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25화 (25/50)

〈 25화 〉 욕망의 거리 ­ 4

* * *

방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 로제르를 구석으로 밀어 넣고 자신의 기계 팔을 펼쳐 몸과 팔로 잔해를 막아낸 안톤은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니미 씨발, 안 그래도 귀에 좆 박은 것 마냥 자기 아가리만 여닫는 하는 그 개년 때문에 후장에 톱이라도 처넣은 기분이었는데 여기서 또 지랄이야? 넌 괜찮냐?”

이런 상황에서까지 욕을 참는 것은 힘들었는지 지금까지 참았던 욕을 전부 터트린 안톤은 몸에 쌓인 잔해를 밀어내며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섬세한 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 팔은 잔해를 막아내며 전부 꺾였지만, 로제르가 작게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뜨니 안톤은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아직 안 뒤졌네. 뒤졌으면 존나게 빡칠 뻔 했는데.”

꺾인 탓에 다시 접히지 않는 기계 팔들을 강제로 뜯어낸 안톤은 아직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로제르를 업고 빛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바로 근처에 수호자가 있어 어둠이 완전히 깔려있지는 않았지만, 이미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의 어둠 속에는 이미 불사자들이 천천히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듯, 부패한 성대로 대기를 울리는 함성을 질러댔다.

불멸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미친, 저게 왜 여기에 있어?”

원래 계획대로라면 같이 있던 아이샤와 로샤나크, 그리고 샤하나즈의 상태까지 확인하려 했지만, 바로 눈앞에 불멸자가 보이니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선생님,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나도 몰라! 아무리 이 곳에 빛을 껐다고 하더라도 이 작은 어둠속에서 불멸자가 나타나는 게 말이 되냐고!”

자신의 발목을 잡은 불사자의 손목을 짓밟아 끊은 안톤은 빛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와중에도 수호자와 불멸자의 전투는 이어지고 있었고, 그들이 충돌하고 포성이 울려 퍼질 때 마다 건물이 무너지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런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니 빛에 도착한 안톤은 잠시 고민하더니 어둠이 밀려오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야,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가장 많이 찾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지?”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 에요!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람들을 모아봤자 뭘 할 수 있다고요! 선생님도 다치셨잖아요! 도망치셔야죠! 뭔가 하려면 상황이 좀 가라앉은 뒤에.....”

그러자 안톤은 등에 업은 로제르를 반쯤 던지듯 내려놓고는 멱살을 잡아당겨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안 도와줘! 기다려봤자 사람만 죽을 뿐이라고! 할 수 있으면서 목숨가지고 장난치는 거하고 뭐가 달라 씨발년아!”

안톤이 단순히 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직접 욕설을 하기 시작하니 로제르는 입만 뻥끗거렸고, 이것도 모자라서 안톤은 그런 로제르의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 내가 너를 그렇게 좆같이 가르쳤어? 나한테 배웠으면 똑바로 하란 말이야!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중에 대가를 받더라도 일단은 돕는 게 의사의 본분이잖아!”

조금도 상상하지 못한 안톤의 행동에 로제르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안톤은 그녀의 반응 따위는 궁금하지 않은지 곧바로 무작정 어둠 속으로 뛰어가려하니 로제르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무작정 뛰어가는 안톤을 붙잡기에는 터무니없이 약한 악력이었지만, 이를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그녀의 손이 닿자마자 안톤은 발을 멈췄다.

“지, 지금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은 도시 터널일 거 에요. 이런 상황에서는 대피소로 쓰이니까.......”

“그럼 안내해. 불멸자는 어떻게 할 수 없어도 이 난장판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아이샤가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로샤나크의 팔에 안겨 있었다.

건물을 덮친 수호자로 인해 방이 붕괴하는 순간까지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눈을 뜬 그녀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터널의 안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이샤와 로샤나크가 나타난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을 넘어 아예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자신의 일을 하는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아이샤를 양 팔로 떠받히고 푸른 불꽃으로 만들어진 안락의자에 앉아 허공에 떠있는 로샤나크는 눈을 꿈뻑이며 주변을 살피는 아이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건 본 적 없겠지?”

“대체 뭘 한 거야.......?”

“설명하면 복잡하니까 그냥 올드 원의 힘에 익숙해지면 이 정도 일도 할 수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 둬.”

