 사슬들이 치렁치렁하게 바닥에 흘러 나왔다.

《너, 그때 그건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어?》

“날 도와주겠다는 거야?”

《빚을 갚는 거야. 그때 일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 같으니까. 대신 움직이는 건 내가 움직일 거야, 넌 그냥 엔진으로 역할만 다 하고 있어. 만약 또 선을 넘으려고 하면 바로 멈출 거야.》

티페레트는 여전히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지만, 샤하나즈는 이를 조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기 위해 티페레트와 신경전을 벌이는 대신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몸이 알고 있는 방법을 문장으로 천천히 읽어냈다.

“달려. 몸 안에서 달리는 의지와 멈추려는 의지를 계속 충돌 시키는 거야. 더 이상 막아낼 수 없을 때 까지, 몸이 터질 것 같을 때 까지. 그러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놓는 거야. 그 속도를 유지하며 제어하는 것으로 움직이는 거야.”

《결국 몸을 갉아먹는 거네.》

살짝 냉소적인 대답이었지만,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 들였는지 티페레트의 몸은 점차 붉게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자세로 티페레트가 톱니바퀴를 돌리며 몸을 가속시키고 있으니 샤하나즈의 심장도 터질 것 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의 말 그대로 한계까지 샤하나즈에게 부담을 가중시킨 티페레트는 한 순간에 모든 제한을 해제하며 순식간에 발진했다.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던 아이샤의 불길은 다시 시야에 들어왔고, 샤하나즈는 이를 고손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 비행선을 아카이브로 인도해 줘! 너라면 할 수 있잖아!”

《내가 선 넘지 말랬지?》

그러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티페레트는 바로 앞에 불멸자가 나타나자 사슬이 끌리던 팔뚝을 휘둘렀다.

수 가닥의 사슬이 불멸자의 몸에 얽히자 티페레트는 그 주변을 한 바퀴 더 돌아 자신을 가속함과 동시에 방향을 조절했다.

그리고 한 순간 바닥을 박찬 티페레트는 불멸자를 닻으로 삼아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사슬이 늘어나며 공중으로 튀어 오르자 한층 더 가까워진 비행선에 사슬을 감았다.

《잡았다!》

사슬을 천천히 감으며 비행선을 견인하기 시작한 티페레트는 불멸자가 가까워지자 기관포를 이용해 간단히 이를 갈아버렸고, 비행선에 딸려가는 자신의 몸은 바닥에 사슬로 고정시켰다.

《말했지? 너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허나 정지했다고 느껴질 만큼 빠르게 뛰는 심장으로 인해 샤하나즈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비행선이 점점 하강하고 있는데?”

“티페레트가......”

《엔진이 비행선을 아카이브로 끌고 가 달라고 부탁했거든.》

떨리는 샤하나즈의 대답을 끊은 티페레트는 다른 사슬을 땅에 박고는 다시 자신의 몸과 함께 비행선을 견인해 갔다.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양 팔은 뜯겨나갈 것 같았지만 샤하나즈는 그저 참아냈다.

그러나 한 순간 모든 것을 참아내던 샤하나즈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나타났다.

또 다른 검은 수호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눈앞에 수호자가 나타나자 티페레트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 아......!》

그 이유는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강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육체라고 할지라고 이를 움직이는 정신은 인간과 다름이 없었다.

처음으로 만난 수호자들에게 대파 직전까지 갔으니 수호자에게 느끼는 두려움은 트라우마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었다.

“정신 차려! 이럴 때 일수록 더 침착해야지! 이런 식으로 굳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싫어! 싫어! 저리 가!》

티페레트가 울먹이기 시작하자 달아올랐던 신체는 한 순간에 식어버렸다.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었던 사슬도 빠지며 티페레트는 비행선에 의해 끌려가기 시작했고,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티페레트! 내가 엔진으로 있잖아! 나를 쓰라고! 나보고 나서지 말라고 한 건 너였잖아!”

샤하나즈의 일갈에도 여전히 혼란에 빠진 티페레트는 본래 가려던 방향과 반대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상황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던 샤하나즈는 땅에 늘어진 사슬을 자신의 발목에 묶었다.

