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26화 (26/50)

〈 26화 〉 욕망의 거리 ­ 5

* * *

도시 내에 불멸자가 나타나는 사상 초유의 사태였음에도, 기사들은 침착하게 긴급 절차를 밟아갔다.

수호자를 통해 지역을 확보하고, 확보한 지역에 기사를 포함한 인원들의 전초기지를 세우는 것.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방자를 찾아내 제거하는 것.

1차로 지역을 확보할 6번 전대의 수호자가 내려온 이후, 후발 주자로 내려온 수호자는 일명 빛통조림이라는 별칭을 가진 간이 전초기지를 설치한다.

약 가로세로 10m에 높이 3m 정도의 양철로 만들어진 직육면체 상자는 설치하는데 3분 정도면 충분하고, 약 30명의 인원이 어둠 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장비들이 탑재되어 있다.

이 장비들을 통해 기사들은 어둠의 한 가운데라도 목적을 달성해낼 수 있었다.

그들을 노리는 것이 불사자만 있다는 가정을 한다면 말이다.

“텅!”

금속으로 만들어진 골조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 전초기지를 흔들었다.

동시에 전초기지 내부 전원의 시선이 충격이 전해진 곳으로 돌아갔고, 또 다시 충격이 이어지니 총구까지 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절대로 뚫릴 리가 없는 금속의 벽에는 빛나는 푸른 문자가 문신처럼 새겨진 주먹이 뚫고 들어왔다.

주먹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벽면에 뚫린 구멍을 중심으로 탄착지점이 형성되며 벽면은 순식간에 벌집이 되었다.

최대한 담담한 기사들의 모습과는 달리 그들의 떨리는 손가락만큼은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는지 이미 탄창이 비어있는 총의 방아쇠를 계속해서 당기고 있었다.

미친 듯이 이어진 총성에 희미해진 이들의 청각이 돌아오고 나서야 한 명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총구를 내렸다.

“불멸자에 이어서 대체 이번에는 무슨 괴물인 거야?”

허나 누가 그 혼잣말에 대답하기도 전, 벽에 구멍을 뚫었던 주먹이 구멍을 양쪽으로 잡고 양철 벽을 양쪽으로 찢기 시작했다.

찢겨나간 벽을 통해 얼굴을 가린 로샤나크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들은 떨리는 손으로 탄창을 교체했다.

그러나 약실에 탄환을 다시 밀어 넣기 전, 불길에 휩싸인 아이샤가 로샤나크가 만든 틈으로 뛰어 들었다.

그녀가 주먹을 움켜쥐자 푸른색 섬광과 함께 전신을 휘감은 불길이 푸르게 변했고, 바닥으로 타고 수많은 가닥으로 뻗어나가 기사들의 몸을 속박했다.

로샤나크가 길을 열고, 아이샤가 기사들을 붙잡자 마지막으로 샤하나즈가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너..... 넌.....!”

샤하나즈의 얼굴을 알아본 것인지 기사들의 표정이 굳었지만, 정작 샤하나즈 본인은 밝은 곳에서 처음 보는 자신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엉성하게 아문 상처에는 피부 아래의 검은 금속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자신도 조절하지 못하는 속도로 뛰어다니다 넘어져 바닥에 쓸린 곳은 아예 살점이 뜯겨나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인대를 대신해 움직이는 피스톤까지 그대로 드러났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이정도로 몸이 변한 것도 모르고 있던 거야?”

로샤나크의 말 그대로 수호자에 더 가까운 자신의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찬찬히 살피던 샤하나즈는 허탈하게 웃었다.

“빨리 하라고! 너 혼자 여유부리고 있을 거야?”

점점 불길에서 푸른빛이 사라지는 아이샤가 조금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니 샤하나즈는 고개를 들어 자리에 묶인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한쪽에 던지고 남은 하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노리쇠를 당겨 약실에 탄을 장전했다.

“나도 귀찮으니까 갈게 설명은 안 할 거야. 그냥 불사자들이 들어와서 통조림을 버렸다고 하면 죽이지는 않을게. 너희를 별로 죽일 생각은 없고, 그냥 너희 물자만 필요하니까. 창고 쪽 열쇠는 어디 있어?”

샤하나즈가 총을 겨누고 있으니 기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위치는 알고 있어. 근데 우리 안전은 어떻게 보장할 거지?”

