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위폐 제작 작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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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이 안톤에게 에라실을 맡기고 돌아오니 비행선 앞에서 3명이 이미 열띠게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8번 전대에서는 사일러스가 나름 붙임성이 가장 좋은 인원이기는 했지만, 갑자기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상해 리암이 서둘러 가보니 시무룩한 사일러스가 그에게 매달렸다.
“리암 나 좀 도와줘.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해서 계획을 냈는데 다들 아니라고 해서 자세하게 설명도 못 하겠어.”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무리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어. 너희들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그것만큼은 허락할 수 없어.”
“그리고 그건 해방군의 전력을 다 끌고 온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해. 금액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현실적인 계획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두 명의 대답을 곱씹던 리암은 얼굴을 찌푸렸다.
평소의 사일러스라면 행동이나 말은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으니 뭘 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무슨 말을 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대체 무슨 계획을 세웠는데 그래? 한 번 들어나 보자.”
리암이 자신의 편에 들자 살짝 표정이 밝아진 사일러스는 다시 한 번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계획은 로샨에 있는 조폐소를....”
“미쳤네.”
사일러스의 계획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리암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5억 일리아스가 길 가다가 주울만한 푼돈은 아니잖아!”
그러나 무언가 잠잠히 고민하던 리암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한 닢 꺼냈다.
‘그렇지만 가설 하나만 입증할 수 있다면 아예 미친 소리는 아니야.“
“리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로샨의 조폐소가 어디 있는지는 너도 알잖아.”
예상하지 못한 리암의 발언에 레티시아는 살짝 표정을 찌푸렸다.
그런 레티시아의 시선은 아예 시선 밖인지 리암은 동전을 근처에 있는 바위에 문질러 깎아내며 대답을 이어갔다.
“그래, 로샨의 최상층. 일라르의 동상 밑에 있지. 그것도 외부로 무력 침입이 불가능하게 도시 안쪽에 파고 들어있는 형태라서 수호자를 써서 무력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지.”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테두리와 문양이 없는 부분을 한참 깎아낸 그는 사일러스에게 그 동전을 던졌다.
“사일러스. 네가 가진 동전하고 그걸 같이 에라실의 치료비로 지불하고 와.”
“갑자기? 그리고 왜 하필 나아?”
“방금은 반쯤 죽은 에라실이 있었으니까 상관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다시 가면 뭔가 간을 보고 있다고 의심할거야. 그랬다가는 진짜로 되돌릴 수 없었겠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줄 수 있어?”
아이샤가 묻자 리암은 투덜거리며 아카이브로 향하는 사일러스를 바라보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아직은 생각이 더 필요해. 무엇보다 사일러스가 어떻게 나오는지가 가장 중요해. 만약 금을 요구했다면 몰라도 돈을 요구한 거라면 이 방법을 쓸 수 있으니까.”
리암도 조금은 초조해졌는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아카이브 쪽만 바라보고 있으니 아이샤와 레티시아도 말없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나, 지금 움직이는 건 무리지?”
“글쎄. 전투 자극제를 먹으면 대충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럴 필요가 있다면 말이야.”
레티시아에게 대답을 들은 리암은 여전히 아카이브만 바라보며 아이샤에게 질문을 돌렸다.
“그러면 아이샤. 도둑질은 자신 있어?”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곳이라면 쉽지. 그냥 들어가서 슬쩍하고 능력을 써서 나오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도둑질을 한 건 아니야. 의회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트집도 잡히면 안 되니까. 그리고....”
“할 수는 있다는 거네. 그러면 이제 그 녀석만 확인하면 되겠네.”
아이샤의 변명은 중요하지 않은지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듣고는 다시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그는 사일러스가 돌아올 때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샤하나즈가 돌아오자 리암은 손가락셈을 하며 눈을 떴다.
“사일러스. 내려갈 때 계단을 썼어, 아니면 그 발판을 사용했어?”
“내려갈 때는 계단으로 갔어도, 올라올 때는 안톤이 고맙다며 발판 쓰는 법을 알려줬는데. 그건 왜?”
그러자 리암은 손가락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안톤하고 있는 시간은 30초에서 1분 사이. 그러면 충분하겠네.”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사일러스가 생각해낸 계획을 조금 보완해봤어. 하나는 나와 사일러스가 수호자를 타고 움직일거고, 누나하고 아이샤가 두 번째 팀으로 움직일 거야. 우리 계획은 조폐소를......”
“내가 말 했잖아. 그 계획은 무리라고.”
