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욕망의 거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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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가득 채웠던 불기둥이 사라지자 그렇지 않아도 몸의 중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샤하나즈는 크게 비틀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변에 안톤과 아이샤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이샤가 이동을 하며 뭔가 실수한 것으로 보였고, 아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벽에 기댄 샤하나즈는 이동 전 끝내지 못했던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25번 구역이면 창관 밀집지역이잖아....... 대체 여기에서 뭘 하겠다는 거야.”
《글쎄, 난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체를 구한다고 했으니까 여기가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티페레트의 추임새에 뭔가 안 좋은 것이라도 느낀 것인지 샤하나즈가 살짝 시선을 돌리자 그의 옆에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남성의 시체가 한 구 방치 되어 있었다.
어둠이 허용되지 않는 것은 뒷골목이라도 예외가 아니기에 폭행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시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도록 넝마로 대강 덮어 놓은 것 같았지만, 샤하나즈가 이동하며 이가 벗겨진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런 시체에도 그리 놀라지도 않았는지, 시체를 덮었던 넝마를 찢어 자신의 검은 머리를 가리는 두건으로 쓴 샤하나즈는 시체를 살피며 담담하게 티페레트에게 물었다.
“그래서 저건 어때?”
《웩, 저건 좀 아니야. 애당초 인간의 몸에 들어가는 것도 별로인데 저런 몸은 더더욱 싫거든.》
“그래. 그럴 것 같더라.”
티페레트의 대답에 두건을 만들고 남은 넝마를 다시 시체 위에 덮은 그는 시체보다 자신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가 더 신경 쓰이는지 벽을 짚으며 침착하게 골목을 나왔다.
계획 없이 마구잡이로 지어진 조악한 건물들은 조금의 여유 공간도 없이 밀집되어 있었고, 그나마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골목들은 누군가 멋대로 천막을 걸어 자신의 주거지로 삼은 탓인지 거리에 햇빛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멀리서 보이는 로샨의 중앙에서 공급되는 동력으로 가동되는 전구들 덕분에 거리는 어두운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와 함께 육욕에 빠진 사람들이 지르는 교성이 새어나오는 건물의 조명이 퇴폐적인 색으로 거리를 함께 밝히고 있으니, 외설적인 거리를 보고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사람들의 눈도 과도한 빛으로 인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물론 물리적으로 25번 구역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지만, 거리의 실상은 눈부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과도한 빛이 밝히는 것은 역겨울 정도로 불쾌한 악취의 원인이나 먹이를 찾아 나온 쥐와 같이 본래 어둠에 가려져야 할 것이나 보는 것마저도 수치스러워 어둠이 가려줬으면 하는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환경과 크게 다를 곳이 없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샤하나즈에게는 이런 광경은 미세한 자극마저도 주지 못했다.
시체가 부패하는 악취와 과도한 빛에 적나라하게 보이는 쥐들, 그리고 시체마저도 샤하나즈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나체나 다름없는 복장으로 자신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를 유혹해 손님으로 끌어들이려는 창부들 뿐 이었다.
전투를 포함한 이런저런 일로 많이 손상이 되긴 했지만, 샤하나즈가 입은 기사 제복을 알아본 창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그에게 접근해 유혹을 시도했다.
“어머, 거기. 많이 힘들어 보이는 데 잠깐 쉬고 가는 게 어때?”
“기사님, 봉사해 드릴 노예가 필요하진 않으신가요?”
“오빠, 나랑 같이 기분 좋게 놀지 않을래?”
“형, 혹시 그런 취향이야? 그러면 우리 가게 오면 될 텐데......”
중년의 여성에서 아직 2차 성징이 오지도 않은 어린 아이, 심지어 남자까지. 시체에 몰려드는 까마귀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선각자 가문의 외적인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니 기사들은 이러한 업소에 출입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었지만, 개인시간에 기사들이 25번 구역에 출입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들 또한 이런 것을 잘 알고 있어 누가 어느 업소에 갔는지는 철저하게 기밀로 관리하며 손님으로 오는 기사들에게는 추가로 입막음 비용을 받는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25번 구역의 별명은 9번 전대의 격납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익의 대부분은 기사들에게서 나오니 제복을 입은 그에게 몰려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개인시간에도 격납고 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 샤하나즈에게 이런 유혹은 시체의 옆에 누웠던 것이나 처음으로 불멸자를 마주한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살짝만 찌르면 터질 것같이 얼굴이 붉게 물든 샤하나즈는 눈을 감고 가장 먼저 잡히는 손목을 붙잡고 하나의 살덩어리 같이 모인 창부들의 사이에서 빠져 나왔다.