그러자 샤하나즈는 거의 넝마가 되어버린 자신의 제복의 가슴팍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무리 쫓겨났다고 해도 나는 아직 기사니까. 기사는 절대 약속을 깨지 않는 법이지.”

아이샤가 그들의 몸을 속박하는 불길을 거두자 입을 열었던 기사는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아주 조심스런 손놀림으로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보였다.

“여긴 그 누구도 없던 곳이다. 맞지?”

“여기 누가 있다는 건데? 성격 더러운 너희 6번 전대 전대장?”

샤하나즈가 약간 비웃음을 섞어가며 맞장구치니 그는 샤하나즈에게 열쇠를 던졌다,

이를 받은 샤하나즈는 바로 로샤나크에게 이를 전달했고, 그녀는 아이샤를 데리고 다른 칸과 이어진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열쇠로 문을 열자 둘이 처음으로 발견한 건 기사들을 위한 장비가 아니었다.

문이 열리자, 문에 기대고 있던 어린 소녀가 그 둘의 발치에 쓰러졌다.

발가벗겨진 전신에는 칼자국과 구타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런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창고를 빠져나오려고 한 것이었는지 긴 혈흔이 창고의 안쪽에서부터 이어졌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놀란 아이샤는 입을 막으며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억눌렀고, 약간의 농담으로 살짝 경계를 늦춰 미소가 돌던 샤하나즈의 얼굴 또한 싸늘하게 굳었다.

총을 집어던진 샤하나즈는 다급하게 로샤나크가 일으킨 아이에게 달려갔다.

“제발, 제발....... 제발 아니라고 해줘......”

중얼거리는 샤하나즈를 뒤로하고 여전히 입을 다문 로샤나크는 피가 엉켜 붙은 소녀의 백발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걷어냈다.

몸의 다른 곳 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은 소녀의 얼굴은 원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난도질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을 알아본 샤하나즈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앞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우연히 손을 잡았던 그 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했던 그 아이였다.

기사들이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이렇게 될 것은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직접 마주하게 되니 샤하나즈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버렸다.

샤하나즈가 근처에서 주저앉으니 흐릿하게 눈을 뜬 아이는 그를 향해 힘없이 손을 뻗었다.

“기......사님...... 저,,,,,, 끝까....지..... 말..... 안....했어요...... 잘....했.....죠.....?”

자신에게 뻗은 상처투성이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작은 손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상처가 남아 있으니 수호자처럼 변한 자신의 손으로 잡았다가는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가 망설이는 동안 샤하나즈에게 힘겹게 향했던 팔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말을 잃은 샤하나즈가 고장 난 기계마냥 주저앉아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로샤나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네가 그 아이를 샀던 적 있어?”

“나는 그저....... 널 찾으려고 돈을 줬을 뿐인데....... 그때 분명 도망쳤을 텐데....... 이렇게 됐을 리가.......”

로샤나크는 잠시 샤하나즈를 의심하는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샤하나즈가 그 소녀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니 자신의 옷을 벗어 아이를 감싸곤 샤하나즈의 품에 안겨주었다.

“네가 샀다면 끝까지 책임져. 아마 네가 릴리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손님일 테니까. 네 목슴을 던져서라도 지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내. 그리고 아이샤.”

자신의 얼굴을 가린 장식 띠까지 풀어 다시 목에 걸친 로샤나크는 파이프를 입에 물고 여전히 참상에 경악하는 아이샤를 불렀다.

조금 진정된 것인지 입을 막은 손은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안색이 창백한 아이샤가 자신을 바라보자 로샤나크는 푸른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며 여전히 자리에 묶인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계획 변경이야. 원래는 이렇게 할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부터 보여주는 것 잘 배워.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아카이브로 갔다간 저 녀석도 죽여 버릴게 빤히 보이니까.”

릴리스를 끌어안은 샤하나즈가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로샤나크의 몸에서 이어진 푸른 문자들이 전신을 속박한 기사들은 눈을 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도 여전히 여유로운 로샤나크는 파이프를 입에서 떼며 푸른 연기를 내뿜었고, 이와 함께 그녀의 전신에는 푸른빛을 발하는 문자들이 문신처럼 선명하게 새겨졌다.

