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수술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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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하나즈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격통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그가 가슴을 붙잡고 일어나려하자 황급히 달려온 레티시아가 샤하나즈의 어깨를 눌러 그를 다시 눕혔다.
“다행이다. 이제 정신이 들었구나?”
정신은 차렸지만 아직도 어지럼증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샤하나즈는 미간을 짚고 신음소리를 냈다.
“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 거죠?”
“밤이 3번 지날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지. 아, 미안하게 생각할 것 없어. 네가 세상 편하게 퍼질러 자는 동안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 일할 시간이 생겼으니까.”
레티시아가 샤하나즈에게 달려간 걸 본 에라실은 검은 기름때가 묻은 장갑을 벗어 한쪽으로 접어 던지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딱히 그의 설명이 없더라도 붉게 충혈 된 눈과 깊게 짙게 그늘이 진 눈가에서는 얼굴에 묻은 기름때보다 짙은 피곤이 묻어나왔다.
심지어 그런 에라실이 그나마 상태가 좋았던 것이지, 아직 부상이 다 회복되지도 않은 사일러스와 리암은 몸에 붕대를 감은 상태로 더욱 피곤에 절어있는 모습으로 바닥에 뻗어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흐느적거리는 불기둥과 함께 안색이 창백한 아이샤가 나타났고, 어깨에 짊어졌던 자루를 내려놓은 그녀는 곧장 입을 막고 구석으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일단 다들 식사부터 하고 마무리 작업을 하자고. 샤하나즈가 일어났으니까 바로 출발해야지.”
“대체 3일간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말했잖아. 죽기 직전까지 일 했다고.”
그를 원망스런 눈으로 노려볼 힘도 없었는지 에라실은 아이샤가 가져온 자루에서 물을 담은 가죽 자루를 꺼내 목을 축였다.
“아니, 나도 눈치는 있어. 무슨 일이 있는지는 이 정도면 이해했지. 근데 이건 좀 정도가 심한 것 아니야?”
그러니 자루에 담긴 음식을 각자의 분량으로 나누던 레티시아가 샤하나즈를 바라보며 손을 멈췄다.
“너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는 거야?”
“하나도 몰라. 이상한 곳에서 나시르를 만났고, 세피로트의 나무라는 말을 들은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샤하나즈는 어떻게든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지 자신의 눈가를 손으로 누르며 곰곰이 생각했지만, 문자 그대로 필름이 끊긴 것 같이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는 와중 샤하나즈에게 다가온 안톤이 그를 억지로 일으켰고, 갑작스런 고통에 샤하나즈가 비명을 지르니 레티시아의 주먹이 곧바로 안톤의 복부에 직격했다.
한참동안 배를 붙잡고 욕을 하던 안톤은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미럴 새끼야...... 최소한 뭘 하려는 지는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넌 도무지 신뢰를 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발레리안에게도 그런 짓을 했는데, 내 동생에게 같은 짓을 안 했다는 증거라도 있어?”
“진짜 씨발...... 의사가 검진도 못해? 네 동생 죽일 거야?”
배를 부여잡은 안톤이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만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레티시아를 노려보니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를 여전히 믿지는 못하는지 침대에 걸터앉아 쉬는 에라실에게 자신의 대리를 부탁한다는 것 마냥 등을 몇 번 두드리며 양 옆구리에 뻗어있는 리암과 사일러스를 들쳐 맸다.
레티시아가 둘을 데리고 아카이브를 나가는 것을 확인한 안톤은 등의 기계 팔을 꺼내곤 자신의 가슴을 붙잡은 샤하나즈에게 뒤로 돌라고 손짓했다.
샤하나즈가 뒤로 돌자 그의 상의를 벗긴 안톤은 어깨를 잡고 기계 팔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샤하나즈의 광배근 부분을 가볍게 찔렀다.
“등에 뭔가 느껴지는 것 있어? 통증이나 압박감이라던지?”
샤하나즈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전혀.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러면 이건?”
허나 자극을 받는 샤하나즈 보다 옆에서 이것을 지켜보는 에라실이 먼저 반응했고, 얼굴에 피곤이 가득 묻어있음에도 화들짝 놀란 그는 샤하나즈의 등을 찌르는 안톤의 기계팔을 붙잡았다.
“뭔 짓이야?! 미쳤어?”
“아니, 뭐 느껴지는 건 여전히 없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샤하나즈가 뒤로 돌아보자 에라실의 손에 붙잡힌 안톤의 기계 팔에는 용접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이에 샤하나즈는 황급히 자신의 등을 만져보았고, 등에 손이 닿는 감각보다 손에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나무껍질이 닿자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건 뭐냐고!”
기계팔을 붙잡은 에라실의 손을 쳐낸 안톤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침식이야. 아마 세피로트의 나무를 쓴 것 때문에 네 몸이 수호자의 영향을 받은 거겠지. 최대한 빨리 그 톱니바퀴를 네 몸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어디까지 침식될지 나도 장담 못해.”