기사라는 중요한 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샤하나즈가 한 명을 선택했음에도 여전히 호객행위를 포기하지 않은 몇몇 이들은 끈질기게 그들을 쫓았다.
몸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어도 몸을 팔던 창부들 정도는 간단히 따돌릴 수 있었지만,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6번 전대의 수호자가 보이자 샤하나즈는 근처에 술집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무언가를 먹고 마시기 위한 술집이라고 하기에는 속이 뒤집힐 정도로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와 시체가 썩는 중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악취를 풍기는 술집의 내부는 문을 박차고 들어온 샤하나즈를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이미 혼돈 그 자체였다.
싸우는 사람들과 널브러진 사람들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난장판 사이를 약간의 술냄새를 풍기는 토사물을 피해 안쪽으로 들어간 샤하나즈는 간신히 숨을 돌렸다.
“망할. 진짜로 수호자가 돌아다니는 중이잖아. 이런 곳에서 뭘 하겠다는 거야?”
“저, 저기...... 손..... 아파요.......”
샤하나즈가 중얼거리고 있으니 그가 인파 사이를 빠져나오기 위해 강제로 데려왔던 창부가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잠시 그 사실을 잊고 있던 것인지 샤하나즈는 화들짝 놀라 손을 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데려온 사람을 확인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창부라는 단어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어린 소녀는 샤하나즈가 잡아당겨 멍자국이 생긴 자신의 손목을 만지작거렸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샤하나즈를 올려다보았다.
왜 하필 무작위로 고른 사람이 이런 사람인지 푸념하던 샤하나즈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을 세 닢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3000일리아스? 이, 이렇게나 많이요.....? 제 팁은 100일리아스 정도면 되는 데. 아........”
돈을 받은 아이가 뭔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옷을 벗으려하니 샤하나즈는 곧바로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아니, 그게 아니야. 뭐하는 거야?”
“그러면 혹시 직접 벗기는 걸 선호 하시나요? 아니면 입은 채로? 그것도 아니면.......”
옷을 벗는 것을 멈춘 아이가 이번에는 샤하나즈의 바지를 벗기려하니 질겁한 샤하나즈는 아이의 손을 바로 쳐냈다.
“아니!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 난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지금 사람을 찾고 있단 말이야. 로샤나크라고. 혹시 누군지 알고 있어?”
무엇을 하려 해도 샤하나즈가 막으니 손을 어떻게 둬야할 줄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모르겠어요. 언니들이면 뭔가 알 것 같기도 한데......”
“그러면 밤이 되기 전에 그게 누구고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찾아와주면 좋겠어. 수고비는 그 정도면 충분하지?”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 샤하나즈가 부탁하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거린 아이는 양 손으로 샤하나즈가 준 동전을 소중히 품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영혼 없이 움직이던 아이가 뛰어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티페레트가 작게 콧소리를 냈다.
《그냥 쟤를 죽이면 안 돼?》
그 말에 최대한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자는 척을 하려던 샤하나즈는 인상을 구겼다.
“뭐?”
《어차피 여기는 시체를 구하려고 온 거잖아. 꼭 골라야 한다면 나는 저 정도 몸이 마음에 드는데, 그냥 쟤를 죽여서 시체로 가져가면 그만 아니야?》
“아니 뭔......”
《지금이라도 쫓아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움직이고 뭐해?》
너무나 당당한 티페레트의 태도에 황당한 샤하나즈는 문자 그대로 할 말을 잃어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일단 사람이 아니니 도덕이 없다는 것은 어떻게 넘어간다고 쳐도, 절대로 시선을 끌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어디서부터 지적할지 종잡을 수도 없었다.
“참나..... 아니......”