“어쩌자는 거야! 방금 전 그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데?”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을 검은 수호자가 쫓아오고 있었고, 샤하나즈는 결국 약속을 어기고 당황하는 티페레트의 권한을 강탈했다.

허나 티페레트가 협력하지 않으니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수호자의 신체에 힘이 빠지니 비행선의 출력으로 인해 금방이라도 몸이 양쪽으로 찢겨 나갈 것 같았다.

“끄아아! 티페레트 제발! 도망치기만 할 거냐고!”

《아픈 건 싫어! 싫다고!》

《그래서 나를 깨웠냐?》

티페레트가 계속해서 울부짖는 동안 졸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하품과 함께 입맛을 다시는 청년의 목소리가 그들 사이에 파고들었다.

뒤 이어 비행선의 화물칸에서 작은 폭발과 함께 문이 날아가며 검은 수호자가 이에 맞아 뒤로 날아갔고, 한 수호자가 화물칸 밖으로 자신의 팔과 연결된 10m가 넘어가는 포신을 겨눴다.

《아무튼 거기 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랄은 거기까지 하자. 그래야지 나도 마저 쉬지.》

여전히 모든 곳에 어둠이 짙게 끼어 있었지만, 포성보다는 폭발에 가까운 굉음과 함께 발사된 탄환은 정확히 검은 수호자의 오른쪽 다리를 날려버렸다.

검은 수호자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커티스는 화물칸 밖으로 걸터앉아 아래에서 능지처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사슬에 잡아 당겨지는 티페레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 귀찮은데....... 샤하나즈 들리지? 화물칸은 안전해. 아카이브 였던가. 거기에 가까워지면서 빛이 조금 더 밝아졌거든. 리암도 마찬가지고. 일단 비행선을 어떻게 할 방법부터 생각하고 합류할게.》

점점 늘어지는 목소리의 커티스는 어슬렁거리며 화물칸의 안쪽으로 다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불길과 함께 보조 엔진 두 개가 비행선에서 떨어져 나가며 비행선의 고도가 천천히 낮아졌다.

여전히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비행선의 출력이 약해지며 몸이 찢어지는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지 숨을 가다듬은 샤하나즈가 입을 열었다.

“다들 괜찮은 것 확실해?”

《뭐야. 처음듣는 목소리인데, 넌 또 누구야? 뭔데 내 기사 이름을 아는 건데?》

“로크....에 탔었던 샤하나즈야. 설명하면 복잡하니까 그냥 묻는 거에만 대답해줘.”

그 대답을 그리 신뢰하는 듯 보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화물칸에 다시 걸터앉은 커티스가 티페레트를 향해 포구를 겨누지는 않았다.

《그래. 다들 안전해. 근데 왜 지금은 네가 직접 말을 거는 거야? 그 수호자의 영혼은 어디가고?》

“나도 몰라. 이 수호자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지도 모르니까.”

《그건 저 앞에 있는 검은 수호자하고 비슷한 것 아니야? 쟤도 다리 한 쪽이 개박살 났는데, 비명도 안 지르잖아. 뭔가 아는 것 없어?》

분명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검은 수호자를 본 적은 있었지만 7번 전대의 수호자를 파괴하고 어둠속으로 사라진 것이 기억의 전부이기에 사실상 아는 것은 없었다.

“그건 지금 알아보려고. 티페레트, 이번에는 내가 잠깐만 움직일게. 협조 좀 해줘.”

《안전한 것 맞아......?》

검은 수호자가 기동을 정지한 이후로 조금 진정한 티페레트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위험하다 판단되면 가슴에 120mm짜리 구멍 하나 만들어서 얌전하게 만들면 되겠지.》

“지금 죽이지는 마. 물어볼 게 많으니까.”

《리암도 죽일 생각은 없어. 물론 저 녀석을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도 마찬가지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인지 커티스는 거포의 측면에 달린 레버를 잡아 당겼고, 그와 함께 옆에서 거대한 탄피 연기를 내뿜으며 튀어 나왔다.