“그러기 위해선 아카이브로 가야 한다며? 또 준비할 것도 있고?”
“그래, 그래서 그 아카이브로 가기 위해서 네가 의식이 없는 사이 바쁘게 준비한 거야. 아카이브로 가는 것 말도고 다른 문제가 하나가 있긴 하거든.”
뭔가 말하려던 안톤은 잠시 에라실의 눈치를 살피더니,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을 노려보는 그에게 나가 달라고 슬쩍 고갯짓을 했다.
그러나 에라실은 안톤이 그런 태도를 보이자 오히려 더욱 나갈 생각이 없는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그를 노려보았다.
“꼭 이런 호로새끼 같은 태도를 보여야 해?”
“넌 내 수호자에도 장난 쳤잖아. 이전부터 구린 냄새가 났는데, 이제는 확증까지 있으니까 더 조심해야지.”
그러자 잔뜩 화가 난 안톤은 그의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이를 피한 에라실은 오히려 역으로 안톤의 손목을 잡아 등 뒤로 꺾었다.
그러나 등 뒤로 손이 꺾여있음에도 의견은 꺾이지 않은 안톤은 여전히 화가 가득 찬 목소리로 에라실을 다그쳤다.
“그럼 잘 들어 개좆새끼야. 이제는 그런 장난 칠 이유도 없고, 여유도 없어. 축생같이 감 하나 좋은 건 인정하는데, 이딴 식으로 병신짓을 계속하면 나도 병신짓을 해버리는 수가 있어. 그때는 사람 하나 뒤지는 걸로는 안 끝날 거다. 알겠으면 이거 놓고 당장 꺼져. 씨발 새끼야.”
반은 협박, 반은 모욕인 안톤의 발언에 표정이 구겨진 에라실은 그의 어깨에서 무언가 어긋나는 소리가 날 때까지 관절을 비틀었지만, 잠시 뒤 그의 팔을 놓고는 아카이브 내부에 격납된 스펜서에 탑승했다.
그 내부에서 에라실과 스펜서의 대화가 들리는 것인지 신경질적으로 귓구멍을 후비던 안톤은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하자 신음과 욕설을 함께 삼키며 자신의 어깨를 끼워 맞췄다.
“아무튼. 네 수술에 필요한 것에 관해서 인데. 원래는 누구에게도 말 하면 안 되는데, 티페레트에게 전하려면 네가 알아야 하니 다른 방법이 없으니 잘 들어. 티페레트에게 똑바로 전하고.”
“대체 뭐가 필요해서 그런 건데?”
잠시 숨을 가다듬은 안톤은 주변을 살피다 낮은 목소리로 샤하나즈에게 속삭였다.
“사람의 시체. 수술을 해야하니까 전신에 사후경직이 일어나지 않은 시체. 그러니까 죽은 지 6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체가 필요해..”
안톤의 말을 들은 샤하나즈는 잠깐 멈춰보라 손짓하며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잠깐만, 그게 왜 필요해?”
“네 몸에서 떼어낸 톱니바퀴를 그 시체에 이식해서 영혼을 정착 시킬 거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비유하자면 사람의 시체로 새로운 수호자를 만드는 거지. 그렇게 해야 수술 이후에 너도 살고 티페레트도 살 수 있으니까.”
《그러면 나를 사람의 몸에 넣는다는 거야?》
안톤의 설명에 티페레트는 샤하나즈보다 먼저 반응했고, 이를 들은 안톤은 살짝 표정을 구기며 샤하나즈를 이상한 듯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셈이지. 그 대신 좀 복잡한 일이 생길 텐데........ 예를 들면 너희 둘이 목숨을 공유한다는 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언제나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던 둘이었지만, 서로의 목숨이 걸린 일에 맞닥트리니 입에서 나오는 말까지 일치할 정도로 마음이 맞았다.
매번 서로 잘 맞지 않는 둘이 합을 맞춘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안톤은 작게 헛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잘 봐. 세피로트의 나무나 검은 수호자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서 왜 그런지는 나도 말 할 수 없어. 그렇지만 내가 수술을 해서 톱니바퀴를 분리한다고 하더라도 너희의 관계까지 완전히 끊어지는 건 아니야. 다시 말해 티페레트가 독립된 몸을 가지고 있더라도 티페레트는 여전히 너의 부품이라고. 마치 수호자에 탄 기사처럼 말이야. 기사와 수호자의 관계는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알고 있지?”
“그러니까 내가 입는 피해는 분리된 몸에 있더라도 티페레트가 공유한다고?”
《그리고 내가 입는 피해도 저 녀석한테 전해지는 거고?》
둘이서 서로 그의 말을 정리하자 안톤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늘어진 아이샤를 불렀다.
“다 알아들었으면 이제 출발해야지. 아이샤, 지금 로샨의 상황은 어때?”