《지금쯤이면 도망갔겠다! 네가 못하겠으면 내가 수호자로 대신 해 줘?》
결국 설명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아예 포기한 샤하나즈는 자신을 재촉하는 티페레트를 아예 무시하고 가만히 앉아 그 소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는 중, 혼잡한 술집 안에서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인 무리가 들어왔고, 이들의 기사 제복을 알아본 샤하나즈는 턱에 손을 괘는 척 하며 살며시 그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얼굴을 가렸다.
“망할. 왜 하필 지금 오는 건데.”
다행히 4명의 기사들은 샤하나즈를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서로 요란하게 웃고 떠들며 샤하나즈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얽혀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샤하나즈는 눈을 감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했지만, 괴성을 지르는 것 같이 요란한 그들의 웃음소리에 섞인 대화는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진급이 내일인 거야?”
“그래, 역시 사람은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니까! 그러니까 내가 다 내는 거 아니겠어? 자, 자! 빼낸 만큼 다시 마셔야지!”
“날로 먹은 주제에 무슨 기회를 잡아! 그 쯤 되면 그냥 낙하산이지!”
“야! 나도 그 때 죽을 뻔 했어! 날로 먹기는 무슨! 줄만 있다고 다 낙하산인지 알아?! 너 계속 그러면 재편성 할 때 빼 버린다?”
“맞아. 운도 실력이라는 말 몰라?”
“그래, 너는 내가 0번 전대로 가면 전대장으로 임명해주마!”
권위 있는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인지 가슴을 한껏 부풀려 과장되게 낮춘 목소리에 모두가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렸고, 샤하나즈는 이에 조용히 냉혹한 조소를 보냈다.
그저 수호자와 감응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런 수준 미달의 인간도 기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한심했고,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자신이 저런 조직에 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는 것이 한심했다.
도시를 지키는 기사라는 작자들의 수준이 저런데 어떻게 로샨이 남아있을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을 무렵, 무리의 주도자로 보이는 기사가 잔을 들고 테이블 위로 올라가 술집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함성을 질렀다.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8번 전대를 위하여!”
그 단어에 인상을 찌푸린 샤하나즈가 고개를 돌리니 나머지 인원들은 그 뒤를 이어 건배를 하며 또 다시 함성을 외쳤다.
“그리고 새로운 8번 전대의 전대장 루시안 모토르를 위하여!”
그 함성에 술집에 있는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냈고, 모두의 환호 속에서 테이블 위에서 잔을 한 번에 비운 루시안은 모두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내려왔다.
이에 샤하나즈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니 티페레트가 투덜거렸다.
《뭐야. 이제 와서는 한참 늦었다고. 아마 그 인간은 못 찾을 걸?》
그러나 티페레트의 말까지 듣지 못한 것인지 샤하나즈는 스탠드의 유리잔을 집어 들곤 요란하게 웃으며 잔을 비우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기사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잔을 휘둘렀고, 잔이 산산조각 나며 기사는 잔을 기울이던 자세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이게 미쳤나!”
갑작스런 공격에 다른 기사들이 일어났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기도 전에 샤하나즈는 손에 남은 잔의 손잡이를 한 명의 후두에 박아 넣었다.
그 기사가 어떻게든 피거품을 뿜어대며 어떻게든 숨을 쉬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샤하나즈는 다른 한 명의 명치를 후려쳐 자세가 무너지자 그대로 머리채를 잡고 비틀어 목을 의자 등받이에 내려쳤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지나가자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끼어들 생각마저도 하지 못했고, 당황한 루시안만이 떨리는 손으로 허겁지겁 권총을 꺼내들 뿐이었다.
“ㄴ....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내가 누군지 아냐고!”
루시안은 양손으로 권총을 잡아 떨리는 총구를 간신히 붙잡았지만, 샤하나즈는 조금도 피할 생각이 없는지 그와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네가 8번 전대의 전대장이라고......?”
“네가 어떻게.....!”
샤하나즈의 얼굴을 알아본 루시안은 공포에 질려 있는 대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작은 쇳조각들만 주변에 떨어질 뿐 샤하나즈는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방아쇠를 당겨도 찰칵거리는 소리만 났고,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던 루시안이 넘어지자 샤하나즈는 그가 일어날 수 없도록 무릎으로 흉골을 눌렀다.