“넌 아마 저 녀석의 톱니바퀴를 빼기 위해서 시간을 멈추려 했겠지. 그런데 올드 원의 힘은 시간을 멈출 수 없어. 그저 다른 위상의 시간을 무한히 작은 찰나에 끼워 넣는 거야.”

자신의 설명을 듣는 아이샤에게 파이프를 튕겨내듯 건넨 로샤나크는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그러자 로샤나크에 의해 묶인 기사 중 하나의 몸에 그녀와 똑같은 문신이 새겨지며 눈동자의 떨림마저 멎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기사에게 걸어간 로샤나크는 나사라도 푸는 것처럼 기사의 머리를 가볍게 돌리더니 그대로 목을 뜯어냈다.

그러나 머리가 분리된 기사의 몸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고, 머리가 없는 목에서는 한방울의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 기사의 몸에서 문신이 사라지자 머리가 뜯겨나간 목에서 피가 솟구쳤고, 그때가 돼서야 머리 없는 시체가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로샤나크는 쓰러진 시체에서 권총을 빼들어 아이샤의 관자놀이에 겨눴다.

“자, 지금 남은 기사는 3명이니까 네게 3번의 기회를 줄게. 만약 실패하면 너도, 방금 나간 저 수호자 녀석도 내 손에 죽을 테니까 신중하게 해. 너희가 만든 이 참상을 바로 잡을 능력을 증명 못하면 내가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거야.”

로샤나크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지만, 피로 흠뻑 젖은 손은 공이치기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렇게 망가졌는데 복구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빠를 테니까.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시작은 에버니저 전대장이었다.

자신에게 이름을 주고, 8번 전대라는 가족을 주었던 아버지 같은 사람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다음은 로크였다.

자신을 기사로 만들어주고, 또 다른 자신이 되어주었던 친구를 넘어선 수호자를 잃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다음은 몸이었다.

아무리 차별받아도, 몸 안은 똑같이 붉고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고 증명해주는 증거를 잃었다.

그 순간까지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제 자신의 손을 스쳐지나간 사람마저도 잃기 직전이었다.

“제발, 제발! 이것마저도 못 하면 나는 뭐가되는 거냐고!”

자신의 품에 안긴 릴리스의 희미한 숨에 집중하는 샤하나즈의 눈에 앞을 가로막은 불사자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달리며 어떻게든 안톤을 찾기 위해 불사자처럼 앞을 가로막는 것을 찢어발기며 나아갈 뿐이었다.

거의 무아지경의 상태로 달려가는 중, 갑작스레 그의 발이 멋대로 움직여 엉뚱한 곳을 밟았고 그대로 달려가는 방향을 급격하게 틀었다.

간신히 넘어지는 것을 피한 샤하나즈가 소리를 지르기 전, 티페레트가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정신 차려! 그대로 갔다가는 바로 네차흐하고 마주쳤다고! 바로 앞에 뭐가 있는지는 보고 달려가는 거야?》

하얗게 변한 머릿속을 꿰뚫는 일침에 샤하나즈는 흐릿해진 시야를 바로잡고 고개를 들었다.

새롭게 쏘아올린 진홍빛 조명탄 불빛 아래에선 이미 수호자와 불멸자가 충돌하고 있었고, 통각마저 자극할 정도로 요란한 총성과 비명소리가 가득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것은 잠시 뿐이었고, 샤하나즈는 다시 안톤을 찾아 무아지경으로 달려 나갔다.

《뭐하자는 거야!》

“뭐가 됐던지 얘를 살리는 게 먼저야! 안톤을 찾아야 해! 아니면 아무 의사라도 상관없으니까!”

주변의 소음에 릴리스의 숨소리가 묻히니 목에 손가락을 올려 맥을 짚은 샤하나즈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티페레트는 이제 샤하나즈의 몸을 다루는 것에 익숙해진 것인지 주변을 조금도 살피지 않고 달리던 샤하나즈는 갑작스레 공중으로 뛰어올라 수호자에서 튕겨 나온 탄피를 걷어찼다.

《그 전에 네가 죽으면 모두 헛것이야! 나까지 죽어버린다고!》

“알고 있으면 도우라고!”

《그러고 있잖아! 지금까지 널 지켜준 게 누구인데!》

“나 말고 얘!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챙기니까! 주변에 누구 없는지 파악은 안 되는 거야?”