반쯤 진이 빠져있어 구석에 늘어져 반응이 없던 아이샤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눈치 채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개판이야. 경계도 몇 배는 삼엄해진 것 같아. 6번 전대의 수호자가 상시로 도시를 순찰하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0번 전대까지 출격할 거야.”
그러나 안톤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오늘 밤에 이동할 테니까 푹 쉬어둬. 우리는 다시 로샨으로 갈 테니까.”
“대체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얼마나 일을 했던 거야?”
비틀거리며 아카이브의 밖으로 나온 샤하나즈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쳤다.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화물칸의 문은 부서져 있고, 외장도 사슬로 인해 걸레짝이나 다름없던 비행선은 금방이라도 이륙할 수 있을 정도로 수리되어 있었고, 그 내부도 개조가 끝났는지 아카이브 내부의 설비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직 완전히 수리가 끝나지 않은 커티스와 아서는 격납고로 개조된 화물칸 내부에서 에라실이 수리를 진행하는 중이었고, 그 옆에서 장갑을 교체한 발레리안이 그를 돕고 있었다.
“비행선의 속도를 생각하면 오늘 밤이 지난 뒤에 아카이브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도착해서 수호자를 이용해 아카이브 주변을 확보하면 그쪽의 임무는 끝. 그 전에 우리 일도 끝날 거야.”
아직도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는지 마른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리려는 아이샤가 설명하자, 안톤은 주머니를 뒤져 간신히 일어난 리암에게 시계를 던졌다.
“조명을 넣어두긴 했어도 거기서 밤을 버티려면 수호자에 탑승해야 할 거야. 아침의 파편은 충전해 뒀으니 기동 한계 까지는 여유가 있지만 아카이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조심해서 써야 할 거야.”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거보다는 밤이 되기 전에 일어날 수 있을지가 걱정인데.”
시계를 받은 리암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다시 화물칸에 탑승했고, 화물칸의 문이 닫히자 엔진소리와 함께 비행선이 점차 이륙하기 시작했다.
비행선이 출발한 것을 확인한 안톤은 기지개를 켜며 다시 아카이브로 내려갔다.
“너희도 나갈 준비해. 내가 준비만 하면 바로 출발할 거니까.”
호드에게 대파된 수호자 위로 올라간 안톤은 그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를 뒤쫓던 샤하나즈는 수호자 위를 올려다보며 안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 전에 대체 사람의 시체를 어떻게 구할 건지 설명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니야?”
“그건 나만의 방법이 있으니까 너는 신경 쓸 것 없어. 그냥 내가 구해준 시체를 티페레트가 고르기만 하면 그만이야. 네가 끼어들 틈은 없어.”
“로샨에서는 어떻게 하려고? 너하고 아이샤는 몰라도 나는 로샨에서 추방된 사람이야. 거기 있는 걸 들키면 재판도 없이 바로 사살이야!”
샤하나즈가 계속 소리를 질렀지만, 콕핏트의 내부를 뒤지는 안톤은 그를 바라보기도 싫은지 고개도 들지 않고 성의 없는 대답을 이어갔다..
“그것도 신경 쓸 것 없지. 어차피 로샨의 중층 이상으로 갈 것도 없으니까. 내가 가려는 곳은 선각자 가문의 영향이 약한 도시 외곽에 있으니까.”
“지금은 수호자가 순찰을 다닌다고 하잖아! 그건 어쩌려고?”
여전히 그를 쳐다보지 않는 안톤은 더 이상 질문하지 말라는 것인지 성의 없는 대답마저도 하지 않았고, 잠시 뒤 어깨에 가방 하나를 매고 수호자에서 내려왔다.
수호자에서 내려온 그는 샤하나즈를 없는 사람 취급이라도 하는 것 마냥 그의 옆을 지나쳐 구석에 웅크린 아이샤에게 다가가 작은 돌멩이 하나를 건넸다.
“이동하려면 이게 필요하다고 했지? 순수한 아침의 파편. 지금은 수호자에서 꺼낸 이것 밖에 없으니까 이거로 이동하고, 돌아올 때는 내가 도시 내에서 구해 줄게.”
구석에 웅크린 아이샤는 안톤이 건네 준 아침의 파편을 받았지만, 여전히 무릎에 얼굴을 뭍은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동안 웅크리고 있던 아이샤는 안톤이 억지로 그녀를 일으키려고 하니 할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어깨를 힘없이 두드리며 손을 올리라고 손짓했다.
창백한 얼굴의 아이샤는 샤하나즈와 안톤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자 매가리 없이 아침의 파편을 든 손을 들었다.
“그래서 어디로 이동하면 되는 거야? 정확히 이동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위치는 알아야 하니까.......”
“3번 출입구 부근의 25번 구역. 로샤나크라는 이름을 잘 기억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잠깐만, 25번 구역이면......!”
샤하나즈가 안톤에게 질문하기도 전, 아이샤는 주먹을 쥐며 아침의 파편을 으깼고 푸른빛과 함께 3명은 불기둥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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