여전히 웃은 로샤나크는 안락의자에서 일어났고, 그에 맞춰 안락의자는 그녀가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 계단을 타고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온 로샤나크는 아이샤를 세우곤 자신을 끌어안으라고 손짓했다.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너를 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한테 내 정체를 들켜선 안 되거든. 그러니 네가 날 구한 척을 좀 해 줘야겠어. 이런 것도 보여줬는데 그 정도도 못 하는 건 아니지?”

“싫다면?”

그러자 로샤나크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거래를 할 줄 모르네. 이럴 때는 네게 어떠한 이득이 있는지 물어봐야지. 그렇게 물어봤다가는 역으로 당하는 수가 있어. 이렇게 말이야.”

로샤나크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니 그녀의 팔에서 문자가 빛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아이샤의 몸으로 뻗어나가 그녀의 몸을 속박했다.

점점 강해진 압박은 그녀의 관절을 비틀고 살을 찢기 직전까지 강해졌다.

조금만 더 힘이 강해지면 연쇄적으로 전신이 비틀릴 상황에서 로샤나크는 살짝 몸을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래도 귀여운 후손인데 죽이고 싶지는 않거든. 아무튼, 이번 일만 도와준다면 이런 힘을 다루는 요령 정도는 알려줄게. 어차피 수술하려면 필요하잖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안톤이 시체를 찾은 것도, 그 수호자가 된 녀석의 검진을 부탁한 것도, 전부 그 녀석의 수술 때문 아니겠어? 그냥 수술하면 바로 죽을 테니 네가 이런 비슷한 걸 해볼 생각이었잖아? 아마 아리아드네가 힌트를 줬겠지?”

거의 정확하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로샤나크에 아이샤가 당황한 표정을 비치자 그녀의 속박을 풀어준 로샤나크는 그녀의 볼을 장난스럽게 꼬집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얘기를 했는데 눈치를 못 채면 완전히 바보지. 그래서 어떻게 할래?”

그녀가 못미더운지 조금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아이샤는 로샤나크를 끌어안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맞지?”

“그건 해봐야 알겠지.”

아이샤의 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니 로샤나크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동시에 둘을 불기둥에 휩싸였다.

이들의 시야를 가린 불기둥이 사라지자 모두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그때가 돼서야 모두가 이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후, 죽는 줄 알았네. 덕분에 살았네......”

로샤나크는 능청스럽게 땀을 닦는 척을 하며 아이샤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러나 아이샤는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것 마냥 그녀의 입이 닿은 곳을 손등을 닦으며 다른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일단 피해오긴 했는데, 지금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급하게 대피하느라 발목을 다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살피는 여성에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도망치기 전에 본 건 수호자가 불멸자하고 싸우는 거였는데......”

“어떻게 도시 안에 불멸자가 나타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제대로 본 것 맞아?”

로샤나크는 그녀에게 따지려는 아이샤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관없어. 이럴 상황에선 무슨 일 인지 파악하는 것보다 뭘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 아직 거리에 피하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있어?”

“모르겠어요.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피했는데, 어디 깔리거나 다친 사람들은 못 피했을 거 에요.”

그 말을 듣던 로샤나크는 잠시 고민하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자신과 비슷한 체격의 사람을 찾자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겉옷을 좀 빌릴 수 있을까? 나중에 확실히 값은 치를게.”

“옷이요? 그건 갑자기 왜.......”

당황한 듯 대답하긴 했지만, 그녀는 이미 옷을 벗어 로샤나크에게 건넨 이후였다.

긴 소매의 옷을 빌려 입어 자신의 상체를 가린 로샤나크는 옷 대신 목에 걸쳤던 장식 끈을 들고 인파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다들 주목!”

모두들 웅성이고 있는 터널에서 로샤나크가 함성을 지르니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가 모두의 귀를 울렸고, 이목이 집중되어 모두가 침묵하니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비상 상황이니 다들 똑바로 듣도록! 난 지금으로부터 30분 이후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 사이 각 창관의 관주는 자신의 직원 현황을 파악해 실종자 명단을 작성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부상자를 살피며 움직일 준비를 하도록! 그 사이 다른 사람이 욕을 하며 올 테니 그 사람의 지시를 듣도록! 이상!”