아이샤가 자신의 말을 끊자 리암은 그녀를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끝까지 들어. 우리는 조폐국를 습격할 계획이 아니야. 우리가 직접 조폐소를 만드는 거지.”
아이샤가 불길과 함께 가져온 지도를 펼치자 리암은 천천히 계획을 풀어놓았다.
“조폐소를 직접 공격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돈과 간접적으로 관련된 곳은 그것보다는 경비가 덜하지. 그러니 우리는 두 곳을 동시에 공격할 거야.”
리암이 짚은 첫 번째 위치는 로샨의 제 4 위성도시 크바르였다.
“우선 1번 팀인 나하고 사일러스가 수호자를 이쪽의 제련소에서 로샨으로 이동하는 철괴 들을 강탈할거야. 아마 우리가 이전에 비행선을 강탈한 전적이 있어서 호위가 붙겠지만, 먼저 기습을 한다면 충분히 하겠지.”
그리고 크바르에서 출발한 리람의 손가락은 로샨에서 멈췄다.
“그리고 2번 팀. 누나하고 아이샤는 암폴로 동상 아래에 있는 건물로 잠입하면 돼.”
“결국 조폐소가 포함되는 것은 똑같잖아.”
아이샤의 반박에 리암은 침착하게 받아쳤다.
“아니. 목표는 조폐소가 아니라 보관소야. 조폐소에 비하면 보안도 허술하고 훨씬 위에 위치해서 들어가는 것도 쉬워, 목표는 그 곳에 보관된 동전을 만드는 거푸집이야. 누나는 치안을 담당하는 6번 전대였으니까 그 정도 대인전은 가능하겠지?”
레티시아는 잠시 움찔거렸지만,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가능하겠지. 조금 힘들기는 하겠지만.”
“아이샤는 도시 내부로 이동하는 게 가능하고?”
잠시 고뇌하는 듯 보였지만, 아이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가본 곳이니까 가능해. 이론적으로는 나쁘지 않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 이 정도 일은 해야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사일러스는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지 한참 얼굴을 찌푸리다 지도에 다시 손을 올렸다.
“잠깐만. 지금 크바르로 간다고 했잖아. 근데 거기는 수호자를 만드는 강철을 만드는 곳이지 조폐를 위해 은이나 희소 광물을 채취하는 곳은 제 5 도시 크빈 아니야?”
사일러스의 질문에 모두가 동의했는지 다시 리암을 바라보자 그는 지도를 말아 아이샤에게 다시 건넸다.
“그래서 너를 안톤에게 보냈던 거야. 일반적인 동전과 위조 동전을 구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실제로 로샨 내부에선 철이나 싸구려 금속으로 만든 위폐가 유통되는데, 일반적인 동전보다 가벼운 것 말고는 구분할 방법이 없거든. 내가 일부로 가볍게 만든 동전도 구분하지 못하는 걸 본다면 아마 위폐를 구분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겠지.”
“맞아. 채취하는 광물이 그렇다보니 크빈에는 5번 전대 말고도 2번 전대, 때에 따라서는 0번 전대까지 경계를 선다고 들었어.”
“높으신 분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지.”
“정리하면 나와 아이샤가 보관소에서 거푸집을 훔치고, 너희 둘이 그 원료를 강탈한다는 거지? 그렇다면 동전을 만드는 그 작업은 어떻게 할 거야?”
레티시아의 질문에 이번에는 아이샤가 먼저 대답했다.
“그건 우리 해방군 쪽에서 담당할게. 아리아드네가 나를 그리 반기지는 않겠지만, 로샨의 위폐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을 쉽게 거절할 수는 없을 테니까.”
“에라실이 정신을 차리면 커티스와 아서를 수리하고 바로 출발할 거야. 아이샤는 우리랑 함께 출발했다가 작전을 시작하면 그때 누나랑 합류해서 로샨으로 가줘.”
가만히 리암의 이야기를 듣던 레티시아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친 그녀가 일어나려는 것을 사일러스가 도우려 했지만, 상처를 잡은 그녀는 그의 도움을 만류하며 홀로 일어나 아카이브로 향했다.
“누나, 지금 뭐하는 거야? 가서 뭐하려고?”
리암이 묻자 레티시아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뒤를 돌았다.
“너희가 수호자의 준비를 하는 것처럼 나도 준비를 좀 해야 하거든. 조금 부끄러우니까 내가 나올 때 까지는 들어오지 말아줘. 알았지?”