안톤에게 배운 것인지 티페레트는 잠시 욕설을 중얼거렸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잠시 뒤 무언가 생각난 것인지 비명과 같이 소리를 지르며 무아지경인 샤하나즈의 집중을 끌었다.

《거기! 거기 있잖아! 로샤나크의 집무실!》

“거긴 이미 무너졌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그거 말고! 집무실에 있었을 때 기억 안 나? 책상 아래에서 사람이 기어왔잖아! 그 터널 안이라면 누구라도 만날 수는 있겠지!》

그러자 샤하나즈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멈춰 서서 방향을 틀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격한 움직임으로 질긴 가죽으로 만든 부츠마저 찢겨 나갔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릴리스를 구한다는 한 가지 목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구역 중앙에 있는 로샤나크의 집무실에 가까워 질 때마다 조명탄의 불빛도 어두워져 짙은 어둠이 끼어 있었지만 샤하나즈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 대신 희붉게 달아오른 다리의 배기구로 빛과 증기로 궤적을 남기며 어둠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짙은 어둠이 몸을 휘감기 시작하자 샤하나즈의 움직임은 눈에 띨 정도로 둔해졌고, 의식까지 흐려지니 멈춰선 샤하나즈는 릴리스를 꽉 끌어안았다.

《생각 좀 하고 움직여! 무슨 생각을 하면 이런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거냐고!》

“티페레트! 이번에는 네가 나를 움직여! 이번에는 내가 수호자가 될 테니까! 너만 믿고 있는다!”

샤하나즈가 마지막 의식을 쥐어 짜내 소리를 지르자 티페레트는 신경질적으로 대답을 질렀다.

《아니, 진짜! 나중에 내 탓하지 마!》

그것으로 샤하나즈의 의식이 완전히 끊긴 것이었는지 눈이 뒤집어졌지만, 그의 몸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종아리의 배기구가 달아오르는 만큼 빛과 증기의 궤적은 뚜렷해졌고, 살이 타는 냄새에 불사자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그러나 티페레트가 움직이는 샤하나즈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자 지면에 균열이 생기며 선명한 그의 발자국이 새겨지는 동시에 샤하나즈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달려가는 것 보다 발사되었다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는 샤하나즈의 앞을 가로막는 불사자는 문자 그대로 충돌과 함께 사지가 산산조각 났다.

충돌과 함께 샤하나즈가 뛰어가는 궤도 또한 위로 튕겨 올라 불사자 무리의 한가운데에 떨어졌지만, 등으로 착지한 샤하나즈는 발꿈치로 지면을 사선으로 내려찍어 몸을 크게 회전시켰다.

동시에 릴리스를 감싸는 것 마냥 몸을 둥글게 웅크려 몸을 거꾸로 세운 그는 불사자의 하나의 목에 다리를 걸어 이를 넘어트리는 동시에 자세를 바로 잡았고, 곧바로 머리를 밟아 으스러트리며 다시 앞으로 뛰어나갔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이 그의 몸을 고려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든 일이 시작한 집무실 잔해에 도착했을 때, 샤하나즈의 발은 피부가 뜯겨나가 검은 금속이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어둠에서 빠져나와 크게 숨을 들이쉬며 의식을 차린 샤하나즈는 한꺼번에 밀려오는 고통에 잠시 주저앉았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뭐라고 하지 마!》

“뭐라 한 적 없어......! 그보다 통로는 어디에 있었지?”

《여기 어딘가 있겠지. 내가 여기까지 오게 했으니까 나머지는 네가 찾아!》

방금까지 인간을 벗어난 움직임은 어디로 간 것인지 살짝 비틀거리는 샤하나즈는 기억을 더듬으며 잔해를 뒤졌다.

한쪽 손으로 손톱이 뜯겨나갈 정도로 잔해를 들추니 익숙한 철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열리지 않으니 샤하나즈는 비명을 지르며 발로 문을 내려찍어 문을 찌그러트려 억지로 열었고, 릴리스를 안곤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문을 부순 것 때문인지 터널 안은 사람들의 비명이 섞인 웅성임이 가득했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모든 웅성거림을 일갈했다.

“뭐야 씨발! 다들 닥쳐! 좆 만한 아가리 나불거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잖아!”

욕설과 함께 인파를 뚫고 안톤이 나왔고, 샤하나즈는 다급하게 릴리스를 그에게 들이밀었다.

“나보고 씨발 어쩌라고?”