“알겠습니다!”

조금 의문을 품을 만도 했지만, 로샤나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함성을 지르며 대답했다.

혼란했던 터널의 안은 그녀의 지시와 함께 조금씩 체계를 갖춰갔고, 장식 끈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로샤나크는 아이샤의 손을 잡아끌고 다른 창관과 연결된 땅굴로 들어갔다.

“대체 뭘 할 생각이야? 아무리 나라도 저 실종자를 다 찾을 수는 없어! 게다가 지금은 밤이라고!”

“알아, 그리고 기사들은 우리들에겐 관심도 없지. 그러니 내가 할 건 기사들의 보급품을 훔칠 생각이야. 우리 둘 만으로는 구할 수 있는 사람들에 한계가 있으니까.”

땅굴의 끝까지 이동한 로샤나크는 건물의 잔해에 문이 막혀 금고의 문이 열리지 않으니 아이샤에게 잠시 물러나라 손짓했다.

그녀가 뒤로 물러나자 로샤나크의 팔에 푸른색의 문자들이 긴 소매의 아래에서 빛나더니, 이내 푸르게 불타올랐다.

이대로 그녀가 금고문을 후려치니 찌그러진 금고문이 건물 잔해를 뚫고 날아갔고, 가볍게 손을 털어낸 그녀는 아이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어둠 속에서 불사자들이 몰려왔지만, 역으로 손을 뻗어 이들의 머리를 붙잡은 로샤나크는 살짝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이들의 머리를 박살내었다.

그와 함께 그녀의 전신이 붉게 불타오르며 어둠을 밝혔고, 로샤나크는 당당하게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대로 기사 놈들의 임시 초소로 갈 거야. 정신을 차릴 틈도 없게 순식간에 박살내 버리자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밀쳐낸 샤하나즈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상처가 있는 것인지 몸을 더듬어보자 욱신거리는 통증이 오른팔을 타고 올라왔다.

이를 직접 보고 싶지는 않았는지 눈을 감은 샤하나즈는 통증이 가장 심한 부분을 직접 만졌고, 그 자리에는 검지 굵기 정도의 철근이 이두근을 관통해 있었다.

허나 철근이 박혔다는 것 보다 그의 신경을 긁어놓는 것은, 철근이 박혀 있어도 문제없이 오른팔이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이를 악문 샤하나즈가 철근을 잡아당기자 검붉은 윤활유 덕분인지 철근은 미끄러지듯 뽑혀 나왔고, 철근이 박혔던 구멍은 금속이 순식간에 매웠다.

“진짜 어떻게 되어 먹은 거냐고......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니잖아?”

이렇게 마구잡이로 처리해도 여전히 문제없이 움직이는 오른팔에 샤하나즈가 인상을 찌푸리니 헛웃음을 지은 티페레트가 끼어들었다.

《엔진이잖아? 처음부터 사람이 아니었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움 하나도 안 되니까 너는 좀 조용히 할래?”

그러나 샤하나즈가 자신의 팔에 박힌 철근에 정신이 팔린 동안 그의 바로 옆으로 건물을 무너트렸던 수호자가 일어나 발을 디뎠다.

그러나 그 수호자는 샤하나즈를 잡으려 하는 것이 아닌, 바로 앞에서 괴성을 지르는 불멸자를 향해 기관포를 겨누고 있었다.

물론 지금 눈앞에 있는 수호자가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수호자는 물론이거니와 기사들까지 몰려올 것이니 샤하나즈는 곧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저게 왜 여기에 있어? 고작 불이 꺼졌다고 이렇게 된 거야?”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게다가......》

티페레트가 말꼬리를 흐리자 샤하나즈는 그녀가 말을 끝낼 때 까지 기다렸지만, 수호자와 불멸자가 함께 보일 정도로 거리를 벌렸음에도 티페레트는 말을 끝마치지 않았다.

“게다가 뭐?”

《참나, 네가 도움 안 되니까 조용히 하라며? 시키는 대로 해도 불만이네.》

티페레트가 그에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놀려대니 샤하나즈는 또 다시 톱니바퀴를 치려했지만, 방금 전 의미 없는 고통을 떠올린 것인지 있는 힘껏 주먹을 쥐는 것으로 화를 참았다.