루시안은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지만, 팔 힘만으로는 샤하나즈를 밀어낼 수가 없어 몸부림만 칠뿐이었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전대장이야? 에버니저 전대장님을 죽인 것도 모자라서 우리 전대 이름까지 더럽혀?”
“미안해! 미안해! 나도 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살려줘!”
“미안하다고?”
“그래 진심으로 사과할게! 용서해 줘!”
루시안이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빌며 사죄를 구하자 샤하나즈는 그의 왼팔을 붙잡아 관절을 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팔이 꺾이자 루시안은 죽을 것 같이 비명을 질렀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샤하나즈는 관절에서 으직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까지 팔을 비트는 것을 반복했다.
“네 팔을 망가트려서 미안해. 자, 그러면 이제 뭐가 달라져? 네 팔이 다시 원상복구 됐어?”
“제발..... 제발....”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루시안은 비참할 정도로 흐느꼈지만, 샤하나즈의 눈빛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다시 한 번 해보자고.”
“안 돼! 안 돼! 하지 마! 하지 마아아악!”
샤하나즈가 오른팔을 잡자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를 무시한 샤하나즈는 그의 오른팔도 마저 꺾었고, 마치 루시안이 비명소리를 내는 악기라도 되는 것 마냥 팔을 반복적으로 비틀었다.
그의 관절이 아예 망가져 더 이상 정상적인 방향으로 접히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샤하나즈의 잔혹한 연주가 멈췄다.
“자, 네 양 팔을 모두 망가트려서 미안해. 어때, 팔이 좀 돌아온 것 같아? 나는 아마도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진심으로 사과해도 에버니저 전대장님도, 로크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분노에 찬 샤하나즈가 무릎으로 흉골을 내려치자 입을 뻥끗거리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루시안은 오줌까지 지리며 간신히 빌었다.
“사....살려 줘...... 저...전부...다 말,...할 테니까...... 목숨만은......”
“뭘 말해? 그게 사과하고 뭐가 달라? 네가 말한다고 뭐가 달라져?”
“이 제안을 한건 0번 전대였어...... 머큐리 전대장이 나한테 그에 맞는 보상을 줄 테니까 입을 맞추라고 했단 말이야.....! 나....나는 명령을 따를 뿐이었어.....! 그러니까 제발.....제발 살려줘요......!”
얼마나 절박했는지 루시안이 숨도 쉬지 않고 몸에 남은 공기를 짜내며 모조리 털어놓자, 샤하나즈는 그의 가슴을 누르는 무릎을 치웠다.
“고...고맙.....고마....”
샤하나즈가 무릎을 치우자 울먹이는 루시안은 연신 고맙다며 입을 뻥끗거렸지만 샤하나즈는 여전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왜 너를 살려 둬야 해?”
“나......나는 아는 걸 다 말했어....! 그럼 살려 주는 거잖아....!”
“내가 언제 그랬지? 내가 왜 에버니저 전대장님이 산채로 해부되는 고통을 겪도록 만든 사람을 살려줘야 해?”
“에....에버니저 전대장님은 그런 분이 아니였잖아...! 이런 복수를 원하는 분이 아니라고.....!”
루시안의 입에서 에버니저의 이름이 나오자 샤하나즈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네가 맞아. 만약 전대장님이 옆에 계셨다면 그렇게 말 했겠지.”
“그래...... 그러니까.......”
“근데 그 전대장님은 네가 죽여서 지금 옆에 안 계시는데?”
루시안 위에 올라탄 샤하나즈는 그의 늑골 아래를 손가락으로 눌러 복강 안으로 손가락을 찔러 넣었고, 그대로 가장 아래의 늑골을 뜯어냈다.
“네가 그 이름을 꺼냈으니까, 전대장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껴봐.”
뜯어낸 늑골을 집어던진 샤하나즈는 루시안의 비명을 무시하듯 이제는 주변의 비명도 들리지 않은 것인지 다시 복강 안에 손을 집어넣어 그의 늑골을 하나씩 하나씩 뜯어냈다.
주변이 피범벅이 될수록 샤하나즈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지만, 그의 얼굴에 튄 피와 섞여 흘러내리는 눈물은 피눈물이 되어 선명한 진홍색 눈물자국을 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