얼굴에 짜증 말고는 보이지 않는 안톤이 냉혹할 정도로 반응하자 샤하나즈는 그의 무릎까지 꿇고 그에게 매달렸다.

“도와달라고! 너 의사잖아! 이대로 두면 얜 죽을 거라고!”

그러나 안톤의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니미, 여기 환자가 한 둘인지 알아? 상태가 좆 된 건 알겠는데, 그렇게 무작정 들이밀면 내가 대가리 박고 바로 알겠다고 할 줄 알았어?”

“그러니까 내가 제발 도와달라고 대가리를 박잖아! 이대로 이 아이까지 잃었다간 내가 나를 용납하지 못한다고! 수호자를 탄 기사가 무엇 하나 못 지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러나 안톤은 곧바로 샤하나즈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그의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씨발 새끼야! 눈깔이 있으면 직접 봐! 지금 여기서 안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있어? 여기 지금 넘쳐나는 게 죽음이야! 나는 의술을 행하는 사람이야!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 상황까지 오면 이미 늦었어!”

안톤의 말 그대로 이미 터널 안은 피비린내가 진동할 정도로 부상자가 가득했다.

일손이 모자라 부상자들마저도 자신보다 더 심각한 부상자를 도와야 하는 상황이었고, 다른 통로에서는 샤하나즈와 같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을 데리고 대피한 사람들이 절박하게 도움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오로지 대피만을 위해 만들어진 이 터널에선 상처를 씻기는 것마저도 할 수 없었다.

안톤은 절망만이 가득한 모습에 할 말을 잃은 샤하나즈의 멱살을 잡아 당겼다.

“수호자를 탄 기사가 무엇 하나 못 지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러면 의사가 죽는 사람을 두고 아무것도 못하는 건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아?! 정신 차려 좆같은 새끼야! 지금 너나 나나 똑같아!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해 증오하는, 그러면서 아무것도 못 하는 이기적인 병신이라고!”

모든 감정을 터트린 안톤은 그저 릴리스만 끌어안는 샤하나즈를 뒤로하고 욕설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런 절망의 중앙에 불씨가 튀며 순식간에 푸른색이 섞인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불기둥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기사들의 장비와 함께 아이샤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그녀가 헛구역질과 기침을 할 때마다 입에서 푸른 연기가 새어나왔고, 마지막으로 바닥에 누런 위액까지 쏟아낸 그녀는 머뭇거릴 여유도 없었는지 힘겹게 일어나 안톤을 붙잡았다.

“시...... 시간이.......없어...... 다....... 틀렸.......어.......”

“그건 뭔 후장 빠는 소리야? 제대로 설명 안 해?”

안톤이 비틀거리는 아이샤를 붙잡으니 푸르게 변한 눈이 잔뜩 충혈 된 야이샤는 간신히 숨을 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만약 아침까지 이 도시를 구하지 못한다면...... 로샤나크가 모든 걸 파괴할 거야...... 그러려면 불멸자를 처치해야 하는데....... 로샨이 이 구역을 포기했어.......”

“로샨이 이 곳을 포기했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샤하나즈가 되묻자 아이샤는 눈물이 흩뿌리며 절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0번 전대 수호자가 출격했어...... 불멸자를 처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25번 구역을 봉쇄하기 위해서...... 다 끝났다고........ 뭐 하나, 막을 수도......지킬 수도 없어......”

구토의 후유증으로 제대로 호흡하지도 못하는 아이샤는 꺽꺽거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안톤 또한 그 말에 체념한 듯, 더 이상 화를 내지도 않았고 눈을 감은 채로 아이샤를 놓아주었다.

“씨발......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는데.”

“아니, 아직 안 끝났어.”

릴리스를 바닥에 내려놓은 샤하나즈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막을 거야.”

“무슨 수로? 티페레트가 없으면 너도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그래,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패배자로 죽는 걸 기다리는 것 보다는 수호자이자 기사로 죽는 게 나으니까.”

자신의 가슴의 톱니바퀴를 잡은 샤하나즈는 밖을 바라보았다.

“죽더라도 모든 걸 지켜보겠어. 그게 기사의 본분이니까. 그게 수호자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있는 힘껏 가슴의 톱니바퀴를 돌렸다.

“그리고 그게 엔진과 기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하늘에서 떨어진 섬광이 샤하나즈가 있는 자리에 강하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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