“지금같이 도움 될지도 모르는 말은 끝까지 해야지!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내가 알 게 뭐야. 그리고 알려줘 봤자 나 없이 너 혼자 뭘 할 수 있는데?》

마음에 들진 않아도 정곡을 찌르는 티페레트의 일침에 샤하나즈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티페레트의 말 그대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모든 것에서부터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어둠이 되었든, 기사가 되었든, 수호자가 되었든, 불멸자가 되었든, 수호자를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은 무엇 하나 제대로 상대해낼 수 없었다.

“일단은 다른 사람들하고 합류하는 게 먼저인 것 같은데, 다들 어디로 갔는지 봤어?”

《네가 못 본 걸 왜 나한테 물어봐? 난 몰라.》

“그러겠지. 너한테 물어본 내가 멍청이지. 그냥 내가 알아서......”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지 샤하나즈가 다시 움직이려하니 멀리서 폭발이 일어나며 거리에 불이 깜짝이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조명은 꺼지기 시작하자 거리는 하나 둘 어둠에 삼켜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25번 구역 전체가 어둠에 빠졌다.

이는 샤하나즈가 있던 자리 또한 마찬가지였고, 순식간에 밀려둔 어둠에 샤하나즈는 고통스런 소리를 내며 간신히 숨을 들이쉬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하늘에 조명탄 몇 발이 발사되니 끈적인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짙은 어둠은 사라졌다.

그러나 간신히 정상적인 호흡을 되찾은 샤하나즈가 고개를 들자, 보는 것만으로도 시체가 썩는 악취가 느껴질 정도로 거리를 가득 채운 불사자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건 이것대로 안 좋은데.......”

실제로 겪은 적은 없지만, 낱장이 헐어버릴 정도로 읽었던 교본에서 본 적은 있었다.

어둠이 있을 때 불사자들은 그저 주변의 사람들을 끌고 갈 뿐이지만, 끌고 들어갈 어둠이 없다면 그 위험성이 진짜로 드러난다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불사자 중 하나가 괴성을 지르는 것을 신호로 모두가 비명과 같은 괴성을 지르며 가장 가까운 움직이는 물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의 댐이 터진 것 마냥 거리를 휩쓰는 불사자들은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 되었던지 찢어발기며 쏟아져 나왔다.

사람이나 외부 조명 같은 것은 물론이고 몇몇 조악한 건물마저도 밀려오는 불사자의 물결에 무너져 내리자 샤하나즈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도와줄까?》

그러한 상황에서도 티페레트는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유지했다.

“아니! 도움 안 되니까 너는 좀 닥쳐!”

문자 그대로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사자들을 피해 간신히 달리던 샤하나즈는 앞길마저도 막히자 짜증을 쏟아내며 대답했고, 주변을 살피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층 건물의 난간을 올려다보았다.

어차피 실패한다면 찢겨 죽거나 티페레트의 부품이 되는 것은 결정된 사항이기에 샤하나즈는 불가능한 도약을 위해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그가 있는 힘껏 뛰어 오르자 그의 종아리에서 피가 섞인 푸른 증기가 뿜어져 나왔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물 옥상에 안착한 그는 몰려오는 고통에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아악! 미치겠네!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어!”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가 종아리를 확인하니 3쌍의 배기구가 그의 종아리 피부를 찢어놓았고, 증기를 내뿜으며 희붉게 달아오른 금속 배기구에 주변의 살이 지져지며 불쾌한 냄새를 풍겼다.

그럼에도 다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쩡하게 움직였고, 불사자들이 다시 몰려드니 점점 검붉은 색으로 탁해지는 피를 털어낸 샤하나즈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하나즈가 다시 도망칠 곳을 찾아 두리번 거리니 티페레트가 음흉한 소리로 작게 웃었다.

《그래서 어때? 생각보단 도움이 되지?》

“이걸 네가 한 거였어?”

주변을 둘러보는 샤하나즈가 지져진 상처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참아내며 묻자 티페레트는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몸이 수호자에 더 가깝다는 말은 너만 들은 게 아니라고. 만약 네 몸이 수호자에 더 가까우면 부품인 내가 뭔가 할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그거 참 더럽게도 고맙네! 이제는 부품이 되는 것도 모자라서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도 걱정해야 하잖아!”