그러나 그녀의 미소는 얼마 오래가지 않았고, 아카이브로 내려가는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의 잔해마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너, 로샨에서 물건 구해줄 수 있지?”
“넌 뭔데 갑자기 다짜고짜 들어와서 명령이냐?”
레티시아가 절뚝이며 들어오자 비틀어졌던 에라실의 코를 바로잡고 얇은 철판으로 부목을 만들어 고정한 안톤이 얼굴을 구겼다.
“로샨에서만 사용되는 돈을 요구하는 걸 보면 분명 그걸 쓸 방법도 있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물건을 구해올 방법도 있다는 거겠지.”
“틀린 말은 아닌데, 그걸 왜 네가 상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거냐고. 네가 너한테 뭐 빚진 거라도 있어?”
에라실을 앉혀 피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놔둔 안톤은 팔짱을 끼고 레티시아를 노려보았다.
이미 그녀의 수호자를 인질로 삼고 있었으니 자신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었지만, 그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대답만 해. 구할 수 있어? 없어?”
그러자 안톤은 푸른색 파이프를 입에 물곤 깊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일단 돈만 주면 구해다 줄게. 당연히 수수료는 떼야겠지만.”
“검 두 자루. 1m정도 길이의 장검하고 50cm 정도의 단검. 한 손으로 쓸 수 있는 가벼운 것으로.”
“그리고 그건 왜 필요한데?”
“5억 일리아스라며? 지금 계획으로는 3번 전대 전대장을 납치해서 몸값을 요구할 생각이야. 그 정도 계획이라면 이 정도 준비는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레티시아의 대답을 들은 안톤은 사레라도 들린 사람처럼 기침하며 연기를 토해냈다.
자신이 들었던 말을 믿을 수 없었는지 그는 잔기침하며 그는 레티시아를 다시 살폈지만, 이미 의자에 앉은 레티시아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별것도 아닌 검 두 자루만 구해주면 네가 원하는 5억 일리아스를 구해준다고. 손해 볼 건 없잖아?”
“좋긴 한데, 뭔가 계산이 틀린 것 같네. 나는 선불 밖에 안 받아. 후불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받을 수 있도록 뭔가 조치를 취하고. 5억 일리아스와는 별개로 돈을 줘야 할 거야.”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
약간 게슴츠레한 눈으로 안톤을 바라보던 레티시아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를 경계하곤 있었지만, 오금이 저리는 것인지 뒷걸음질도 치지 못하는 안톤에게 다가간 레티시아는 의식이 없는 에라실와 티페레트에 탄 샤하나즈에게도 들리지 않게 그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그 검만 구해준다면 동생들도 모르는 내 비밀 하나를 알려주지. 그리고 후불로 특별한 것을 하나 해줄게.”
그녀의 속삭임에 살짝 표정이 변한 안톤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보였고, 레티시아는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오며 아직도 의식이 없는 에라실에게 향했다.
여전히 피를 흘리는 그가 걱정되는지 레티시아는 조금 전 고혹적이던 얼굴을 했던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의심될 정도로 자애로운 얼굴로 에라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부탁할게. 그리고 그동안 우리는 여기서 커티스와 아서의 수리를 완료하고 네가 돌아오는 대로 출발할게.”
“좋아. 네 제안 받아들이지.”
손을 씻은 안톤은 상의를 벗어 기계 팔들을 노출시켰고, 티페레트를 붙잡지 않은 수호자 중 하나에 해치를 열어 사다리를 떨어트렸다.
지면에 엎드린 커티스가 오른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자 안면 장갑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기사의 헬름에 있는 슬릿 부분이 점점 벌어지며 두부에 내장되어 있던 거대한 망원렌즈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고, 커티스는 이를 섬세하게 돌리며 초점을 맞췄다.
그의 어깨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육안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이샤는 살짝 조급해졌는지 발을 구르며 커티스를 불렀다.
“뭔가 보이는 거라도 있어?”
《인내심을 좀 가져. 아직 리암이 말한 시간이 안 됐어. 지금은 초점만 미리 맞춰두는 거야.》
조급한 아이샤를 달래는 커티스가 여전히 먼 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그의 옆으로 종아리, 등, 어깨와 팔뚝 아래에 장갑을 전개해 배기 노즐을 드러낸 아서가 다가왔다.
발을 이미 바퀴로 변형시킨 탓이었는지 걸음걸이는 약간 어색했고, 전개된 장갑으로 인해 관절도 완전히 펴지지 않아 자세도 약간 엉거주춤했다.