조금 살벌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가운데, 아직도 겁을 잔뜩 먹은 티페레트는 걸음마를 하는 어린아이마냥 불안한 걸음으로 쓰러진 검은 수호자에 다가갔고, 손가락으로 이를 가볍게 찔렀다.

손가락으로 찌른 검은 수호자는 크게 꿈틀거리자 이와 함께 티페레트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쏴! 쏴버려! 죽여 버리라고!》

소스라치게 놀란 티페레트가 뒤로 기어오며 있는대로 비명을 지르자 커티스는 냉소적인 비웃음을 터뜨렸다.

《겁은 더럽게 많네. 근데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 말을 안 하는 건 좀 의심스러운데. 누가 타고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봐.》

《네가 해! 나는 절대 저기 다가가지도 않을 거야!》

《내가 하면 쟤가 움직일 때 네가 뭘 할 수나 있어? 그냥 일시적인 것일 확률이 높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봐.》

하품을 한 커티스는 티페레트의 등을 다시 떠밀었고,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천천히 검은 수호자의 흉부 장갑에 손을 올려 이를 뜯어내 강제로 해치를 열었다.

그리고 해치가 열리니 샤하나즈는 뭔가 폭발하는 듯, 참아왔던 질문을 쏟아냈다.

“그래서 넌 뭔데! 아카이브의 의지는 뭔데! 대체 넌 뭘 목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야! 빨리 대답해! 죽은 척 하지 말고!”

그러나 이에 반응한 것은 검은 수호자가 아니었다.

콕핏트의 내부를 확인하자마자 커티스는 곧바로 검은 수호자의 양쪽 어깨를 쏴서 두 팔을 무력화 시켰고, 아직 반응도 하지 못한 티페레트를 뒤로 끌어냈다.

《ㅁ...뭐하는 짓이야! 나를 쏘려고 한 거야?》

그러자 커티스는 고개를 저으며 포신으로 콕핏트를 가리켰다.

《잘 봐. 콕핏트가 비어있어. 이건 누가 조종한 것도 아니야. 그냥 수호자 자체가 움직인 거라고. 뭔지는 몰라도 그냥 수호자는 아니야. 우호적인 것 같지도 않으니까 이게 최선이었어.》

콕핏트가 열린 이후로 검은 수호자를 한층 더 경계하는 커티스는 그대로 포신을 열린 콕핏트의 안으로 우겨넣었다.

그러나 그가 마무리를 하기 전, 검은 수호자의 위로 불기둥이 만들어지며 아이샤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밑에 쓰러진 수호자를 유심히 살피던 아이샤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이건..... 세피로트잖아?”

“세피로트?”

아직 몸이 불타는 아이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없는 아카이브의 수호자를 총칭하는 단어야. 이게 있는걸 보면 티페레트가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네.”

《이름이 없는? 그러면 이름이 있는 수호자도 있는 거야?》

샤하나즈의 질문에 아이샤는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름이 있는 수호자는 총 10대야. 티페레트도 그 중 하나이고. 그건 그렇고. 티페레트. 이 근처에 아카이브가 있는 게 확실한데,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겠어?”

티페레트에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그에 대답한 것은 티페레트가 아니었다.

《리암이 찾은 것 같은데.》

모두가 커티스를 바라보니, 그는 아이샤에게 세피로트에서 내려오라 손짓했다.

그녀가 내려오자 커티스는 세피로트의 콕핏트에 포신을 끼워 넣은 채로 세피로트를 옆으로 밀었고, 그 아래에선 희미한 푸른빛이 올라오는 구멍이 있었다.

세피로트를 완전히 치우자 마치 촉수를 뻗는 것처럼 구멍에서 흘러나온 빛은 주변의 돌덩이들을 집어 들어 조금씩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아무렇게나 생긴 바위를 억척스럽게 끼워 맞추는 것처럼 보였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자리를 잡은 바위들은 마치 처음부터 거대한 하나의 암석이었던 것처럼 바늘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야에는 희미하게 푸른빛을 발하는 20m정도의 원뿔모양의 건물이 생겨났고, 무언가에 홀린 듯 입만 뻥끗 거리던 아이샤는 조용히 한 마디를 읊조렸다.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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