자신의 몸이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 시험할 의도였는지 한껏 도움닫기를 한 샤하나즈는 평소라면 뛸 엄두도 내지 않을 거리에 있는 다른 건물을 향해 뛰었다.

또 다시 그의 종아리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몸이 발사되는 것처럼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러나 크게 도약해 노골적으로 위치가 노출 된 탓인지 그를 노린 총탄이 그의 옆구리에 박혔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는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땅에 처박힌 그는 총탄이 박힌 곳은 물론 전신에 고통이 밀려들어왔지만, 아파할 여유마저도 없었다.

팔의 피부가 찢겨나가며 붉은 피가 흐르는 상처 아래로 검은 금속이 모습을 드러냈고, 총탄에 맞은 복부에서는 또 다시 검붉은 윤활유가 흘러나왔다.

“씨발... 씨발! 이게 뭐냐고, 진짜!”

《그래서 네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진짜 기묘하네.》

샤하나즈가 도망치는 와중에 티페레트는 그의 몸을 조작하는 법을 익히기라도 한 것인지 그의 팔이 멋대로 움직이며 손가락을 움직였고, 이에 그는 억지로 손을 붙잡았다.

“내 몸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왜? 너도 나한테 탔을 땐 똑같이 했었잖아?》

“진짜 이 망할 애새끼를 빨리 뽑아내야지 미치겠네!”

그러는 와중 무언가 그의 앞을 가로 막았고, 티페레트와 대화에 정신이 팔려 앞을 제대로 주시하지 못했던 샤하나드는 그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니 사과하거나 누구와 부딪혔는지 확인하지도 못했지만, 정신없이 달리던 샤하나즈와 충돌한 누군가는 넘어지지도 않고 샤하나즈의 목을 붙잡았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신기하네. 이게 운명이라는 건가?”

샤하나즈의 목을 붙잡은 여성의 뒤에는 마치 그녀를 호위라도 하는 것 마냥 불멸자가 서서 샤하나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도 목을 조르는 여성의 가는 손가락은 조금도 벌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너도 반가워. 이름 모를 티페레트의 엔진인 인간...... 솔직히 말해서 이 상태로는 누가 엔진이고 누구 수호자인지 모르겠지만.”

《네차흐, 어째서 네가......!》

거의 비명이나 다름이 없는 티페레트의 목소리에도 샤하나즈는 말로 네차흐를 밀어내며 억지로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목의 살점이 뜯겨나가며 피가 쏟아져 나왔지만, 목을 붙잡고 있으니 출혈은 얼마가지 않아 멎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차흐?”

《또 다른 수호자야...... 호드와 같은 수호자......》

“저건 불멸자잖아! 어딜 봐서 저게 수호자라는 건데!”

《저거 말고! 네 눈앞에 있는 저것!》

《그래, 나야 언니. 호드한테는 꽤나 험하게 대했더라?》

그녀의 목소리는 귀가 아닌 수호자의 말과 같이 머릿속에 직접 울렸다.

샤하나즈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으니, 네차흐는 손을 들어 올려 천천히 변형시켜 칼날을 꺼냈다.

《물론 호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알 바는 아니지만, 해야 할 일은 있으니까. 씨앗을 받아갈게.》

《너도 케테르가 깨운 거야?》

《정~답.》

티페레트의 외침에 네차흐는 장난스러움과 음란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오묘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천천히 다가왔고,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불멸자 또한 샤하나즈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이것도 모자라 뒤에선 로샨의 수호자까지 다가오니 티페레트는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빨리 결정해! 도망치거나 나를 쓰거나!》

“말 안 해도 알아!”

종아리에 생겨난 배기구는 그의 다급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인지 또 다시 증기를 뿜어냈고, 불사자들을 자극하는 역겨운 살타는 냄새가 거리에 진동했다.

거의 발사되는 것 마냥 자리에서 튀어나간 샤하나즈는 달려드는 불사자 중 하나의 머리를 밟고 다른 건물의 옥상 쪽으로 도약했다.

아직 그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옥상에 도착한 샤하나즈는 중심도 못 잡고 엉망으로 굴렀지만, 곧바로 일어나 다른 건물 쪽으로 뛰었다.