《그랬던 거면 좀 일찍 말해줄 수 없겠어? 이거 불편하단 말이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
이제 막 사춘기가 끝나 아직 소녀티가 남은 여성의 목소리로 칭얼거린 아서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움직임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참을성이 없는 것은 아이샤나 아서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는지 대답이 없는 커티스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그럼에도 커티스가 반응을 하지 않으니 아서는 아이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 혹시 너도 심심하지 않아?》
“아서. 작전에 집중해. 지금 그럴 때가 아닌 것 잘 알잖아.”
지루해진 아서가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사일러스는 그녀를 다그쳤다.
그러자 아서는 작게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왜? 신경 쓰이는 애하고 내가 대화하니까 신경 쓰이기라도 하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작전에......”
《비행선에는 쟤가 우니까 가장 먼저 가서 위로해 줬잖아? 신경 쓰는 게 아니면 그렇게 빨리 반응했을 리가 없잖아.》
여전히 키득거리는 아서는 아이샤가 자기를 돌아보자 아서는 마치 조용히 비밀 얘기나 하자는 것처럼 가까이 오라 아이샤에게 손짓했다.
《들어와, 내 생각에는 사일러스가.....》
“아서! 뭔 말을 하는 거야!”
당황한 사일러스의 외침에도 아서는 재미있다는 듯 여전히 키득거렸다.
자신이 지른 소리에 잠시 듣는 것에 공백이 생겨 아서가 말을 끝까지 한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멈춘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아이샤의 오묘한 시선은 그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이샤,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걱정 되서 그런 거야. 아서가 원래 그런 가십거리를 워낙 좋아해서.......”
자신이 해명한다고 해도 아이샤가 들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아서는 침착하게 반박을 이어갔다.
물론 100%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로샨에서 자신을 구해준 은혜도 있었고, 화상자국이 있긴 해도 자신이 보기에는 꽤나 매력적인 편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아직 서로 대화도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었고, 사일러스 본인마저도 그 감정이 얼마나 큰지 애당초 진심으로 품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본인도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아서가 폭탄을 터트려 버린 것이니 사일러스의 입장은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급해진 사일러스를 구한 것은 무미건조한 커티스의 목소리였다.
《적당히 하고 집중해. 이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사일러스는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 아이샤의 눈치를 살폈지만, 여전히 오묘한 그녀의 표정은 읽기 힘들었다.
“그래서 병력은 얼마나 있어?”
《리암의 예상범위 안이야. 있는 병력은 운송을 담당하는 5번 전대 수호자 2기와 호위를 담당하는 2번 전대 수호자 2기.》
미세하게 초점이 맞지 않는지 커티스는 조심스럽게 망원렌즈를 조정했다.
《아마 우리가 비행선을 납치한 것을 알고 있으니 어느 정도 경계는 하고 있을 거야. 아, 이런 거 정말로 귀찮은데.......》
그러자 아서는 자리에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고 자세를 낮춰 자신의 배기구의 방향을 한쪽으로 정렬시켰다.
《어차피 허구한 날 도시 경계만 시킨 주제에 쟤네들이 뭘 알겠어.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모르잖아?》
아서가 조소를 섞어가며 터빈을 돌리기 시작하니 커티스는 팔과 연결된 복열 포신을 앞으로 겨누었다.
커티스의 팔뚝 장갑이 살짝 전개되자 위쪽에 있는 포신이 약실과 분리되는 동시에 아래쪽 포신과 새로운 약실이 연결되었고, 위쪽 포신의 포구 쪽에는 양각대가 튀어나왔다.
양각대가 튀어나온 위쪽 포신이 펼쳐지며 아래쪽 포신과 하나로 합쳐지자 20m가 넘는 포신의 위에 커티스는 머리를 기대어 수호자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저격소총으로 변화시켰다.
긴장감이 넘쳐야 할 순간에도 늘어지게 하품을 한 커티스는 아이샤를 바라보지도 않고 떠나라고 손짓했다.
《지금 출발해. 양동 작전 시작이야.》
《몸조심해. 사일러스가 걱정하니까.》
“아서! 끝까지 이러기야?!”
그러나 사일러스의 대답을 아예 묵살해 버릴 생각이었는지 아서는 사일러스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을 맞춰 터빈의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당연하지만 그의 외침이 완전히 묻히는 동시에 갑작스런 가속으로 주변 풍경이 늘어지니 사일러스는 불길에 휩싸여 사라지는 아이샤의 마지막 표정도 확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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