희미한 진홍빛 조명탄만 25구역을 밝히는 와중, 한 곳에서 선명한 빛이 올라오는 것이 건물 위를 필사적으로 뛰어다니는 샤하나즈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익숙하지 않은 속도에 방향까지 바꾸려하니 샤하나즈는 이미 불사자들에게 찢길 대로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에 처박혔다.

“너도 좀 도울 수 없냐? 사일러스는 아서의 도움을 받아서 잘만 하던데!”

《방금 전 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제는 도우라고? 너야말로 하나만 하지 그래?》

피범벅이 된 샤하나즈가 간신히 일어나며 투덜거리자 티페레트는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러나 이런 둘의 상황을 모르는 불사자들은 살 타는 냄새를 풍기는 샤하나즈에게 돌아섰고, 몸에 피를 털어내며 여유를 부리던 샤하나즈는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전과 같이 뛰어오르는 것으로 피할 여유마저 없으니 샤하나즈는 달려오는 불사자를 황급히 발로 차냈다.

도약할 때의 위력으로 차내니 살아있는 시체는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불사자들과 함께 다시 샤하나즈와의 거리를 좁혀왔다.

“그러면 날 방해하지 말고 도울 방법을 좀 생각 해 봐! 나도 저번에 도와줬잖아!”

《아니, 나도 어떻게 할지 잘 모르는데 어쩌라고! 불만 있으면 네가 부품이 되던가! 그건 잘 했잖아!》

“그랬다가는 다시 못 나온다는 말도 못 들었어?”

샤하나즈는 자신의 팔을 문 불사자의 턱을 비틀어 관절을 뜯어냈다.

그의 뒤에서 접근한 불사자도 있었지만, 그가 휘두른 곡괭이는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샤하나즈의 뒤에서 튕겨나갔다.

그래도 고통은 전해진 것인지 비명을 지른 샤하나즈는 뒤로 돌며 뜯어낸 관절을 그대로 불사자의 관자놀이에 박아 넣었다.

“아 진짜! 내가 왜 사람에서 점점 벗어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상처가 늘어날수록 피부 아래에 감추어져 있던 검은 금속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과 목 부근의 상처는 인간의 붉은 피가 흘러 내렸지만, 그마저도 순식간에 멎어 샤하나즈 본인마저도 기괴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명탄이 점점 희미해질수록 인간을 벗어난 샤하나즈의 몸마저도 불사자들을 뚫고 나가는 것은 무리였고, 어둠이 그를 점점 감싸기 시작하자 샤하나즈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런 샤하나즈의 시야를 푸른 불꽃이 휘감았고, 눈부실 정도로 푸른빛이 희미한 검붉은 조명탄을 대신해 어둠을 밀어냈다.

“아이샤.......?”

이전에도 겪은 적이 있는 경험에 샤하나즈는 가장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는 곳을 바라보았다.

“음, 같은 페이루즈는 맞지만, 아이샤는 아니야. 로샤나크 페이루즈지.”

로샤나크는 자신의 옆에 있는 아이샤를 대신해 비몽사몽 일어나는 샤하나즈에게 대답했다.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순식간에 거리를 휩쓸었던 푸른 불길은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반쯤 녹아내린 불사자들을 연료삼아 불타올라 거리를 밝혔다.

여유롭게 그에게 다가간 로샤나크는 비틀거리는 샤하나즈가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뻗었다.

그러나 샤하나즈가 이를 잡지 않고 일어나려 애를 쓰자 피식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옷 입고 있어. 걱정 마.”

“아이샤....... 아이샤 있어?”

“있는데, 갑자기 왜?”

아직도 어둠에 휩싸였던 영향이 남아 있던 것이었는지 숨이 가늘어진 샤하나즈가 아이샤를 찾자 로샤나크는 휘파람을 불며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물론 샤하나즈는 그런 소리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지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니 아이샤를 마주봤다.

“이 곳에...... 다른 검은 수호자가 있어....... 네차흐라고......”

《뭔가 이상해.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만날 리가 없단 말이야. 게다가.......》

그러나 로샤나크는 샤하나즈의 가슴에 박힌 톱니바퀴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티페레트의 말을 끊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 지금은 너도 기사 전초 기지를 털어야 하거든. 남은 시간은 대충 5분 정도 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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